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슈 In] 번번이 …
국민연금공단을 퇴직연금 사업자로 참여시키는 방안 고려 중
퇴직연금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정부가 10여년 전부터 몇 차례에 걸쳐 도입하려 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던 이른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다시 검토 중이어서 이번에는 실현될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
퇴직연금 제도를 운용하는 전 세계 주요 국가 치고 근로자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없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관리, 운용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처럼 투자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별도의 중개 조직이 투자정보가 부족한 가입자(회사 또는 근로자 본인)를 대신해서 적립금을 관리하면서 집합적으로 투자하거나 퇴직연금 사업자(민간 금융기관)를 상대하는 "기금형"이다.
다른 하나는 중개 조직을 거치지 않고 가입자가 민간 금융기관인 퇴직연금 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스스로 투자 상품을 선택해서 운용하는 "계약형"이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계약형으로, 기금형과 달리 가입자가 각자 알아서 적립금을 운용해야 한다.
◇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시도 좌절 거듭
23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등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퇴직연금 개선대책을 논의 중인데, 퇴직연금의 수익률 제고 일환으로 기금형을 도입하는 방안도 협의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글로벌 기금운용 경험이 풍부한 국민연금공단을 각 기업체나 노동자 개인의 퇴직연금을 모아서 거대한 "기금 형태"로 굴리는 퇴직연금 사업자로 참여시키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정치권이 기금형 퇴직연금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8월 말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2016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현실화하진 못했다.
이어 2년 뒤 퇴직연금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가 팔을 걷고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2016년 8월 31일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이를 계기로 퇴직연금 제도가 한 단계 도약하길 기대했지만, 이런 바람은 실제로 이뤄지지 못하고 역시 물거품이 됐다.
정치권에서도 움직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5월 20일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자본시장활성화특위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골자로 하는 퇴직연금 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특위는 이를 통해 가입자가 전문성과 시간 부족으로 겪는 투자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민간 금융기관 간에 상품 계약 유치 경쟁 대신 자산운용 수익률 경쟁이 벌어지면서 고질적인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 문제를 개선해 국민의 노후 소득 보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헛된 결과가 됐다.
◇ 가입자 투자정보 부족 해소·규모의 경제효과 기대 "솔솔"…왜 계속 무산됐나
우리나라는 2005년 12월 퇴직연금 제도를 시행하면서 초기 가입을 확산하기 위해 금융기관을 활용하는 계약형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형은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접 퇴직연금 사업자(금융기관)와 운용·자산관리 계약을 체결해 스스로 다양한 투자상품 중에서 어디에 투자할지를 정해야 하는데, 투자 정보가 부족한 가입자는 정보의 홍수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는 게 일반적 모습이다.
그렇다 보니 위험성과 변동성 높은 실적 배당형 상품에 투자했다가 자칫 원금마저 까먹을 걱정에 대부분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골라서 장기간 방치해놓기 일쑤다. 수익률이 현저히 낮은 것은 당연하다.
이런 계약형 퇴직연금보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장점이 많다.
기금형은 공공기관이든 민간기관이든 대형 중개 조직이 가입자의 적립금을 모아서 기금을 만들고, 이를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 운영한다.
따라서 정보 비대칭에 따른 가입자의 투자정보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규모의 경제 이익을 실현해 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퇴직연금이 발달한 대부분 서구 국가는 기금형만 있거나 기금형과 계약형을 둘 다 가지고 있고, 둘 다 있는 경우에도 기금형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퇴직연금이 가입 여부가 자유로운 사적연금이 아니라, 강제로 보험료를 내야 하는 법적 연금으로 사실상 "준(準) 공적연금"이다. 그런데도 운용 측면에서 정부가 나 몰라라 손 놓고 모르는 체하며 민간에 맡겨두고 적립금 투자관리를 방치하는 국가는 드물다.
다만 우리나라는 일반 근로자가 아닌, 퇴직연금 가입률이 낮은 상시 근로자 30인 이하 중소기업 사업장으로 한정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푸른씨앗)을 2022년 9월부터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납입한 부담금으로 공동의 기금을 조성, 운영해 근로자에게 퇴직 급여를 지급하는 구조로 국내 퇴직연금 유형 중에서 유일하게 "기금형" 제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는 왜 전체 근로자를 상대로 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여태껏 없을까? 명확한 이유는 드러난 게 없다.
하지만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한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가입자를 많이 유치해 수수료를 더 많이 챙기겠다고 경쟁을 벌이던 시중 금융업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한목소리로 반대한다.
실제로 정부가 2014년 사적연금을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자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시장축소를 가져올 수 있다"며 시기상조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김태일 행정학과 교수는 "퇴직연금이 노후 보장의 한 축을 담당하려면 가입자와 금융기관이 직접 계약하는 형태로 하면 안 되며, 기금형으로 설계해서 공공기관이든 민간이든 대형 중개 조직이 집합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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