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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장애·과도한 의료비·주택 압류 등 "예측 불가능한 경제적 곤란 상황"으로 엄격 제한 필요
퇴직연금의 "연금화" 위해서는 적정규모 적립금 유지 필요
사진은 23일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에 게시된 부동산 매물 정보. 2024.6.23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퇴직연금이 국민연금과 더불어 다층노후 소득 보장체계의 한 축을 이루려면 납입금을 중도에 인출하거나 해지하지 않고 퇴직 때까지 일정 규모 이상의 적립금을 쌓아두어야 한다.
적립액 자체가 많지 않으면 퇴직 후 시간을 두고 연금으로 수령할 동기도 약하고, 실익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퇴직자의 90% 가깝게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는데, 지난해 이들 일시금 수령자의 평균 수령액은 1천645만원에 불과했다. 연금 형태 수령 평균액 1억3천976만원보다 훨씬 적었다.
겨우 2천만원도 안 되는 적립금을 연금으로 받은들 매달 받는 돈이 얼마 안 되는 탓에 대부분 일시금으로 타서 생활비로 써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에 정부가 퇴직연금의 중도 인출을 까다롭게 하는 등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어서 주목된다.
18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등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퇴직연금 가입부터 운용, 수령까지 단계별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는데, 특히 중도 인출·해지 요건을 강화하는 쪽으로 협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퇴직연금이 노후소득 보장 장치의 하나로 뿌리내리려면 "연금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립금의 규모가 적정수준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 주택·주거 때문에 퇴직연금 미리 당겨서 써
퇴직연금에는 크게 확정급여형(DB; Defined Benefit)과 확정기여형(DC; Defined Contribution)이 있다.
DB형은 회사가 민간 금융기관(퇴직연금 사업자)과 계약을 통해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고 운용책임을 진다. 노동자는 퇴직 때 개인의 급여와 근무 기간 등에 따라 사전에 확정된 퇴직급여를 받을 뿐이어서 수익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DB형은 중도 인출이 불가능하고 법정 사유에 한정해 담보대출만 할 수 있다.
DC형은 노동자 개인이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해 직접 투자상품을 골라서 책임지고 운용한다. 운용실적에 따라 같은 급여를 받는 노동자라도 최종 퇴직연금 금액은 달라진다.
DC형의 경우 개인이 운용하는 만큼 비교적 자율성이 높아 법으로 정한 예외적인 사유를 충족하면 중도 인출을 할 수 있다.
퇴직연금 제도의 근거가 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서 정한 DC형 퇴직연금 중도 인출 가능 사유는 "주택구입, 주거 임차, 장기 요양, 재난 피해, 파산, 회생절차, 대출 원리금 상환" 등 7가지이다.
통계청의 "2022년 퇴직연금 통계 결과"를 보면 2022년 퇴직연금 중도 인출 인원은 4만9천811명, 인출 금액은 1조7천429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46.6%(2만3천255명)가 주택구입을 목적으로 퇴직연금을 중도 인출했다. 주거 임차를 사유로 든 인원도 1만5천742명으로 31.6%에 달했다. 전체의 80%가량이 주택 및 주거 때문에 퇴직연금을 미리 당겨썼다.
퇴직연금 중도 인출 인원을 연령별로 보면 30대와 40대가 각각 42.4%, 32.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30·40세대 비중은 합쳐서 74.6%(3만7천177명)에 달했다. 이들의 80.6%인 3만명가량이 "집을 사거나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퇴직연금을 깼다"고 답했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퇴직연금을 쌓아나가야 할 30·40세대가 오히려 주거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노후 종잣돈인 퇴직연금을 깨서 부동산에 투자한 것이다.
퇴직연금
◇ 중도인출 억제 방안 필요…담보대출·인출 한도 설정·부분 인출 허용 필요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퇴직연금의 취지를 살리려면 중도 인출을 억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연구보고서 "퇴직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 강화 방안"(유호선·김성일·유현경)은 우리나라 퇴직연금에서 연금화의 큰 걸림돌 중 하나가 적립금 규모라고 할 때 "적립금 보존"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도 인출이 주로 주택구입과 관련된 점을 고려할 때 제도적 인출 장벽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인 만큼, 적립금을 보전하면서 주택구입 자금 활용의 방안으로 "적립금 담보대출"을 활성화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접근으로 판단된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은 현재와 같은 전부 인출은 퇴직연금 제도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다리를 끊는 금전적,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중도인출 금액에 대한 한도(적립금의 50% 한도 또는 3천만원 등)를 정하거나 부분 인출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도인출 후 다시 적립할 경우, 기존에 부과했던 퇴직소득세를 환급해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연구진은 시급한 금전적 수요를 맞추고자 중도인출을 하면서 퇴직소득세를 납부한 만큼, 이를 다시 돌려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적립금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중도 인출 조건을 재구성하는 등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강조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광범위한 DC형 퇴직연금 중도 인출 조건의 가장 큰 문제점은 55세 이후 적립금 규모를 대폭 쪼그라들게 만들어 연금화의 의미를 퇴색하게 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도인출 사유를 해외 연금 선진국들처럼 영구장애, 과도한 의료비, 주택 압류 등 "예측 불가능한 경제적 곤란 상황"으로 엄격하게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현재 중도인출 사유는 예측할 수 있는 요인과 예측 불가능한 요인이 뒤섞여 있는데, 이를 뜯어고쳐서 주택구입과 같은 예측 가능한 사용처는 중도인출 사유에서 제외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사망, 영구장애 등 제한적인 사유로만 중도 인출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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