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길원의 헬스노트] …
마구잡이 영양제 섭취는 오히려 "독"…맞춤형 영양섭취 "정밀영양협회" 창립
정밀영양
[정밀영양협회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한국인의 영양제(식이보충제) 사랑은 대단하다.
질병관리청이 시행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2020년)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4명 이상인 44.9%가 식사 외에 건강기능식품이나 건강보조식품 등의 영양제를 먹는 것으로 집계됐다.
영양제는 몸에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거나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복용하는 제품을 통칭한다. 복용 제품은 종합비타민무기질(22.3%), 프로바이오틱스(14.5%), 오메가3지방산(12.2%), 비타민C(9.0%), 칼슘(5.7%), 비타민A·루테인(4.8%), 홍삼(4.5%) 등으로 다양했다.
영양제 복용률은 2018년 32.1%, 2019년 41.5%, 2020년 44.9%로 꾸준한 증가 추세다.
연령별로는 1∼2세(56.1%)의 영양제 복용률이 가장 높았고 50∼64세(51.0%), 3∼5세(48.3%), 65세 이상(46.5%), 30∼49세(44.7%) 순이었다.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영양제를 먹는 셈이다.
하지만, 영양제 복용이 실제로 기대만큼의 건강증진 효과를 내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마다 엇갈리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영양제 섭취가 장기적으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볼 수 있는 전향적 연구보다는 연구 참가자들의 기억에 기반한 후향적 분석 또는 기존 논문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메타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연구팀이 미국의학협회(AMA)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JAMA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서 미국 성인 39만124명(나이 중앙값 61.5세)을 대상으로 최장 27년을 추적 관찰한 결과, 종합비타민 복용이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오히려 이 연구에서는 종합비타민을 매일 복용하는 그룹의 사망 위험이 종합비타민을 전혀 먹지 않은 그룹에 견줘 4%가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인종별 분석에서도 이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연구팀은 이 연구 역시 후향적 평가라는 점을 고려해 종합비타민을 복용하는 게 노화와 관련된 다른 건강 결과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또 건강이 좋지 않거나 65세 이상인 고령자가 종합비타민 복용을 시작했기 때문에 사망률 개선 효과가 관찰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점도 논문에 적시했다. 그만큼 연구 결과를 두고 단정적이기보다는 복잡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전문가 그룹에서는 식이보충제 섭취에도 개인 맞춤형 "정밀영양"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신 질병 치료가 개인의 질병을 예측하고 개인별 특성에 맞춘 치료를 제공하는 "정밀의학"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처럼 영양 섭취도 개인별 유전적, 환경적 특성을 고려한 최적의 영양 설루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 분야 전문가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최근 정밀영양협회를 결성한 데 이어 오는 9월 22일에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후원으로 "제1회 정밀영양 콘퍼런스 및 박람회"를 연다.
[정밀영양협회 제공]
국내 의료, 영양, 식품, 유전자, 빅데이터, 정보기술(IT) 등 분야의 기업과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 근거 기반의 개인 맞춤형 영양 관리 서비스를 구현함으로써 국민 건강에 기여하겠다는 게 설립 취지다.
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초고령화로 만성질환 발생이 증가함에 따라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 건강기능식품, 환자식, 메디컬푸드 등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연간 글로벌 건강관리 시장이 1천40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시장만 253조원에 달한다.
더욱이 환자식 시장은 국내 고령인구가 9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연간 1천648억원 규모로 커졌다.
다만, 식이와 질병의 관계에서 "모든 사람에게 맞는" 치료 및 예방 접근법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본인과 맞지 않는 무분별한 건강 보조 약품과 식품의 섭취는 되레 영양 불균형을 초래해 비만과 성인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게 협회의 지적이다.
오상우 정밀영양협회 공동회장(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은 "평소 엄격한 식생활 습관이 필요한 당뇨병의 경우 음식과 영양제 섭취 등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은 환자가 채 5%도 안 되는 게 현실"이라며 "나머지 95%의 환자는 인터넷에서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거나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영양제를 사 먹고 있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오 회장은 정밀영양이 개인의 필요에 맞는 최적의 영양소 섭취를 제시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궁극적으로 정밀의학을 실현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 기반으로는 유전자 분석 기술과 데이터 사이언스 등을 제시했다.
그는 "단순히 무언가를 먹으면 어떤 질병과 건강에 좋다더라는 시대는 저물고,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질병, 유전 정보와 생활 습관에 맞춘 정밀영양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면서 "정밀영양이 암이나 심혈관질환 등의 위험을 조절하는 데 큰 역할을 해낸다면 현재 유전자 검사 등으로 난관이 많은 맞춤형 정밀의학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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