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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 : 집단소송제도, 증거개시제도, 징벌적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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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엄격하게 규제 vs 사전규제는 덜하나 문제가 생길 경우 철저히 보상하도록 하여 문제를 시정

어느쪽을 선호하시나요? 약간 다르긴 하지만 전자는 포지티브 규제(허용한 것만 가능), 후자는 네거티브 규제(금지한 것 이외에는 모두 가능)와 맞닿아 있습니다.

아마 대다수의 한국인은 전자를 선호하실 겁니다. 한국인의 국가관은 국가에 큰 권한을 주는만큼 큰 책임도 부여하니까요. 항상 문제가 생겼을 때 "정부는 뭐했냐!"를 외치고 부랴부랴 대응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이렇듯 한국을 비롯한 대륙법계 국가는 보통 깐깐한 사전 규제를 통해 문제 자체의 발생을 원천 차단하려 합니다. 문제가 터져도 보통은 행정부의 과징금 부과 등으로 제재하죠. 규제부터 과징금 부과까지 행정부의 권한이 강합니다.

반대로 미국 등 영미권 국가는 후자에 가깝죠. 기본적으로 네거티브 규제 국가인만큼 우선 신산업이 등장하고 발전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 이후 소송으로 해결합니다. 피해보상, 판결 등 사법부의 영향이 강한 것입니다.


이게 단순히 국민성의 차이일까요? 아닙니다. 제도 자체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다르길래 이런 차이가 벌어지는 것일까요?


보통은 영미법의 집단소송제도(클래스 액션),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 징벌적손해배상제도를 꼽습니다. 차례차례 살펴보겠습니다.


[1. 집단소송제도]

우리도 집단소송에 대해 언론에서 많이 들어봤겠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미국식 집단소송제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저 원고가 많은 단체소송이 있을 뿐입니다.

차이점은 무엇이냐? 집단소송은 대표자가 소송을 걸고 판결을 받으면 피해자 모두가 동일하게 배상을 받습니다. 반면 단체소송은 그저 소송 당사자만이 보상을 받을 뿐입니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으면 피해자라도 보상받지 못하며 다시 따로 소송을 걸어야합니다. 단체소송에 참여하더라도 원고가 무지막지하게 많은 특성상 과정도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어 차라리 포기하기 일수죠.

그러니까 기업은 집단소송이 없다면 다수를 상대로 소액 피해를 얼마든지 입혀도 되는 겁니다. 어차피 다들 법원 가기도 전에 나가 떨어질테니까. 제재를 하려면 행정부가 직접 나서서 조사하고 과징금을 부과해야합니다. 이 세상에 널리고 널린 수많은 사례를 정부가 다 책임지고 조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겨우 부과한 과징금? 그깟 돈 몇 푼 얻는 이득에 비하면 거저죠. 현재 시스템으론 기업의 올바른 행동을 유도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집단소송제도는 증권 관련에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됩니다. 그마저도 2005년 도입 이후 여태까지 제기된 집단소송은 11건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의미가 없습니다. 소송 사유도 제한 돼 있고, 소송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하는데 이게 피고가 항소하면 3심까지 가고, 허가 이후에도 본소송을 3심까지 가기 때문에 사실상 총 6심을 받아야해서 시간도 오래걸립니다. 실제로 진행한 사례도 보상보단 악으로 깡으로 끝까지 간 경우에 가깝습니다.

미국에선 "제한없이" 여건만 맞으면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제쳐두고라도, 현재 상황은 국가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입니다. 기업이 열심히 생산성을 향상하기보단 등쳐먹는 게 더 이득인데 왜 굳이 노력할까요? 이런 도덕적 해의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집단소송제도는 도입되어야 하나, 경재계의 반대로 번번히 무산되었습니다. 소송 남발로 기업 활동이 마비가 된다고요. 그런데 증권 집단소송에서보듯 "소송 남?발", "기업 마?비"죠. 그리고 그 말이 맞으면 미국은 이미 망했어야 하는데 정작 미국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잘나가는 국가입니다. 경제는 기업을 단순히 배불리는 게 아니라 열심히 뛰도록 장려해야 잘되는 거에요.


[2. 증거개시제도]

집단소송제도만 도입되면 대한민국의 문제는 만사 해결이냐? 아닙니다. 여러분, 아무리 집단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일반인이 어떻게 대기업을 이깁니까? 자료도, 돈도, 법무자원도 훨씬 많은데. 핵심 증거를 모른 척 감춰두면 어떻게 찾아요?

여기서 필요한게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입니다. 디스커버리는 소송이 시작되면 양측이 관련 자료를 다 제출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제출 안했다 걸리면 철퇴 맞습니다. 디스커버리가 도입되어야 비로소 개개인 소비자의 정보비대칭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물론 정재계에서는 기업의 영업기밀, 기술 누출 된다고 완강히 거부합니다만... 미국가서는 잘만 소송하더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라서 이 부분은 열람자를 엄격히 제한하는 등 조치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보완"이 필요한 거지 아예 도입을 안하면 그냥 소송하지 말란 거죠. 물론 본심도 그럴 거고요.


[3.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의 마지막 키는 징벌적 손해배상입니다. 원래 우리 민사는 입은 손해를 보전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런데 이런 "손해"라는 게 추상적인데다 입증이 쉽지 않습니다. 소송 과정에서 깎이는 경우가 부지기수고요. 결국 소비자 입장에선 소송에 들인 노력에 비하면 "충분한 보상"이 되지 못하고 기업에게도 큰 패널티가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징벌적 손해배상입니다. 말 그대로 "피해액을 넘어서" 배상합니다. 징벌의 성격,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배심원이 이를 결정합니다. 뉴스에서 천문학적인 배상액이 튀어나오는 미국 소송을 접하는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우리처럼 딱히 "3배"같은 식으로 제한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사안, 주별로 다름).


이렇게 집단소송, 디스커버리, 징벌적 손해배상 삼신기가 모이면! 기업이 대놓고 소비자를 등쳐먹고 배째는 경우는 줄어들겠죠. 자칫 잘못하면 회사가 망하니까. 우리 정재계는 회사가 망한다는 걸 극단적으로 터부시하고 이를 인질잡아 반대하지만, 원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망할 회사는 망해야죠. 그래야 전체 질서가 유지가 됩니다. 그거 방치해봐야 곪을 뿐이에요.


[4. 넘어야 할 산]

당연하지만 위 언급한 셋 하나하나가 경재계 입장에서는 거품물고 반대할 사안입니다. 이 세상에 책임을 지고싶어하는 존재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막 밀어붙이기엔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도 합니다. 집단소송제도의 경우 그 대표요건을 어떻게 할 것인가부터 시작하죠. 요건을 너무 완화하면 기업들이 어용노조 내세우듯 어용 피해자를 내세울 거고, 너무 엄격하게 하면 현행 증권 집단소송제도처럼 유명무실해집니다.

디스커버리는 전술했듯 기업 기밀, 기술 유출 문제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기준없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배상액으로 인해 판사의 자의적인 영향력이 극대화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다 영미법에서 온 제도들이라 대륙법계인 우리 법과 조화시키기도 쉽지 않고요. 물론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대륙법계 국가들도 점차 도입하는 거 보면 노력의 문제이지 가부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5. 마무리]

사실 저는 소비자 권익보다는 경제 구조 측면에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집단소송 등 사법으로 사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애초에 문제가 터지지 않도록 사전규제를 촘촘히 할 수밖에 없거든요. 최악의 경우엔 규제 없이 문제만 잔뜩 터트리고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양산될테니까.

근데 결국 현대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혁신, 신산업입니다. 타다 사태에서 보듯 아예 이런 규제에 막혀 시작도 못하든가, 법으로 짓밟아버리면 그저 우리 경제는 쇠퇴할 뿐이겠지요. 그러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규제를 네거티브로 전환하는 대신 문제는 추후에 사법으로 철저히 털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게 올바른 정답이란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선택의 영역일 뿐이지요. 단지 저는 이 방향이 장기적으로 옳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꽤나 큰 사항이지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발적으로만 접하고 잘 몰라 동력을 받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맨날 흐지부지 되는 거고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런 제도의 존재 유무를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써봤습니다.

링크에 뉴스타파 특집 기획 링크 달아놓겠습니다. 해외 사례도 포함되고 꽤 재밌고 유익하니 일독 추천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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