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음악 속의 유머
참, 웃을 일 없다고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음악 속에 유머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거 참 웃긴다” 할지도 모르겠다. 흔히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심오하고, 어렵고, 따분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음악 속에는 웃음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예술에는 희로애락이 존재한다.
어릴 적 나는 만화영화 ‘톰과 제리’를 좋아했다. 고양이 톰에게 쫓기는 제리를 보면 마치 내가 쫓기는 듯 손에 땀이 쥐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제리가 번뜩이는 재치로 톰을 골탕 먹이는 모습은 늘 통쾌했다.
그런데 이 웃음의 코드 속에 클래식이 녹아 있다. 고양이인 톰이 피아노 연주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제리. 결국 싸우다가 쫓고 쫓기는 장면에서 리스트의 ‘광시곡’이 흐른다. 우리 형제가 이 장면을 보며 배꼽을 잡고 있을 때면 아버지는 “미국 사람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정말 대단하다”며 함께 웃으시곤 했다.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2번, 그 속에는 녹아 있는 유머를 그들은 정확히 찾아내 우리에게 선사했던 것이다.
‘세 명의 테너’로 유명한 세계적인 테너 가수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전 세계를 누빈 그들의 공연에는 매번 폭소가 터지곤 했다. 앙코르 곡으로 많이 등장하는 ‘오 솔레미오’의 클라이맥스 부분의 고음에서 파바로티가 먼저 길게 트릴을 하며 기량을 뽐내면, 이에 질세라 욕심과 익살 섞인 표정으로 도밍고와 카레라스는 더 길게, 더 크게, 고음을 지르며 관중들을 사로잡는다. 그들의 노래가 우리에게 행복한 웃음을 선사한다.
하이든은 클래식 음악이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당시 음악적 해학을 통해 웃음을 선사했다. 귀족들을 위해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했던 하이든, 하지만 그는 음악을 듣기 위해 멋지게 차려입은 귀족 마님들이 연주 도중 종종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하이든은 그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특유의 ‘장난기’를 발휘해 곡을 만들었는데, 바로 ‘놀람’ 교향곡이다. 교향곡 94번 사장조 작품인 이 곡은 힘찬 1악장이 끝나고 조용하고 느린 2악장에 들어서는데, 졸고 있는 그들이 더욱 편안한 잠에 빠져 들 수 있는 음악이 흐르다가 잔잔한 현들의 스타카토에서 시작된 악장이 갑자기 돌변해 일순간 폭발한다. 팀파니와 전 오케스트라의 깜짝 놀랄 만한 포르티시모(ff) 코드가 바로 그것이다.
이 곡이 초연되던 날 꾸벅꾸벅 졸다 천둥번개를 만난 듯 번쩍 깨었을 귀족 마님들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이 곡은 멋진 조크다. 하지만 그 후에 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은 귀족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고, 귀족 마님들도 잠에서 깨어 입가의 침을 훔쳐내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요즈음 세계인의 귀와 눈을 행복하게 해주는 바이얼리니스트 겸 지휘자인 안드레 류, 20~30년 전에 우리가 배꼽 잡고 웃으며 지켜보았던 천재적인 코미디언 겸 피아니스트 빅터 보르게, 그리고 매년 행해지고 있는 비엔나 필하모니의 신년 콘서트는 음악이 지니고 있는 유머와 재치를 한없이 즐기게 한다. 연주하는 이들과 듣는 이들 사이에 행복한 교감을 만들고, 나아가 세상 모든 걱정까지도 잠시 잊게 만드는 음악적 유머인 것이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그리고 나의 음악으로 인해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번지고, 그 웃음으로 한동안 즐거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나는 웃음을 전하는 음악인이고 싶다. 나의 선배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처럼.
엔드루 박 /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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