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소프트 안녕 (뉴스 아닙니다)
** 의도하지 않은 낚시를 방지하기 위해 제목에 써 두기는 했지만, 혹시 유비소프트가 호흡기 떼었다는 소식인 줄 알고 들어오신 분이 계시다면 미리 사과드립니다.
유비소프트 수 년 전부터 참 말 많죠. 관심이 없거나 유비 게임을 안 하시는 분들도 회사가 휘청이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뉴스와 게시글을 통해 많이들 접하고 계실 것 같아요.
저는 유비소프트 게임을 정말 좋아했었습니다. (과거형)
양산형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을 즈음까지도 유비소프트 게임들은 스트레스나 복잡한 생각 없이 바로 뛰어들 수 있는, 저에게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어요.
많이 비판 받는 물음표 내지는 맵 마커 지우기조차도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해서 자기 전에 1-2시간 맵을 누비는 즐거움으로는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런 팬이었다보니 몰락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시점 이후로도 꽤 버텼습니다만, 어느 시점부터는 저도 완전히 포기하고 유비 게임은 사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말에 집 정리를 하다가 게임 디스크들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서 되짚어 보고 싶어져 글을 써봅니다. 다른 회원님들 생각도 궁금하고 말이죠.
** 제가 싱글+콘솔+디스크(패키지)충이라 마이트 앤 매직이나 Anno시리즈같은 PC게임, 레인보우 식스나 디비전 같은 멀티플레이 게임은 회상에 들어있지 않은 점 감안해주세요.
1. 황금기?
제가 유비 게임을 유비 게임이라고 인지하고 하게 된 건 어쌔신 크리드 1편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스플린터 셀이나 페르시아 왕자 (3D 3부작) 등을 하기는 했는데, 개발사에 대한 인지는 전혀 없었어요.
지금 보면 조악하지만, 당시에는 오픈 월드 게임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때이다 보니 유비소프트의 게임들도 나름대로의 매력을 뽐냈던 것 같아요. 대체로 게임성은 반복적이고 단순했지만, 어디든 기어올라갈 수 있다든가 (어쌔신 크리드),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생태계가 구현되어 있다든가 (파크라이) 하는 식으로 다른 게임에는 없거나 보기 힘들었던 요소들이 보였어요.
스토리텔링과 연출도 매우 좋았다고 기억합니다. 스토리의 개연성보다는 명확한 주제/테마나 중요한 장면의 연출에 있어 아직도 기억나는 것들이 많아요. 평범했던 주인공이 점점 거칠어지는 과정의 묘사라든가 (파크라이3), 에지오가 알타이르와 만나는(?) 장면 (어크 레벨레이션), 앱스테르고의 기억 조작과 진실이 드러나는 장면 (어크 리버레이션), 코너가 스승을 떠나보내는 장면 (어크3), 에드워드가 죽은 동료들을 떠올리는 장면 (어크4) 등등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2. 자가복제가 점점..
그러다 고개를 갸우뚱 하기 시작한 때가 있었는데, 저같은 경우는 고스트 리콘 와일드랜즈가 발매했을 때였습니다.
밀리터리+택티컬 슈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고스트 리콘 시리즈는 거의 즐기지 않았는데, 와일드랜즈가 오픈 월드로 나온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겨 즐겨보니 제가 하던 다른 유비 오픈월드 게임들과 너무 똑같은거예요. 심지어는 전투의 전략성이라는 것도 거의 없었고, 그저 마킹하고 멀리서 저격하는게 전부였거든요. 파크라이 시리즈도 비슷하지만, 거기선 적어도 제가 직접 처리해야 했단 말이죠. 팀원에게 "딸깍"으로 사살 지시하는게 아니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까지는 그냥저냥 잘 즐겼습니다. 같은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라면 뼈대는 공유하면서 마이너한 신규 요소만 추가하는 방식에 대해 제가 거부감이 덜하기도 했고, 다른 면면들이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아서 그럭저럭 커버가 되었거든요.
3. 대실망과 포기
다들 욕해도 꿋꿋하게 유비 게임을 사던 저는, 결국 실망 4연타를 맞고 포기하게 됩니다.
첫째 파크라이 뉴던 - 맵 재활용은 그렇다 쳐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 악역들 + 겉잡을 수 없이 퇴보한 스토리텔링, 무슨 생각을 하고 넣은건지 모르겠는 RPG요소
둘째 워치독스 리전 - 유비답지 않게 새로운 시도(수많은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했지만, 그 시도마저 복붙으로 스스로 망쳐버림
셋째 어크 발할라 - 매력없는 주인공들(레일라 & 에이보르 둘 다), 10분만 안 봐도 기억에서 잊혀지는 조연들, 오리진/오딧세이 대비 발전없는 전투, 쓸데없이 방대한 길이,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한 PC요소들
넷째 파크라이 6 - 역시 매력없는 주인공, 관심 안가는 악역, 얄팍한 게임성, 완전히 퇴보한 스토리텔링, 본격적으로 거슬리는 PC요소들
※ 첫번째와 두번째 사이에 어크 오딧세이가 나왔습니다만, 저는 오딧세이를 파크라이 뉴던보다 먼저 했습니다.
결국 이후에 나온 어크 미라지, 아바타, 스타워즈 아웃로 등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고,
나중에 게임플레이 영상을 보니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구요.
아직 나오지 않은 어크 섀도우즈의 경우에는 단순히 게임을 못 만들거나 돈독이 오른 것 뿐만 아니라
위선까지 만천하에 드러냈으니 더더욱 살 마음이 들지 않구요.
좋아하던 게임사가 서서히 몰락하는 걸 보니 씁쓸하지만,
부디 괜찮은 곳들에서 IP라도 인수해 시리즈가 이어졌으면 하는 희망을 아직은 갖고 있네요.
추천42 비추천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