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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황건적의 난이 로마 제국 탓인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QX-jSyH27B4
브금


서언
삼국지의 장각이라 하는 인물은 영웅들이 등장할 수 있는 난세의 무대를 열어젖혀놓고는 허무하게 퇴장해버리는 사이비 교주 같은 이미지로 기억되어왔다. 
그는 오랫동안 군웅할거의 마중물 역할 취급이었다. 사서에 적힌 장각의 모습은 그저 권력에 미쳐 어리석은 백성들을 현혹하고 위대한 제국에 반기를 든 사악한 존재, 통일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한낱 악명 높은 사이비 종교 범죄집단의 수괴쯤일 뿐이다.
그러나 보는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도, 장각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뀐다. 사서의 주관적 악평은 그대로 둔 채, 그에 대한 객관적 서술에 집중해본다면, 밖으로는 지방관들로부터 백성을 다스리는 도가 있다고 칭송받고, 안으로는 중원 각지에서 수십만 민중의 호응을 이끌어내 수십여 개의 방(方)으로 엮어 체계화한 뒤, 조정의 유력자들과 연결망을 구축했으며,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희대의 현실참여형 개혁가가 보인다. 중국 역사상 이렇게 체계적인 종교 반란은 장각이 최초였다.

수십만의 민중들이 그를 보기 위해 평생토록 살던 고향을 떠나 순례의 길에 오르는 광경이 보인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푸른 하늘 아래 백성들을 괴롭히는 하늘의 아들(天子)을 무찌르고, 누런 하늘의 계시를 받아 민중을 구원할 운명을 지녔던 한족의 "메시아", 사람의 아들(人子)이 보인다. 그는 그야말로 "대현량사(大賢良師)", 어마어마하게 현명하며 보통 사람의 기량을 월등히 뛰어넘는 백성들의 구세주, 난세의 위대한 스승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역사의 얄궂은 톱니바퀴에 운없게 희생당한, 희대의 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1부: 창천이사








기원후 165년
후한 연희(延熹) 8년, 기주 거록군 시골마을에는 대대로 인망높은 어느 세족, 장(張)씨 가문이 있었다. (장각이 실제로 지방 향리에 가까운 호족 출신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해력을 갖춘 것을 보면 빈농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집안에는 뛰어난 젊은이 삼형제가 있었으니, 첫째는 뿔처럼 곧고 예리한 각(角), 둘째는 인덕이 뛰어나며 베풀기를 잘하는 보(寶), 셋째는 든든하게 두 형을 보필하는 들보 역할의 량(梁)이었다. 이들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전문 식자층으로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뼈빠져라 일하는 농민들과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관리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 
이때에 이르러, 한나라는 뿌리부터 서서히 썩어가기 시작했다. 열 세개의 주(州)와 일백여 개의 군(郡)이라는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있는 제국은 다시 그 밑에 일천여 개가 넘는 현(縣)이라는 하부조직들이 떠받치고 있었는데, 제국의 지방관리는 모두 다해서 겨우 7,500여 명 뿐이었다. 각 현의 인구는 서류상 평균적으로 4~5만 명 전후였고, 어떤 현은 이보다 훨씬 인구수가 많았기에, 이것은 행정조직의 하부로 갈수록 줄어드는 극소수의 중앙 출신 관리가 상당한 숫자의 현지백성들을 책임져야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서류상 인구와 실질하 인구 사이의 거대한 간극이 물론 있었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겨우 몇 명의 중앙관리가 몇 만 명의 현지백성을 책임져야했을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인구 4만명 가량의 논현동에 행정공무원이라고는 10명도 안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한나라의 지방관리가 7,500명에 불과했던 것과 달리, 마침 한나라의 서류상 인구 수(5천만)와 비슷한 현대 대한민국의 행정부 지방 공무원은 다해서 39만 1천 4백 80명으로, 한나라보다 쉰 두 배나 많다.

당연하게도 중앙에서 파견된 극소수의 관리들은 현지 사정에 어두웠고, 이들이 현지 백성들의 삶에 개입하는 순간은, 제국의 재정상태를 위해서 가혹하게 세금을 쥐어짜내거나, 통치자들의 권위를 드높이는 각종 역사(役事)에 동원하거나, 지역민의 범죄를 온갖 기상천외하고도 잔혹한 전통 형벌을 동원해 일벌백계하거나, 이단적 풍취를 짙게 풍기는 요사스러운 신전들을 때려부술 때 뿐이었다.
삼형제는 함께 난세를 헤쳐나가고 한나라의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나갈 의무가 젊고 능력있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연의 속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며 능력마저 출중한 삼형제가 함께라면 정말 어떤 무서운 현실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으리라. 
때때로 중앙에서 파견된 신참내기 "서울깍쟁이" 나으리들은 사악하거나, 무능하거나, 혹은 둘 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차피 몇 년 안에 다른 지역으로 교체되곤 했다. 어떤 관리들은 새파랗게 젊은 나이임에도 하늘의 이치를 논하거나 병사들을 부리는 법을 꿰뚫거나 큰 돈을 만지는 법을 넌지시 일러주기도 할 정도로 뛰어났다. 하늘은 아직 푸르렀고, 삼형제는 현실이 그리 가혹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천자의 대리인을 잘 받들어 모시는 일이, 곧 백성들을 위한 길이라고, 형제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때에 장각은 요상한 꿈 하나를 꾸었다. 그것은 고대의 어느 황색 지배자에 대한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꿈 속에서 그 황색 지배자는 자신이었다. 백성들은 농사도 짓지 못하고 짐승처럼 뿔뿔이 흩어져 식물의 뿌리나 캐먹고 있었다. 황제(黃帝) 장각은 이를 안쓰럽게 여겨 바람과 햇살과 비를 부렸고, 동남서북 네 개의 방위를 매년 순례하며 백성들의 땅을 누렇고 기름지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태평한 일상은 잠시뿐이었다. 이 누런 황토의 백성들은 갑작스레 벌어진 전란과 질병에 고통받게 되었다. 
전란을 몰고 온 것은 토지를 불사르는 사악한 불의 제왕, 염제(炎帝)였다. 장각은 염제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덕(德)을 활용해야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장각이 덕(德)을 펼치자, 마치 바글바글한 개미떼의 무리처럼 황색 두건을 맨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황제의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염제를 물리쳤지만 치우와 그의 여든 형제들은 강철 짐승의 모습을 한 채 여전히 장각의 백성들을 괴롭혔다. 절망에 빠진 장각이 하늘을 우러러 지혜를 요구하자, 정말로 곧 지혜가 나왔다. (慧智出) 하늘에서 한 여인이 그에게 신묘한 계책이 담겨있는 신성한 서책을 전해준 것이다.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그 책을 읽는다면, 백성들을 옳은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장각은 꿈에서 깼고, 그가 단잠에서 깰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시동이 말을 걸었다. 


"심부름을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시장통에서 정말로 재미있는 책 하나를 얻었습니다. 어느 도사가 우물에서 구했다는 책인데, 제목은 태평이 무어라 했던 것 같습니다." 



기원후 166년
해가 바뀌고, 다시 해가 바뀔 무렵, 농민들이 모처럼 농한기를 맞아 토굴같은 주거지 속으로 숨어들고 찰나의 휴식을 만끽하는 겨울이었다. 휴식의 때여야했을 166년의 겨울은 백성들에겐 지옥의 재림이 따로 없었다. 무시무시한 역신(疫神)이 이때에 이르러 거록땅에도 찾아온 것이었다. 역병은 혈통을 가리지 않았다. 현령이고 현승이고 현위고 백성들을 위무하기 위해 다가간 귀족들은 그 가족들까지 모두 처참한 몰골을 한 채로 세상을 등졌다. 
중앙에서도 환관과 외척으로 비롯되는 극소수의 핵심권력자들과 다수의 실무 지식인들 사이의 권력 투쟁이 격화되어 수백여 명의 관직길이 막히는 당고의 금(黨錮之禁)이 벌어졌다. 장보와 장량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도저히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큰 형인 장각은 태평하게 글공부를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이 워낙 엄정해서 감히 말을 걸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삼국지"연의"에서 장각은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과거"시험 지망생출신이라는 설정이다. 만일 정말로 장각이 거록의 호족 출신이었다면, 당시 벌어졌던 당고의 금은 그에게 있어서 중앙 관직을 단념케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관중이 그에게 과거시험 지망생 설정을 붙인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이때 한나라를 휩쓴 역병의 정체가 무엇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사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이 당시에 유행했던 역병이 한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던 역병이 두역(痘疫), 즉 천연두의 일종이 아니였느냐 하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마치 오늘날의 HIV 바이러스처럼, 짐승과 인간 사이의 종간 장벽을 뚫고 들어온지 얼마 안된 질병은, 치명률이 매우 강하다. 그리고 한나라에 주기적으로 이러한 역병들이 돌때, 서역만리 멀리에 있는 어떤 나라에서도 비슷한 역병이 약간 더 이르게 돌고 있었다. 
그 나라의 이름은 로마 제국, 역병의 이름은 당시 로마를 지배하던 왕조의 이름을 따, "안토니누스 역병"이라고 불렸다. 안토니누스 역병에 의해 초토화된 로마 제국 전역에서 광기어린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특히 아보노테이코스의 알렉산드로스라는 사람은 뱀의 신 "글리콘"을 숭배하는 교단을 창시하고는, 병자들의 몸을 치유하고 점을 치는 능력으로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쌓았다고 한다. 안토니누스 역병은 향후 15년간 지중해 세계 전역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로마 황제의 목숨마저 앗아갈 것이다. 
주후(主後) 166년, 그리고 연희(延熹) 9년은 세계사적으로 동서양의 거대제국이 확실하게 접촉했다고 여겨지는 의미깊고 유명한 연도다. 로마 제국의 안토니누스 황제, 그러니까 대진국왕 안돈(安敦)이 보낸 사자는 오늘날의 베트남 북부지역을 거쳐 이 해에, 한나라 조정에 당도했다. 그들은 한나라 조정 입장에서는 딱히 진귀하지는 않은 흔해빠진 물품들을 바쳤는데, 코끼리의 상아, 코뿔소의 뿔, 바다거북의 배딱지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러나, 한가지 의도치않게 배달에 성공한 희귀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사람의 눈에는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곧 귀신의 일종이었다. 귀신 안돈(安敦), 즉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딴 "안토니누스 역병"이 성공적으로 한나라에 자리잡은 것이다. 서쪽에서 온 누런 모래바람이 하늘의 빛을 가렸고 ,푸른 하늘은 빛을 잃기 시작했다


2부 "황천당립" 에서 계속...



참고문헌
『典略』
『後漢書』『三國志』『資治通鑑』de Crespigny, R. (2010). Imperial Warlord: A Biography of Cao Cao 155-220 AD. Brill Academic Publishers.
de Crespigny, R. (2017). Fire Over Luoyang: A History of the Later Han Dynasty 23-220 AD. (1 ed.) Brill.



*이미 직접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글이니 퍼가시는 것은 좋지만 영상화하거나 수익창출은 하지말아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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