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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뭘 위해서 게임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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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게임을 어설프게 잘 하는 아이였습니다.

사실 다른 것들도 모두 어설프게 잘 하는 아이였지만

이것까지 얘기하면 너무 글이 길어질테니 건너뛰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늘 "강민이 할루시네이션 리콜을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사용했다" 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언컨대 사실입니다.

터렛밭에 얘네를 몸빵으로 세우고 들어가서 리콜을 땡기면 테란은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라고 초딩 시절의 저는 생각했습니다.

예상대로 친구는 저의 지략에 속아 혼돈에 빠졌고, 분했는지 건물을 띄워 엘리미네이션을 당하기까지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문제는 이 게임이 서울 모처 아x아PC방 IPX 서버에서 펼쳐진 경기였단 점이었지만요.

즐쿰강민이 이 게임에 영감을 받았을 리는 없겠지요.


하지만 아무튼 제가 먼저함.


각설하고.


그래도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게임을 못하진 않는 편이었습니다. 스타도 열 명 세워 놓으면 이삼등은 했고, 포트리스는 동달 은달 왔다갔다했고, 각종 국산 RTS 게임들도 봉준구 전지윤급 선수들이랑 가끔 게임 잡혔고, 씨가 축구도 콜롬비아 쓰루패스 기가막히게 써서 가끔 형들한테 쳐맞곤 했죠. 이상하게 격겜은 잘 못했는데 그게 한이 돼서인지 늙은이가 된 지금에서야 타워와 라운지에서 디지게 두드려 맞고 있습니다. 카이 너프좀.



근데 세월이 지나니, 저는 거짓말처럼 똥손이 됐습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입니다. 최근 최고 난이도로 클리어 한 게임은 위쳐 3밖에 없습니다. 프롬 게임중에 끝장을 본 게임은 엘든 링과 블러드본, 다크소울 3 뿐입니다. 세키로를 하다가 너무 억울해서(못 해서) 울 뻔했습니다. 격겜은 어렸을 때보다 실력이 더 끔찍해졌습니다. 초풍 10번을 쓰면 2번 나갑니다. 각필을 쓰면 커잡이 나갑니다. 롤은 플레티넘을 찍다가 어느새 8시즌 연속 브론즈입니다. 니케는 이를 악물고 해야 겨우 솔레 10% 안에 듭니다. 과금 효율이 개떡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둠 리메이크(2016)판 보통 난이도를 못 깨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둠 리메이크판이 나온지 벌써 10년이 다 됐더군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nn년차 게이머인데 이지 난이도를 고를 순 없죠. Hurt Me Plenty(이지 다음 난이도)로 시작했습니다.


둠가이가 자꾸 눕습니다. 제가 밈으로 접하던 둠가이는 이런 캐릭터가 아녔습니다.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찢어 발기는 신화적 존재였죠. 신나는 메탈 음악과 함께 몸을 흔들어 제끼며 악마 놈들을 응징하고 있자니


둠가이가 자꾸 눕습니다.


사실 속상했습니다. 별 거 아니지만 좀 그랬습니다. 별 거 아닌 건 아니죠. 아무리 그래도 게임 캐릭터지 않습니까. 제가 풀이 죽을 이유는 없는데, 그래도 풀이 죽었습니다.


요새 저의 신조는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입니다.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애쓰며 "왜 안되지?" 해봐야 힘 빠지는 건 저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런데도 자꾸 둠가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고 싶었습니다. 옛날에 그래도 한 끗발 날렸었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그래도 남자가 노말은 깨야지 같은 수컷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내 마음속에서 뻐근하게 아려오는 뭔가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진 모르겠다만 아무튼 둠가이는 계속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둠가이는 계속 쓰러지고, 맵 보는 것도 x나 불편해서 짜증이 났고, 그러다가 또 쓰러졌습니다.



"난 뭘 위해서 게임을 하지?"



LOL을 켜는 빈도수가 적어진 이유를, 모바일 게임을 시작한 이유를 떠올렸습니다. 나는 나이를 먹었고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며 (많은 부분에서)이전만큼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야근은 솔직히 매일 하는 거니까 그거 감안해서 집에 들어오면 9시, 간단히 정리하고 1시에 잔다 치면 제게 주어진 최대 게임 시간은 2시간 반 남짓입니다. 그 시간 내에 일퀘도 해야 하죠. 진짜로 죽으면 안 되니까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정도는 생존 운동도 해 줘야 하고요.


최근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하나 봤습니다. 연습 내용에 대해 생각을 하며 찬찬히 연습해 보는 것이 빠딱빠딱 반복만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실력 향상을 시켜 준다고요. 제겐 그럴 시간이 없더라고요. 하루에 2시간 반은 긴 시간도 아니니 무슨 게임 끝날 때마다 리플레이를 보며 피드백 하긴 커녕 화내면서 컨티뉴 아니면 다시 큐돌리기 바쁘겠죠. 그리고 게임만 하겠습니까. 영화나 애니를 보고 싶을 때도 있을 테고 엄한 영상을 보고 싶을 때도 있을 테고 그냥 누워 디비 자고 싶을 때도 있을 테죠. 늙으면 피지컬이 안 된다 뭐 그런거 다 일단 뒤로 미뤄놓고 이번주 로또와 연금복권이 동시에 되는 게 아니면 게임 실력 늘리는게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됩니다.


둠의 난이도를 가장 이지한 난이도, I"m Too Young to Die로 변경했습니다.


영어 문장도 하필이면 거지같습니다. 아주 제 상황을 약올리려고 만든 것 같고... 어떤 게임도 가장 쉬운 난이도로 진행해 본 적이 없는 저에게 이번 사건(?)은 제 삶에 있어서 꽤 많은 걸 의미합니다.


억울하게도, 이지 모드의 둠은 생각보다 엄청 재밌습니다. 그야말로 Rip & Tear가 가능합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지 모드로 게임을 하는구나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누구도 저에게 노멀, 하드 모드로 게임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 시지프스가 되기를 선택한 거죠. 그런데 세상엔, 적어도 지금 저의 세상엔 게임 말고도 받아내야 할 바윗덩이가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난 뭘 위해서 게임을 하지?"



역시 즐거움을 위해서, 그리고 게임을 사랑해서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을 찬찬히 알아가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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