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변하는 걸까? - 어지러움에서 파생된 한자들
2000년대 한때 유행했던 한솔엠닷컴의 광고 시리즈에서 김민희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를 외쳤다. 그런가하면 최근 IVE의 노래 "Payback"에서도 "사랑은 쉽게 변하지, 사람은 쉽게 안 변해"를 부른다. 정말 사랑은 움직이는 걸까?지난 글, "패드립과 피리"에서는 거스름, 어지러움을 뜻하는 거스를 패(悖)를 다루었다. 현대에는 안 쓰이는 글자지만, 이 거스를 패에서 파생된 글자 중에 이런 글자가 있었다. 바로 "다스릴 불"이다. 거스르고 어지럽히는 것을 쳐서 다스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어지러울 란(亂)과 변할 변(變)이라 했다. 이번 글에서는 變을 다뤄보겠다.變은 䜌(어지러울, 다스릴, 끊어지지 않을 련)과 攵(칠 복)이 합한 글자로, 䜌이 소리를 나타내고 攵이 뜻을 나타내는 형성자다. 형성자는 뜻을 나타내는 의부가 부수가 되는 것이 보통인데, 變은 특이하게도 소리를 나타내는 성부 䜌의 부수인 言이 부수다.이 글자의 자원을 풀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는 위쪽 반인 䜌을 풀이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䜌은 서주 시대의 금문에서부터 볼 수 있는데, 옛날 형태를 지금까지 잘 이어오고 있는 한자다. 다른 의미인 끊어지지 않다는 의미대로 살아온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말씀 언(言)의 좌우 양편에 실 사(絲)를 나누어 쓴 형태다. 금문과 소전의 차이는 실 사가 말씀 언에 이어져 있냐 따로 있냐다. 그러나 絲와 言이 합쳐져서 어지럽다, 다스리다, 끊어지지 않다 세 가지의 서로 다른 뜻이 나오다 보니 학자마다 䜌의 해석이 분분하다. 어지럽다와 다스리다는 반의어에 가깝다 보니 한 글자가 둘 다 뜻하는 것은 의외로 자연스럽다. 반의어는 거의 다 비슷비슷한데 한 가지가 뚜렷하게 다른 경우에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설명한 어지러울 란과 다스릴 불에서도 볼 수 있다.실뭉치가 상징하는 것은 실로 "이어 끊어지지 않다"일까? 실뭉치가 "어지럽게 얽혀 있다"일까? "끊어지지 않다"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䜌의 음이 聯(잇닿을 련)과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두 글자가 서로 통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중국의 고문자학자 추시구이는 言의 한 획과 絲가 항상 이어져 있는 점에 주목해 사실은 言과 잇닿을 련(聯)의 다른 형태이자 亂의 이체자이기도 한 一+絲이 결합한 글자라고 본다. "어지럽게 얽혀 있다"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설문해자에 나온 䜌의 옛 문자, 즉 고문을 근거로 든다. 이 고문의 모양은 실뭉치 세 개를 위아래에서 손으로 다듬고 있는 모습으로, 실뭉치 하나를 위아래에서 손으로 다듬고 있는 亂과도 비슷해 보인다. 이 글자가 䜌의 원형이라면 가운데의 言은 실뭉치 하나를 나타내는 糸(가는 실 멱) 중 하나가 잘못된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서주-춘추 시대의 금문의 䜌의 모양이 일관되게 絲 사이에 言이 있는 형태라는 점에서 言이 糸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설문해자에서 아무 이유 없이 䜌의 고문을 제시한 것은 아닐 테니 이 설도 그냥 무시하기에는 섣부르다.그 외에도 䜌의 言은 악기를 나타내며 絲는 악기를 장식하는 실뭉치라고 하기도 하고, 䜌의 言은 무녀를 가리키며 絲는 무녀의 장식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䜌 자체는 지금은 쓰이지 않고 있지만, 음이 "란", "련", "만", "변", "완"인 한자들의 성부로 쓰이고 있다. 일본의 한학자 시라카와 시즈카는 자음이 서로 다른 점에 주목해 䜌이 들어가는 글자들에서 䜌이 성부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한자의 상고 시대 음인 상고음을 연구하는 정장상팡이나 벡스터, 사가르 등은 입술소리인 b나 p와, r이 같이 있는 br이나 pr 등으로 䜌과 䜌에서 파생된 글자들의 상고 자음을 추정한다. 곧 이 한자들은 상고 시대에는 지금보다 음이 더 비슷했으나, 복자음이 없어지면서 음이 변화해 갈라져 나왔을 것으로 본다. 䜌이 워낙 뜻이 많기 때문에 變의 자원도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나, 끊어지지 않는 것을 치니 변한다고 하기도 하고, 어지러운 것을 치니 변한다고 하기도 한다.䜌을 성부로 삼는 한자들은 變 외에도 欒(모감주나무/단란할 란), 戀(그리워할 련), 攣(손발굽을 련), 蠻(오랑캐 만), 彎(굽을/활 당길 만) 등이 있다. 이외에도 많은 글자들이 있으나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한자는 이 정도일 것이다.
欒 - 단란(團欒), 어문회 준특급
變 - 변화(變化), 이변(異變) 등, 어문회 준5급
戀 - 연애(戀愛), 연인(戀人) 등, 어문회 준3급
攣 - 경련(痙攣), 어문회 준특급
彎 - 만곡(彎曲), 측만(側彎) 등, 어문회 1급
蠻 - 남만(南蠻), 만행(蠻行) 등, 어문회 2급
灣 - 만(灣), 항만(港灣) 등, 어문회 2급
䜌이 복잡하기 때문에 약자에서는 䜌이 들어가는 부분을 亦(또 역)으로 간략화하는데, 중국의 간화자에서는 亦과 구분해 다음과 같은 글자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중국 글과 일본 글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恋이나 蛮, 弯 등의 글자가 미묘하게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매우 비슷한 글자이기 때문인지 유니코드에서는 같은 코드를 사용하고, 글꼴에 따라 중국식이냐 일본식이냐가 달라질 뿐이다. 위의 예에선 중국식으로 Microsoft Yahei UI를, 일본식으로 PS PGothic을 썼다. 아예 다른 코드를 사용하는 건 變의 간화자 变과 신체자 変인데, 이는 간략화 과정에서 의부인 攵도 중국에선 又(또 우)로, 일본에선 夂(뒤처질 치)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사실 變의 의부는 역사적으로도 又나 夂, 심지어 久(오랠 구)를 쓰기도 했다. 강희자전에서 變을 言부에 배치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䜌은 현대에는 쓰이지 않고, 䜌으로 쓰던 글자들은 각자 자기에 맞는 의부를 지니고 제 갈 길을 갔다. 그러면 "어지럽다"와 "끊어지지 않다"는 어디로 갔을까? 어지럽다는 찾지 못했지만, "끊어지지 않다"는 糸을 의부로 삼아 파생되어 살아남았다. 이미 糸이 잔뜩 들어간 글자에 직접 糸이 들어가는 게 어색했는지 직접 파생되지 않고, 戀을 거쳐 纞으로 파생되었다. 무려 29획이나 되는 글자인데, 지난번 다스릴 불의 이체자가 뿔 각부의 마지막을 장식했듯 이 끊어지지 않을 련(纞)도 가는실 멱부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요약
變은 䜌과 攵이 합한 글자로, "어지러운 것을 치니 변한다", 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을 치니 변한다"로 볼 수 있다.
䜌은 變 이외에도 欒, 戀, 攣, 彎, 灣, 蠻 등을 파생시켰으며, 파생 이전에는 䜌을 가차해 사용했다.
䜌이 들어가는 글자의 약자에는 䜌 대신 亦이 들어간다.
최근 브런치스토리에 한자 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꾸준히 올려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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