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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내 - 6편


춘식이는 그런 말을 하더니, 차가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너도 힘들겠다. 겉으론 새침을 떨지만 조금만 건들여 주면 반응이 색녀같은 년들이 있거든. 타고난 화냥끼를 주체 못하는 거지. 제수씨도 그런 종류 아냐? 좋게 말하면 감수성이 풍부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존나게 밝히는 거거든." 


밝히는... 


"뭐, 나야 그런 년들이 오히려 더 좋지만 말이야. 입으로야 아니라고 말해도, 인간의 육체는 정직한 거니까. 제수씨처럼 처음에는 정숙한 척, 저항하는 척 하면서, 마지막에는 못 이긴 척 쾌락에 젖어 미친듯이 허리 돌리는 년들이 따먹는 맛이 보통년들 보단 훨씬 낫거든. 그런 년들 내 방식으로 조교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고 말야." 


정말 부럽다, 네가... 마지막으로 그렇게 한마디 뱉고, 춘식이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습니다. 

그 시선은 똑바로 저를 향해, 번뜩이는 눈빛으로 저를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을 저는 잠시 말없이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년, 년, 년.... 미친놈, 말끝마다...

하지만, 저는 작년 여름 그 때의, 광란에 빠져있던 아내의 표정을, 그 몸짓을 떠올렸습니다. 

이윽고,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에 넘어갈 것같냐?"


춘식이는 담배를 피우면서 눈썹만 움직여 제 말에 반응했습니다.


"넌 옛날부터 안하무인인 척 행동했지만, 속으론 냉정하게 그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타입이었지. 네 무례한 말에 흥분할수록, 무심코 그 사람의 본심이 나오는 법이니까. 그렇게 속내를 알아내고 이용했던 거지. 나쁜 쪽으로만 말야."


춘식이가 "흐흐"하고 웃었습니다.


"오랜 친구에게 꽤 심한 말을 하는 걸?"

"누가 할 소린데?" 

"흠, 그렇다고 하지, 뭐. 그건 그렇고, 네 녀석은 질리도록 오래 알아서 더 이상 살펴볼 것도 없어." 


담배를 비벼 끈 춘식이는 마치 제 마음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한 비웃음을 보이면서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섰습니다.


"이제 와서 어떻게든 돌이키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야,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도 없고, 애초에 그걸 제안한 건 너였어. 제수씨를 배신한 것도 너였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거야?"


초조한 어조로 외치는 저를 춘식이가 선 채로 벽에 기대며, 차가운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너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일을 내가 왜 말해야 되는데?"

"...그럼 질문을 바꾸지. 너는 뭐가 하고 싶은 건데? 솔직하게 말해 봐." 

"...내가 하고 싶은 일? 그거야 뻔한 거 아냐?" 


춘식이는 주저없이 말했습니다.


"제수씨를 안고 싶어. 이 곳에서, 다시 한번."

"............" 


너무나 뻔뻔한 춘식이의 말에 저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저는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너 지금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너 한테지. 지금 여기엔 너밖에 없잖아?" 


태연하게 말하고 춘식이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미리 말해 두지만,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는 한 명의 남자로서의 너야. 한 집의 가장으로서의 너가 아니라."

"후우~" 


담배연기를 뿜으면서, 춘식이는 뱀이 이브를 유혹하 듯 일렁이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뱀의 혀가 움직였습니다. 


"난 널 알아. 그 때 이후, 너는 이제 평범한 부부관계로는 만족을 못하고 있어. 그래서, 다시 그 때와 같은 흥분을 느끼고 싶어하고 있지. 나와 섹스하는 제수씨를 보면서 느꼈던 그런 흥분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춘식이의 말투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제수씨를 안고 싶어.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는 거야. 달리 무슨 문제가 있지?" 

"...현수 본인의 의사는 어쩌고? 집 사람은 물건이 아냐.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상처 받기 쉬운 성격이라고.. 지금도... 난 알고 있어. 집 사람이 그 때의 일로 아파하고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또..."


말하면서 제 가슴이 찢어지는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현수의 남편이야."

"이제와서? 위선떨지마. 처음에 제수씨를 물건처럼 나에게 건네 준 건 바로 너였어." 

"그걸 자꾸 끄집어내서 네 의도대로 날 움직이려 하는데... 너같은 인간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걸로 날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현수뿐이야. 그리고, 그건... 후회하고 있다."

"후회? 반쪽만 후회하고 있겠지. 나머지 반쪽은 지금도 짐승처럼 욕정에 휩싸여 있을 테고... 뭐, 나에게는 그쪽이 훨씬 이득이지만 말야."


칼날같은 춘식이의 말이 이번이야말로 제 마음에 숨겨진 진심을 예리하게 찔러와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온갖 비열한 짓을 다하는 이 녀석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여전히 그 때의 그 흥분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걸 위해서라면 소중한 아내를 도구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저 자신에게 부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수씨가 아파하든 슬퍼하든, 그런 것은 나중엔 아무것도 아니야." 

...혼잣말 같은 그 말투... 

"그런 시시한 일은 순식간에 잊게 해 줄 수 있거든." 


마치 악마같은 욕망에 불타는 눈이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어할 정도로 즐기게 해 주지. 결국엔 제수씨 스스로가 오히려 이쪽에 매달려 해 달라고 조르게 될거야. 바꿔 줄게, 제수씨를 네가 원하는 그런 여자로... 네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여자로." 


"............"

"그것은 너에게도 제수씨에게도 좋은 일이 될 거야." 


그렇게 말하고 마지막으로 춘식이는 악동같은 장난스런 웃음을 띄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분명히 그렇게 될 거야."


춘식이의 방을 나와 저희 부부의 방으로 돌아온 것이 몇 시쯤의 일이었을까요? 


"...현수야?"


모습이 보이지 않는 아내를 부르자 옆방의 문을 열고 아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 자고 있었어?"

"미안해요. 조금 몸이 안 좋아서." 

"그래? 그럼 계속 자." 


제 말에 아내는 "아니, 이제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제 얼굴을 조심스레 살폈습니다.


"커피 드릴까요? 아니면 술...?"

"커피가 좋겠어." 


저는 창가쪽에 붙어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습니다.

졸졸, 주전자에서 물 따르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렸습니다. 

짧은 소매 아래 뻗어나온 아내의 가느다란 팔이 커피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저는 웬지 모르게 답답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담배 피워도 될까?"

"그러세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물어보는 저에게, 아내는 평소처럼 잔소리도 하지않고,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커피가 든 잔을 내밀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제가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때까지, 제 앞에 앉은 아내는 말 없이 테이블 위에 눈을 둔 채 조용히 있었습니다. 

창백한 아내의 얼굴은 그녀가 말한 대로 몸이 좋지 않은 듯 보였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몇 가닥 흐트러져 뺨에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엿보는데, 아내가 불쑥 입을 열었습니다.


"춘식씨와... 이야기를 해 보았나요?"


애써 아무런 일도 아닌 척하며 묻는 목소리가 오히려 아내가 지금 심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응."


저는 대답하고, 짧아진 담배를 비벼 껐습니다.



"그래서... 춘식씨는 왜 이 곳에...?"

"아니... 그건 아까 춘식이가 말한대로야. 개인사정으로 우연히 휴가가 생겼다는 게 정말인 것같아." 

"그래요...?" 


중얼거리 듯 말하며 아내는 무릎 위에 놓인 두 손을 살짝 포개었습니다.

한 마리 학처럼 고아하게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가만히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아내..... 그런 쓸쓸해 보이는 듯한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춘식이 말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완 속궁합도 잘 맞고, 조이는 맛이 끝내줬지. ....섹스 할 때 내는 신음소리도 최고였고... 

..제수씨, 요즘도 그런 소리를 내냐? ...정말 부럽다, 네가... 

..누구보다 원했던 것은 너잖아...

..차라리 죽고 싶어할 정도로 즐기게 해주지... 

..바꿔 줄게...




"다신 절 속이지 말아주세요." 


갑작스런 아내의 말에 제 의식은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응? 뭐라고?"


아내는 등을 꼿꼿이 펴고 두 눈으로 똑바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작년 같은 마음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저를 바라보는 맑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동자.


"저에게 숨기는 그런 일은 다시는 하지 말아 주세요."


그 눈동자가 서서히 젖어 가는 것이 제 눈에 비쳤습니다.


"저는 이대로가 좋아요. 이대로가 좋다구요."


저는 무의식적으로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그 목소린 너무 작아서 그녀에겐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왜...? 왜 안 되는 거죠? 이대로 둘이서 조용히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데. 그것만으로도 행복한데... 흑."


아내의 목소리톤은 여전히 온화한 그대로였지만, 제 눈에 비치는 아내의 몸은 점점 작아지고 희미해지는 것같았습니다. 

저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아내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슬퍼보이는 아내의 얼굴을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아내의 눈물을 바라보다 저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털썩 주저앉으며, 그녀의 허벅지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미안해, 현수야. 정말 미안해." 


아내의 다리를 감싸 안으며 무의식적으로 제 입에서 나온 말 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나온 말이 왜 "미안했다"가 아니라 "미안해"였는지... 나중에도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때 이미 제 마음 속 또 다른 저는 결정을 내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그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아마 아내 혼자였을 겁니다. 

그래서, 그 때 그녀의 허벅지에 고개를 묻고 있는 제 머리를 꼭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슬프게 말했던 겁니다. 


"역시... 저 만으로는 안 되는 거네요." 


속삭이듯 그렇게 말하면서... 아내는 울면서 작게 슬퍼 보이는 듯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희망이 꺼져버린 듯한 힘없는 속삭임, 그 절망의 깊이를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욕망의 굴레에 사로잡혀 있던 저는 어떤 위로의 말도 아내에게 할 수 없었습니다. 

달이 아름다운, 너무나 조용한 밤의 일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옆 자리에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저는 천천히 일어나 시계를 보았습니다. 

시각은 아직 여덟시 더 자도 되겠다고 생각해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안돼요. 식사 시간은 아홉시로 정했으니까요."


그렇게 못 박는 아내의 얼굴이 평소와 다름없이 보여 저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알았어. 일어나, 일어난다고."


하품을 하면서 일어나 옷걸이의 가운을 걸치고 저는 이불이 깔린 방을 나섰습니다.


"오늘도 날씨가 참 좋네." 


아내가 앉아 있는 창가, 그 너머로 바다와 하늘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쾌청했습니다. 

뭔가,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런 날씨라면 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뜻밖의 밝은 목소리에 놀라 전 아내를 돌아봤습니다.


"어라, 수영 갈 생각이야?"

"당신이 꺼낸 얘기잖아요." 

"하지만, 어제는 내키지 않다고 했었잖아." 

"...그렇지 않아요." 


아내는 담담하게 말하고 일어섰습니다.


"모처럼 여행 왔으니깐... 모처럼의 여름이니까요."


펜션 밖으로 한발짝 내딛자 거기서 부터는 한여름 그 자체여서 뜨거운 햇살이 피부를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피부가 많이 드러나는 노출이 있는 물빛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언덕 아래의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 중간, 해변가 근처에 있는 작은 상점에서 저희들은 수영복과 파라솔, 비닐 시트 등을 구매 했습니다. 


"얌전한 수영복이네. 비키니로 하면 좋았을텐데."


아내가 고른 엷은 파란색 원피스 수영복을 보고, 그런 감상을 말하는 저를 아내는 가볍게 흘겨 보면서,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런 건 몸매 좋은 아가씨들이나 입는 거예요."

"너도 몸매라면 한 몸매하잖아." 


팔푼이처럼 아내를 자랑하는 내 말투에 아내는 옆 점원의 눈치를 보면서 작게 수줍은 미소를 짓곤 제 팔을 꼬집었습니다.

상점을 나와 저희들은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한번 걸었습니다. 왠지 꿈 속에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이 장소에서, 어제부터 연달아 일어난 비일상적인 일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비상식적인 일들.... 

주위 모든 것이 점점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어 알 수 없게 되어가는 것같았습니다. 


가장 이상한 것은 지금 제 옆에서 걷고 있는 아내였습니다. 

항상 소극적이었던 아내가 오늘은 아내 쪽에서 먼저 저를 유혹해, 바다에 수영하러 가자고 말을 꺼낸 것입니다. 

아내의 차분한 표정에는 어젯밤 눈물을 흘렸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그것이 정말로 있었던 일이었나? 하고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수영하는 게 몇년 만인지."


왠지 생기가 있어보이는 얼굴로 아내가 말했습니다.


"현수는 수영 잘 해?"

"어때 보여요?" 


아내로서는 드물게 장난기 어린 얼굴로 아내가 물었습니다.


"솔직히 잘 할 거 같진 않다."

"어머, 너무해요. 이렇게 보여도 운동 신경은 좋은 편이라고요." 

"그래? 몰랐네. 부부여도 아직 서로 모르는 일이 있구나." 

"지금까지 둘이서 멀리 나간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렇네. 앞으로는 자주 가자. 이곳 저곳 놀러 다니자." 



별 의미없이 한 말이었지만, 왠지 그 때 아내는 순간 진지한 얼굴이 되더니, 곧 엷은 미소를 띠었습니다.


"그렇게...해요."


남해의 여름바다는 여느 때완 다르게 보기 드물게 파랗고 맑았습니다. 

어제도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오늘도 역시 하얀 모래사장 위에는 젊은이들과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꽤 눈에 보였습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저희들은 가슴 가득히 바다냄새를 들이마시고, 햇볕에 불타는 듯한 모래를 밟으며 오래간만에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는 아까 자신이 말한 대로 제법 수영을 잘해서 쭉쭉 헤엄쳐 나가더니, 잠시 멈춰서 저를 돌아봤습니다. 

거기에 미소로 답하고 저는 평형으로 천천히 그녀를 쫓아 갔습니다.

첨벙첨벙 서투르게 물을 휘저을 때마다 파도의 물결이 공중으로 튀어 햇살에 비쳐 반짝였습니다. 그것은 꿈처럼 아름다운 여름의 풍경이었습니다. 저


희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에는 티끌만한 불안도 없어 보였고, 모두 잠깐 초원에 풀어놓은 망아지마냥 파도와 장난치거나 연인과 어울리며 행복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즐거운 여름....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들떠 보이는 아내 그녀의 물에 젖은 육체는 태양의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행복과 쌍둥이로 태어난다. 즐거운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제 뇌리에 떠오르는 바이런의 격언처럼... 


"어이, 너무 멀리 가면 위험해. 이제 돌아가자." 


한바탕 헤엄친 뒤, 저는 아내에게 그렇게 말하고, 먼저 세워 뒀던 파라솔이 있는 장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수영하니 좀 피곤한 걸." 


파라솔 아래 그늘에서 시트 위에 앉은 저는 정강이에 붙은 젖은 모래알들을 탁탁 손으로 털어내며 한숨처럼 투덜거렸습니다.


"나이를 먹었나 봐."

"평소에 운동을 안 하니까 그렇죠." 

"그렇기도 하고. 운동이래야 매일 역까지 왔다갔다 걷는 정도니.... 하지만, 월급쟁이들이 전철로 출퇴근하는 것도 나름대로는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애써 변명을 하는 제게, "그런가요?"하고 대꾸하면서 아내는 양팔을 앞으로 쭉 뻗어 위 아래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왜 그래?"

"햇볕에 탈 거 같아서요." 

"당연하지. 여름에 바다에서 헤엄치면 당연히 타지. 그리고, 너도 조금은 햇볕에 타는 것이 좋아. 건강하게 보일 걸." 

"마치 평소엔 제가 환자같다는 말이군요." 

"그런 말은 안 했는데." 


거기에서 아내는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뭐야? 왜 그래?"

"아뇨...사실은 병은 아니지만..."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거야?" 

"그게 아니라..." 


조심스러운 아내의 말투에 저는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궁금하게 하지 말고, 뭔데?"

"실은... 지난 달부터 그게 없어서..." 


청천벽력이란 이런 일을 가리키는 거였습니다. 제 얼굴은 어벙벙함 그 자체였습니다.


"...잠깐만. 정말이야?"

"거짓말이에요." 


몸에서 힘이 빠졌습니다. 아내는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미안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농담을 해 보고 싶어져서."

"네가 농담하는 것은 오늘 처음 봤어. 아니, 그것보다 아무리 처음하는 농담이라도 그런 농담을 할 건 없잖아. 그나저나 무슨 일 있어? 오늘 현수는 어딘가 좀 이상한 거 같아."


제 말에 아내는 한순간 묘한 표정으로 저를 보더니 빙긋 웃었습니다.


"그래요. 이상해요. 오늘 저는. "

"...왜?" 


제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아내는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향해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아내는 불쑥 입을 열었습니다. 


"아까 농담이 사실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이가... 있으면 좋겠어? 하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말은 안했잖아."

"그렇지 않아요." 


아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렇지 않아."

무엇이 그렇지 않다는 건지 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내의 모습이 평소와 다른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평소와 다른 이유라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혼례를 치른 새색시가 첫 날밤을 설레임과 두려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아내의 모습... 

아내가 뭔가 기대하고 있는 듯한 이 모습은... 춘식이와의...???


그러니까... 저는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 


"여전히 사이가 좋아 보이는 걸, 부러운데."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하체에 딱 붙는 검정색 삼각수영복을 입은 춘식이가 서 있었습니다. 

천 위로 불툭 튀어나온 녀석의 그것이 두드러지게 보이고 있었습니다.


"결혼 안 한 나같은 사람은 질투나서 살겠냐?"

"넌 언제부터 여기에?" 

"아침부터 와 있었어. 너와 제수씨를 발견한 것은 좀 전이었지만." 


덩치 큰 춘식이의 구릿빛 근육질의 육체는 여름 햇살을 받아 윤기있게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녀석의 몸 앞뒤로 요란하게 새겨진 용문신은 저희 세 사람 주변을 순식간에 조용하게 만드는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두려움과 경멸이 섞인 눈으로 힐끔거렸고, 일부는 몸을 일으켜 그 자리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춘식이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오히려 즐기는 듯한 태연한 얼굴이었습니다. 


"너도 참 대단하구나."


제 비꼬는 말투에도 녀석은 "흥, 직업상의 애로사항이야 누구에게나 있는 일 아냐?"하더니, 이내 아내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수영복이 잘 어울리네요."


햇볕에 탄 시커먼 녀석의 얼굴이 활짝 웃으니 이만 하얗게 보였습니다.

춘식이가 등장한 순간부터 짓고있던 미소는 사라지고 아내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어제처럼 말문을 닫지는 않고 

"고마워요."하고 녀석의 칭찬에 새침하게 작은 목소리로 답례했습니다. 


춘식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저희 파라솔 안으로 성큼 들어와 시트에 앉았습니다.


"너 혼자 바다에 오니 쓸쓸했던 모양이지?"


뻔뻔스러운 녀석에게 복수하는 마음으로 놀리자 춘식이는 시원스런 얼굴로 "간만의 휴가인데 느긋하게 보내야지. 여자 달고 와봤자 번거로울 뿐이야."라고 말하며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미소를 띤 채, 눈길을 옮겨 제 옆 아내의 몸을 삼킬 듯 바라보며 춘식이의 입술이 계속 움직였습니다.


"현지조달이란 말도 있고... 무엇보다도 여기서도 언제든 내가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여자가 있거든."


춘식이의 말에 아내의 몸이 움찔하더니, 이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게 보였습니다. 

춘식이는 그런 아내의 얼굴과 몸, 쭉 뻗은 다리를 누가 보아도 분명한 욕정이 어린 시선으로 천천히 위아래로 감상하듯 ? 훓어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런 녀석과 아내에게서 시선을 돌렸습니다. 

중간에 저를 두고 아내와 춘식이 그 둘 사이에 뭔가 야릇한 감정들이 오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갑자기 몹시 목이 말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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