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마이더스] 상승 동력…
외부에서 바라본 엔비디아 본사
(샌타클래라[미 캘리포니아주]=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19일(현지시간) 전 세계에서 온 취재진에게 개방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샌타클래라 시에 위치한 인공지능(AI) 칩 선두 주자 엔비디아 본사 외부. 2024.3.20 [email protected]
최근 십수 년간 미국 증시는 기록적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저점인 2009년 2월 이후 S&P500 지수는 700%가 넘게 올랐다. 미국 증시 130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강세장이다.
주가의 지속적 상승은 그 자체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동인으로 작동한다. 최근 미국 증시는 글로벌 투자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에 다름 아니다.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 증시 사랑"도 뜨겁다.
한국인들의 투자가 미국 증시 등으로 다변화되는 건 좋은 일이다. 2023년 말 기준 한국 가계의 주식 보유액은 1천141조 원인데, 이 중 91.6%가 국내 주식이고, 미국을 비롯한 해외 주식은 8.4%에 불과하다.
세계 증시 시가총액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 내외에 불과하다. 어느 나라 투자자나 자국 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은 홈 바이어스(Home Bias)가 존재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장기적으로는 해외 자산으로 분산 투자가 더 진행돼도 이상할 게 없다.
다만 "불패의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투자자들의 쏠림이 있을 경우엔 경계심을 더 가져야 한다. 많이 상승했다는 이유로 투자를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급등한 자산에 대해서는 훨씬 엄격한 기준을 갖고 투자에 임해야 한다.
미국 증시의 장기 강세장을 가능하게 했던 동력을 복기해보자. 크게 3가지 동력이 작동했다. 먼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자산시장 친화적 정책을 꼽을 수 있다. 연준은 양적완화로 대표되는 파격적인 통화정책으로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막대한 유동성을 경제에 공급했다.
두 번째는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혁신기업들의 등장이다. 나스닥에 자리 잡은 미국의 혁신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미국 증시에서는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이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는데, 이들은 모두 3조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코스피 시장 전체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쳐도 1조6천억 달러(이상 6월 19일 종가)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공격적인 주주환원을 들 수 있다. 최근 10년 동안 미국 S&P500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으로 6조7천억 달러를 썼고, 현금 배당으로 5조 달러를 지급하면서 총 11조7천억 달러를 주주들에게 돌려줬다. 이는 같은 기간 S&P500 기업들이 벌어들인 당기순이익 누계(14조6천억 달러)의 80%에 달하며, 설비투자액 10조 달러도 넘어서는 규모다.
주가 상승을 이끈 3가지 힘 중 기업의 혁신을 제외한 다른 동력은 현저히 약화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연준이 택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좁힌다. 2022~2023년 연준이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렸음에도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아직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를 웃돈다.
물가가 안정되지 않는 이유는 미국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이다. 2024년 1분기 미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는 5.9%에 달한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연준의 금리 인상 효과를 희석한다.
정부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연준이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장기국채를 매수하는 양적완화를 기대하는 시각도 있지만 물가가 불안한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물가가 안정적일 때는 중앙은행이 여러 정책 대안을 가질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돈을 푸는 선택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과도한 주주환원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당기순이익보다 더 큰 규모의 주주환원을 하는 기업들을 미국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보잉, 스타벅스, 도미노피자, 홈디포, 맥도널드 등 일부 기업은 당기순이익을 모두 주주들에게 돌려준 것은 물론, 빚까지 내 주주환원에 사용했다.
부채까지 동원한 주주환원은 그 자체로 지나친 감이 있지만 그나마 이런 행태가 가능했던 것은 금리가 극단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높고, 금리가 하방경직성을 나타내는 상황에서는 이런 식의 극단적 주주환원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의 주주환원 규모는 2022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고, 부채까지 동원해 주주들에게 돌려준 "주주환원 과잉 기업"들인 스타벅스와 홈디포 등의 주가는 2024년 들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AI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들의 성장세는 여전히 투자자들을 매혹한다. 그렇지만 투자자들이 엔비디아 등에 집중하다 보니 이들 종목의 가격 부담이 커지고 있다.
미국 증시의 강세가 끝났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현재 장세가 기술주들에 의한 버블이라고 해도 버블이 어느 정도까지 부풀어 오를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미국 증시의 강세를 이끌었던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라도 미국 증시"라는 쏠림에 대해선 경계할 필요가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신영증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