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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기억력



1.
내 친구 빛나리에게는 남보다 조금, 아주 조금 뛰어난 재주가 하나 있습니다.
조그마한 일들을 아주 상세히, 그리고 꽤 오랫동안 기억하는 능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재주라고 하기엔 무언가 조금 모자란 듯하지만 그래도 간혹 그 재주가
상당히 뛰어난 능력으로 발휘될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화번호 외우는 능력입니다.
오래전, 핸드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 빛나리의 그 재주는
나의 전화번호기록부 역할을 훌륭히 해내었습니다.
친구 전화번호는 물론 동네 호프집이나 다방 전화도 줄줄이 외고 있었습니다.
매일 수첩을 꺼내들고 공부라도 하는지 그 녀석이 부르는 번호는 상당히 정확했으며
날이 갈수록 녀석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커져
상대적으로 나의 전화번호 외우는 실력은 현격히 퇴보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떤 능력으로 받아들여질 지 모르지만
옆에서 그 능력을 활용하던 내 입장에서는 아주 훌륭한 재주였습니다.

전화번호 뿐만 아니라 빛나리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세세한 일들을 잘 기억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도 그 얘기를 직접 한 당사자보다도 더 정확히 재현했습니다.
잘 외우기만 한게 아니라 유효기간도 상당히 길어서
친구들끼리 지난 일들을 놓고 말싸움이 벌어졌을 때 언제나
심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습니다.
그 능력은 아직도 탁월하여 그룹 ABBA가 유니세프 공연에서
치키티타를 부른 해가 1979년 2월이라던지,
영화 원스어폰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조 패치가 나왔었다는 사실들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능력이 돈을 번다거나 또는 인생에 성공하는데는 불행히도 영향이 없어서
지금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쓸데없는 능력으로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
얼마전에 그 빛나리와 함께 오랜만에 선배 K형 집을 방문했습니다.
5살된 그집 딸내미가 쪼로록 달려나오자 빛나리가 번쩍 안았습니다.
돌잔치때 보고 처음이니 4년만입니다.

"이 녀석 처음에는 형수 닮은 줄 알았는데 점점 형 닮아가네? 어쩌려고 그런데?"
"......?"

빛나리의 매우 정상적인 인사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배 K형의 딸은 5년전에 입양한 입양아입니다.
결혼 10년이 넘어도 아이가 없던 선배 K형은 부부와 상의하여
예쁜 공주를 입양했었습니다.
당시 그 이야기는 친구들 사이에 잘 알려진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돌잔치에 모두들 모여 한 가정을 축복해주었습니다.

도대체 그 기억력 좋은 녀석이 오랜만에 만나서 그랬는지
입양아라는 사실을 깜박했던 모양입니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상투적인 인사말이 나왔습니다.
표정도 전혀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녀석의 인사말을 들은 선배 부부의 얼굴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있었다면 옆구리라고 슬쩍 찌르고 싶었는데
녀석은 약간 멀리서 아이와 놀고 있었습니다.
선배 부부만 없었다면 뒤통수라도 한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녀석이 워낙 눈치없는 푼수려니 생각하고 애써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습니다.
지가 떡친 여자들의 신상 명세와 상황 상황은 너무도 선명히 기억하는 녀석이
이런 엄청난 일을 기억 못하다니 세상은 참 아이러니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녀석은 그런 좋은 기억력을 인생 성공의 발판으로 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빛나리는 여전히 아이와 놀아주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 갑자기 5년전 생각이 머리를 때리며 떠올랐습니다.

3.
처음 선배 K형이 입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준 사람은 바로 빛나리였습니다.
약간 놀라운 소식이었지만 어쩌면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거 참..... 잘됐다고 해야겠지?"

무뚝뚝한 나의 대답에 입양 사실을 알려준 빛나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오히려 잘되지 않았나 싶어. 그리고 우리는 더 생각하기 편하잖아?
이제부터 그 아이를 K형의 정말 아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한거 아닐까...."

4.
5년전 생각이 떠올라 얼른 빛나리를 쳐다봤습니다.
이미 두 아이의 아빠답게 빛나리는 아직도 아이와 잘 놀아주고 있습니다.
나는 녀석의 표정을 봅니다.
빛나리는 표정에는 지금 이 아이가 정말 선배의 아이라고 생각하려는 의지가
보이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입양한 아이라는 그 기억을 스스로의 머리속에서 지우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빛나리의 작은 표정에서 그리고 작은 동작에서 나는 그것을 충분히 느낍니다.
이 녀석은 작은 것들을 잘 기억하는 능력만 있는게 아니라
기억해서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쉽게 잊어버리는 능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이 새끼는 나를 놀라게 합니다.




- 일산마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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