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니스, 에스파, 프리지안
에스파의 신곡, 수퍼노바는 오랜만에 돌아온 에스파식 SMP를 느끼게 한다. 이에는 우주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조성도 한몫할 것이다.
이 특유의 조는 장조도 단조도 아니다. 프리기아 선법(Phrygian mode, 프리지안)이라고 하는 선법의 일종이다. 대중음악에서 장단조의 단조로움을 깨고자 선법을 조금씩 활용하기도 하지만, 이 수퍼노바는 처음부터 끝까지 E 프리지안이다.
선법(mode)은 장단조 체계가 나오기 전 서양 음악에서 활용한 체계로, 피아노 건반으로 보면 도부터 시 중의 한 음을 으뜸음으로 삼아 일곱 음을 흰건반만으로 따라 올라가는 음계다. 현대 선법에서는 도부터 시까지의 일곱 다른 으뜸음에 일곱 가지 다른 그리스 이름을 붙였는데, 이오니아, 도리아, 프리기아, 리디아, 믹소리디아, 에올리아, 로크리아 선법이다. 영어 형용사인 아이오니안, 도리안, 프리지안, 리디안, 믹소리디안, 에올리안, 로크리안으로도 많이 부른다.프리기아 선법(프리지안)은 미, 음이름으로는 마(E)부터 시작하는 선법으로, 자연 단음계와 비슷하나 2음이 반음 내려간다.수퍼노바로 돌아가보자. Can"t stop hyperstellar가 F-D-E로 진행한다. 으뜸음이 E이므로 전형적인 프리지안의 진행이다. 프리지안의 특징은 음 사이의 간격이 장조와 정반대라는 것이다. 즉 이 진행은 장조에서 시-레-도를 도를 중심으로 반전한 것과 같다.프리지안에서는 조와 조가 겹치는 듯한 복조 현상을 볼 수 있는데, 1, 3, 5음이 단 3화음이고 2, 4, 6음이 장 3화음으로 이를 반복하면 단조를 기반으로 하면서 장조가 번갈아 나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는 프리지안이 단조와 달리 2음이 반음 내려가 있기 때문으로, 프리지안이 단조와 비슷하나 다른 효과를 주게 한다.
수퍼노바 역시 이 현상을 곡 전반에 걸쳐 활용하고 있는데, 특히 낮은 목소리로 화음의 1음과 5음만을 오가는 E-B-E-E-F-C-F-F 브리지에서 잘 느낄 수 있다.
프리지안 하면 떠오르는 클래식 작곡가 중 하나가 이삭 알베니스다. 우리나라에선 생소하지만 고국인 스페인에선 제법 유명한 인물로,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본인이 유명 피아니스트이기도 하고 피아노곡을 주로 썼지만, 작곡에서 기타 음향 효과를 많이 활용했고 그 때문에 타레가가 기타 곡으로 편곡한 아스투리아스가 유명하다. 알베니스의 대표작인 이베리아 모음곡의 10번 엘 알바이신도 처음에는 기타 뜯는 듯한 특유의 주법을 보여준다.
프리지안에서 3음을 반음 올리면 프리기아 딸림 음계(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가 되는데, 여러 민속음악에서 자주 쓰이고 스페인의 플라멩코도 이 중의 하나다. 엘 알바이신 역시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을 본래의 프리지안과 섞어서 많이 쓰는데, 특히 프리지안에서 단 3화음과 장 3화음인 i-II 진행이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에서는 모두 장 3화음인 I-II가 되어 조가 겹치는 듯한 현상이 더 강렬해진다.
엘 알바이신에서는 바(F) 프리지안으로 진행하는 칸테 혼도 주 선율 뒤로, 수퍼노바에서 보이는 단 3화음 으뜸화음(i)-장 3화음 2화음(II) 대신 감장 7화음을 쓴 i-vo7 진행을 메아리처럼 깔아준다. 칸테 혼도는 "심연의 노래"라는 뜻의 스페인 플라멩코 음악의 일종이다. 같은 제2음이 들어가는 진행이라도 수퍼노바에서는 우주를 묘사하는 데 쓰인 프리지안이 엘 알바이신에서는 스페인 전통 음악과 집시 음악 특유의 분위기를 내는 데 활용되고 있다.https://youtu.be/glXgSSOKlls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은 에스파의 선배인 레드벨벳의 아이스크림 케이크의 후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주세요" 앞의 la la la가 반음 내려가 있어서 정확하게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이 된다. 7음부터 3음까지 순차 하강 진행하면서 조성이 계속 바뀌는 듯한 아기자기한 효과를 볼 수 있다." /> 사실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이라고 하기에는 ice cream cake의 화음이 가장 밑음이 반음 내려간 화음이라 애매하다. 그래서 아이돌로지의 평론에서는 이 부분을 라 장조라고 하기에는 나 장조의 인상이 너무 강하고, 나 장조라고 하기에는 임시표가 너무나 많이 들어간다며 "미묘한 인상"이라고 평했다. 화성은 이 평론에서도 짚어준 것처럼 ice cream cake만 빼면 나 장조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나 멜로디가 오차 없이 정확하게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이라는 점이 계속 눈에 밟힌다.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에서는 ice cream cake의 화성이 불안정한 감3화음이 되고, 이게 아기자기한 곡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원래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의 3음을 반음 낮춘 게 아닐까?
에스파의 수퍼노바 브리지를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로 흥얼거려 보니 제법 잘 어울리면서도 느낌이 확 달라진다. 원곡보다 더 유쾌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나, 쓸쓸한 엘 알바이신의 정서와 유사해진다. 조가 같으니 그렇겠지만.
대중음악을 잘 몰라 선법을 전면에 내세운 아이돌 곡이 수퍼노바 외에 또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조성체계를 바꾼 실험적인 곡을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 그리고 클래식의 알베니스를 거쳐 뜻밖에 같은 회사 선배 레드벨벳의 노래와 맞닿는 여행을 지나왔으니, 정해지지 않은 길을 떠나 정처없이 떠나 반가운 사람들을 만난 느낌이다.
Nova
Can"t stop hyperstellar
원초 그걸 찾아
Bring the light of a dying star
불러낸 내 우주를 봐 봐
Supernova
이 특유의 조는 장조도 단조도 아니다. 프리기아 선법(Phrygian mode, 프리지안)이라고 하는 선법의 일종이다. 대중음악에서 장단조의 단조로움을 깨고자 선법을 조금씩 활용하기도 하지만, 이 수퍼노바는 처음부터 끝까지 E 프리지안이다.
선법(mode)은 장단조 체계가 나오기 전 서양 음악에서 활용한 체계로, 피아노 건반으로 보면 도부터 시 중의 한 음을 으뜸음으로 삼아 일곱 음을 흰건반만으로 따라 올라가는 음계다. 현대 선법에서는 도부터 시까지의 일곱 다른 으뜸음에 일곱 가지 다른 그리스 이름을 붙였는데, 이오니아, 도리아, 프리기아, 리디아, 믹소리디아, 에올리아, 로크리아 선법이다. 영어 형용사인 아이오니안, 도리안, 프리지안, 리디안, 믹소리디안, 에올리안, 로크리안으로도 많이 부른다.프리기아 선법(프리지안)은 미, 음이름으로는 마(E)부터 시작하는 선법으로, 자연 단음계와 비슷하나 2음이 반음 내려간다.수퍼노바로 돌아가보자. Can"t stop hyperstellar가 F-D-E로 진행한다. 으뜸음이 E이므로 전형적인 프리지안의 진행이다. 프리지안의 특징은 음 사이의 간격이 장조와 정반대라는 것이다. 즉 이 진행은 장조에서 시-레-도를 도를 중심으로 반전한 것과 같다.프리지안에서는 조와 조가 겹치는 듯한 복조 현상을 볼 수 있는데, 1, 3, 5음이 단 3화음이고 2, 4, 6음이 장 3화음으로 이를 반복하면 단조를 기반으로 하면서 장조가 번갈아 나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는 프리지안이 단조와 달리 2음이 반음 내려가 있기 때문으로, 프리지안이 단조와 비슷하나 다른 효과를 주게 한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네게 손 내밀어 볼까
가능한 모든 가능성
무한 속의 너를 만나
수퍼노바 역시 이 현상을 곡 전반에 걸쳐 활용하고 있는데, 특히 낮은 목소리로 화음의 1음과 5음만을 오가는 E-B-E-E-F-C-F-F 브리지에서 잘 느낄 수 있다.
프리지안 하면 떠오르는 클래식 작곡가 중 하나가 이삭 알베니스다. 우리나라에선 생소하지만 고국인 스페인에선 제법 유명한 인물로,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본인이 유명 피아니스트이기도 하고 피아노곡을 주로 썼지만, 작곡에서 기타 음향 효과를 많이 활용했고 그 때문에 타레가가 기타 곡으로 편곡한 아스투리아스가 유명하다. 알베니스의 대표작인 이베리아 모음곡의 10번 엘 알바이신도 처음에는 기타 뜯는 듯한 특유의 주법을 보여준다.
프리지안에서 3음을 반음 올리면 프리기아 딸림 음계(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가 되는데, 여러 민속음악에서 자주 쓰이고 스페인의 플라멩코도 이 중의 하나다. 엘 알바이신 역시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을 본래의 프리지안과 섞어서 많이 쓰는데, 특히 프리지안에서 단 3화음과 장 3화음인 i-II 진행이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에서는 모두 장 3화음인 I-II가 되어 조가 겹치는 듯한 현상이 더 강렬해진다.
엘 알바이신에서는 바(F) 프리지안으로 진행하는 칸테 혼도 주 선율 뒤로, 수퍼노바에서 보이는 단 3화음 으뜸화음(i)-장 3화음 2화음(II) 대신 감장 7화음을 쓴 i-vo7 진행을 메아리처럼 깔아준다. 칸테 혼도는 "심연의 노래"라는 뜻의 스페인 플라멩코 음악의 일종이다. 같은 제2음이 들어가는 진행이라도 수퍼노바에서는 우주를 묘사하는 데 쓰인 프리지안이 엘 알바이신에서는 스페인 전통 음악과 집시 음악 특유의 분위기를 내는 데 활용되고 있다.https://youtu.be/glXgSSOKlls
주세요 달콤한 그 맛 ice cream cake
특별해질 오늘에 어울리는 맛으로
입가에 묻은 ice cream에
네 가슴 두근거려 내게 다가 오겠죠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은 에스파의 선배인 레드벨벳의 아이스크림 케이크의 후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주세요" 앞의 la la la가 반음 내려가 있어서 정확하게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이 된다. 7음부터 3음까지 순차 하강 진행하면서 조성이 계속 바뀌는 듯한 아기자기한 효과를 볼 수 있다." /> 사실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이라고 하기에는 ice cream cake의 화음이 가장 밑음이 반음 내려간 화음이라 애매하다. 그래서 아이돌로지의 평론에서는 이 부분을 라 장조라고 하기에는 나 장조의 인상이 너무 강하고, 나 장조라고 하기에는 임시표가 너무나 많이 들어간다며 "미묘한 인상"이라고 평했다. 화성은 이 평론에서도 짚어준 것처럼 ice cream cake만 빼면 나 장조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나 멜로디가 오차 없이 정확하게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이라는 점이 계속 눈에 밟힌다.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에서는 ice cream cake의 화성이 불안정한 감3화음이 되고, 이게 아기자기한 곡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원래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의 3음을 반음 낮춘 게 아닐까?
에스파의 수퍼노바 브리지를 프리지안 도미넌트 스케일로 흥얼거려 보니 제법 잘 어울리면서도 느낌이 확 달라진다. 원곡보다 더 유쾌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나, 쓸쓸한 엘 알바이신의 정서와 유사해진다. 조가 같으니 그렇겠지만.
대중음악을 잘 몰라 선법을 전면에 내세운 아이돌 곡이 수퍼노바 외에 또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조성체계를 바꾼 실험적인 곡을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 그리고 클래식의 알베니스를 거쳐 뜻밖에 같은 회사 선배 레드벨벳의 노래와 맞닿는 여행을 지나왔으니, 정해지지 않은 길을 떠나 정처없이 떠나 반가운 사람들을 만난 느낌이다.
※저만의 개인적인 감상이 다수 들어가 있습니다.
https://idology.kr/3869 미묘, 음원분석 노동 : 레드벨벳 - Ice Cream Cake
이미나, I. Albe´rniz의 중 III·IV권에 관한 연구, 1999년, 석사학위 논문
https://brunch.co.kr/@wonchu/66, 영혼의 노래 "칸테 혼도"
추천75 비추천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