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바다, 조선 수군의 탄생 (추가)
이순신의 바다, 조선 수군의 탄생 - 난중일기에 기록된 남해의 섬과 바닷길 순례기
정가 : 24,000원
정보 : 328쪽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유성룡의 징비록, 조선왕조실록 등을 참고해 임진란(1592년) 당시 수군의 활약상과 칠천량 해전에서 붕괴된 조선 수군의 재건과정을 묘사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역사 기행문으로 작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황에 따라 조선 수군 사령부가 옮겨 다닌 남해안 일대 및 일부 서해안의 바다와 섬을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그 시절의 흔적과 이순신, 조선 수군이 강건하게 키워온 불멸의 정신을 담고 있는 각종 대표적인 유적지도 소개했다. 또 임진란 전황은 사료에 기초해 3인칭 관찰자 시점인 르포 형태로 서술했으며, 사료에서 확인될 수 없는 불필요한 가정이나 상상은 최대한 배제하고 당시 전투를 객관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머리말
1. 조선 수군진과 전라좌수영의 5관 5포, 그리고 5포의 순찰 경로
2. 손죽도 - 조선 수군의 선봉, 녹도군 군기(軍紀)의 발원지
3. 거제도 옥포 - 영원한 첫 승리, 옥포에서 건진 네 살 바기 소녀
4. 돌산도와 득량도 - 거북선의 모항(母港), 피란민의 젖줄 둔전리
5. 영도 - 일본의 그림자를 끊어버린 잡초같은 섬
6. 거제도의 왜성과 견내량의 해간도 - 조선과 일본 수군의 공동경비구역
7. 떠다니는 수군 사령부(1) - 진주 남강의 장례식과 새로운 통제영을 향한 항해길
8. 한산도 - 남해의 화점(花點), 왜 수군을 우하귀에 틀어 막다.
(1) 한산대첩의 목격자
(2) 한산도 통제영 - 남해의 화점
(3) 한산 일주로를 따라가는 5년 주둔의 흔적들
(4) 운주당과 제승당, 그리고 한산 수루와 우물, 활터 등에 얽힌 사연들
(5) 한산 포구, 죄인 이순신 조각배에 실려 한산도를 떠나다.
9. 사량도 - 조선 수군의 초계지(哨戒地), 이순신의 고뇌가 서린 섬
10. 칠천도 - 조선 수군의 붕괴와 전란 속에 신음하던 백성 ‘도치’ 이야기
11. 진도 - 삶과 죽음, 바다와 하늘이 한 빛인데
12. 떠다니는 수군 사령부(2) - 기적같은 승리, 수군 회생의 불씨를 품은 항해길
13. 고하도 - 목포의 눈물
14. 고금도 - 진정한 조명연합수군 결성의 진원지
15. 거금도 - 제2 한산해전으로 조선 수군의 부활을 알리다.
16. 묘도와 장도 - 왜군의 숨통을 끊기 위한 막바지 전투
17. 남해 - 큰 별이 바다에 떨어져 조선 바다를 영원히 지키다
▶ 임진란 격전지와 난중일기에 기록된 ‘바다와 섬’을 찾아서
『난중일기 - 종군기자의 시각으로 쓴 이순신의 7년 전쟁』
『징비록 - 종군기자의 시각으로 회고한 유성룡의 7년 전쟁』에 이은 역사기행서
통제사는 7년 전란 내내 남해의 섬을 훑고 다녔다. 그가 전란 내내 보여준 부단한 노력과 준비과정을 보면 “아, 이런 지도자도 있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그가 애초부터 군신(軍神)이었다면 모든 승리는 의미가 없다. 인간 이순신이었기에 그 승리와 노력이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노력을 압축해 결국 서애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통제사를 군신이라고 일컫는다. 통제사의 자취가 서린 남도의 섬과 바다는 곧 군신의 섬과 바다이기도 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유적은 훼손되고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지만, 산과 바다, 지리와 지형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통제사가 시름에 젖어 봄비를 맞으며 서있었던 한산 수루 앞바다는 지금과 그때가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도 아름다운 남해 관음포의 일몰은 통제사가 전사한 노량해전의 마지막 승전보 앞에서 통곡하는 조선 수군 진영을 처연하게 물들였을 것이다.
유적을 따라가는 여행은, 그 상상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더하면서 보다 쉽게 역사에 접근하는 매력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역사 기행문을 통해 통제사의 삶, 조선 수군의 삶, 나아가 전란의 아픔을 한번 돌이켜보려고 시도했다.
◈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때, 이곳’을 답사기 속에 담아 임진란 당시 상황을
르포 형태로 조명하면서, 흘러간 세월 속에 남은 그날의 흔적을 조명한 역사 기행서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유성룡의 징비록, 조선왕조실록 등을 참고해 임진란(1592년) 당시 수군의 활약상과 칠천량 해전에서 붕괴된 조선 수군의 재건과정을 묘사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역사 기행문으로 작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황에 따라 조선 수군 사령부가 옮겨 다닌 남해안 일대 및 일부 서해안의 바다와 섬을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그 시절의 흔적과 이순신, 조선 수군이 강건하게 키워온 불멸의 정신을 담고 있는 각종 대표적인 유적지도 소개했다. 또 임진란 전황은 사료에 기초해 3인칭 관찰자 시점인 르포 형태로 서술했으며, 사료에서 확인될 수 없는 불필요한 가정이나 상상은 최대한 배제하고 당시 전투를 객관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 임진란 극복의 주역 전라좌수군을 중심으로 당시 조선 수군의 편제 소개
임진란 당시 조선의 다섯 수영 중 수군 전투의 핵심 전력이었던 전라좌수영을 중심으로 수군 편제를 소개했다. 임진년 2월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좌수영 관할 지역인 5포의 순찰에 나섰는데, 5포의 순찰경로를 따라가면서 여전히 남아 있는 그때 흔적과 유적을 책 머리에 소개했다.
- 손죽도에서 노량해전의 격전지 관음포까지
임진란 5년 전에 터진 손죽도 왜변(1587년)은 조선 수군이 형질을 변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21세의 젊은 나이인 녹도만호 이대원이 전사했지만, 그는 군인의 기상을 한치도 어그러트리지 않았다. 이후 조선 수군, 특히 전라좌수군은 대대적인 왜침에 대비, 판옥선에 함포를 탑재하는 새로운 해상전투방식을 준비한다. 임진란이 발발한 뒤, 부산포 해전에서 역시 녹도 만호 정운이 전사하자 이순신은 전란 이후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정운을 이대원과 한 사당에 배향토록 한다. 조선 수군의 선봉, 녹도군은 좌절과 극복을 거듭하면서 강군으로 단련되었고, 그 기상의 출발지는 손죽도로 볼 수 있다. 이순신이 전사한 무술년(1598년)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의 격전지, 남해의 관음포에서 이순신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기행문은 매듭된다.
- 통제사의 땀과 눈물이 얼룩진 한산도와 조선 수군이 뿌리째 흔들린 칠천도를 찾아
햇수로 5년 동안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영을 이끌고 주둔한 한산도는 섬 전체가 이순신의 정신이 곳곳에 녹아 있는 유형·무형의 유적지이다. 따라서 수군사령부가 있었던 제승당은 물론이고 의항마을 등 한산일주로를 따라 한산도 곳곳의 마을을 찾아 통제영의 당시 흔적을 담았다. 이 기간 통제사는 왜 수군을 부산포에 밀어 넣고, 육군과 연합해서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전력을 비축했으나 원균이 칠천량에서 패전, 이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다크투어리즘’의 장소인 칠천도에서는 전란 속에 살아가는 당시 백성들의 아픔을 전달하기 위해 주력했다.
- 명량 이후 통제사의 눈물 어린 항해길과 조선 수군의 재건 과정을 조명
이순신이 ‘기적 같은 승리’라고 토로한 명량해전을 통해 회생을 알린 조선 수군은 이후 새로운 기지 탐색을 위한 오랜 항해 길에 나선다. 당사도를 비롯해 위도와 고군산군도, 안좌도 등 서해안 일대에서 몸을 추스린 조선 수군은 고하도에 사령부를 구축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 기간 통제사는 셋째 아들 면이 전사하는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 무너진 수군을 되살려야만 했다. 또 정유년에는 사랑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했다. 전란이 다시 시작된 정유년은 조선 백성에게도 이순신에게도 잔혹한 시간이었으며, 그럼에도 군무에 몰입해야 했던 이순신의 눈물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 조명연합사령부가 구축된 고금도와 조선 수군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거금도
이후 조선 수군은 진린이 이끄는 명나라 수군과 고금도에서 연합군을 구축한 뒤, 제2 한산해전으로 불리는 거금도에서 조선 수군의 부활을 알린다. 또 묘도와 장도를 중심으로 왜 수군의 숨통을 끊기 위한 막바지 전투에 돌입한다. 이어 남해 관음포에서 도주하는 시마즈 군대를 요격하기 위한 마지막 출정에 나서, 관음포에서 통제사가 전사한다. 치열하고 긴박했던 임진란의 막바지 수군전을 당시 유적을 되돌아보면서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