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방콕 광역권 지도 업데이트
[2024 방콕 중심지 지도]에 이어서 광역권 지도입니다.
매끄러운 이해를 위해 이전의 [2024 방콕 중심지 지도]를 먼저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지도 활용에 앞서
본 지도는 방콕의 그 주변과 [여러가지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풀이]하는 데에 취지가 있습니다.
[태국의 국토 면적은 일본의 1.4배, 영국의 2배, 대한민국의 5.1배]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갖고있지만, 한국인들에게 그 넓은 지역에 대해서는 아직 한정적인 정보만이 통용되고 있으므로 이번 2024년 방콕 광역권 지도 정보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단기 여행보다는 장기 거주 및 비즈니스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자료입니다.
안타깝게도 여러 다른 나라에서의 한국 기업이 높은 성과를 거두는 것과는 달리, 태국에서는 한국의 대기업들 마저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달리 말하면 [태국의 많은 기업들이나 국민들 또한 한국과의 연결고리가 불충분]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 모두 성공적으로 태국에서 비즈니스 성공]을 이루지만, 한국의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태국은 전통적으로 유럽과 아랍 국가와의 관계 비중도 큰 나라로서,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나 튀르키예의 베코 같은 다양한 해외 기업의 경쟁도 적지 않습니다.
[깊이 있는 이해없이는 낭패를 보기 쉬운 곳이 태국]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입체적으로 이해를 돕기위해, 정확히 같은 비율(스케일)의 방콕 광역권 지도는 서울 광역권 지도를 준비했습니다.
권장 사용방법: 두 지도는 동일한 비율이지만, 푸른원의 크기가 다르고 붉은원의 갯수가 다름을 인지한 후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고화질 원본이 필요한 경우 링크를 사용하셔도 됩니다. [링크])
(고화질 원본이 필요한 경우 링크를 사용하셔도 됩니다. [링크])
••• 넓은 범위의 방콕 이해
당연한 말이지만, [방콕은 서울처럼 작동하지 않고 태국도 한국처럼 작동하지 않습니다.]
일본(1543년 포르투갈, 1600년 네덜란드)보다도 일찍 [다양한 유럽 국가]([포르투갈 1511년], 스페인 1598년, 네덜란드 1602년, 영국 1612년, 덴마크 1620년, [프랑스 1662년])와 조우했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랜 교류가 있었던 미국, 중국, 일본 등의 나라와는 달리 태국과의 실질적인 교류는 1393년의 아유타야 외교사절단과 1412년의 직전 아유타야 외교사절단 손자의 방문을 끝으로 긴 공백이었습니다. 1950년 6.25 전쟁에 이르러 태국이 참전하면서, 교류의 물꼬가 다시 트이게 됩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현대건설의 1965년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사업]을 발주받아 1966년의 공사 시작이 첫 기록입니다.
(훗날 이 고속도로 사업은 태국 내 평판은 나빴지만, 당시 국제적으로 무명국가의 무명기업이나 다름없던 현대건설이 중동 사우디로 진출하게 되는 결정적인 최초의 국제 평판이 됩니다. 사실상 국가의 모든 예산을 쏟아부어 1968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포항제철이 1973년 영업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한국은 뾰족한 수익원이 없었기 때문에 현대건설의 지속적인 해외수주가 없었다면 1973년 오일 쇼크 즈음에 국가 부도를 맞았을 거라는 분석이 중론입니다.)
오늘날과는 달리 1960년대의 태국은 한국보다 부유한 나라(태국은 일찍이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홍콩 등과 같은 해인 1967년에 컬러티비 개시)였습니다. 모든 방면에서 더 안정적인 점에서도 한국에게 태국은 부러운 나라였습니다.
1962년 태국 신문의 티비 판매 광고 - 19인치와 23인치를 판매 중이다. (한국에서는 70년대 들어서나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국은 오일 쇼크의 타격(공산주의 추종자들의 시위 10.14 발발)을 입고, 뚜렷하게 한국이 태국보다 더 잘 살게 되어 이후의 운명이 결정되는 계기가 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한국이 훨씬 더 적극적인 수출지향 경제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도 큰 몫을 합니다. 90년대에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태국에서는 똠얌꿍 위기)]를 기점으로 한국은 타격을 받더라도 수년 후에 회복을 마쳤지만, 태국은 넓은 측면에서 아직도 그 후유증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도 나타납니다.
선진국들과 나름 어깨를 나란히 하던 60년대의 태국은 이후에는 1999년에야 방콕에 첫 도시철도를 개통(한국은 1974년 첫 개통)할 정도로 많이 뒤쳐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태국의 복잡한 경제 상황과 국민들의 심정 사이에서 방콕은 더더욱 동아줄같은 도시로 각인됩니다. [60년대부터 주된 밥줄인 일본의 차량 제조 및 컴퓨터 부품 제조 기업들]의 주재원들도 아무것도 없는 시골보다는 방콕에 거주하면서 자리잡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1977년부터 [일본은 완전한 선진국(당시 영국보다 부유)으로서] "후쿠다 독트린"이라는 이름으로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에 ODA 개발 원조를 진행하며 장기간 플랜으로 입지를 다진 과거가 있습니다. 첫번째 방콕 도시철도의 노선을 일본인들 선호하는 부촌(프롬퐁 ~ 온눗)을 통과하도록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1893년 태국 최초의 철도]가 태국의 벨기에인 내무부 장관에 의해 모든 계획이 [태국인의 취향대로 노선이 개통되던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 100여년 뒤에 펼쳐진 것입니다.
2010년 이후에는 중국마저 태국의 경제력을 추월(1960년~2010년 모든 기간 동안 항상 태국이 중국보다 훨씬 경제력이 높았다.)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난처한 상황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은 2012년에 영국 브랜드의 중국산 자동차 MG 생산 합작사를 태국에 설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 2024년에는 [BYD와 각종 중국 신생 브랜드들이 태국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창안자동차(DEEPAL), 광저우자동차(Aion), 화웨이-CATL-창안자동차 3사 합작 브랜드 Avatr, 호존자동차(Neta) 등 중국 자동차 업계의 진출 규모가 상당합니다.
2022년 태국에서 판매 중인 중국 전기차 비교 - 값비싼 일본 차들 사이에서 훨씬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판매 중이다. 샤오펑(Xpeng), 지커(Zeekr) 등의 중국 대형 브랜드들도 태국 진출 계획을 밝혔다.
방콕의 이런 복잡 미묘한 양가감정의 주된 원인은 경제 지표 상에서는 수출 지향 국가이면서도 지나친 내수 위주 산업 의존과 별다른 자국 기업을 잘 길러내지 못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코앞의 이익만을 쫓아 중국 기업들과 쇼핑몰/콘도/관광/단순 제조업 등의 경제 펀더멘털에 실속없는 분야만을 지원하는 현실로 인하여 태국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지리점 이점과 대외적으로 양호한 평판을 활용하여 해외 인재/다국적 기업 유치를 통해 태국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음에도, 실질적으로 관련 정책([EEC 동부경제회랑] 등은 결국 [중국 일대일로 정책 등에 호응]하는 기업들 외에는 장점이 희박합니다.)은 거의 없는 것에 가까울 뿐더러 각종 공공 서비스와 금융 서비스는 전산화(17세기 영국에서나 있었던 "레드 테이프"가 문자 그대로 수 많은 서류 더미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현실이 태국에서는 현재 진행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태국이 가진 자원 하나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라면 태국의 경제가 CLMV(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를 아우르는 장점이 있더라도, 장단기적으로 무의미한 결과물만 기대할 수 있는 [CLMV를 위한 어떠한 정책도 결과적으로는 악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작 CLMV나 EEC 동부경제회랑같은 먼 곳이 아니라, [태국이 가장 공 들여야 할 방콕이라는 도시 하나에서도 당장 고쳐야만 하는 문제들이 산적]한 상태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방콕 및 태국을 진출하더라도 태국의 정책적인 추천과 가이드라인에 맞추는 것은 잘못된 결정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후에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궁극적으로 방콕이 아닌 지역에 진출하는 것은 완전한 돈 낭비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방콕 중에서도 붉은 원의 번화가, 그리고 그 중에서도 충분히 번화한 곳이 아니면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의 대기업 롯데가 2016년에 RCA 지역에 진출하여 완전하게 망한 [SHOW DC 쇼핑몰]이 좋은 예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여가 생활을 쇼핑몰에서 보내는 태국에서 쇼핑몰 사업을 망하는 것도 태국과 방콕의 기본적인 점들 그리고 태국인들의 성향을 놓치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쇼핑몰처럼 눈에 보이는 비즈니스 뿐만이 아닙니다. [2014년에 오픈한 11번가]처럼 온라인 사업도 [기본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자금과 기술력을 쏟아도 망합니다.] 싱가폴의 쇼피와 중국 알리바바 산하의 라자다가 특별히 11번가보다 결코 자금이나 기술력이 뛰어나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SHOW DC는 유흥지역 대표명사와 같은 RCA 지역에 지었는데, 태국인 입장에서 [남녀노소 굳이 뭔가를 사지 않더라도 여가 생활을 하는 공간으로서의 쇼핑몰]을 이해하지 못 한 결과입니다. 가족적인 분위기와 반대되는 것이 무척 금기시되는 것을 간과한 겁니다. 게다가 주요 도로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대중교통과의 연결성도 전혀 없는 지역을 굳이 자비를 내어서 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어차피 쇼핑몰은 생활권에서 가까운 곳을 가는 것이 보편적인데 SHOW DC 인근에는 주거 지역은 커녕 편의점까지 전무하고, 근처에 시설은 절 밖에 없습니다.
11번가는 신용카드 사용률이 희박한 태국에서 마치 한국에서 그랬듯이 현금 사용에 대한 옵션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쿠팡 대항마라면서 쇼핑몰을 열었는데 결제 옵션에서 비트코인만 지원하는 셈입니다. 게다가 [태국의 택배 시스템]이 한국과는 완전히 딴판인데도, 택배 시스템에 대한 고려 또한 없다시피해서 상점들조차 가뭄에 콩나듯이 입점하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방콕 광역권 지도의 좌측 하단의 "인구밀집도"에서 나타나듯이 방콕 중심으로부터 나머지 지역 전역에 걸쳐서 진한 빨강이 아닌 어두운 빨강과 보라색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스프롤 현상이 만연합니다. 완전한 평지만을 갖고 있는 방콕 수도권 일대에서 그린벨트나 그에 준하는 정책이 거의 없는 상태(방콕 내에서는 ["방콕의 허파"라는 별명이 붙은 방끄라짜오]가 유일)로 난개발과 슬럼 형성을 수십년에 걸쳐 묵인하고 방치한 결과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종 언급되는 방콕의 과밀(방콕의 교통 체증 포함)의 실상은 도시 계획과 행정 시스템 부재가 원인]입니다. 한국의 구와 같은 개념이 "켓"이라고 불리지만, 현실에서는 허상에 가깝도록 행정체계가 무용한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행정구역상 서울보다 2.5배 이상 넓은 전 지역을 방콕시 거의 혼자서 전부 처리하는 비극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방콕 광역권 지도의 작은 붉은 원을 벗어나는 지역은 자동차 등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생활하기가 힘들정도로 [교통이 열악](도시철도가 계속 확장하면서 개선되는 중)하고, 게다가 큰 푸른 원을 벗어나면 대중교통의 개념이 희미해집니다.
태국 경제 전체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으로서, 공업지역이 푸른 원 바깥에 있지만 방콕으로부터 해당 공업지역을 갈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합니다. 한국에서의 빨간색 광역 버스같은 개념(보통 각 기업이 스스로 셔틀 차량을 운영하거나 각자 두 시간 넘는 장거리를 운전하는 방법 밖에 없음)자체가 없으며, 그 의미는 방콕의 모든 공업 노동 인구가 각자 알아서 교통편을 마련해 매일 출퇴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한국의 수도권 개념과는 달리, 태국의 수도권 개념은 단순 범퍼 스테이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수도권 중 번화 지역을 제외하면 시골 또는 황무지에 더 가깝습니다.
수도권 도시 중 논타부리(과거 1946년 까지 논타부리는 방콕에 포함된 지역이었으나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논타부리를 독립시킴)를 제외하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것이며, 사실 방콕도 푸른 원 즈음을 포함해서 외곽은 논타부리보다도 갖춰진 것이 없습니다. 방콕을 가르는 짜오쁘라야 강은 서울의 한강에 비하면 훨씬 폭이 좁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적은 교량만 갖출 정도로 강의 서부 지역은 개발이 무척 더디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적으로 현격한 격차]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방콕과 나머지 모든 지역은 분리해서 봐야하며, 방콕은 결코 "방콕=태국"과 같이 판단할 수 없습니다.
방콕은 다른 태국의 대부분의 보통 지역들 보다 3~4배(300~400%) 그리고 최대 8배(800%)까지 부유(한국에서는 서울과 전국 어디서나 20% 내외의 경제력 차이만 있으므로 이런 사례가 없다.)하며,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태국 경제/사회/문화/마케팅이 아니라 반드시 방콕 경제/사회/문화/마케팅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디자이너 @bkktransit 제작의 태국 도시철도 노선도]입니다. 아직 개통되지 않은 구간은 흐리게 표현되었습니다.
••• 방콕의 번화가 의미
방콕에서 중심 번화가는 지난 방콕 중심지 지도에서 다루었으므로, 다른 번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번화가라는 개념도 흔히 서울의 수도권에서 익숙한 그런 개념과는 차이가 상당히 큽니다. 대체로 수도권 전반적인 경제/문화/교육 수준이 비슷한 편에 수렴하는 것과는 다르게 방콕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중심가를 벗어나면 차이가 매우 큽니다. 기본적으로 중심 번화가 외에 지역들은 보다 서민적인 경향이 크지만, 중심 번화가와 충분히 거리가 있는 "서부의 센트럴 웨스트게이트"와 "동부의 세리 타이 공원 지역"은 마치 북미의 도시처럼 모든 생활에서 차량이 필수이면서 동시에 충분히 좋은 주택 단지(중심지에서 거리가 있으므로 보다 합리적인 가격)를 갖춘 형태입니다. 이런 본격적인 [주택 단지는 "무반"]이라고 부르며, 주로 방콕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타납니다. 무반은 한국에서는 드문 주거 형태에 해당하며, 태국에서는 (어느 정도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나타나는 주거 형태입니다.
주거의 개념에서도 방콕 중심부는 콘도(한국의 아파트와 유사)와 주택 및 타운하우스가 어느 정도 섞여있는 편(한국보다는 주택과 타운하우스가 월등히 많음)이지만, 중심부에서 벗어나면 콘도보다 주택 및 타운하우스가 월등히 더 많습니다.
가운데 중심 번화가를 제외한 나머지 작은 번화가는 쉽게 말해 (서울 수도권은 어느 번화가나 대동소이한 것에 비하여) 하위 호환격 번화가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서울 수도권과 같은 환경이 익숙한 한국인 입장에서는 중심가에서 멀어지면 편의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현실적인 선택지는 중심 번화가 및 인근 외에는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수 있습니다.
올드타운 내 [강변의 방락 지역]을 포함하여, 강변의 양측면과 새로운 태국 국회 인근의 정부 기관 지역 등은 일종의 개발 제한 구역과 같이 한정적으로만 개발이 이뤄지는 편입니다. 지도 상으로 올드타운을 볼 때 두드러지는 점은 태국이 전통적으로 애용하는 운하를 중심으로 한 명의 [이탈리아 도시 기획자]를 통해 마치 네덜란드처럼 완전한 계획 도시로 설계되었는데, 그 이후의 올드타운 바깥 부분은 [도시 전체가 다소 무계획적으로 개발된 경향]이 있습니다. 날씨의 영향인지 거의 대부분의 주요 건물들은 대로변을 따라서만 발달하는 경향이 있고, 조금만 대로변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번화가에서 멀지 않더라도 개발의 정도가 크게 차이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번화가 내에서도 수 년 이상의 장기간 공실인 상태의 상가 건물이 무척 흔합니다. 소위 "망한 건물"이 통째로 방치되는 경우도 주요 도로를 벗어난 곳들에 특히 많습니다. 이런 것 뿐만 아니라 지하철 역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도 엄연히 불법인 각종 유흥 시설에게 상당히 넓은 지역(MRT 수쿰윗역 근처 쏘이 카우보이 및 BTS 살라댕역 인근 팟퐁 야시장 뒷편 등)을 묵인하고 내어주거나, 중국식 종합 유흥 시설(MRT 훼이쾅 인근) 등이 버젓이 난립하는 것도 흔합니다.
••• 방콕을 완전히 벗어난 지역의 의미
태국에서 방콕을 벗어나는 것은 위의 스테레오타입에 따라 만든 지도와 같습니다.
[2016년에 한 방콕에 사는 태국인이 만든 스테레오타입 지도]로, 당연히 공식적으로는 언급하기 힘든 차별적인 부분까지 포함하여 보통의 중산층 방콕 사람이 태국의 지역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도를 통해 밝혔습니다. 한글 부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로 덧붙인 것입니다.
이 지도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듯이, 태국의 현실 생활에서는 ([논타부리] 정도를 제외하면) 수도권이라는 의미조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방콕 광역권 지도 우측 하단에 표기한 것과 같이 제2도시 또는 다른 지역 도시라는 의미도 희박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굵직한 광역시 및 특례시 등 100만명을 넘는 도시가 충분히 많고, 50만명을 넘는 도시도 충분히 많습니다. 그러나 태국에서는 방콕-논타부리(논타부리 주의 크기는 "주"이지만 서울의 면적과 거의 같으므로 실질적으로 논타부리 주 전체를 도시로 봐야함)-치앙마이 이 셋 외에는 도시라고 하기에는 많이 민망한 수준입니다. 단순히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의 2.5배 면적의)넓은 지역 전체의 방콕이 논타부리의 3배, 치앙마이의 4배의 경제력(구매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방콕 중산층의 사람이 느끼기에는 그냥 방콕이 태국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심지어 치앙마이같은 곳도 그냥 추운 곳에 불과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영국과 닮아있는 모습도 있는데, 마치 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가 잉글랜드로서의 정체성이 없는 것처럼 태국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민족적으로 문화적으로 태국의 여러 지역들은 대체로 비슷한 편이지만, 사실 덧붙인 설명의 [란나 왕국]-비엔티안 왕국-참파삭 왕국 모두 서로 다른 문자와 언어(한국으로 치면 사투리에 가깝기는 하지만)를 가졌던 곳입니다. 한국은 통일 신라가 676년, 고려가 918년에 자리 잡아서 지역 간의 정체성이 단순한 지역색 정도로 남아있지만, 태국의 현재는 마치 후백제, 후고구려같은 반란 세력의 등장(주변국에 비해 태국이 훨씬 낫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은 적지만, 정서적으로는 영국보다 위험)을 미약하게라도 견제해야 하는 긴장감(모든 기간 태국 스스로 철저한 반공 기조였으나 [노골적인 공산주의 추종]이 존재)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65년의 태국 반공 포스터 - 오랜 기간 태국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반공 장려에도 불구하고 70년대부터 2024년 지금까지도 공산주의 세력이 정치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현실 정치 면에서도 국경을 접한 여러 국가들이 태국과는 다르게 여전히 공산 국가이거나 친사회주의 국가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당연히 한국의 남북 갈등 수준의 긴장감은 아니겠으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CLMV 모두 태국에 비해 최대 5~6배 가까이 빈곤한 국가들과 마주하는 모양새가 쉽게 말해 [순한 맛 북한이 동서남북으로 상시 대기]하는 것(이해를 돕기위한 것이므로 정확한 표현이 될 수는 없습니다.)과 비슷합니다.
한편, [백년 이상 완전히 복속되었던 라오스] 등에 대한 인식 그리고 현재의 국경선의 상당 부분이 [프랑스와 영국에게 영토 할양]에 따라 (당사국이 아닌) 제 3자 타의로 만들어진 점도 조건만 갖춰지면 심각한 분쟁을 낳을 수 있습니다. 남부의 무슬림 지역이 테러가 일어나는 지역으로 인식되는 이유도 역사적으로 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불투명했기 때문입니다.
••• 방콕 광역권 개념 정리
[태국은 10년 이상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서 관련 정보를 얻기 쉬운 편이고, 코워킹스페이스도 도시 곳곳에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방콕은 [다국적 문화/인재/사회문화를 바탕이 되는 비즈니스]가 적합합니다. 방콕 전체가 아닌 방콕 최전선의 핵심 원동력은 온갖 태국의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높은 다양성/자유도/상호 존중에 따른 [입체적인 연결]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숫자 상의 통계로만 계산했을 때는 1992년의 한국과 1984년의 한국 인프라를 고려해서 풀어나가야겠지만, 거의 천년에 걸쳐서 짜오쁘라야 강을 접한 도시의 이야기는 [해상무역+육로무역+문화무역의 거점]으로서 작동했습니다. 태국 스스로의 목소리보다 복합적인 목소리가 역사와 정책과 산업을 결정짓는 것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다양한 비태국인이 체험하는 태국의 모습이 그렇듯이, [방콕의 탁월한 자유를 활용하는 비즈니스]가 태국을 위해 방콕을 위해 아직 나타나지 않은 다음 세대의 새로운 사회문화를 위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