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정가 : 19,800원
정보 : 404쪽
1981년부터 14년간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그는 ‘독일’이란 나라를 두고, 위의 질문처럼 말한 적이 있었다. 그의 이런 발언은 독일 역사의 핵심을 관통한다. 그만큼 독일 역사는 극과 극을 오갈 만큼 격동적이다. 야만과 문명, 분열과 타협, 반동과 개혁, 분단과 통일까지, 독일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상반된 개념들이 튀어 올라와 독일이란 나라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무척 궁금하게 한다.
고대 로마의 변두리,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된 역사, 숱한 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지리적 조건. 그런데도 독일은 기어이 유럽의 심장이 되어 21세기 오늘날 유럽을 지휘한다. 세계 GDP 3위의 경제 최강국이자 유럽연합의 지휘자 ‘독일’의 성공 요인은 대체 무엇일까?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는 게르만족부터 올라프 숄츠 총리의 집권기까지를 아우르며 독일 역사 전체를 단숨에 가로지른다. 독일과 주위 세계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공시적으로 접근하며,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 형식으로 쉽게 풀어낸 최적의 개론서다.
‘누구든지 읽을 수 있는 독일 역사책’을 표방한 만큼 풍부한 시각 자료를 덧붙였다. 7개의 그림, 11개의 지도, 22개의 연표, 35개의 사진 자료는 독일이란 나라가 생소한 독자들조차도 충분히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또한 독일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인물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당시 독일인으로서 마주했던 시대적 과업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세밀하게 알 수 있다. 독일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물론이고, 유럽사를 다층적으로 탐구하고 싶은 독자에게 적절한 도서라 할 수 있다.
숱한 위기가 중첩된 오늘날, 시대의 난관을 돌파한 독일의 역사를 통해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배워보자. 게르만족의 전사 ‘헤르만’의 이야기부터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오늘날 독일의 모습까지, 극과 극을 오가는 격동적인 독일사 탐사 여행을 이 책과 함께 시작해보자.
추천사 … 5
머리말 … 7
프롤로그 … 10
1장 로마를 계승한 게르만족, 로마에서 점차 분리되다
게르만족의 자유를 지켜낸 전사, 헤르만 … 24
‘도이치’의 탄생과 변화 … 29
‘유럽’을 만든 카를 대제 … 35
독일 역사의 시작점, 911년 혹은 936년 논쟁 … 45
한자동맹, 북해와 발트해 중심의 초광역 교역망 … 53
최고의 인플루언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 59
30년 전쟁과 독일 내 영방국가의 대두 … 67
2장 프로이센의 대두와 독일 민족의 형성
프리드리히 1세, 프로이센 국왕으로 즉위하다 … 76
유럽이라는 지도를 완성한 프리드리히 2세(대왕) … 82
프리드리히 대왕,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이축 시대를 열다 … 91
나폴레옹의 침략에 맞서 독일 민족이 형성되다 … 98
프로이센, 나폴레옹 전쟁에서 죽다 살아나다 … 102
빈 회의의 최대 수혜국, 프로이센 … 110
임마누엘 칸트, 영구평화론을 제시하다 … 115
헤겔, 절대국가 프로이센을 칭송하다 … 120
괴테의 82살 생애로 보는 독일 문화의 황금기 … 124
부록1 서양의 손자,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 131
3장 경제통합에서 정치통합으로, 뒤늦은 통일과 독일 제국의 발전
관세 동맹, 통일의 밑거름이 되다 … 140
백설공주, 나폴레옹에 맞서다 … 147
민중들의 봄, 1848년 3월 혁명 … 153
카를 마르크스, 독일 사회주의 운동을 촉진하다 … 160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프로이센 주도로 독일을 통일하다 … 167
비스마르크가 복잡한 동맹 체제를 구축한 이유 … 177
가톨릭 세력을 오히려 강화한 문화투쟁 … 182
채찍과 당근, 1878년 사회주의자 탄압법과
최초의 복지정책 등장 … 185
‘메이든 인 저머니’가 영국을 앞서다 … 189
빌헬름 2세의 세계정책과 제국주의 열강의 충돌 … 194
무제한 잠수함 작전, 독일 패전의 원인이 되다 … 200
제1차 세계대전 책임 논쟁 … 208
부록2 제1차 세계대전, 무역이 평화를 촉진한다는 환상을 깨버리다 … 213
4장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의 제3제국,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유럽의 파괴에 몰두한 파리강화회의와 베르사유 체제 … 222
슈트레제만의 시대, 바이마르 공화국의 안정기(1923-1929) … 231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황금의 20년대,
바이마르 문화의 전성기 … 236
33% 정당 득표율로 총리가 된 히틀러 … 242
대공황, 히틀러를 총리로 만들다 … 248
아우토반 건설과 경제회복, 버터보다 대포를 좋아한 나치 … 254
베르사유 조약 폐기와 체코슬로바키아 병합까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나치의 외교정책 … 260
히틀러, 전격전과 파리 점령으로 전쟁 초반의 승기를 잡다 … 266
히틀러의 소련 침략과 대미 선전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결정하다 … 271
히틀러 없이 홀로코스트가 가능했을까? … 278
나치 시대의 미미한 저항, 백장미와 7월 음모 … 286
5장 국토 분단과 통일,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냉전의 본격 신호탄, 베를린 봉쇄에서 서방이 승리하다 … 296
1표 차이로 서독 총리가 된 콘라트 아데나워, 친서방정책을 확립하다 … 303
독일-프랑스 우호조약, 양국의 정책협의를 제도화하다 … 311
독일 정치의 문법, 연립정부 … 315
극작가 브레히트, 인민을 바꾸라 외치다
-1953년 동독 봉기 … 321
사회적 시장경제의 아버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 … 325
빌리 브란트, 동방정책과 화해의 기수 … 331
동서독 기본조약, 두 독일 간의 교류를 확대하다 … 339
뜨거웠던 1968년의 학생 시위,
여성과 반핵운동으로 이어져 … 343
노사 공동결정과 이중결정, ‘선장’ 헬무트 슈미트 … 347
‘통일의 총리’ 헬무트 콜, 신속한 흡수통일을 이루다 … 353
지속된 통일 후유증 … 364
68세대 슈뢰더 총리, ‘어젠다 2010’으로 복지국가를 개혁하다 … 368
‘위기의 총리’ 메르켈, 유럽을 위기에서 구하다 … 373
“그리스를 지원해서는 안 된다.” - 극우 독일대안당, 연방하원에 진출하다 … 381
우크라이나 침략전쟁과 독일 외교정책의 극적 전환 … 385
부록3 통일 독일의 어두운 과거 청산 - 호네커 재판과 슈타지 사찰 문서 공개 … 390
부록4 동독의 베르터, 『젊은 W의 새로운 고뇌』가 베스트셀러가 되다 … 394
참고문헌 … 398
사진 및 지도 자료 출처 … 402
P. 14
유럽 각국이 지리적으로 인접하기에 서로의 역사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럽의 역사’라는 천
이 짜졌다. 특히 19세기 제국주의 정책으로 유럽은 세계 각국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유럽인들은 이때 유럽사가 세계사의 주역이 됐다고 간주하는데, 그 역사적 흐름 속에서 유럽과 독일이 한층 더 강력하게 연결된다.
… 〈프롤로그〉
P. 34
영국의 메리 풀브룩 교수가 강조했듯이 ‘도이칠란트(Deutschland)’라는 이름은 부족 혹은 일정한 영토가 아니라 언어에서 유래됐다. 이는 유럽 역사에서 독특한 경우다. 11세기 들어서야 ‘독일(도이치)의 땅(Terra Teutonica)’과 ‘독일(도이치) 왕국(Regnum Teutonicum)’이라는 표현이 사용됐지만 ‘하나의 독일 국가’라는 개념은 오랜 세월 불투명했다. 14세기 중반까지 ‘독일의 나라들’이라는 복수형이 독일어를 쓰는 하나의 나라 ‘도이칠란트’라는 단수형보다 훨씬 빈번하게 사용됐다.
… 〈1장 로마를 계승한 게르만족, 로마에서 점차 분리되다〉
P. 47
유럽 역사에서 독일의 역할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당연히 ‘유럽의 아버지’로 간주되는 카를 대제가 독일 역사의 시초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독일(도이치)’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프랑켄의 콘라트가 왕으로 추대된 911년이나, 오토 대제가 즉위한 936년을 독일사의 진정한 시작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일’의 정체성 자체가 매우 논쟁적인 개념이다. 하겐 슐체 교수가 지적하듯이 고대 로마 이래 라인강 동쪽 지역에 거주하던 귀족들은 스스로를 프랑크 왕국의 구성원으로 이해했다. 동프랑크의 지배층은 자신들의 뿌리를 카롤링거 왕가의 전통 혹은 더 소급해서 로마에서 찾았다. 그들에게 ‘독일’이라는 명칭이나 개념은 아예 없었다. 마찬가지로 오토 1세 때의 제국도 ‘모든 프랑크족과 작센족의 제국’으로 이해됐다. 자국의 역사가 프랑크족에서 시작됐으며 이후 작센족이 추가됐다는 의미다.
… 〈1장 로마를 계승한 게르만족, 로마에서 점차 분리되다〉
P. 70
베스트팔렌 조약은 신성로마제국 안에 있던 300개가 넘는 영방국가의 제후들에게 영토에 대한 주권과 외교권, 조약 체결권을 주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제국의 기관들에 계속 충성해야 한다는 의무가 부과됐지만 형식상의 규정이었다. 여기에서 주권은 공작이나 백작과 같은 제후들이 황제나 교황으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다. 종교 문제는 물론이고 국가(제후국) 운영에 관한 권한도 제후들이 보유하게 됐다. 근대국가의 특징인 주권과 조약 체결권이 명시됐다. 이 때문에 베스트팔렌 조약은 근대 국제체제의 출발점이라고 불린다.
… 〈1장 로마를 계승한 게르만족, 로마에서 점차 분리되다〉
P. 95
『유럽사 이야기』를 쓴 영국의 소설가 D.H. 로렌스는 프리드리히 대왕을 ‘유럽이라는 지도를 완성한 사람 중의 하나’로 규정했다. 프랑스와 영국, 오스트리아 등 당시 유럽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프로이센의 영토를 크게 확대하고 오스트리아와 당당히 겨룰 수 있는 국가로 만든 게 프리드리히 대왕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장수 교수는 대왕의 업적을, ‘프로이센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이축(二軸) 시대를 구축한 것’이라 평가했다. 기존에는 오스트리아라는 하나의 축만 있었다면 프리드리히 대왕 집권 이후 프로이센이 또 하나의 축으로 부상한 것이다.
… 〈2장 프로이센의 대두와 독일 민족의 형성〉
P. 142
역사가들은 대체로 관세 동맹이 프로이센의 리더십 아래 독일의 정치적 통일을 위한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한다. 반면에 경제사가 한스—요아힘 포트(Hans-Joachim Voth)의 의견에 따르면, 관세 동맹에 가입한 작은 영방국가들은 관세 인하에 따른 교역촉진으로 얻은 이익을 자국의 독립을 강화하는 데 썼다고 봤다. 이들은 대국 프로이센이 주도한 관세 동맹에 가입할 수 밖에 없었지만 프로이센 주도의 통일에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 〈3장 경제통합에서 정치통찹으로, 뒤늦은 통일과 독일 제국의 발전〉
P. 151
그림 형제는 독일이 나폴레옹의 압제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동화를 수집해 출간했다. 또한 독일어 문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독어독문학이라는 학문 분과를 세우는 데에 기여했다. 이런 작업 모두 독일 민족주의와 독일인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대영박물관의 관장 닐 맥그리거가 평가했듯이 백설공주가 나폴레옹에 맞서 싸운 셈이다.
… 〈3장 경제통합에서 정치통찹으로, 뒤늦은 통일과 독일 제국의 발전〉
P. 178
비스마르크는 독일이 통일에 만족하며 팽창주의적인 대외정책을 실행하지 않음을 다른 강대국에 지속적으로 알려서 그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따라서 1890년 총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철혈재상은 현상 유지 그리고 프랑스의 고립화를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실행했다. 프랑스의 동맹 체결을 저지하고 독일이 중심이 되는 복잡한 동맹 체제를 구성했는데, 이게 ‘비스마르크 체제’다.
… 〈3장 경제통합에서 정치통찹으로, 뒤늦은 통일과 독일 제국의 발전〉
P. 229~230
케인스는 이런 ‘강요된 평화’가 유럽의 경제를 파괴해 독일의 보복을 불러올 것이라 경고했다. 그는 이 책에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 유럽경제가 독일을 핵심축으로 돌아갔음을 통계자료로 쉽게 설명했다. 과거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와 같은 상당수 유럽 국가에 제일 중요한 수출 시장은 독일이었다. 그런데 프랑스의 요구대로 독일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면 경제가 파괴된다. 이것이 케인스의 명쾌한 설명이다. 전후 유럽을 다시 살리려는 회담이 되어야 하는데, 이 회담은 독일을 파괴했다. 결국에는 유럽을 파괴할 회담이라고 케인스는 맹공을 퍼부었다.
… 〈4장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의 제3제국,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P. 264
체임벌린 총리는 독재자에게 끌려다녀 히틀러의 야욕을 더 키웠기 때문에, 유화정책을 실시한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집중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지 20년이 채 되지 않았고 대공황도 겨우 극복해 나가는 마당에 또 다른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영국에서 우세했다.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 너무 가혹했고 이에 영국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인식도 있었다. 영국에서 재무장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 〈4장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의 제3제국,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P. 329
에르하르트는 흔히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의 아버지’라 불린다. 독일의 경제체제를 지칭하는 말이다. 자유시장경제를 보장하면서도 독점과 가격 담합 등 경쟁을 해치는 행위를 국가가 강력하게 규제한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체제를 촘촘하게 갖춘다. 예를 들면 노동자 해고 요건이 아주 엄격하고, 실직한 근로자에게 일정 기간 실업급여를 보장한다. 보통 신자유주의가 시장의 기능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최소한의 복지 체제를 갖춘 것과는 대비된다. 현재도 독일 연방 경제부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는 자유적이고 열린 민주사회의 토대이다.”라고 명시하며 에르하르트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계승했음을 알린다.
… 〈5장 국토 분단과 통일,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P. 333
1949년 첫 총선부터 연달아 기민당에 패배한 사민당은 변화를 시도했다. 그 첫 결실이 고데스베르크(Godesberg) 강령이다. 이 문서에서사민당은 더 이상 계급주의 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임을 대내외에 알렸고, 시장경제를 지지하며 개혁하겠다고 선언했다. 고데스베르크 강령은 1959년 11월 서독 수도 본 인근에서 열린 사민당 전당대회에서 채택됐다. 지도부도 대폭 물갈이되어 쇄신한 정당에 걸맞게, ‘노인네’ 아데나워와 견줘 아주 대조적인 참신한 인물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빌리 브란트였다. 그는 1961년 가을 총선에서 당시 47살에 총리 도전장을 냈다. 아데나워보다 38살 젊어서 아들뻘이었다. 사민당은 선거전략도 새로이 짰다. 그들은 미국의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선거전을 모방해 브란트를 ‘독일의 존 F. 케네디’라 묘사했다. 그가 가족과 함께 다정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 전국을 유세하며 시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 〈5장 국토 분단과 통일,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P. 366
통일 후 ‘오시스Ossis와 베시스Wessis’라는 속어가 만들어졌다. 서독지역 주민들은 동독 지역 동포를 ‘오시스’ 또는 ‘초니스Zonis’ 라고 부른다. 시골뜨기라는 경멸의 의미를 지닌 이 속어의 이면에는, 서독인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얻은 경제적 성과를 게으른 동독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정책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다. 반면 동독 지역 주민들은 서독 지역 시민들을 ‘베시스’라고 부르는데, 졸부라는 의미다. 또 동독 지역은 베를린을 중심으로 독일 문화가 발전한 곳이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서독 지역은 돈만 알지 이기적이고 문화적 정통성이 없다는 비아냥이 섞여 있다.
… 〈5장 국토 분단과 통일,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지도와 그림, 연표와 사진으로 읽는 역사의 향연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의 뒤를 이은,
국제관계 전문가 안병억의 두 번째 유럽사 이야기
야만의 게르만족에서 유럽의 심장이 될 때까지
전진하는 강철의 문명, 독일의 격동적인 변천사
“철학자 칸트와 대문호 괴테의 나라가 어떻게 히틀러 같은 괴물을 낳았을까?”
1981년부터 14년간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그는 ‘독일’이란 나라를 두고, 위의 질문처럼 말한 적이 있었다. 그의 이런 발언은 독일 역사의 핵심을 관통한다. 그만큼 독일 역사는 극과 극을 오갈 만큼 격동적이다. 야만과 문명, 분열과 타협, 반동과 개혁, 분단과 통일까지, 독일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상반된 개념들이 튀어 올라와 독일이란 나라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무척 궁금하게 한다.
고대 로마의 변두리,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된 역사, 숱한 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지리적 조건. 그런데도 독일은 기어이 유럽의 심장이 되어 21세기 오늘날 유럽을 지휘한다. 세계 GDP 3위의 경제 최강국이자 유럽연합의 지휘자 ‘독일’의 성공 요인은 대체 무엇일까?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는 게르만족부터 올라프 숄츠 총리의 집권기까지를 아우르며 독일 역사 전체를 단숨에 가로지른다. 독일과 주위 세계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공시적으로 접근하며,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 형식으로 쉽게 풀어낸 최적의 개론서다.
‘누구든지 읽을 수 있는 독일 역사책’을 표방한 만큼 풍부한 시각 자료를 덧붙였다. 7개의 그림, 11개의 지도, 22개의 연표, 35개의 사진 자료는 독일이란 나라가 생소한 독자들조차도 충분히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또한 독일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인물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당시 독일인으로서 마주했던 시대적 과업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세밀하게 알 수 있다. 독일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물론이고, 유럽사를 다층적으로 탐구하고 싶은 독자에게 적절한 도서라 할 수 있다.
숱한 위기가 중첩된 오늘날, 시대의 난관을 돌파한 독일의 역사를 통해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배워보자. 게르만족의 전사 ‘헤르만’의 이야기부터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오늘날 독일의 모습까지, 극과 극을 오가는 격동적인 독일사 탐사 여행을 이 책과 함께 시작해보자.
풍부한 시각 자료, 흥미진진한 서술, 입체적인 관점
종횡무진 질주하는 ‘한국인을 위한 독일사’
난민, 전쟁, 불황, 그리고 역사.
현재 전 세계의 모든 이슈는 독일로 이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메르켈 총리 집권 시기부터 독일은 100만 명에 가까운 난민을 수용했다. 스스로 문제 해결에 앞장선 덕분에 국제사회에서 난민 문제에 관한 발언권이 강하고, 숱한 강대국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의 행보도 시종일관 주목을 받았다. 예로부터 ‘접촉을 통한 변화’를 추구한 독일 정부가 러시아산 수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수립한 ‘동방정책’과 그것의 이념인 ‘접촉을 통한 변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진 독일의 주요한 외교 기조였다. 그러나 사민당 출신 올라프 숄츠 총리는 독일이 과거 저지른 전쟁범죄를 기억하며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한다는 이유로, 독일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한편 1월 중순부터 거의 한 달간 독일 전역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AfD, 독일대안당)’을 규탄하는 시위에 수십만 명이 참가했다. AfD는 2010년 그리스 구제금융 사건을 계기로 창당된 극우 정당으로 최근에는 반이슬람, 반이민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독일에서 세력을 불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극우 정당이 발흥하는 건 사실이지만 독일에서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은 대내적으로는 나치 청산과 독일 재건을 내걸고, 대외적으로는 유럽통합과 이를 통한 국제무대의 복귀를 추진했다. 즉 독일인에게 과거사 반성이란 도덕적 정당성을 회복하는 과정이자 동시에 유럽연합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독일의 역사란 세계의 역사와 긴밀하게 조응했고, 이러한 특징은 단순히 현대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는 게르만족 전사 ‘헤르만’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독일을 이끄는 총리 ‘올라프 숄츠’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이를 통해 독일 역사의 격동적인 변천사를 따라가고, 나아가 한국인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독일의 숨겨진 면모를 부각한다. 이에 따라 유럽사 속의 독일사, 독일사가 품은 유럽의 이야기를 그려내고자 한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유럽과 세계의 관점에서 독일사를 서술했다. 유럽은 각국이 지리적으로 인접하기에 서로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중에서도 독일은 유럽 대륙 한복판에 놓여 있다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유럽사 전체에 걸쳐 역사적 변천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고, 본인이 외부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독일을 넘어 기독교 세계 전체를 뒤흔들었고,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이 19세기 열강들의 세력 균형을 뒤흔들었으며, 나치의 제3제국이 또 한 번의 대전쟁을 불러일으켰듯이 말이다. 따라서 독일 역사는 그 자체로 유럽사의 그림자 혹은 거울이라 부를 수 있고, 저자는 본문 전체에 걸쳐서 독일과 외부의 상호작용을 특별히 강조한다.
둘째, 독일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풀이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 역사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문명과 긴밀히 연결됐다. 또한 독일 지역 내부에서의 갈등이나 교류도 적잖은 편이다. 따라서 단일한 시각, 단편적인 이야기로는 독일사를 풍부하게 표현할 수 없다. 저자는 단순한 ‘이야기 나열하기’를 피하고자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연표를 활용해 비슷한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비교할 수 있도록 하거나 관련된 학설이나 연구자들의 이론을 인용하며 같은 사건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필요한 순간마다 극적인 문체를 사용해 독자가 머릿속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독자들에게 깊게 고민하고 생각할 주제를 끊임없이 제시한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접했던 학계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를 본문에 인용하면서 독자들에게 논쟁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논쟁을 감추어 독자에게 매끄러운 지식만을 전달하려는 기존의 역사책들과는 달리 저자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각자의 생각과 판단을 갖추기를 원하듯이 계속해서 질문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 베르사유 강화 조약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가 어떻게 미흡했는지, 68운동의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 등 저자는 독자들과 마치 소통하듯이 질문을 던진다. 따라서 이 책은 독일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독자는 물론이고, 독일사 혹은 유럽사를 다른 이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독일 역사를 유심히 살피면, 독일 국민 혹은 민족이 공동체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가 특히 인상적으로 보인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지역별, 방언별로 분리되었기에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공동의 문제를 해결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압도적인 무력이나 권위가 동원되기도 하였으나 최종에는 타협과 조율의 작업이 수반되었다. 그 과정에서 ‘독일’이라는 나라가 태어나도록 합의된 것이고, 이러한 합의 문화의 전통은 오늘날 독일 정치의 기본 문법으로까지 발전했다. 따라서 분단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독일의 역사는 타협, 합의, 상호 인정의 가치를 일깨워 줄 것이다. 오랜 세월 독자성을 유지하는 지역별 풍토, 종교가 달라도 서로를 인정하는 관용, 강력한 힘으로 독일 통일을 관철시킨 비스마르크조차 경쟁자들과의 타협을 고려했을 만큼 오랜 세월 누적된 합의와 숙의 문화 등은 앞으로 더더욱 세분화되고 다양한 난제를 직면할 한국인에게 좋은 참고사례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