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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나부낄 언(㫃)에서 파생된 한자들 - 아침해빛날 간(倝), 아침, 햇빛, 노을 등

지난 글의 주제인 가운데 중(中)은 갑골문에서는 장대에 달아 놓은 장식이 펄럭이는 모습을 그린 한자로 깃발나부낄 언(㫃)에 입 구(口)를 더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㫃에서 파생된 한자를 살펴보고자 한다.

㫃은 지금 형태에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깃대에 걸린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을 그린 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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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나부낄 언(㫃)의 다양한 갑골문. 출처: 小學堂

갑골문의 㫃은 다양한 형태를 띄는데, a-c처럼 깃봉·깃대·펄럭이는 장식 세 가지를 다 갖춘 것도 있고 d-f처럼 깃봉이 없는 형태도 있다. 中은 d-f에 口를 더하고 나중에 펄럭이는 장식이 없어진 것이지만, 㫃은 금문에서는 깃봉이 있는 형태만 남아서 中과 다른 형태로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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㫃의 금문. 출처: 小學堂

깃봉에 펄럭이는 장식이 1개만 있는 게 a, 2개 있는 게 b다. 이 중 b가 지금의 㫃이 되었다. b가 어떻게 㫃이 되었냐면, 깃봉과 깃대, 그리고 펄럭이는 장식 1개가 方이 되었고, 남은 펄럭이는 장식 1개가 깃대에서 떨어져 나와서 人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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㫃이 지금의 형태로 변하는 과정.

이렇게 획기적인 변천을 거쳐 지금의 㫃이 만들어졌다.

㫃은 현대에는 독립적인 글자로 쓰이지는 않지만, 여러 글자들의 구성 요소가 되어 "깃발"이라는 뜻을 부여하기도 하고, "언"이라는 소리를 부여하기도 한다. 旗(기 기)·旅(나그네 려)·族(겨레 족) 등에서는 깃발의 뜻으로 쓰였고, 乾(하늘 건)·斡(돌 알)·翰(날개 한)·韓(나라이름 한) 등에서는 언이라는 소리로 쓰였다. 이 글은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인 만큼, 뒤쪽에 집중해서 분석하겠다.

㫃이 형성자의 소리 부분으로 쓰일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거의 항상 旦(아침 단)을 더한 倝(아침해빛날 간)으로 쓰인다. 㫃이 갑골문의 깃발 그림에서 지금의 글자가 되는 과정도 놀라운데 㫃에 旦을 더한다고 倝이 된다는 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倝의 금문은 아래와 같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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倝(아침해빛날 간)의 금문. 출처: 小學堂

둘 중 더 옛날 형태고 지금의 倝과도 더 가까워 보이는 건 a지만, 㫃+旦인 걸 더 잘 보여주는 건 놀라움의 연속일 텐데 b다. 㫃이 소리 부분을 맡은 글자들은 아쉽게도 아직까지 갑골문에서 발견되지 않았지만, 㫃이 뜻 부분을 맡은 글자들은 갑골문에서도 쓰이기 때문에 글자의 역사를 파고들 때 도움이 된다. 그 중에서도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旅의 변천을 살펴보자.

668ed46a5a067.png?imgSeq=30095旅(나그네 려)의 갑골문(a), 금문(b-e), 전국시대 도장(f), 소전(g). 출처: 小學堂

旅는 기본적으로는 깃발 밑에 두 사람을 그려 넣어 깃발 아래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뜻하지만, c처럼 전차를 그려 넣기도 하고 그래서 f처럼 사람이 빠지고 전차만 남기도 한다. a-c에서는 깃대가 똑바로 서 있고 나부끼는 깃발 아래에 사람들이 있는 게 명확히 보인다. 그러나 d에서는 깃대가 휘어져서 뭐가 깃대고 뭐가 깃발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e에서는 더 나아가서 구분이 되지 않는 깃발과 깃대 중 하나를 지워버렸고, f에서는 아예 깃봉과 합체해버렸다. 이 f의 크게 변형된 㫃을 좌우 반전하면 위 倝의 b와 겹치는 걸 볼 수 있다.


남은 것은 b의 아랫부분이 旦이 되느냐인데, 한국의 한연석 교수(공교롭게도 㫃이 소리를 나타내는 한자인 韓씨다)는 글자의 미려함을 추구하고자 깃대를 위아래로 나눠서 旦을 삽입했다고 보았다. 즉 倝의 日+十처럼 보이는 부분은 실제로는 㫃의 깃대 부분과 旦이 합한 것이다. 깃대 아래에다가 旦을 집어넣었다면 倝의 세로획 하나가 빠지는데 그것보단 상하 대칭인 지금이 더 예뻐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旦이 원래는 日+一이 아니라 옛 형태에서는 日+丁이었기 때문에 깃대 아래에다가 旦을 넣어도 지금처럼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고로 중간에 참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㫃에서 소리를 가져오고 旦에서 뜻을 가져온 것이 倝이다. 위의 倝b는 실제 용례에서는 倝+韋(다룬가죽 위)인 韓(나라이름 한) 대신 쓰였고, 그 외에도 翰(날개 한)이나 幹(줄기 간)의 의미로도 쓰였다.


㫃에서 소리를 가져온 倝(아침해빛날 간, 급수 외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乾(하늘/마를 건): 건곤(乾坤), 속건성(速乾性) 등. 어문회 준3급

幹(줄기 간): 간부(幹部), 기간(基幹) 등. 어문회 준3급

戟(창 극): 극(戟), 자극(刺戟) 등. 어문회 1급

斡(돌 알): 알류(斡流), 알선(斡旋) 등. 어문회 1급

翰(편지 한): 한림(翰林), 서한(書翰) 등. 어문회 2급

韓(나라이름 한): 한국(韓國), 내한(來韓) 등. 어문회 8급

幹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澣(빨래할/열흘 한): 한의(澣衣), 세한(洗澣) 등. 어문회 1급

翰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瀚(넓고클 한): 한해(瀚海), 호한(浩瀚) 등. 어문회 준특급

668fc5a1bf3ae.png?imgSeq=30151㫃에서 파생된 한자들.

아침 해가 비치는 노을이 붉기 때문인지 倝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붉음을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상용한자 중에서는 翰만이 해당하지만, 鶾(살찐닭 한 - 붉고 살찐 제사용 닭을 말함), 倝+赤(붉을 환, 유니코드 U+27E73)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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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은 倝에 乙(새 을)이 합한 글자로, 《설문해자》에서는 乙은 특정한 곳에 도달함을 나타내 원래는 "위로 올라가다"를 뜻했고 여기에서 "하늘"이란 뜻이 나왔다고 했다. 한편 倝이 뜻도 나타내 아침 해에 물건을 "말리다"라는 뜻도 된다.


幹은 원래는 干(방패 간) 대신에 木(나무 목)이 들어가는 글자로, 倝은 소리를 나타내고 木이 뜻을 나타낸다. 《설문해자》에서는 담장을 쌓을 때 양쪽에 댄 나무라고 풀이했는데, 지금은 "줄기"의 뜻으로 쓰인다.


戟은 자원에 여러 설이 있는 글자인데, 소리가 좀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일단은 倝이 소리를 나타내고 戈가 뜻을 나타낸다는 설이 있다. "극"이라는 창 비슷한 무기의 일종을 가리키고 여기에서 "찌르다, 자극하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斡은 倝이 소리를 나타내고 斗(말 두)가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원래 의미는 둥근 자루였고 이 자루를 집고 마음대로 돌릴 수 있기에 "돌다"라는 뜻이 파생되었으며 더 나아가 운전·주선·조정 등도 뜻하게 되었다.


翰은 倝이 소리를 나타내고 羽(깃 우)가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여기에서 倝은 "아침 해처럼 붉다"라는 의미도 부여한다. 금문에서는 羽 대신 飛(날 비)를 쓰는데 飛든 羽든 새의 깃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통한다. 그래서 《설문해자》에서는 "산닭의 붉은 깃털"을 뜻한다고 했다. 이에서 "날개"라는 뜻이 인신되었다. 옛날에는 깃털로 붓을 만들었기에 "붓", "글"도 뜻하게 되었고, 또 산닭의 붉은 깃털은 화려하기 때문에 "문채", 더 나아가 "문장"도 뜻하게 되었다. 지금의 "편지"라는 뜻은 이처럼 먼 길 돌아서 파생된 뜻이다.


韓은 倝이 소리를 나타내고 韋(다룬가죽 위)가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원래 의미는 정교(井橋)라는 우물과 관련된 기구이다. 여기에서 倝은 아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우물을 뜻하기에 뜻에도 기여하고, 韋는 衛(호위할 위)처럼 둘레를 가리킨다. 나중에 人이 빠져서 지금의 자형이 되었다. 정교가 무엇인지는 세 가지 설이 있는데, 두레박, 두레박을 거는 가로막대, 두레박을 거는 횡목이다.

그러나 이 글자는 지금은 우물 대신 한국을 가리키는 데 쓰이고 있다. 韓의 상고음이 "가르"로 추정되고, 가야의 옛 명칭인 "가라"와 "가르"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런 용법이 나왔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이름은 삼국시대의 주인공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아니라, 삼국에도 끼지 못한 가야에서 비롯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다른 이름인 조선(朝鮮) 역시 아침과 관련이 있는데, 한 역시 아침에서 유래한 한자라는 걸 감안하면 한국은 중국이 보기에는 해 뜨는 동방의 아침의 나라인 것이다.


澣과 瀚은 궁극적으로는 倝이 소리를 나타내고 水(물 수)가 뜻을 나타내는데, 둘 다 물과 관련된 한자이지만 倝에서 木을 더해서 파생됐느냐 羽를 더해서 파생됐느냐에 따라서 뜻이 달라졌다. 그러나 그래서인지 이 두 글자는 같은 글자이기도 하다. 한편 浣(빨 완)은 이 둘과 한국식으로는 음이 다르지만, 중국어로는 세 한자 모두 "빨래할 환"으로 뜻도 음도 같아서 같은 글자가 된다. 《설문해자》에서는 "빨래할 환"으로는 이 세 글자도 아닌 水+(倝+赤)인 다음 글자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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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깨끗이 빨아서 아침 해가 떠서 나타나는 노을처럼 붉은 빛을 더 선명하게 나타내자는 것일까. 우리 모두 오늘 아침 해처럼 선명하고 빛나는 하루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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㫃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㫃(깃발나부낄 언)은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을 그린 한자로, 크게 변형되어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倝(아침해빛날 간)은 㫃에서 소리를, 旦(아침 단)에서 뜻을 가져온 한자로, 역시 크게 변형되어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倝에서 乾(하늘/마를 건)·幹(줄기 간)·戟(창 극)·斡(돌 알)·翰(편지 한)·韓(나라이름 한)이, 幹에서 澣(빨래할/열흘 한)이, 翰에서 瀚(넓고클 한)이 파생되었으며, 일부는 倝에서 "아침", "햇빛", "노을처럼 붉은 빛"이라는 뜻을 가져왔다.

※이 글은 한연석 교수의 〈㫃을 根源聲符로 한 형성자 考〉, 《한문고전연구》 32권 349-376쪽 (2016)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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