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없다는 한경협 : 선동과 날조로 당당히 승부하자
PGR에선 별로 얘기가 안나오지만 요즘 핫한 이슈이자 제 관심사 중 하나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추가하는 상법 개정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사는 "주주"가 아니라 "회사"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따라서 대주주가 이익을 독점하고 소액주주가 피해를 입든 말든 회사만 괜찮으면 알빠노라는 굉장한 논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의 충실 의무에 회사 뿐만 아니라 "주주"도 넣자는 게 오래 얘기 돼 왔고 저번 국회에서도 발의 됐지만 결국 폐기됐죠.
그래도 이번에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나름 의지를 가지고 상법을 개정하여 해당 조항을 추가하려고 하고는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정재계 반발이 장난 아닙니다. 당연한 게, 일부 지분만 가지고 소액주주 패싱하면서 지배권을 독점하는 "오너" 입장에서 주식회사의 기본 원칙이 도입되면 자기네의 사익추구에 타격이 가거든요. 이젠 맘대로 물적분할 쪼개기 상장도 못하고 지배권 프리미엄 받아먹으면서 자기네 주식만 비싸게 팔아먹는 등 소액주주 등쳐먹는 짓을 못한단 말입니다! 아니, 길게 보면 아예 꼼수로 유지하고 있는 경영권까지 잃을 판이니까요.
그런 반발 중 꽤나 재밌는 게 있어서 가져와봤습니다. 한경협(구 전경련)에서 나온 주장인데, "선진국에선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따윈 없다"라는 거죠. 걔네 자료에선 미국, 독일, 일본, 영국 등을 예시로 "미국 일부 주 빼면 없다"라고 주장하는데....
[이거 대놓고 날조란 게 포인트입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이야 이쪽 원조니까 넘어가겠습니다(주별로 다르긴 한데 원칙은 같음). 독일의 경우 딱히 명시적으로 "주주에의 충실의무"를 규정하진 않습니다. 근데 판례를 통해 일부 지배 주주가 다른 주주에 피해를 끼치는 걸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영국 또한 회사법에 "회사의 이사는 전체로서의 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행위하여야 한다"로 나와있는데다 판례법(여긴 아예 영미법계니까)으로 이사가 주주에의 의무를 부담할 수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일본의 경우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상법이 이렇게 된 게 일본의 영향입니다. 얘네가 미국 쪽 상법 번역해온 거 긁어온 거거든요. 그래서 얘네도 딱히 "주주에의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근데 판례를 통해 당연히 회사의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서 주주의 이익에 충실해야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해석 상 굳이 명문으로 안넣어도 당연히 지켜져야 할 "주주에의 충실의무"가, 어째서인지 우리 법에서는 부정하는 방향으로 판례가 형성돼 버린 것에 가깝습니다. 한경협은 그걸 근거로 "다른 나라에는 따로 없다!"라고 주장하는 거고요. 실제 적용이나 판례는 쏙 뺴놓고.
평소에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주장하다가 그 글로벌 스탠다드가 입맛에 안맞으면 날조를 통해서라도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다니... 전경련이 믿거긴 했지만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크크크크크.
참고로 이복현 금감원장은 여기에 "일부 논객들이 해외에는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논쟁을 하고 싶으면 차라리 나랑 공개 토의라도 하자"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무튼 결국 전경련이 전경련 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상법 개정 추진이 어떻게 될런지는 지켜볼 포인트입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주주에의 충실의무 넣는 대신 배임죄 폐지를 당근으로 제시하는데 이것도 제가 볼 떈 코미디 같은데... 어떻게 될런지요. 민사로 문제가 해결되려면 제가 전글에 썼던 집단소송이나 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도입돼야 할텐데...
여러분, 어쨌든 이런 문제들 죄다 해결 되기 전까진 한국 주식 쳐다도 보지 마십쇼! 우리나라는 법적으로도 대놓고 소액주주는 일부 대주주의 밥임을 보장하는 나라니까요!
참고자료
https://news.bizwatch.co.kr/article/market/2022/11/23/0013
https://static2.einfomax.co.kr/imboard/infolive/20231215_075403_0.36308598891559796.pdf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68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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