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넘치던 25년 전 승부
2000년의 일이다. 미루고 미루던 영장이 언제 나올지 몰라 늘 두근대며 살던 나이였다. 당시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건 스타크래프트. 인터넷이라고는 대학교 컴퓨터실에서나 제한적으로 맛볼 수 있던 작은 변두리 국가에서 살다가, 골목마다 PC방이 있는 한국에 이제 막 도착했던 터였다. 컴퓨터만 패는 것에 시들해졌다가 사람 대 사람이 붙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떠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낭만의 때였다. 정형화 된 빌드오더나 유닛 컨트롤 개념이 상식처럼 굳어지지 않았었다. 모두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자려고 누우면 낮에 했던 게임이 떠오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 빌드를 짜고, 짠 빌드를 집에서 컴퓨터 상대로 실험해봤다. 그래서 손에 익으면 PC방으로 가서 사람을 상대로 써먹었다. 그런 날들을 수없이 반복한 끝에 나는 드디어 최강의 프로토스 빌드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지금에 와서 이름을 붙이자면 초패스트 멀티 투게이트 캐리어? 공방(헌터스+로템) 승률도 꽤 잘 나왔었다.
25년만에 이 초특급 빌드를 공개한다.
1) 9 프로브까지 생산
2) 400모아 넥서스
3) 100모아 파일런
4) 투 게이트 + 포지
5) 적당히 캐넌과 질럿으로 방어
6) 테크 올려 캐리어 생산
7) 시간과 돈 남을 때마다 투 게이트에서 드라군 생산(캐리어가 비싸니 게이트를 두 개 유지하는 게 핵심)
이 빌드로 나이 차 한참 나는 사촌동생들을 제압하고 승승장구했던 나는 어느 날 로템에서 한 테란을 만났다. 나는 2시, 상대는 8시였다. 느지막히 정찰을 갔을 때 깜짝 놀랐는데, 그 나약한 테란 따위로 앞마당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테란들은 대부분 벙커를 입구 쪽에 여러 개 박고 시작했었다.) 하지만 9프로브로 넥서스 박은 다음 캐넌 부지런히 짓고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훗날의 캐리어를 기약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테크가 순조롭게 올라가지 못했다. 상대가 앞마당 자원의 힘 때문인지, 별별 공격 유닛들을 다 만들어내면서 중앙 진출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나올 때마다 뭔가 조금씩 달랐는데, 꽤나 위협적이었다. 마린 파이어뱃 레이스가 섞이기도 했고, 탱크와 골리앗이 띄엄띄엄 줄서서 나오기도 했다. 나는 오로지 드라군으로만 막았다. 두 게이트에 생산 예약을 잔뜩 걸어두고 있었기에 캐리어에 쓸 자원이 없었다.
내 두 게이트들의 랠리는 전부 맵 중앙에 찍혀 있었는데, 상대가 한 줄로 끌고 나오는 그 별별 공격 유닛들을 의도치 않게 학익진으로 맞이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둘은 이미 그 때 클래시로얄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게이트 랠리 컨트롤로 맵 중앙에 박격 내지는 석궁을 깔고 있었던 것이고, 그는 넘쳐나는 엘릭서를 가지고 그 때 그 때 쿨 차는 대로 카드를 냈던 것. 그리고 맵 중앙의 자동 전투를 둘이 긴장한 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동 전투는 아슬아슬했는데, 늘 내 드라군들이 서너 마리 살아남는 것으로 끝났다. 나는 부랴부랴 생산 예약을 걸고, 혹여 모를 상황에 대비해 멀티 입구 쪽에 캐넌을 한두 개 추가했다. 그가 뭘 했는지는 지금도 모르나, 확실한 건 우리 둘 다 더 이상 확장 기지를 가져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막상막하의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예약 생산만 하면 됐기에 왜 그 때 숨이 막혔는지는 모르겠다. 상대는 그래도 유닛 모아 어택 땅이라도 찍었으니 인정.
결국 그 쪽이 먼저 항복을 선언했다. 상대는 GG를 치면서 “와, 물량이 어마어마하네요”라는 식으로 칭찬했다. 상대 조롱이 흔치 않던 시절, 나 역시 예의를 갖췄다. “게이트 쉴 새 없이 돌렸네요.” 그는 궁금했다. “게이트가 몇 개였어요?” 말 못할 이유가 없었다. “두 개에서 한 번도 안 쉬었네요.” 그는 납득했다. “아, 역시.” 그는 게임이 끝날 때즘 몇 개의 배럭과 팩토리를 보유하고 있었을까? ‘아, 역시’라는 힌트만 남긴 그는 그대로 나에게 승을 주고 사라졌다. 우린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 승부 이후 25년이 흘렀다. 이제 아이들이 제법 컸는지, 묻는 단어의 수준이 높아진다. 어느 날은 ‘낭만적’이 뭐고, ‘낭만’이 뭐냐고 딸 아이가 물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까맣게 잊혔던 그 날의 승부가 떠올랐다. 말한들 딸 아이가 이해할 리 없는 낭만의 예시에 나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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