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베어] 봉사명령 수행 1호 - Dogtable 님의 바둑 관련 글
봉사명령수행 그 첫번째입니다.
그냥 조신하게 있으려다 그래도 조금 색다른 경험이 있었기에 글 하나 올렸더니 그게 공지위반이네요. 봉사명령 받고 조금 고민은 했습니다만 뭐 그래도 네이버3이 저에게 그동안 주신 혜택이 워낙 엄청나다 보니 그 혜택을 받는 입장에서 룰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이렇게 봉사명령 수행을 시작합니다.
야누스님 명령에 의하면 섹스와 관련 없거나 여자가 썻을 법한 글 10편을 모아서 리뷰를 하라고 하셨는데, 그냥 이렇게 1편씩 올려보겠습니다. 안된다면 모아서 한편으로 다시 올리죠.
그런데 봉사명령을 받으니 고마운 분이 계시네요. 자기가 어떤 글을 올렸으니 그 글에 대해 리뷰하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시더군요. 감사합니다. 일단 이 분의 글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올릴 글은 Dogtable 님이 1월 10일에 올리신 글이고 이세돌9단의 세계바둑왕좌전2연패에 대한 글입니다.
그 내용은 우리의 이세돌 9단이 중국의 장쉬9단을 물리치고 세계바둑왕좌전을 2연패 했다는 글이었고 이세돌9단에 보내는 성원이 담겨 있는 글입니다.
우리나라 바둑의 시작이 누구인가에 대해서야 과연 누가 알겠습니까만 제가 보기에 국민에게 바둑을 보급하고, 그냥 소일거리에 불과하던 바둑을 국민적 관심사로 올린 사람은 누가 뭐래도 조남철 9단입니다.
조남철의 시대가 계속되다가 다음으로 떠 오른 스타는 김인 9단이었죠 (물론 그때는 9단이 아닙니다만).
김인의 시대가 지나고 나서 한국바둑계는 두명의 바둑천재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조치훈과 조훈현입니다. 물론 이 중 조치훈 9단은 조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일본에서 바둑을 배우고 일본기원 소속인 일본기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뛴다고 해서 우리가 외면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국민들은 열광했습니다. 그는 조남철9단의 인척으로서 (정확한 촌수관계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조카던가요?) 어려서부터 일본에 건너가 바둑을 배웠습니다.
일본의 바둑은 3대 기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인전, 본인방전, 그리고 기성전이 그것입니다. 그 중 70년대 초반 조치훈 9단은 아마도 기성전이던가 결승에서 사카다 9단과 격돌하였는데, 7번기 중 마지막 판을 놓쳐 아쉽게도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습니다. 전국민이 TV 를 보던 그 시절, 저는 그 어린 나이에도 TV 를 보면서 알지도 못하는 바둑판을 봤던 기억이네요...
조훈현9단은 조금 상황이 달랐습니다. 그 또한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바둑을 배웠지만 조치훈9단과는 달리 병역특혜를 받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와 공군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를 가르쳤던 스승은 그 사실을 비관하여 자살을 해 버렸지요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마 후지사와슈우코 9단이 아니었나 합니다).
병역을 마친 조훈현9단 (그때는 8단이었죠) 은 그 이후 승승장구했습니다. 오로지 서봉수8단만이 그에게 대항하였지만 결과는 거의 언제나 조훈현의 승리였죠. 그는 10년 이상 한국바둑 최고의 위치에 군림하였습니다.
하지만 조훈현이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된 것은 바로 응창치배를 우승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대등한 바둑교류가 거의 없던 시절이어서 조훈현9단의 실력에 대해서 의문이 있기 마련이었는데, 응창치배를 우승하면서 모든 것은 다 씻겨 내려가고 조훈현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가 되었죠.
조훈현의 또 하나 업적은 바로 이창호를 길러낸 것입니다. 조훈현은 이창호를 자기 집에서 불러 숙식을 함께 하며 바둑을 가르쳤고, 이로 인하여 이창호는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올라갔죠. 물론 이창호가 있었기에 또 하나의 걸출한 스타인 유창혁도 있었고...
세월은 지나고 새로운 세대가 올라왔습니다. 이세돌이 올라오고 최창한이 올라오고...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 속에서 만났던 수많은 천재들을 기억합니다...
김희중, 서능욱, 그리고 바둑의 보급화에 앞장 섰던 양상국...
봉사명령 수행한다고 하고서 드립다 바둑 얘기만 했네요... 죄송합니다...
폴라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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