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마켓人] 이혁준 나신…
"2011년 저축은행 사태보다 PF 규모 커…하반기에도 하향조정 나올듯"
"서울 집값 상승은 PF 문제해결에 도움안돼…부실 사업장도 "버티면 오른다" 믿음 여전"
부동산 위기 재발 막으려면 "금융사 리스크관리 강화하고 가계재산 부동산 비중 낮춰야"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 본부장이 지난 9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7.15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곽윤아 기자 = "금융부문만 놓고 보면 올해가 외환위기 이후 신용등급 하방 압력이 가장 강한 해입니다."
이혁준(52) NICE(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1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상반기 금융부문 신용등급 정기평가 결과를 이 같이 설명했다.
이 본부장을 필두로 한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는 지난 4월 부동산 경기 하강 시나리오에 따른 제2금융권의 추가 손실 규모 추정치를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최악의 경우라면 이미 5조원의 충당금을 적립한 저축은행·증권·캐피탈사의 추가 손실이 8조7천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금융당국은 숫자가 과장됐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최근에는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도 커지고 있지만, 이 본부장은 "현재까지는 시나리오를 수정할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 본부장은 1998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LG카드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 한국신용정보(현 나신평) 평가사업본부 전문연구원으로 신용평가업과 인연을 맺은 뒤 2006∼2008년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 선임조사역으로 근무했다. 이후 나신평으로 돌아와 금융·기업평가본부를 두루 거치며 다양한 실무경험과 전문지식을 쌓았다.
현재 각종 금융당국 전문가 간담회와 금융공기업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자본시장에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다음은 이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 본부장이 지난 9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7.15 [email protected]
-- 상반기 나이스신용평가에서 신용등급 또는 등급전망이 하향조정된 금융사는 17개사로 그 중 저축은행이 8개사·증권사가 3개사였다. 과거에도 금융업권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강등된 사례가 있었나.
▲ 금융부문만 놓고 보면 올해가 외환위기 이후 신용등급 하방 압력이 가장 강한 해다. 나이스신용평가 기준 신용등급 또는 등급전망 변동 기업은 상향조정 3개사, 하향조정 17개사다. 반면 비금융부문은 상향조정 24개사, 하향조정 30개사로 하향 우위이기는 하나 강도는 금융부문보다 약하다. 금융부문의 하향 우위가 더 강한 것은 실적 저하의 주된 원인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증권, 캐피탈, 부동산신탁, 저축은행 4개 업종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 하반기 금융권 신용평가 전망은.
▲ 통상의 경우 정기평정이 마무리되는 6월까지의 등급 조정이 많고 하반기에는 많지 않은데 금융사들이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부동산 PF 부실 정리에 들어갈 것 같다. 2·3분기 실적이 나올 때마다 조정이 있을 수 있다. 저축은행의 경우 나신평에서 평가하고 있는 곳이 16개사인데 상반기 조정이 없었던 나머지 8개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 하반기에 금융사 연쇄 부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 저축은행은 정말 위험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실제 유동성 위기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할 가능성은.
▲ 금융부문에서 유동성 위기로 디폴트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게 본다. 저축은행은 지난해 업계 전체적으로 적자 전환했고 올해는 적자 폭이 더 확대되겠지만 2011년과 같은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2011년에는 대형 저축은행의 대주주가 모두 개인이어서 실적 악화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대주주가 은행금융지주, 대형 보험사·증권사, 해외 대기업 등으로 구성돼 있어 유사시 유상증자를 해줄 지원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저축은행 예수금의 94% 정도가 예금보험공사의 보호 한도인 5천만원 이내 예금이어서 뱅크런(현금 대량 인출 사태) 가능성도 낮다. 시장에서 걱정하는 건 대주주의 지원 능력이 약한 금융사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미국 JP모건의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인수, 스위스 UBS의 크레디트스위스 인수 사례처럼 금융 당국이 물밑에서 신속히 움직여 대형 우량 금융사가 부실 금융사를 인수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 금융권 인수·합병(M&A) "큰 장"이 열릴 거라는 예상은 작년부터 계속 나왔지만 실제 "빅 딜"은 없었다.
▲ "빅 딜"이 아직 없는 건 실적 저하 기업이 버틸만하기 때문이다. 버틸 만하니까 경영권 지분 가격을 비싸게 부르는 것이지만, 은행금융지주는 부실기업을 비싸게 인수할 생각은 없다. 실적이 추가로 악화되고 대주주가 더 급한 상황이 되면 호가가 낮아지면서 M&A가 이뤄질 거다. 부동산 PF 구조조정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 시간은 금융지주의 편이다.
서울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 나이스신용평가는 부동산 경기하강 강도에 따라 저축은행·증권·캐피탈 등 제2금융권의 추가 손실 규모를 최소 3조∼최대 8조7천억원으로 추산했다. 최근에는 물가와 고용지표 둔화가 확연히 나타나면서 하반기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졌는데 시나리오 수정 가능성은 없나.
▲ 거시경제환경을 감안할 때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2%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본다. 기준금리 인하는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며 현재로서는 시나리오를 수정할 계획이 없다. 다만, 기준금리가 빠르게 인하될 경우에는 경공매를 통한 자금 회수액이 예상보다 증가할 것이므로 시나리오를 수정할 수 있다.
-- 최근 국고채 금리 추이를 보면 채권시장의 금리 전망은 상당히 낙관적인데.
▲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기준으로 서울보다 집값이 비싼 곳은 중국 베이징, 홍콩 정도밖에 없다. 몇 년 사이 서울 PIR이 확 올라오면서 뉴욕, 런던, 파리를 추월해버렸다. 거품이 많다는 얘기다. 2022년 기준금리 인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수도권 PIR은 지난해 1분기 특례보금자리론이 나오며 반등했다가 정책이 축소되며 다시 떨어지는 "상고하저" 흐름이 나타났다. 올해도 신생아특례대출 때문에 수도권 PIR이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빠르게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신생아특례대출 같은 정책이 과연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정책들로 인해 집값이 올라가면 오히려 출산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무주택자를 도와주려는 취지로 시작된 전세자금대출이 결과적으로 전세금과 주택가격을 천정부지로 오르게 만든 것과 같은 이치다.
--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가 증가 추세에 있고 일부 지역은 최고가를 경신했거나 근접했다. 나신평 시나리오는 부동산 경기 하강을 전제하고 그 정도에 따라 부실 사업장이 경공매로 나오는 상황을 가정한 거다. 버블이 가라앉는 상황을 전제한 건데, 요즘 상황과는 다소 이질적인 건 아닌가.
▲ 지금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건 서울만 그렇다. 서울을 걷어내고 지방만 놓고 보면 지방은 PIR이 장기 평균보다 더 바닥이어서 거품이 꺼진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저평가 구간에 진입했다. 부동산 PF 문제가 되는 지역은 서울이 아니라 지방이다. 서울 집값이 오르는 건 부동산 PF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
-- 2011년 저축은행 사태와 현재를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다른가.
▲ 그때는 부동산 PF 리스크가 저축은행과 건설사에 집중됐다. 현재는 두 업종 외에 증권, 캐피탈, 부동산신탁도 익스포저(위험 노출)가 많고 전체적인 부동산 PF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리스크가 여러 업종으로 분산되기는 했지만 익스포저 규모가 너무 커져서 잘 해결하지 못하면 시스템 리스크로 비화할 수 있다. 다만, 저축은행의 기초체력과 대주주의 지원 능력이 2011년보다 훨씬 강해졌고 금융당국도 당시의 경험을 기반으로 다양한 정책수단을 갖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 현장에서 저축은행 등 금융사들의 부실 PF 사업장 정리에 대한 목소리는 어떤지 궁금하다.
▲ 금융당국은 1년 이상 추가시간을 줬음에도 본 PF로 넘어가지 못한 브릿지론은 사업성이 낮음이 확인됐기 때문에 상당 부분 경공매로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금융회사는 사업성 회복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끝까지 들고 가고 싶어 한다. 부동산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버티면 반드시 다시 올라간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경영자가 많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금융 당국에 등 떠밀려 브릿지론 토지를 헐값에 매각했다가 이후 가격이 급등하는 걸 보며 마음고생을 했다는 저축은행 대표이사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고금리에서 무작정 만기 연장만 하고 있으면 높은 이자 비용이 더해져 결국 잠재 부실만 더 키우는 결과가 될 거다. 기준금리 인하는 느리게 진행될 것이고 인하 폭도 크지 않을 것임을 감안하면 경공매 물량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 본부장이 지난 9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7.15 [email protected]
-- 지난 3월 칼럼으로 정부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표방하며 증권사 자기자본비율 규제를 완화(2016년)한 이후 증권사들이 고수익을 추구하는 부동산 PF에 매달린 실태를 지적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부동산 PF 위기에 금융사의 책임은 없을까.
▲ 2004년 신용카드 사태는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내수경기 부양과 카드가맹점의 정확한 매출 규모 파악을 통한 세원 확대를 겨냥한 금융당국의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 이를 활용한 신용카드사의 과다한 현금대출사업 확대가 맞물려 발생했다. 이번 부동산 PF 위기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금융당국은 증권사에 신 NCR(영업용순자본비율) 규제 도입으로 과다한 위험투자를 허용했고 금융회사는 이를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금융당국이 증권사에 원한 건 부동산 투자가 아닌 다른 방향의 모험자본투자였는데 증권사는 부동산 투자로 달려갔다. 또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리스크 관리보다 영업 확대에 역량을 집중했다. 2016년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최초로 위험관리책임자(CRO)가 등장하며 전 금융사가 CRO를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했으나 금융사의 리스크관리조직은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가 현재의 부동산 PF 위기다.
-- 부동산 경기 하강 때마다 금융사들의 위기가 반복된다. 이때마다 정부 주도로 유동성 공급과 보증 등 지원이 이뤄지면서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는 비판도 계속되지만 뚜렷하게 해결된 적은 없다. 같은 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 부동산이 내수경기 부양에 효과적인 수단이고 유권자의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부동산의 거품을 키우는 공약과 정책을 내기 쉽고, 금융사는 이에 편승해 그 과실을 향유한다. 거품이 지나치게 커지면 당연히 터지지만 경제시스템의 안정을 지키기 위해 정부는 부동산과 금융사에 어느 정도 지원을 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부동산 불패"의 신념이 만들어진다. 선진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상대적으로 심하다. 금융회사의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가계 재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3% 수준인 부동산 시행사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고, 정부에서도 하반기 중 PF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정책 취지와 방향을 평가한다면.
▲ 시행사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방안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저축은행업계에는 20% 이상으로 이미 의무화된 바 있다. 시행사가 저축은행에서 PF 사업을 위해 돈을 빌리고 싶으면 자기자본으로 20%는 채운 상태에서 빌려와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증권, 캐피탈 등 의무비율이 없는 업종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저축은행업계 또한 부동산 PF로 분류되지 않지만 사실상 브릿지론인 토지담보대출로 규제를 회피하는 대출이 확대됐다.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했지만 시장 플레이어들이 빠져나가는 방법을 찾아내 대책을 무력화한 것이다.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시행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명심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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