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부모님에 대한 기억 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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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퇴근하고 나서 어머니랑 이것저것 옛날 이야기를 하다가 생각나서 한번 끼적끼적 적어봅니다.
#1 불 꺼지지 않은 우리집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 학원, 독서실에 늦은 시간까지 있는 날이 늘어갔다.
당시 우리 어머니는 항상 거실 작은 불 정도는 켜두신 채로 잠을 주무셨다.
왜 불을 켜놓냐고 물어보니 집에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불 꺼두는 건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뭔가 따뜻했다. 공부,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가족에게 잠 못자고 기다려주진 못하지만
집에 들어왔을 때 어두컴컴하게 돌아다니지 말라는 어떤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30대가 넘은 지금 부모님이 아직 안들어오셔서 거실 불을 켜놓고 잠이 든 나에게 어머니가 한소리 하셨다.
온집안에 불을 다 켜놓고 자냐고.
나는 분명 거실 불 하나만 켰다. 작은 불을 안켜서 그런걸까?
그 따뜻함이 갑자기 사라졌다. 흑
#2 커갈 수록 엇갈리는 아버지와 나
어렸을 때 아버지는 매우 바쁘셨다. 6시도 안되서 집을 나서고 12시 넘어서야 들어오시는 날이 많았다.
주말에도 회사를 나가거나 골프 연습이나 라운딩을 하러 가시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일어날 때는 아버지가 없었고 내가 잘 때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내가 중학교쯤 되었을 때 아버지가 빠른 승진으로 임원을 다셨다.
임원이 되신 후엔 출근이 조금씩 늦어지셨고 퇴근은 조금씩 빨라지셨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때는 내가 일찍 나가고 하교가 늦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일어날 땐 아버지가 주무셨고 내가 들어왔을 땐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셨다.
이제와서 아버지를 이해되는 데 아버지의 모습이 어릴 적 그 아버지가 아니라는 점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3 어느 명절날 지하주차장에서 깨져버린 와인병
초등학교때 추석 명절날이었다. 시골에 내려간다고 짐과 선물을 차에 싣던 와중 내 실수로 포도 와인병을 주차장에 깨버렸다.
그때 아버지의 행동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병 조각을 깨끗하게 모아서 봉투를 구해서 버리는 것은 물론,
주차장 바닥에 뿌려진 와인도 경비실에서 대걸레를 빌려서 전부 닦고 나서야 우리는 출발할 수 있었다.
병 치웠으니 와인은 마를거라고 빨리 가자는 나에게,
아버지는 그러면 안된다고 우리가 깬 것이니 깨끗하게 치우고 가야한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때 그 기억이 잔상에 남은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쓰레기를 쓰레기통이 아닌 다른 곳에 버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분리수거는 생각보다 실력이 늘지 않는다. 맨날 경비실 아저씨에게 혼난다.
#4 부모님도 부모 역할은 처음이다. 그렇지만 사람이었다.
우리 형이 군대 갔을 때였다. 형과 나는 나이차이가 꽤 나서 형이 군대갈 때 나는 초등학생 이었다.
논산 훈련소 입소할 때 따라갔는데 그때 어머니가 형 사라지기 전까지 울지 않고 계시다가
사라지고 나고부터 집에 올 때까지 펑펑 우셨다.
그렇게 우신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후로 군대에서 형 짐이 왔을 때, 그 때도 하루 종일 펑펑 우셨다.
그때 입힌 옷들, 소지품들을 보면서 말이다.
부모님도 자식을 군대보내는 것은 처음이라 힘드셨던 거 같다.
몇년이 지나고 나도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근데 조금 달랐던 것이 있었다.
훈련소 앞 고기였나 부대찌개였나...너무 잘드셨다. 일찍 출발했으니 배가 고프셨을 수 있겠다 싶었다.
형 때처럼 내 마지막 어머니의 모습은 울지 않으시고 손 흔드시면서 잘갔다 오라고 하셨다.
그 뒤로 몇년이 지나고 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나서 어머니에게 물어봤다.
나 때도 들어가고 나서 집갈 때까지 울었냐고
어머니는 울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냥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옆에서 같이 갔던 형이 이야기한다. 진짜 안우셨다고 한다. 오히려 다이어트 소대에 들어가서 살이나 엄청 빠져서 올거라고
기대를 했다고 한다.
또 쿨하게(?) 어머니는 그러셨다. 형때는 처음이라 울었는데 너는 두번째니깐 걱정은 됬지만 울음은 안나드라.
역시 부모님도 부모는 처음이지만 적응력 또한 뛰어난 사람이란 종족이었나 보다.
#1 불 꺼지지 않은 우리집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 학원, 독서실에 늦은 시간까지 있는 날이 늘어갔다.
당시 우리 어머니는 항상 거실 작은 불 정도는 켜두신 채로 잠을 주무셨다.
왜 불을 켜놓냐고 물어보니 집에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불 꺼두는 건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뭔가 따뜻했다. 공부,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가족에게 잠 못자고 기다려주진 못하지만
집에 들어왔을 때 어두컴컴하게 돌아다니지 말라는 어떤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30대가 넘은 지금 부모님이 아직 안들어오셔서 거실 불을 켜놓고 잠이 든 나에게 어머니가 한소리 하셨다.
온집안에 불을 다 켜놓고 자냐고.
나는 분명 거실 불 하나만 켰다. 작은 불을 안켜서 그런걸까?
그 따뜻함이 갑자기 사라졌다. 흑
#2 커갈 수록 엇갈리는 아버지와 나
어렸을 때 아버지는 매우 바쁘셨다. 6시도 안되서 집을 나서고 12시 넘어서야 들어오시는 날이 많았다.
주말에도 회사를 나가거나 골프 연습이나 라운딩을 하러 가시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일어날 때는 아버지가 없었고 내가 잘 때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내가 중학교쯤 되었을 때 아버지가 빠른 승진으로 임원을 다셨다.
임원이 되신 후엔 출근이 조금씩 늦어지셨고 퇴근은 조금씩 빨라지셨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때는 내가 일찍 나가고 하교가 늦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일어날 땐 아버지가 주무셨고 내가 들어왔을 땐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셨다.
이제와서 아버지를 이해되는 데 아버지의 모습이 어릴 적 그 아버지가 아니라는 점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3 어느 명절날 지하주차장에서 깨져버린 와인병
초등학교때 추석 명절날이었다. 시골에 내려간다고 짐과 선물을 차에 싣던 와중 내 실수로 포도 와인병을 주차장에 깨버렸다.
그때 아버지의 행동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병 조각을 깨끗하게 모아서 봉투를 구해서 버리는 것은 물론,
주차장 바닥에 뿌려진 와인도 경비실에서 대걸레를 빌려서 전부 닦고 나서야 우리는 출발할 수 있었다.
병 치웠으니 와인은 마를거라고 빨리 가자는 나에게,
아버지는 그러면 안된다고 우리가 깬 것이니 깨끗하게 치우고 가야한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때 그 기억이 잔상에 남은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쓰레기를 쓰레기통이 아닌 다른 곳에 버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분리수거는 생각보다 실력이 늘지 않는다. 맨날 경비실 아저씨에게 혼난다.
#4 부모님도 부모 역할은 처음이다. 그렇지만 사람이었다.
우리 형이 군대 갔을 때였다. 형과 나는 나이차이가 꽤 나서 형이 군대갈 때 나는 초등학생 이었다.
논산 훈련소 입소할 때 따라갔는데 그때 어머니가 형 사라지기 전까지 울지 않고 계시다가
사라지고 나고부터 집에 올 때까지 펑펑 우셨다.
그렇게 우신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후로 군대에서 형 짐이 왔을 때, 그 때도 하루 종일 펑펑 우셨다.
그때 입힌 옷들, 소지품들을 보면서 말이다.
부모님도 자식을 군대보내는 것은 처음이라 힘드셨던 거 같다.
몇년이 지나고 나도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근데 조금 달랐던 것이 있었다.
훈련소 앞 고기였나 부대찌개였나...너무 잘드셨다. 일찍 출발했으니 배가 고프셨을 수 있겠다 싶었다.
형 때처럼 내 마지막 어머니의 모습은 울지 않으시고 손 흔드시면서 잘갔다 오라고 하셨다.
그 뒤로 몇년이 지나고 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나서 어머니에게 물어봤다.
나 때도 들어가고 나서 집갈 때까지 울었냐고
어머니는 울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냥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옆에서 같이 갔던 형이 이야기한다. 진짜 안우셨다고 한다. 오히려 다이어트 소대에 들어가서 살이나 엄청 빠져서 올거라고
기대를 했다고 한다.
또 쿨하게(?) 어머니는 그러셨다. 형때는 처음이라 울었는데 너는 두번째니깐 걱정은 됬지만 울음은 안나드라.
역시 부모님도 부모는 처음이지만 적응력 또한 뛰어난 사람이란 종족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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