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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그리고 그에 얽힌 세상사(야설과는 거리가 멈)

난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술자리에서의 분위기 그 자체를 즐기기를 좋아한다.

누군가 정신없고 복잡한 술자리의 분위기가 뭐가 좋으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당신은 어떤 사람과 술을 마십니까? 친구인가요? 아니면 함께 하는 것이 괴로운 사람하고 인가요?

당신은 싫은 사람하고도 술을 자주 마시는지 모르지만, 난 함께 해서 즐겁거나 편안한 사람과 주로

마십니다. 그러니 그 자리의 분위기가 어떨까요. 조금 소란스러워도 즐겁고 편안한데...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이상한가요?

물론 내가 말하는 것이 모든이에게 적용되는 보편타당한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한테만은 그것이 정답이었으면 좋겠고, 또 그렇다고 믿고 싶다.

술 얘기를 꺼내었으니 술과 관련된 일화로 낙서를 해 볼까 한다.

 

작년 어느 때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인터넷 바둑사이트 D의 운영팀장 M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I회 모임인데, 거기나 같이 갑시다. 거기 갔다가 H회 모임에도 들르고요."

I와 H동호회는 D의 회원들이 만든 온라인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양 동호회 사람 중 일부는 안면도 있어, 외부인이지만 참석해도 흠은 될 것이 없었기에

그러마 승낙하고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 때 난 K형의 집에 머물고 있었기에 K형과 함께 동행했다.

강남에서 M을 만나 I회의 모임이 있다는 의정부로 차를 몰았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I회 회원이 한사람 두사람씩 모여든다.

술잔이 몇순배 돌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진다.

해지기 전에 시작한 탓인지 취기가 평소보다 빨리 밀려온다.

일부는 만취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 한다.

술도 깰 겸 분위기를 돋우자고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노래로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K형이 내게 뭔가 말을 한다.

"..."

"응! 왜?"

"저기 S 있잖아. 남의 동호회 모임에서 저 무슨 추태냐?"

"뭘?"

"S가 Y에게 추근대잖아"

"그래? 어디 가만..."

가만히 보니 K형의 말이 맞는 듯 하다.

S가 I회 여자 회원들에게 추근댔는지 몇 몇 여자회원은 아예 S를 피해 버린다.

Y가 성격이 좀 고분고분해서인지 Y에게 과한 행동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러다 못 볼 꼴 보는 것은 아닌가 싶어 S에게서 Y를 떼어냈다.

나와 K형 사이에 앉혀 놓으니 S가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진다.

잠시 후 Y의 몸이 내 어깨쪽으로 쏠려온다.

만취 상태라 몸을 가누기 힘든가 보다.

저 상태라면 집에가서 좋은 얘기 듣기 어렵고, 숙취로 고생할 것 같아 보인다.

근처 약국에 가서 숙취해소제를 한 병 사다가 Y에게 마시게 했다.

"제가 술 취해 보이세요?"

"아! 그건 아니고 다음날 고생하지 말라고..."

난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스스로 취한 것을 모를리야 없겠지만, 취했다고 인정하기 싫은가 보다.

M과 K형 그리고 나는 자리를 일어서야 한다.

H회 모임에도 가야하기 때문이다.

이때 I회 회원중 일부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했다.

그중엔 Y와 N 그리고 O 이렇게 세 사람의 여자 회원도 끼어 있다.

의정부에서 남양주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차에서 내려 모임 장소로 걸어가는데, 저만치 위에서 보고 있던 사람 한명이 다가온다.

잘 아는 사람이다.

내게 눈 짓을 한다. 잠깐 보자고...

"쟤들 누구니?"

"I회 회원들... 왜?"

"너랑 K형 모습이 어떤 줄 아니?"

"우리가 뭘 어떻게 했는데?"

"술집에서 술마시다 여자 하나씩 옆에 끼고 나오는 모습이다."

"헉!!! 그럴리가... 우린 그냥 같이 온 것 밖에 없는데..."

"너나 K형은 별 생각없이 쟤들이랑 왔겠지만, 쟤들 취해가지고 너랑 K형 옆에 붙어

기대면서 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그 모습이더라..."

"혹시 다른 사람이 봤다면 그 사람도 같은 생각일까?"

"그래 틀림없이 나와 같은 생각일거다."

"음..."

 


몇 일 후 K형이 D에서 X..란 아이디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잠시 후 H회의 부회장격인 C가 들어와 구경하기 시작한다.

그때 다른 회원 P가 K형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C와 P가 서로 얘기를 나눈다.

"X..님 잘 아세요?"

"X..님이 T..님이잖아요."

T..는 K형의 또다른 아이디다.

"아! 그 여자 밝히시는 부~~운~~~"

"헉!!! ..."

K형은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다 내가 그런 모습으로 비치게 된거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K형은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낀다.

평소 깔끔한 이미지로 인식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로 변환이 된 것이다.

잠시 후 K형은 인식할 수 있었다.

C가 남양주 모임에 참석했던 H회의 부회장격이라는 것을...

취한 사람이 힘들까봐 잠시 의지케 했던 사소한 친절이 화가 되어 돌아올 줄이야...

 


K형으로 부터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나는 머리끝이 쭈뼛해짐을 느낀다.

그럼 혹시 나도 똑같은 인간으로...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치지 말라는 옛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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