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있음)기생수: 더 그레이 탈주 후기 - 핍진성에 재능이 부족한 감독... > 멤버뉴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멤버뉴스

(스포있음)기생수: 더 그레이 탈주 후기 - 핍진성에 재능이 부족한 감독...

저는 기생수 원작을 인생 만화로 꼽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생수 스핀오프 드라마를 볼 때도 원작의 재미를 구현해주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겠죠.

하지만 연상호 감독의 기생수 스핀오프 드라마가 원작의 주제의식을 재현하지 못했다, 독자설정을 가졌다고 비판하는 것까지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원작과 똑같은 얘기 할거면 따로 새 판을 만드는 의미가 없죠. 설정 부분에서도 주인공이 상처를 입은 채로 기생수와 융합하다보니 이중인격으로 공존하게 되었다... 는 부분도 그럴 듯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의 신이치는 오른팔만 먹혔기에 기생수와 공존할 수 있었는데요. 신이치 또한 뇌의 일부분까지 먹힌 상태였으면 인격이 변이되거나 스위치식 이중인격자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기생수 자체가 미지의 존재이지 않습니까.

기생수: 더 그레이의 설정은 원작자가 감수한 것으로 아는데요. 원작자도 작중 묘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충분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요.

그러나 원작재현을 관대하게 넘어간다 하더라도 기묘하게 기생수: 더 그레이는 보다보면 덜컥덜컥 걸리고 몰입이 왕창 깨지는 부분이 산재했는데요. 원작의 숨도 못 쉬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몰입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왜일까?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일단 기생수: 더 그레이의 1화 스토리를 봅시다. 쓰다보니 좀 길게 요약이 되었는데요. 이미 다 아시는 분들은 점선 스킵하시고 아래로 내려가서 보시면 됩니다.

-------------------------------------------

1. 클럽 장면 : 기생수가 취한 남자를 먹어치우고 몸을 강탈함. 그 후 EDM 페스티벌에서 촉수 칼날을 휘두르며 연쇄살인을 벌인다. 기생수의 존재를 소개하는 장면.

2. 부랑자와의 마찰 장면 :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는 여주인공이 고기를 사려는 부랑자와 마찰 겪음. 여주인공이 고기를 구입하려면 정육코너에서 가격표를 부착해 오라고 권유. 그러자 부랑자가 쩌렁쩌렁한 발성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리고 협박한다.

(뭐지? 이 난데없는 비현실적 장면은? 이라는 생각듬. 여성이 폭력에 노출되는 현실을 나타내고 싶은 건가?)

3. 여주인공의 융합 장면 : 그 부랑자가 심지어는 여주인공을 쫒아와서 차로 여주의 오토바이를 받아버리고 흉기로 난도질한다. 그러던 도중 부랑자는 갑자기 뭔가에 의해 몸이 대차게 베여 죽어버린다. 나중 밝혀진 경찰 조사로는 이 남자가 폭력 전과도 있고 조현병 환자라고.

(여전히 아무 개연성도 없고 현실감이 없다는 느낌 듬. 현실에서는 뜬금없이 벼락에 맞을 수도, 차에 치일 수도, 살인자가 갑자기 날 죽일수도 있음. 그러나 서사에서는 최소한의 인과적 빌드업을 해서 살인자가 사람을 죽이려 들어야 하지 않나?)  

칼로 난자당한 여주인공은 놀랍게도 몸이 멀쩡했음. 오래된 흉터가 갑자기 생겨났을 뿐.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의문투성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사를 마무리함.

4. 특수부대와 기생수의 교전 장면 : 시점이 전환됨. 껄렁껄렁한 바람둥이 하나가 여자를 꼬시려 애씀. 그런데 남자가 여자를 따라 가보니 기생수 소굴이었음. 남자가 공포에 질려 도망나오는 순간, 특수부대가 진입해 충탄을 퍼부음. 기생수들은 대부분이 전멸당함.

5. 기생수와의 접촉 : 몇달 지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여주인공. 그런데 기생수들이 그녀를 쫒아와 동족이냐고 물음. 그러자 왜 이러시냐고 뿌리치던 여주인공이 순간 촉수 낼름낼름하며 각성하여 동족들과 인사를 나눔. 동족들은 교회 팜플렛을 건네며 여기가 우리 본거지라고 안내하고 헤어짐.

6. 여주인공의 정체 설명 장면 :  그런데 각성한 여주인공을 몰래 지켜보던 남자가 있었음. 여주인공은 촉수공격으로 남자를 제압하고 명령을 내림.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달아나면 반드시 찾아서 죽여버리겠다고 함. 그런데 왜 자신의 정체를 내보여가며 명령을 내려야 했는가?

사실 각성한 여주인공은 멀쩡한 기생수가 아니었음. 기생수가 여주인공에게 침입하려 할 때, 여주인공은 부랑자에게 칼로 난자당해 있었기 때문에 그 상처를 회복시키다가 뇌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함. 그래서 여주인공과 기생수는 이중인격으로 공존하게 됨.

그 때문에 기생수는 이 사실을 잠들어 있는 여주인공에게 알려야만 했던 것. 그래서 남자를 제압해서 이 내용을 전달하도록 시킴.

7 . 필담 소통 장면 : 남자에게 이 사실을 전달받고 미심쩍은 상태로 집으로 돌아온 여주인공. "내 안에 누군가가 있는 거야?" 라는 의문 품음. 여주인공은 내면의 침입자에게 수첩을 통한 필담으로 질문을 시작. 답변이 달린 것을 보고 경악하며 필담을 나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게 됨.

8. 브리핑 장면 : 한편, 기생수들의 소굴을 습격했던 특수부대 팀장(더 그레이 팀)은 경찰 고관들을 소집하여 브리핑을 염. 그레이팀은 기생수의 정체, 인간에 기생하여 촉수가 변이하는 메커니즘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음. 스캐너로 인간을 스캔해 기생수 여부를 가려내는 기술도 보유. 게다가 EDM 페스티벌 살인사건을 일으킨 기생수 개체까지 포획한 상태였음. 이 모두를 경찰들에게 공개함.

-------------------------------------------


... 여기까지 보고 저는 급 탈주하였습니다. 중간중간 급짜증이 몰려오다가 브리핑 장면에서 폭발했기 때문인데요. 저 브리핑 장면에서 그레이 팀 팀장인 이정현의 연기가 너무 과잉되었다는 지적은 이미 많았죠. 저도 해당 부분 연기가 매우 거슬리긴 했어요.

그런데 전 그것보다도 전개 자체의 개연성과 핍진성이 너무 덜컹거려서 불쾌했습니다.

자, 일단 도입부의 여주인공이 습격당하는 장면을 봅시다. 이 장면은 순전히 여주인공이 기생수로서 각성하는 전개를 위한 도구입니다. 여주인공이 겪을 생명의 위기는 어떤 형태든 상관없습니다. 생명의 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이중인격 기생수로서 각성한다는 전제만 충족하면 되거든요. 논리만 따지면 그냥 길가다가 트럭에 깔려도 상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서사에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스파이더맨이 각성한 건 동네 산책하다 거미에 물려서가 아니고 연구 행사에 참석했었기 때문이죠. 연구소에 갔으니까 생물학적 변이가 일어난 거미에게 물릴 수 있었던 겁니다. 또 추격자에서 희생자들이 하정우에게 험한 꼴을 당한 건 하정우가 전화로 보도방 여자들을 불렀기 때문이죠.

즉, 서사에서는 벼락 떨어지는 급의 우연이 아니라 이야기로서 최소한의 인과적 흐름이 있어야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겁니다. 왜 하필 주인공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납득하기 위한 흐름이 필요해요.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각성의 계기는 필연적 성격을 띄며 작품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 번 도구로 써먹고 없었던 일인 양 싹 잊어버리는 하수식 전개와 경지 차이가 나는 것이죠. 배트맨 시리즈에서 주인공의 부모님 상실 장면 이후, 복수심을 통해 자경단으로서의 정체성 각성 전개, 원수인 조커와의 대립까지 흐름이 이어지듯이요.

그런데 기생수: 더 그레이는 너무 덜컹덜컹입니다. 폭력적인 부랑자의 습격 이전 부랑자와 여주인공은 아무 관계도 없었을 뿐더러, 부랑자가 여주인공을 습격해야만 할 이유도 딱히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냥 분해서 구타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차로 오토바이를 받아버리고 칼로 난도질한다고? 대체 왜? 그 이유는 남자가 조현병 환자라 순간적으로 꼴받아서입니다.

돌려차기남에게 폭행당한 여성 사건 같은게 연상되기는 한데요. 그래도 이야기라면 이것보다는 좀 납득가능한 흐름을 제시하면 안됩니까. 여주인공이 구남친에게 지속적인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을 당하다가 끝내 살해의 위기에 몰렸다 정도도 어렵냐구요.

여성은 언제 어디서든지 남자한테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죽을 수도 있다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 그런 얘기 하는 건 좋은데 이렇게 덜컹거리는 전개를 꼭 가져가야 할까요?

그 다음으로 넘어가 볼게요. 이 작품은 타임라인이 이상합니다. 기생수: 더 그레이와의 비교를 위해 원작의 전개를 제시해 볼게요.

원작 기생수는 기존 크리쳐물에 비해 사회 묘사가 탁월했어요. 왜 뱀파이어물 같은거 보면 사회가 그들의 정체를 모르는 이유가 되게 부자연스럽고 바보같잖아요. 아예 정부나 경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굴거나 무슨 고지라 영화 헬기 격추되듯 한심하게 묘사되기도 하고요.

그에 비해 기생수 원작은 작중 사회적 양상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풀어냈습니다. 기생수가 적당히 두루뭉술하게 안 들키는 편의적 전개 대신 아예 대놓고 정부와 충돌하게 만들어 버렸죠. 그게 리얼하고 자연스러웠고요. 애초에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놈들이 안 들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기생수가 네스 호의 괴수 같이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허황된 괴담이 아니라 실감나게 느껴지죠.

원작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1. 기생수와 융합한 신이치 - 오른쪽이와 이런저런 충돌과 소동을 겪으며 기생수의 정체를 재미있게 풀어감.

2. 사회와 접촉하는 기생수들 - 기생수 무리는 인간 사회를 파악해가며 그 속에 숨어든다.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과 목격자를 통해 각종 도시전설과 불온한 분위기가 퍼져나감.

3. 국가 권력에 노출된 기생수 - 기생수가 저지른 전면적 연쇄 살인 사건 이후 국가는 기생수의 정체를 포착하고 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기생생물의 정체, 인간과의 구별법을 밝혀낸다.

그 다음 최종 흐름이 4. 국가 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전면전을 벌이는 기생수들이라는 전개였죠.

그런데 이와 비교하면 기생수: 더 그레이는,

1. 기생수가 나타났다!

4. 경찰이 모든 것을 파악했다! 간지나는 액션으로 촉수와 맞붙으며 쏴죽인다!

라는 흐름으로 느껴졌습니다.  2, 3은 커녕 1까지 핍진성과 흐름이 완전 박살났어요. 그래서 급 탈주하게 되었고요. 이 작품은 국가, 사회, 시민들이 기생수라는 특이현상을 받아들이는 흐름과 과정이 완전히 증발해 있는 것 같아요. 주인공들이 기생수라는 초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부분도 "원래 그려려니" 식의 대충대충 무덤덤 은근슬쩍이고요.

1화 중반에 갑자기 뛰쳐나와 기생수 소굴을 토벌하는 그레이 팀을 봅시다. 이 팀은 이미 기생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생태부터 인간 판별용 스캔 장비, 심지어는 기생수를 무력화해서 포획하는 미용실 파마 기계 같은 것도 봉고차에 싣고 다니죠.

그레이 팀은 기생수를 봐도 딱히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인상도 없어요. 한드 클리셰인 "자~ 선수 입장. 들어갑니다." 식 허세와 우월감 넘치는 마인드거든요? 자기가 전문가라는 걸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난 태도요. 익숙해서 지겹다는 식이죠. 이게 아마 이정현의 연기가 오그라드는 과잉으로 느껴지는 원인일 겁니다.

이러면 시청자들 역시 기생수의 정체가 시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이 소재를 깔아뭉개는 거나 다름없어요. 가뜩이나 작품 자체가 "응. 이미 기생수 뭔지 다 알아. 정체 알고 시작함 "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그럼 시청자가 대체 뭘 궁금해하고 호기심을 가지겠습니까.

아니 근데 그보다도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요. 도대체 기생수와 접촉을 언제 했길래 기생수의 정체를 다 파악하고 포획장비까지 제조할 수가 있죠? 논리적으로 따지면 그렇게까지 연구가 진행될 정도면 이미 기생수의 최초 습격으로부터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일선 경찰과 시민들은 기생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고요? 최소한 경찰은 의문의 난도질 연쇄살인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잖아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던 사건들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하고요. 근데 경찰도 "? 몰르겠음. 부랑자는 여자 습격하다 갑자기 왜 죽었대" 모드입니다. 전혀 모르고 있어요.

기생수: 더 그레이의 브리핑 장면에서는 그레이 팀이 언론 통제를 통해 기생수의 정체를 철저하게 숨겼다고 하는데요.

원작에서도 일본 정부측 요인들이 사회 혼란, 정부의 이득, 군사병기로 쓸 수 있니 없네 따지며 비공개하자고 갑론을박을 했거든요. 정부가 숨기려고 시도는 할 수 있어요.

문제는 숨길 수 있긴 햐나가 결정적 구멍입니다. 원작의 시점인 1980년대 후반대에는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기생수: 더 그레이의 시점에선 SNS와 스마트폰이 일상화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오프닝 장면부터 화제의 중심에 설 EDM 페스티벌 한가운데서 기생수가 무차별 난도질을 벌이게 만들었습니다.

(쓰읍. 근데 이 장면 역시 좀 그래요. 원작의 기생수들도 미숙해서 인간들에게 들킬 때 많았지만 최소한 정체를 숨기려는 노력은 하던데... 또 기생수들은 목적 지향적으로 기계적 사고를 하는 애들이거든요? 대체 무슨 이득이 있어서 난도질을 한 걸까요? 굉장히 비논리적이고 무의미해 보여요. 그냥 장면 간지와 임팩트때문에 논리를 팔아먹은 듯한... )

이러는데 사람들이 모를 수가 있다고요? 도대체 이 세계관의 사회는 기생수와의 접촉을 어떻게 해나간 건지 흐름이 도저히 납득이 안 됩니다.

거기에 여주인공이 필담으로 자신의 정체를 인식하는 장면도 지나치게 숙제식으로 느껴져요. 특히 각성한 기생수가 구교환 배우에게 자기 정체를 여주에게 전달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요. 이거 국어책 낭독과 뭐가 다릅니까.

작중 설정을 갖다가 "응 니 정체는 ABCD고 DEF야. 하하 어이가 없네. 이런 말 하는 내가 웃기지만 일단 믿어." 로 어린애 감기약 떠먹이듯 떠넘기는 건 최악의 설정 활용 아닌가요? 작중에서 사건과 장면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하는 게 창작의 상식 아니었습니까?

이렇듯 이 드라마는 모든 빌드업에서 너무 덜컹거리고 조급합니다. 대체 감독이 왜 그런 걸까요? 아마도 제가 추정하는 창작 의도는 원작에서 다룬 기생수와의 접촉과 교류 서사, 탐구 과정은 대차게 생략하고 엔딩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네요. 기생수가 이미 공식화되고 정부 및 사회와 투쟁을 벌이는 서사요.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치면, 터미네이터가 정체불명의 사이보그 암살자인 시점이 아니라 레지스탕스와 로봇 군단이 미래전쟁을 벌이는 시점의 이야기겠네요.

근데 그거 원작이 있는 작품들의 참패 원인이거든요? "응 원작 스토리 설정 방대해서 다 못다뤄. 니네 다 알지? 난 니들 다 아는얘기 재탕 안해. 신선한 딴얘기 할거야" 로 일관하다 이해 못 시키고 매력 전달도 못해서 패망한 작품이 얼마나 많습니까. 원작이 성공했던 핵심 셀링 포인트를 팽개치는데 잘 되기가 쉽겠어요.

사실 애초에 그런 류의 "엔딩 이후의 스토리" 식 시도 자체가 허망한 것도 문제긴 합니다만. 터미네이터나 에일리언이 의문의 습격자고 힘 약한 주인공이 저항할 때가 재밌지 걔네 정체 초장에 다 까발리고 정부, 군대가 나서고 나면 뭐가 재밌습니까. 그냥 특수부대 총쏘는 양산형 액션영화죠.

이거와 좀 다른 예시로, 스파이더맨과 엑스맨, 다크나이트 트릴로지는 모두 2가 마스터피스죠. 근데 감독이 머리속에 2 스토리 뽕만 가득차서 1편 성장서사 빌드업이 지루하다고 때려치고 2부터 만들면 그게 재미 전달이 쉽겠어요?


이것저것 씹어댔으니 이제 리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제가 연상호 감독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않았는데요. 아마 감독은 이런 핍진성, 개연성 문제가 다른 작품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이 같은 덜컹거림, 형편없는 논리적 흐름을 참아내면 분명 뭔가 볼만한 전개가 있긴 하겠죠? 숙제식 국어책 낭독 전개를 감수하고서라도 하고 싶었던 얘기가 분명 있을 거예요.

근데 거기까지 가는데 인내력이 너무 많이 필요하네요. 그리고 한편으로 이런 불안감도 듭니다.

핍진성 빌드업 다 개판친 다음 하려는 얘기가 별 대단할 것도 없는 식상한 얘기일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요. 그냥 특수부대가 기생수 쏴죽이고 쫒아가고 다급한 척 하고 전문가인척 하는 스토리면 어쩌죠? 기생수 추적하고 본거지 교회 수색 뭐 그런거 하고... 적 기생수 나와서 촉수 배틀하고... 그냥 기생수와 주인공 일행의 사투와 추적을 다루는 크리쳐 스릴러 전개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후반부쯤 마무리 한답시고 인간을 염세적으로 비판하는 메시지병까지 걸린다면? 생각해보니 꽤나 높은 가능성이네요.

기생수가 재밌는 건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가 인간을 막 죽이고 촉수로 실감나게 싸우기 때문만이 아니잖아요. 해당 전개의 긴박감도 물론 재밌긴 한데요. 원작이 기생수를 그저 싸워야 할 신기한 적으로 그리는데 그쳤으면 지금 평가의 절반에도 못 미쳤을 겁니다.

원작을 빛나게 만든 요인은 기생수가 인간 세계와 교류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을 도모하는 묘사였죠. 기생수가 인간을 파악하고 자신들을 규정하며 교류하고 성장해 나가는 입체적 과정이 재밌는 거거든요? 거기에 작가의 인간 사회 통찰 아래서 기생수라는 리얼한 생명체의 생태학적 묘사가 어우러지며 세계관을 완성하고요.

결정적으로 "인간은 기생충이야. 지구를 해칠 뿐이야" 같은 질 낮은 중2병 철학을 뛰어넘어,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놀랍고도 냉철한 주제의식이 기생수를 걸작으로 만들었죠.

근데 그걸 걷어차고 다른걸로 대신 하려면 알맹이가 있는 걸 가져와야 할 것 같군요. 원작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시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잘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액션 볼만한 타임킬링 작품이면 외계인하고 싸우지 뭐하러 원작 가져다 쓰나요.
추천109 비추천 69
관련글
  • 지니어스가 더이상 만들어지지 못한 이유
  • 자고 일어났더니 남편 얼굴이 바뀌었다
  • 지금 이시국에 더 와닿는 80년대 노래 가사
  • 백신 모더나 주식으로 수익률 66% 찍은 딘딘
  •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원더걸스 노래 커버 / 최근 자컨 모음
  • 원더우먼 1984 액션씬 선공개
  • 침착맨의 스파이더맨 소신발언
  • 김병지가 골키퍼 입장에서 본 손흥민의 원더골
  • 코로나 환자 가족에게 연락했더니 모두 사망.jpg
  • 리키 핸더슨, 향년 65세로 사망
  • 실시간 핫 잇슈
  • 뮤직뱅크 컴백무대 / 이영지의 레인보우 무대 모음
  • 아시아쿼터 조건은 NPB 선수들에게도 어필이 된다고 봅니다.
  • 김계란의 제로콜라 정리
  • 학창 시절 남자 애들이 자기 때문에 줄 섰다는 한혜진
  • 남자들이 타짜의 곽철용에게 환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
  • 유민상 컵라멱 먹는법
  • 이시각 진짜로 기자회견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걸그룹..
  • 골목식당, 공릉동 찌개백반집에 감동 받은 정인선
  • 우리나라 진짜 무인도 등대지기 생활
  • 키움 구단 팬 사찰 의혹
  • Copyright © www.webstoryboard.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