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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코로나, 당뇨. 20년차 게임방송 작가의 한 해




안녕하세요, 최근에는 대체로 스연게에 머물고 있는 Davi4ever입니다.

MSL과 OSL, 프로리그, 하마코, 롤 마스터즈 등등등 여러 리그의 작가를 맡아 왔습니다.


사실 작년 가을쯤에 근황글을 한 번 쓰려고 하다가 어찌저찌 미뤄졌는데

마침 2024년 결산 이벤트가 있어 거기 기대어 글을 한 번 써봅니다.

(3일 전에 한 번 쓰다가 날아가서 멘탈 다시 잡고 씁니다...)


자게에 쓸까 겜게에 쓸까 고민했는데

이벤트를 위해 겜게까지 열어주셨는데 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에 더해서,

게임판에서 20년 밥 먹었으면 이 정도는 봐주시지 않을까 싶어 겜게에 올립니다.

(그래도 문제가 된다면 자게로 옮겨주세요)



1. 직장암 2기


2월에 조금 위화감이 드는 징후가 있었고, 이상하다 생각하던 중에 어머니께서 발견하시고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장이 조금 안 좋은 정도겠지"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동네 병원에 갔죠.


그런데 내시경까지 받고 나서... "암일 가능성" 이야기를 넘어 암인 것 같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기같은 잔병은 좀 있지만 큰병은 안 걸릴 거라는 근자감으로 살아왔는데 완전히 한방 먹었죠.


막 몸이 아프고 그런 상태는 아니었으니 신청에 성공했던 트와이스의 뮤직뱅크-인기가요 공방에 갔는데

"죽을 가능성"이란 걸 생각하다보니 심란했습니다.

뮤직뱅크 공방 때 제 최애인 다현이 갑작스럽게 제가 있는 뒤쪽까지 가까이 오고,

인기가요 공방 때 쯔위가 "아프면 안돼요"라고 팬들에게 말하고...

사실 저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고 큰 의미부여를 할 것까지 없는 것들도 다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저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였던 눈물의 여왕은 "홍해인이 꼭 살아야 하는 드라마"가 됐습니다.

(입원 중에도 눈물의 여왕은 가져간 핸드폰을 통해 본방으로 잘 챙겨봤습니다)


3월 초, 여러 검사를 통해 직장암 2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늦지 않게 발견했고, 생존률이 80퍼센트 정도 된다는 말에 아주 큰 흔들림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암이라는 포스 넘치는 병명의 압박과 "죽을 가능성"의 압박을 완전히 떨쳐내는 건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야 할 게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 그렇게 될 리 없다"며 스스로를 격려했고

"직장에 다닌 적이 없이 프리랜서로만 살았는데 직장암에 걸렸다" "환자복에 호랑이가 너무 귀엽다"며

말도 안되는 농담으로, 불안해 하시는 부모님을 조금이라도 안심시키려 했습니다.


여러 생각들이 오고가는 중 3월 말 입원, 그리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잘 마쳤고 (사실 수술 직전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혹시 깨어나지 못할까봐)

일주일 정도 간호간병병동에 입원해서 회복 후 퇴원했습니다. 복대는 한 달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pgr에서 Davi4ever 글을 3월 말에 본 것 같은데?"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텐데 입원 중에 노트북으로 썼습니다^^;;

날짜를 체크해 보시면 대충 언제쯤 수술을 받았는지 확인이 되실 겁니다.

일주일이 사실 긴 시간은 아닌데 빨리 뭐라도 하고 싶었고, 빨리 나아져서 퇴원하고 싶더라고요.


여담이지만 직업병으로 암병동에 있는 환자 분들 나이를 쭉 둘러봤습니다.

(환자로 입원한 상황에서도 데이터를 보고 있는 제가 스스로 어이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암병동의 특성상 제가 두 번째로 어려서... 뭐 암이 나이 보고 찾아오는 건 아니라지만 조금 부끄럽기는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뭘 잘못해서 걸리는 게 아니고, 누구든 걸릴 수 있다" 말씀하신 것을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2. 코로나19, 그리고 항암치료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고, 주사치료를 위한 케모포트 시술을 받기로 했는데

시술 당일 있었던 감기기운이 문제가 됐습니다. 열이 높아 시술 날짜가 미뤄졌고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감기 정도겠지 생각하고 확인을 했는데 코로나 양성이 나왔습니다.

보통 때 코로나가 걸렸다면 걱정부터 했을텐데 암 걸린 상태에서 코로나가 걸리니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저희 가족은 코로나가 한창일 때도 모두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는데 하필 그 타이밍에 양성이 나왔으니...


다행히 코로나는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빠르게 지나갔고, 약간 미뤄졌던 항암치료가 시작됐습니다.

3주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2주간 약 먹는 (1주 휴식) 과정의 여덟 번 반복이었습니다.

예전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머리가 빠지는 정도의 부작용은 없었고,

손발이 차가움에 민감해지고, 피부에 반점? 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고 콧물이 나고 턱관절에 이질감이 들고 등등

감당 가능한 정도의 몇몇 부작용들이 있었습니다.

손발이 차가운 것에 심하게 예민해져서 장갑과 양말을 자주 써야 하기는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권고 중 금연과 금주는 괜찮았습니다. 술을 찾아 마신 적이 없었고, 담배도 핀 적이 없었으니까요.

다만 날음식 금지는 회와 초밥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고역이었습니다.

직화 음식이나 튀긴 음식도 웬만하면 안 먹었습니다. 정말 먹고 싶을 때 두 달에 한 번 정도?


기나긴 항암치료는 10월에 마무리됐습니다. CT 촬영 결과 재발도 없었고,

이제는 6개월에 한 번 정도 추적검사만 5년 받으면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제 됐구나 싶었는데...



3. 당뇨가 왜 여기서 나와


항암치료를 받을 때 구토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항암차료제에 들어간 스테로이드 성분의 영향으로

8차 항암이 종료되던 시점에, 체중이 살면서 처음 80kg를 찍었고,

당뇨수치가 딱 당뇨 커트라인인 6.5까지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두 달간 더 식단 관리를 할 것을 의사 선생님께서 권했고

항암 때보다 오히려 더 빡센 식단 관리를 해야 했습니다...

항암이 끝나면서 날음식 금지는 풀렸지만 (7개월만에 회 먹다가 울뻔 했습니다) 당뇨수치를 낮추기 위해

난생 처음 거의 매 끼 샐러드가 밥상에 올라오고, 밀가루도 최대한 줄이고,

식후 걷기 운동도 아주 적지만 꾸준히 했습니다. 80kg 찍었을 때는 다리 저림이 심해져 많이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작년 가을쯤 쓰려고 했던 글이 2025년까지 밀린 건 당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12월 말 다시 검사를 받았고 당뇨수치를 5.4까지 낮추는 데 성공,

체중도 73~74kg 정도까지 감량하는 데 성공하면서 당뇨에서도 벗어나 2025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막 먹지는 않고 과식도 안하려 노력하지만 작년보다는 편하게 식사 중입니다.

손발이 약간씩 저린 것 + 장이 완전히 예전처럼 돌아오진 않았다는 점 외에 현재 몸에 큰 이상은 없는 상황입니다.



4. 이 글을 쓴 이유


고비는 넘긴 상황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함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작년에 이런 일을 겪었고, 잘 싸우고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말씀 드리면서 스스로 용기를 얻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작년에 그런 상황이다보니 일을 많이 하지는 못했고,

그래서 오랫동안 연락드리지 못한 분들이 많아 그분들께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안부 연락이나 맛있는 거 사주신다는 말씀 주시면 절대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


그분들 중에는 저와 비슷한 30대 후반~40대 초중반 연령대 분들이 많기 때문에 건강 체크하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 건강 잘 챙기세요.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시면 꼭 병원에 가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긴가민가 한 상황에서 가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빠르게 병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5. LCK와 나


LCK는 저에게 가끔씩 재미있게 보는 리그의 이름이자, 아픈 이름이기도 합니다.

저는 LCK 작가였습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2018년 가을에 작가 일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는데

연말에 개막을 보름 정도? 앞두고 없던 일이 된 것으로 전달받았습니다.

(당시 제가 직접적으로 컨택하진 않았었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계약서가 작성되기 전이었고, 프리랜서들이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 누가 잘못하고 그런 문제는 아니었지만

제 입장에서 매우 불운한 일인 건 확실했습니다. LCK를 해야 하니 당연히 2019년을 비워둔 상황이었고

제 나름대로도 케스파컵 챙겨 보면서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생방 한 번이라도 해보고 뭔가 잘못해서 짤린 상황이라면 차라리 아쉬움이 없었겠지만

보여드릴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그렇게 넘어간 건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지만, 제 장점에 대해서는 확실한 자신감을 가진 저였으니까요.

그래서 LCK나 월즈를 볼 때마다, 물론 재미는 있는데, 마음 한구석이 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롤파크도 가려면 못 갈 이유가 없었지만 가게 되면 괜히 마음 아플까봐 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났고,

제가 더 이상 이 기억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보다 자유로워졌으면 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게 안 좋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제가 성격상 거기서 빠져나오기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작년에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이런 것에 더 오래 사로잡혀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는 것에 더 집중하자고 다짐했기에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됐습니다.


올해는, 가벼운 마음으로 롤파크를 가보려고 합니다.



6. 마치며


이렇게 암과 코로나, 당뇨를 모두 겪은 2024년 결산 글을 적어봤습니다.


저는 항상 싸움에 직접 끼는 것보다는, 싸움을 지켜보는 관전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스포츠도 하는 것보다 보는 걸 좋아하고, 게임도 하는 것보다 보는 걸 좋아하고 그런 편입니다.

오락실에서 게임 구경을 좋아하고, TV 보는 걸 좋아하는 놈이

게임리그 속에서, 그 관전자의 삶을 즐기며 20년을 일하면서

임요환부터 페이커까지 수많은 이들의 승부를 기록하며 이야기했고

MBC게임과 OGN, 그리고 대부분의 방송을 모두 거치면서 좋은 인연들도 많이 만났으니 참 운이 좋았죠.


하지만 작년은 관전자의 삶이 아닌 직접 싸워야 하는 삶이었습니다.

다행히 제게 데이터가 나쁘지 않았고, 괜찮은 결과를 얻어 갔습니다.

그래도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기에 2025년에도, 그리고 이후로도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관전자로서" 다시 일 좀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노래도 많이 듣고, 보고싶은 것도 많이 보고, 차트 정리도 계속하고요.

다른 세상을 생각하기에는 제가 아직 하고 싶은 게 많고, 능력에 비해 욕심이 많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병을 이겨내는 데 많은 노력을 해주신 수많은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다학제 들어가면서 꽤 많은 숫자의 의사 선생님들이 저와 제 부모님, 세 명 앞에 계시는데

"이거 의학 드라마에서 보던 그 장면이잖아" 싶어서 모든 분들 진지한 와중에 신기했습니다.

부모님께도 감사하다는, 그리고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제가 조금이나마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아픈 부분을 배려해주신 모든 지인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25년간 pgr을 해왔고 이곳에는 제 좋은 기억, 안 좋은 기억, 부끄러운 기억까지 여러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사람인지라 좋은 것만 놔두고 나머지는 없는 걸로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안 좋았던 것들도 어쨌든 제가 가져가야 할 몫이니까요. 어쨌든 pgr은 제게 의미가 큰 곳입니다.

"숨은 의도"와 함께 글쓰는 걸 매우 안 좋아하기 때문에. 제 글은 그것들을 다 풀어내면서 필연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글 길게 쓰는 제게 pgr만큼 편한 커뮤니티가 없었습니다.

제가 축구 글 쓰던 게 아프기 전보다 많이 줄었는데,

밤새는 게 체력상 어렵기도 했고 약먹는 시간 때문에 일찍 일어나고 일찍 일어나야 했으며

축구 글은 손금불산입님이나 다른 분들이 많이 올리시기도 해서 많이 줄였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가수 글 위주로 많이 올리고 있는데 올해도 좋은 몸상태로 pgr에 많은 글 쓰며 재미있게 즐기고 싶네요.


예전과는 많이 변했고, 제가 바라는 방향성과는 조금 달라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게 의미있는 곳인 건 변함없습니다.

이곳을 즐기시는 모든 분들께 좋은 일이 가득한,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한 2025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봅니다.

저도 올해 일 시작한지 20주년이 되는데 좋은 기억들로 가득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무겁지 않게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두서 없었을 수 있는데 이해 부탁드리고요.


설 연휴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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