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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고 싶은데, 괜찮지 않아서.

저에게는 일종의 하강기가 있어왔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혹은 어떤 상황인지는 저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기분과 생각이 마이너스를 향해 가라 앉는 순간들이 오곤 합니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저는 마치 꾹 눌러놓은 용수철이 높고 멀리 튀어오르듯이 일탈과 여행을 꿈꾸고, 그 멀리의 순간들이 지나면 조금은 괜찮아지는 상황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여행이라는 건 일종의 발산과 같다. 고 생각해왔습니다. 원래 어디 나가는 걸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고, 활동적이거나 사교적인 사람이 아닌데, 여행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이 나라는 사람을 바꿔놓는다. 라고 생각해왔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하강기가 왔습니다. 근데 조금은 그 하강기의 질감이 다른 것 같이 느껴집니다.

보통 저에게 하강기의 순간들은, 대체로 불안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저는 대체로 불안이 이끄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저를 힘들게 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굉장히 다양한 불안들이 저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불안들에 의해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두려움이 저를 제한해왔던게 일반적인 케이스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하강기는 굉장히....

지금의 하강기는,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그 생각에 대한 쫓김이라기보단, 묘하게, 수면 아래에 잠긴 채로 코 끝만 내어놓고 숨을 쉬고 있는 느낌입니다. 편안하고, 무기력하고,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입니다. 이번 하강기의 순간들은 무엇을 하기 위해, 혹은 무엇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기보단, 그저 가라앉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네, 따지자면 불안이 이끄는 하강기가 아니라, 우울이 이끄는 하강기를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하강기 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과 행동들을 하려고 하는 것도 힘들고, 계획과 실행,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이 조금은 벅차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그렇다고 지금의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고 싶다. 뭐 그런 성격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지금의 저는 일상을 영위하고는 있으니까요. 다만, 그 이상의 무엇인가, 그 외의 다른 것들을 할 수 있을 건지 확신이 서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사이클이라는 것에 대해서 너무 잘 자각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기능과 생존을 별개의 것으로 놓고 생각해왔습니다. 사람으로써 일상을 영위하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기능의 측면에서 저는 대체로 "괜찮았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 그래서, "살기 위해" 하는 것들은 지금의 하강기로는 조금 힘들어하는 느낌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갔다 온다고, 뭐가 달라지나?"

결국, 저는 어떤 하강기가 온다는 걸, 그리고, 지금 와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만 하게 됩니다. "이러다 말겠지"는, "또 이렇겠지"와 한 끗 차이고, 그 때문에, 저를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별일 없이 살고 있지만, 별일이 있습니다.
혹은, 별일 있이 살지만, 별일 없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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