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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교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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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고착시킨 것"이라고요. 그리고 교육 개혁을 해야한다고 정치권에 주문을 했죠. 구체적으로는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현 시점에 강남이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메리트가 바로 "압도적인 사교육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외에도 강남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겠으나 그것이 강남만 가지고 있는 장점은 아닙니다. 교통 허브로서의 기능을 생각해보면 서울역이나 홍대입구역 등도 그에 못지 않고, 교통 체증, 비싼 생활 물가 등 다른 곳에 비해 오히려 불리한 점도 많습니다. "오직 강남만" 가지고 있는 강점은 역시 사교육입니다.

본문이 길어질 것 같아서 이쯤에서 제가 이 글에서 주장하고 싶은 바를 선요약을 해보겠습니다. 이 글은 이런 논지로 전개됩니다.

1.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의 교육 방향이 아이들의 학습 부담과 경쟁을 낮추는 쪽으로 설정되었다.
2. 아이들의 학습 부담 - 즉 공교육의 교육총량 - 은 낮아졌지만 입시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사교육 시장이 반대급부로 성장하였다.
3. 사교육비는 2025년 현재도 역대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고, 학원가 아파트의 가치가 올라갔으며, 사교육의 정점에 있는 강남 집값을 받치고 있다.
4. 그런 이유로 강남 집값을 잡으려면 공교육 정상화가 필수다.

그럼 본문 시작합니다.

2014년 지방 선거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 치러진 이 선거는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광역자치단체장은 민주당 계열이 9석, 새누리당 계열이 8석을 얻는 등 박빙이었는데 함께 치러진 교육감은 진보 계열이 13석, 중도가 2석, 보수가 2석을 얻어 진보계가 압승한 겁니다.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로 국민들이 교육만큼은 진보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평가가 있었던 선거였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당시 여당이었던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져, 2015년 개정된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과목, 단원 수를 줄이는 방향의 개정이 있었습니다. 고교 수학에서 행렬을 빼는 등 여러 논란이 있었지요.

교육 관련 논란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경쟁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경기도교육감 출신인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수능 절대평가화, 고교 서열화 폐지 등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여론의 반발로 이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종과 수능 중 무엇이 공정한가" 라는 논쟁이 시작됐고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종을 싫어한다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반면 교사와 대학은 학종을 좋아해 교육 관련 담론이 주체별로 갈리는 현상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보수 정권, 진보 정권 할 것 없이 2010년대 중반 이후의 공교육은 학습 부담과 경쟁을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 결과는 다들 아시는 그것입니다. 공교육이 망했지요.

한국의 공교육이 망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크게 두 가지를 주목하고 싶습니다.

(1) 교권의 붕괴
(2) "학"은 있고 "습"은 없는 교육 방향

교권이 엉망이 된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교권 하면 애들을 때릴 수 있는 체벌권 같은 걸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당연히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권에는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해 맞춤 교육을 할 권리,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수업 내용을 조정할 권리, (때로는 경쟁을 도입해서라도) 아이들의 학습 의욕을 도취시킬 권리, 수업에 지장을 주는 문제 학생을 제재할 권리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제재할 권리를 살펴보면, 체벌이 아니라 벌점, 수업에서 내보내기, 유급시키기, 학생 기록부에 남기기 등등 제도 안에서 녹일 수 있는 여러 수단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의 교사는 문제있는 학생에 대응할 수단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에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을 내보내지도, 징계를 주지도 못하죠. 그 피해는 교사만 받는 것이 아니라 교실 안의 나머지 학생들이 고스란히 나눠서 받게 됩니다. 다른 권리들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위에 언급한 나머지 권리들 역시 한국 공교육 안에서는 권장되지도 않고 용인되지도 않습니다.
OECD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교사가 커리큘럼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수업에 도움이 되는 유튜브 영상을 볼 수도 있고 프린트물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한국의 모든 교사는 어떤 커리큘럼을 어떤 교재로 어떻게 가르쳐야한다고 정해진 상태로 수업을 합니다. 학생들이 잘 따라오건 말건, 더 좋은 교보재를 발견하건 말건 예외는 없습니다. 역사 교육처럼 논쟁이 생길법한 과목만 그런 게 아니라 수학 생물 지구과학 모든 과목이 동일합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교육은 군대에서 신병 훈련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처럼 커리큘럼이 확고하면 다른 폐단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예측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특정 고등학교에서 중간고사로 내는 문제가 매년 같은 범위에서 숫자만 바꿔서 나온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 학교의 기출 문제를 가지고 있는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내신도 더 잘나오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로, 한국 공교육엔 "학"은 있고 "습"이 없습니다. 습은 익힌다는 뜻으로 누가 가르쳐준 내용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을 소화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바로 숙제와 시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국 공교육은 아이들의 학습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숙제와 평가와 시험을 크게 줄였습니다. 학부모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결국엔 좋은 대학을 목표로 경쟁해야한다는 것을 아니까 학교에서 하지 않는 숙제, 평가, 시험을 학원에서 하게 됩니다. 그러니 집을 얻을 때 주변에 학원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고, 내가 지낼 아파트 주변까지 학원 차량이 다니는지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공교육을 둘러싼 논쟁은 많습니다. 학종이냐 수능이냐, 특수목적고가 기능을 하냐마냐, 재수생을 어떻게 할 거냐, 의대 입시가 최고의 국가고시가 된 지금의 서열화를 어떻게 할 거냐... 등등.

확실한 건 공교육은 무너졌다는 점이고, 의대가 가장 앞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대학 서열 역시 그대로이며, 경쟁은 피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매년 고정화된 커리큘럼을 가르치다보니 학원이 내신 시험까지 더 잘 대비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좋은 학원의 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매년 수능 출제 경향에 인근 고등학교의 기출문제까지 꿰고 있는 강남으로 - 정확히는 강남 학원가에서 학원 차량을 보낼만한 곳으로 - 이사갈만한 이유가 충분한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아는 강남 불패의 시작입니다.

원래는 강남 집값이 유지되거나 상승함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이어서 적을 생각이었는데, 다들 아실 것 같아서 넘어가고요. "집값과 출산률의 상관관계" 하나만 짚어볼까 합니다.  

2024년 1월 국토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출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건 집값이고, 둘째 아이 출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건 사교육비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강남 집값과 관련있는 주제입니다. 다시 말해 공교육이 무너져서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사교육 넘버원 강남 집값도 오르고, 나머지 지역들도 덩달아 오르고, 그래서 더욱 아이를 안 낳는다는 겁니다.
이 사슬을 끊어내려면 어떻게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공교육을 살리면 됩니다. 근데... 공교육 어떻게 살리죠? 한국에 똑똑하다는 사람들 다 모여도 답이 없는데, 교육 전문가도 아닌 제가 답을 제안하는 것도 어불성설이겠죠. 부족한 식견으로나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았는데, 비판도 환영합니다.  

우선 저는 교권, 그중에서도 교사 자율권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위에 언급했지만 한국의 교사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수준별로 각각 다른 과제를 내는 것도 불가능하고, 커리큘럼을 조정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아니, 그보다 내가 내년에 몇 학년을 맡을지도 한 달 전에나 알게 됩니다. 이러면 수업을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9월에 학기가 시작하는데,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다음에 맡을 학년이 몇 학년인지 알려줍니다. 커리큘럼을 준비할 시간이 최소 두 달 이상은 있는 셈입니다. 한국은 몇 학년 수업을 맡을지를 최근까지도 개학 일주일 전에나 알려줬었습니다. 문제제기가 지속되어 이제는 한 달 전에 알려줍니다.) 교사에게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교사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하게끔 해야 합니다. 논란이 생길 수 있는 과목은 빼더라도 최소한 그 외의 과목들에는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해줘야만 합니다.

이러면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습니다. 1. 사교육이 대응하기 어렵다. 2. 시험을 잘 보려면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들어야 한다. 3. 교사가 더 주도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문제 있는 학생에 대한 제재권과 벌점 권한도 교사에게 주어진다면 공교육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다음으로, 입시가 단순화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학종을 불신하는 이유는 학종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학 어느 과에서는 어떤 경시대회까지 입시에 반영을 해준다더라. 어느 과에서는 교과외 활동으로 이런 것을 해도 가점이 있더라, 같은 정보가 너무 복잡하고 접근 가능한 사람만 이득을 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학종을 불신합니다. 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결국 입시란 줄세우기입니다. 줄세우기라는 본질을 세탁하려고 별 짓을 해봐도 다른 종류의 폐단만 만들 뿐입니다. 단순한 규칙으로 줄을 세우면 준비가 쉬워지고 사교육에 의지할 필요성이 줄어듭니다. 학종이든 수능이든, 학생과 학부모들이 자신들이 어떤 게임을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최선입니다. 룰을 단순화하되, 변수를 대응할 수 있게 해주면 됩니다. 입시가 줄세우기라는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어떤 룰로 줄을 세울건지 "간단한 룰"을 제시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사교육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랍니다. (코스피에 몰빵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과거처럼 민주당 정부가 집값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 조치가 필요하겠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교육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재명 정부의 교육 정책 성공을 기원하며 긴 글을 마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참조-

사교육비 관련 통계는 이 블로그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siegetruck/223121792716

사교육시장 통계 몇가지

https://chartngraph.com/%EC%97%B0%EB%8F%84%EB%B3%84-%EC%82%AC%EA%B5%90%EC%9C%A1%EB%B9%84/

사교육비가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의 뉴스에 잘 나와있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50623/131861605/1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503130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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