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료원 한국장편애니(1967~96) 전시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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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총 매수 125,300장, 그림의 가로 길이 합 3,759,000m, 남산 높이의 150배. 제작비 5,400만 원, 실사영화 10편 제작 가능한 제작비로 한국영화 사상 최고액.이 숫자는 1967년 개봉된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신동헌)의 홍보 문구이다. 약간의 과장은 있을 수 있지만, 당시 열악했던 한국영화 산업을 고려해 본다면 상당한 인력과 자본이 투입된 것은 사실이다. 그 결과, <홍길동>은 개봉 이틀 만에 45,982명, 6일 만에 12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그 해 한국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한다.<홍길동>의 흥행은 단순히 숫자적 성공에 그친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산업 자체가 전무했던 당시에 우리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로 담아내는 것은 물론 한국 애니메이션 스타일과 기준을 만들며 애니메이션 산업의 태동기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홍길동>의 키애니메이터로 참여했던 유성웅, 정욱, 김대중은 각각 신원동화, 대원동화, 세영동화를 설립하여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원동력이 되었고, 상업적 가치가 있음을 확인한 극장가에서는 한해 2~3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다.1976년 <로보트 태권 V>(김청기)가 서울에서만 13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는 등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이 방학 시즌을 겨냥한 어린이 문화로 정착하게 되면서 1967년부터 1990년대까지 개봉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은 100편이 넘는다. 한 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한 편도 만나기 어려운 지금에 비추면 당시 관객, 특히 그 시절 유년기를 보냈던 관객에서 극장에서 보았던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은 큰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셀 위를 달려라, 길동!’은 1967년 <홍길동>부터 1996년 <아기 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김수정, 임경원)까지 지난 30년 간 우리가 사랑했던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을 소개한다. 더불어, 당시 제작 기법인 셀 애니메이션의 원리도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털 한 올 한 올이 마치 살아있는 듯한 3D 애니메이션이 평범해진 지금이라 평면적이고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셀 애니메이션이 투박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장면의 시작이 되는 원화부터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원화 사이사이 그려 넣는 동화, 그리고 이 그림을 투명한 셀로 옮기는 작업과 피사체의 윤곽을 따라 그리는 선화, 색의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셀 위에 색을 칠하는 채화까지 이 모든 과정이 애니메이터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바로 셀 애니메이션이다.장편 애니메이션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십 명의 애니메이터가 수개월 혹은 수년을 매달려 수십만 장의 셀 위에 그림을 그린다. 따라서 셀 애니메이션의 장면과 캐릭터는 애니메이터의 터치 하나하나에 고유한 질감과 감성이 묻어 있다.홍길동, 차돌바위, 손오공, 황금철인, 로보트 태권 V, 마루치 아라치, 원더공주, 똘이장군, 독고탁, 둘리. 누군가에게는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낯설지만 새로운,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다. ‘셀 위를 달려라, 길동!’을 통해 어린 시절 깔깔거리며 웃게 했던 그리운 친구와 재회하거나 혹은 매력 넘치는 새 친구를 한번 사귀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