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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가 대체 뭘 잘못한 걸까?

안녕하세요 전라도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뒤 학창 시절은 광주에서 보내고 서울로 대학을 와 졸업 후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전라도 촌놈입니다. 우선 글 내용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여러분께 대체 전라도가, 광주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어서입니다
정치탭을 설정한 이유는 이 내용을 말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주제가 나올 수 밖에 없어서이죠.

전 지금 방송일을 하고 있는데요 직업 특성 상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평소라면 그냥 웃어넘겼으나 바로 얼마 전 우연히 한 문장이 가슴에 박혀 이 글을 씁니다

평소에 촬영 나가면 특히 어르신들은 고향이 어디냐고 자주 물어봅니다. 뭐 한국 어르신들의 정겨운 특징이죠. 그러면 전 보통 서울이라고 거짓말을 하는데요 전라도라고 말하고 상대방이 절 꺼려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나요?라고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유독 한 어르신이 꼬치꼬치 물어보시더군요
‘말투에서 사투리가 좀 느껴지는데 충청도냐 전라도냐?’
(이건 제가 어쩌다보니 대학교에서 친구들 때문에 충청도 사투리가 입에 배어버려서 두 사투리를 섞어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충청도 출신으로 많이 착각받아요)
그래서 전 부모님이 충청도 분이신데 전라도에 친척이 있어서 많이 놀러가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왠지 귀찮아질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죠 그러자 그 어르신이 이렇게 말하시더군요

“그래, 그 빨갱이 동네 출신 아니니까 다행이네. 그 동네 출신들하고는 상종하지 말어. 순 거짓말쟁이들 뿐이구만.”

네, 제가 농담하는 거 같죠? 최근에 직접 겪은 팩트입니다 방송일을 10년 넘게 하는 동안 전 최소 일 년에 두세 번 씩은 어르신들께 전라도 욕을 듣습니다. 저한테 하는게 아니라 그냥 전라도 출신을 욕하시는 말을 일상에서 대화 주제 꺼내듯이 하십니다. 심지어 경상도 함안에 촬영 갔을 때는 저보고
“서울 사람이라 다행이야. 저번에 온 피디는 전라도 사람이라 내가 한 마디도 안했어.”
라는 말까지 눈 앞에서 들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인터넷에서는 전라도 혐오가 더 넘쳐납니다. 인터넷이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요 현실이라는 벽을 벗어던진 사람들은 수시로, 무의식적으로 전라도를 모욕합니다 그저 재미로요 뭐 제가 특정 사이트들을 들어가서 그런 것만 보는 거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하는 커뮤라곤 여기 뿐, 그런 상처 받는 댓글들을 보는 곳은 보통 뉴스나 라이브 방송에서죠
민주당, 5.18 운동, 학생 운동, 민주주의, 전라도와 관련된 내용의 뉴스 영상이기만 하면 거의 대부분 악플이 달립니다. 심지어 주로 보는 건 sbs와 mbc 뉴스들 뿐인데도 그러더군요 tv조선 쪽은 너무 가관이라 다시는 쳐다도 안봅니다.
슈카월드 라이브에서도 전라도 욕이 댓글로 튀어나오고요 침튜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침튜브에서는 댓글 관리는 바로 해주더라고요 슈카나 침착맨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저 그런 욕을 장난마냥 소모하는 사람들이 문제이죠

그 뿐일까요? 매년 5.18만 되면 보수정당이나 정권의 5.18 참배 여부가 논쟁에 오릅니다 심지어 전두환을 옹호하는 정치인도 버젓이 있더군요 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은 엄청나게 많지만 너무 민감한 주제라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전라도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비판을 들어야하는 걸까요? 제 생각에 전라도가 한 유일한 잘못은 한국 역사에서 주도권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 뿐입니다 항상 차별 받고 수탈당하는 입장에서만 있었다는게 문제죠

조선 시대에 전라도는 대표적인 곡창지대였고 조정 관리들의 쌀농장이었습니다. 정치 주류는 한양과 경상도 출신들이 주로 이루는 상황에서 비주류 지역이었죠

이러한 상황은 일제 시대에 더욱 심해졌습니다 일제는 삼남지방을 철저한 쌀농장으로 개조하고 저곡가를 유지했죠 뭐 일제 때는 다같이 수탈당했으니 넘어갑시다

이제 해방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차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6.25 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는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며 전라도를 사실상 배제합니다 몇몇 전투가 있기는 했으나 사실상 핵심 방어병력은 모두 낙동강 전선으로 갔죠
그 부분까지는 이해합니다 당시 국가 멸망의 위기였으니 대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이해해야죠
거기서 제일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당시를 연구하는 근대한국사에서도 많이 외면되는 부분, 바로 강제 징병과 수탈의 역사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고등학생 때입니다 할머니께서 말씀해주셨는데요 6.25 당시 시골에서 농사짓던 저희 조부모님은 갑자기 국군이 마을에 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한 군데로 모으고는 갑자기 총을 겨누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는 마을에 모든 식량을 종자까지 싹싹 털어가고 마을의 장정은 죄다 강제로 군에 끌고 갔다고 합니다 반항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폭행당했고요

그렇게 저희 할아버지는 군대에 끌려갔고 첫째를 임신 중이던 할머니는 그날부로 피죽에 뻘에서 잡아온 조개 등을 먹으며 생존을 위해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그게 끝이냐고요? 아니요. 그 후 북한군이 들어와 국군에 부역했다며 사람들을 괴롭혔고 식량을 수탈해갑니다 그리고 북한군이 물러가자 이번에는 다시 국군이 들어와 북한군의 총칼에 협박당해 식량을 뺏긴 사람들을 빨갱이 부역자라며 탄압하고 또 식량을 수탈해가고요

그로부터 5년 뒤, 전쟁에서 옆구리에 맞았던 총알 한 발을 끝내 빼지 못하고 그대로 몸 안에 품은 채 고향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의 눈 앞에 펼쳐진 건 황폐화된 논밭과 영양실조로 쓰러진 할머니와 첫째 아들이었죠 정부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전라도 깡촌이 아니라 부산과 서울이 훨씬 중요했거든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70이 넘어서야
보훈 지정을 받고 나라에서 치료를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몸 안의 총알은 빼낼 수가 없었고 그로 인해 건강은 이미 많이 망가진 뒤였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진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제가 고등학교까지 배웠던 역사 교과서에는 정말 단 한 줄도. 한 단어도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였거든요

그렇게 궁금증을 가지고 인터넷과 책들을 찾아본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고향만 그런게 아니었다는 것을요
상식 선에서 생각해보죠 도시가 아니라 시골이면 과연 국군이 더 수탈을 잘했을까요 북한군이 더 수탈을 잘했을까요 당연히 처음에 사람들 속여서 모으기 쉬운 국군이 더 잘했겠죠
국군은 당시 의도적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철저한 수탈을 자행했습니다 비록 당시 상황의 급박함 때문에 대규모로 장기간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당한 지역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일제가 나을 지경이었습니다 일제는 그나마 내년을 위해 먹을 거라도 남겨줬으니까요 자국민을 대상으로 강제 수탈과 징용을 자행하는 군대가 민주 정권의 군대일까요?

그래서 전 지금도 가끔 길 가다 보이는 이승만을 추앙하는 글들을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사람을 공과로 나누어 평가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이승만은 그저 독재자, 자국민 학살자일 뿐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박정희가 있을 것입니다 정권 유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지역 감정을 촉발시키고 차별 대우를 한 국가의 암적인 존재였죠 게다가 의도적으로 저곡가 정책을 유지해서 지방 인력을 빼가 결국 지금의 지방 소멸 사태를 일어나게 만든 원인 제공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박정희에게 경제 발전의 공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 갈등이라는 요소를 확대시켜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 갈등이 이어지게 하고 특정 지역 출신들을 차별받게 만든 건 사실 공으로 덮기 어렵죠 사실 박정희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조금 못살수는 있지만 대신 더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전두환이 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학살을 벌인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존재죠 온갖 멸칭을 붙이고 싶지만 정말 욕 밖에 생각나지 않아 말을 아끼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수재셨습니다 시골에서 공부 좀 하던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광주로 유학을 오셨죠 그리고 5.18이 일어났습니다

자유를 외치는 시민들의 물결 속에서 아버지는 어설프게 시위에 참가했었다고 합니다 잘 모르기도 하고 그냥 학교도 쉬니까 남들 하는 거 구경도 할 겸 참여하셨었다고… 그러던 아버지는 총소리가 들리자 도망치셨습니다 아버지 말로는 갑자기 기관총 소리가 들리고 군인들이 나타나더니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죽여대기 시작했다네요 그렇게 고등학생이었던 아버지는 겨우 도망쳐 자취방에 숨어 일주일을 보낸 뒤 학교에 돌아갔습니다.

그런데,돌아간 학교의 자리에는 무수한 국화꽃이 놓여있었습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친구들, 시신조차 못찾은 친구들까지.
그게 아버지의 5.18의 기억입니다

전라도는 이처럼 군사정권과 그 후계자들을 싫어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지역입니다. 이 사태들을 직접 겪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살아있는 한 아무래도 보수에 표를 주기는 쉽지 않죠.

그런데 반대로 대체 왜 전라도가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여전히 은연 중에 남아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대체 전라도가 그들에게 뭘 잘못했죠?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어르신부터 애들까지 전라도를 재미삼아 욕하게 된 걸까요?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 여쭤보고자합니다
전라도가 뭘 잘못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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