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열여덟 못 …
근위축증 딛고 활동하는 인권운동가 엘리스 웡의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국내 장애인 이동권 문제 조명한 신간 "출근길 지하철"
엘리스 웡
[오월의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나는 소변보는 관 / 음식물 들어오는 관 / 숨 쉬는 관이 있지"
엘리스 웡(王美華)이 대학생 때인 1995년에 쓴 시 "튜브에 묶여서" 중 한 구절이다.
그는 "선천성 근위축증"을 지닌 채 태어났다. 의사는 열 여덟살을 넘기지 못할 거라 했다. 부모는 그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근력저하로 7~8세부터 걷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상적인 삶"은 점점 어려워졌다. 열 네살 때는 척추유합술을 받은 후 기계식 호흡기를 사용해야 했다. "코끼리처럼 긴 코"를 가진 채 살아가는 삶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근육이 점점 수축하면서 몸에 부착하는 기계 장치가 하나둘 늘어났다.
"내 휴머노이드 껍데기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리고 20대, 30대, 40대에 알아가야 할 더 어려운 망할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일상의 불편함은 육체에 국한하지 않았다. 고교 때는 드라마 심화 수업인 "드라마 Ⅱ"를 듣고 싶었으나 신체활동이 필요한 팬터마임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강을 거절당했다. 육체의 제약이 꿈과 같은 정신적 분야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모욕적이었다. 이것은 순전한 차별이었다……. 나는 나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았는데, 선생님은 내게서 단지 신체의 기능적인 제약만을 보셨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 장애학, 장애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나중에는 장애 인권 활동가로 나서며 장애인들이 차별받는 사회를 개혁하고자 분투했다.
엘리스 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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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장애 인권 활동가인 엘리스 웡이 쓴 신간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원제: Year of the Tiger: An Activist"s Life)은 그가 살아 온 반백 년 일생을 정리한 책이다.
장애인의 일생을 다뤘지만, 그런 책들이 보여주는 특징과는 거리가 멀다. 불굴의 끈질김으로 역경을 극복한 입지전적 성공담을 담은 것도 아니고,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이나 소수자의 자긍심을 고찰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참혹하면서도 승리의 장엄함이 있는 차별, 장애인 혐오, 모멸, 고통의 이야기"를 주로 소개하지도 않는다. 저자의 삶을 다루는 과정에서 그런 내용이 포함된 건 사실이지만 회고록의 주요한 내용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보다는 그의 열망, 야망, 감수성과 꿈을 다룬 부분이 훨씬 더 많다. 살아가면서 만난 좋은 사람들, 주변의 도움, 커피 마시는 즐거움, 친구와의 유쾌한 대화, 맛난 음식 등을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인터뷰, 고교 때의 시, 일기, 음식 레시피, 스크랩북, 박물관 전시, 잡지 등 저자가 경험하거나 썼던 다양한 삶의 조각들을 콜라주처럼 잇대어 붙여 완성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어린 시절 의사는 그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술과 의술의 발달, 삶을 향한 열망,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는 50년 넘는 인생을 그에게 허락했다. 1974년생으로, 호랑이해에 태어난 그는 네 번이나 띠를 돌았고, 이제 다섯 번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어렸을 때 근위축증 학회의 텔레톤(장시간에 걸친 텔레비전 방송)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내가 30세, 40세, 50세가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48세까지 살아서 호랑이의 해를 네 번째로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의사와 과학자들은 내 미래를 닫아 버렸고, 슈록 선생님을 비롯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은 닫힌 문을 부수고 내 미래를 활짝 열어주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감히 꿔보지도 못했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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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회고록"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뤘다면 "출근길 지하철"은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구체적인 내용에 초점을 맞춘 보다 목적 지향적인 책이다.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4년째 이어가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활동을 조명했다.
전장연의 박경석 활동가와 노들장애학궁리소의 정창조 활동가는 왜 아직도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있는지, 중증장애인이 장애인 거주시설 바깥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으며 그 삶이 비장애인들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등을 논한다.
저자들은 쓸모없다고 여겨진 이들을 내버려 두고 쓸모 있는 노동력만 골라 실어 나르는 출근길 지하철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로 기능한다고 지적하면서 그 "정상인"의 속도에서 낙오되는 순간 누구든 열차에서 튕겨 나와 시설에 격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진 사람들의 존재를 이 사회가 감각하게 하는 거, 이 사회에 통용되는 속도라는 거가 얼마나 문제적인지를 드러내는 거 자체에 사실은 더 큰 의미가 있는 거지."
[위즈덤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 오월의봄. 김승진 옮김. 500쪽.
▲ 출근길 지하철 = 위즈덤하우스. 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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