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친구의 독특한 정신세계
1.
서로 먹고 살기 바빠 자주 만나진 못해도 오래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을 비롯해서 언제나 함께 있던 친구들입니다.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빛나리도 그렇고,
한살 많은 Y형, 미국 이민간 미친개, 그리고 마징가 ...
빛나리라는 친구는 우리 사이에선 변태라고 불리는데,
성적 취향이 독특하거나 변태적 성향이 있어서 변태가 아니라
사고와 철학에서 남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여자를 보는 그의 독특한 눈높이가 큰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말 눈높이 낮습니다.
뿐만 아니라 굉장히 탁월한 능력으로 무언가 재미있는 세상을 찾아 다닙니다.
한동안 나를 즐겁게 해준 모 채팅 사이트며, 화려했던 전화방 시절 등이
빛나리가 모험정신을 발휘해서 얻어진 것들이었습니다.
다만 녀석은 끈질김에 취약하여 잠깐 재미 붙였다가는 곧 다른 재미를 찾아 떠나곤 합니다.
결국 집요함에서 강한 내가 그러한 것들을 모두 계승발전 시키는 셈입니다.
간혹 빛나리도 놀랍니다.
"이제 그런 단계에 들어선거야???"
가끔 댓글중에 녀석의 안부를 묻는 분들이 계셔서
녀석의 독특한 정신세계에 대해 몇마디 하려고 합니다.
2.
얼마전 빛나리를 만났습니다.
늘 변태처럼 잘 웃던 녀석인데 표정이 좀 어두웠습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녀석의 대답에서 조금 걱정이 들었습니다.
"나 요즘 마누라가 자꾸 낯선 여자처럼 느껴져...."
"그래......?"
어느새 나이 40대 중반이니 그럴만도 하겠지요.
하지만 남들도 있는 일처럼 생각하기에 빛나리는 가까운 사이고(아직도 빛나리 와이프는
나보고 오빠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남의 가정문제에
내가 특별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없지 않겠습니까?
오로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같이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래, 힘들겠지만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나름대로 평범한 듯하나 적절한 말로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녀석은 걱정은커녕 본래의 변태적인 표정으로 바뀌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낯선 여자 같아서 매일 밤마다 더 좋아. 우 헤헤헤~...."
"......"
우리는 이 친구를 변태라 부릅니다.
3.
Y형과 빛나리, 셋이서 단란주점에 갔습니다.
Y형은 주변에서 알아주는 화류계의 거장입니다.
빛나라가 비주류 문화권에 통달했다면 Y형은 주류권의 대가인 셈입니다.
그래서 Y형을 만나면 항상 단란주점, 룸싸롱, 과부촌
최소한 도우미 있는 노래방에 가게 됩니다.
셋이 앉아 있으니 아가씨가 들어왔습니다.
그리 좋은 데가 아니어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들어오는대로 앉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누가 들어와도 입을 반쯤 벌리고 좋아하는 눈높이를 가진 빛나리는
그날 내내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옆에 앉은 아가씨랑 손을 잡긴커녕 말도 안했습니다.
빛나리가 이러는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자리가 끝나고 물었습니다. 빛나리의 대답은 기가 막혔습니다.
"야, 그 아가씨 말야. 우리 마누라 닮지 않았냐? 기분 나빠 죽을 뻔했네."
"......."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약 2주가 지나서 또 그 멤버들을 만났습니다.
항상 앞장서는 Y형은 지난번 그집이 가격대비 효과가 좋다며 또 가자고 했습니다.
빛나리와 나는 선택권이 없으니 따라갔습니다.
룸에 자리잡으니 마담이 들어와 아가씨 얘기를 꺼냈습니다.
Y형은 예의 그 모습으로 화끈한 애들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빛나리 녀석이 갑자기 마담에게 지난번 그 아가씨를 불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놀랐습니다.
마담이 나가기 무섭게 빛나리에게 왜 또 그 아가씨를 찾는지 물었습니다.
빛나리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마누라 닮은 줄 알았는데 집에 가서 자세히 보니까 처제 닮았더라구. 우헤헤헤~"
"......."
Y형과 나는 싸구려 단란주점의 허름한 천정을 바라고보고 있었습니다. 말없이....
우리는 이 친구를 변태라 부릅니다.
4.
오랜만에 만난 빛나리와 아파트 아줌마들에 대한 사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빛나리는 날 보고 부럽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답니다.
왜냐고 물으니 머리숱이 없는, 이른바 대머리라서 그렇다는 겁니다.
일종의 컴플렉스니 신경쓰지 말라고 하니 녀석은 평소 모습답지 않게 심각해졌습니다.
"그건 니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대머리가 여자꼬시는 데 얼마나 취약한지
너는 절대로 모를 것이다. 여자들이 얼마나 대머리를 싫어하는지 알아?
절대로 모를 것이다. 마치 장애인도 아닌데 장애인 같은 취급을 받는 느낌이지.
물론 이런 얘길 장애인 앞에서 하면 큰일날 소리겠지.
하지만 대머리 아저씨가 25살 아가씨랑 데이트는커녕 얘기나 할 것 같아?
로또에 맞았거나 혹은 25살 아가씨가 매우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하겠지.
나이트클럽 같은데는 부킹도 안돼.
지난번 Y형이 나이트가자 그럴 때 내가 안갔다고 바득바득 우겼짆아?
그것 때문이지. 나만 안되면 그거야 상관없어. 하지만 나 때문에 너도 안돼.
안 믿어지지? 근데 이게 현실이야.
물론 대머리라고 해도 사는덴 큰 지장없고, 이런 얘긴 단지 여자 꼬시는 일에만
적용되는 거니까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해."
"......."
말없이 듣고만 있었습니다.
녀석도 괜한 하소연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담배를 꺼내 물고
말없이 불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하긴 내가 볼 때는 아무 문제도 아니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컴플렉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안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빛나리 녀석이 여자와 담쌓고 지내느냐?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여자를 알고 지내고 있고 그중에 몇사람은 각별한 듯했습니다.
지난 몇가지 기억을 떠올리니 녀석이 알고 지내는 여자들이
상당히 수준높은-성격이나 성품 등에서- 여자들이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지난번에 어찌어찌해서 알게 되었다는 여자와 함께 나왔을 때도
그 여자의 참하고 세련된 모습, 그리고 빛나리에 대한 충성도 등을 통해
Y형과 함께 상당히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녀석의 이론대로라면 녀석은 개인적인 감정으로 친해질 여자가
한명도 없어야 한다는 말인데 현실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이 드니 갑자기 불쌍해지려하던 녀석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갑자기 얄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야, 이 씹쌔야! 그래서 니가 여자 안 만나냐? 잘만 만나구만...."
"......"
녀석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듯 담배만 피우고 있었습니다.
실제 상황을 해명하라고 다그치니
녀석은 담배를 재떨이에 부벼 끄고는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내가 아는 여자들은 냐가 봐도 참 괜찮은 사람들이다.
어찌어찌해서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도, 단란주점 아가씨도,
심지어 노래방 도우미도 나랑 각별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인간적인 매력과 품성도 참 좋더라. 너도 몇 사람은 알지?
근데, 나 말이야....."
녀석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담배를 하나 다시 꺼내 불을 붙였습니다.
"난 이렇게 생각해. 나는 여자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
내 입장에선 엄청난 핸디캡이지.
근데 말이야.
외모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진 사람은 나도 큰 매력이 없더라.
다른 한편으로는 같이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는
일단 외모와는 관계없는, 나의 또 다른 어떠한 장점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인연이 이어졌을테고.
따라서 인연이 이어지는 사람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숨겨진 매력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됨됨이는 있더라.
그러니 일단 나와 인연이 이어지면 끈끈한 인간성을 바탕으로
정서적 교류가 먼저 이뤄지는 셈이니 오히려 더 좋더라.
그래서 말이야....
이거 웃기는 얘기지만, 난 가끔 내가 빛나리라서 좋더라....."
"......"
나도 담배 한대를 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주변에서 녀석을 가리켜 변태라고 놀리는 이유를 또한번 이해할 것 같습니다.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면을 훌륭하게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것,
이것 또한 사람이 가지는 매력일 겁니다.
다만 녀석이 그러한 독특한 철학이 여자 꼬시는데만 쓰이지 말고
돈버는 일에도 쓰여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 뿐입니다.
글을 마치는 일산마루의 한마디 -
이 땅의 대머리 여러분, 힘내세요~~
일산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