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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강아지풀 사랑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5학년 때, 나는 무척 친한 친구 P의 집에 자주 놀러갔다. 그는 외아들이었고 부모는 연세가 많은 편이었다. 그의 부모는 외아들에게 존대말을 쓸 정도로 사랑했다. 내가 그의 집에 놀러 가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당시에는 먹기 어려웠던 삶은 달걀도 주고, 짜장면까지 시켜주었다.

그런데 P의 집은 중국인 동네(China Town)에 있었다. (참고: 인천역에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지점) 당시만해도 편족을 한 중국여자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곳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살았다. 물론 전형적인 중국식 건물들이 많았다. 그런데 붉은 벽돌 건물에, 철대문이고, 창문에는 형무소처럼 굵은 쇠창살을 한 철옹성 같은 건물들도 많았다. 어른들에게 물어보니 일제말기에 만주에서 중국인들이 한인들 학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이곳의 한인들이 중국인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패망하기 직전에 반일 감정을 돌리기 위해 중국인과 한인들을 이간질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당시 그곳에 함께 사는 한국애들과 중국애들은 평소에 잘 어울려 놀았다. 중국애들은 중국말과 한국말을 모두 잘했지만 한국애들은 중국말을 전혀 못했다는 차이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끔 중국애들과 한국애들이 집단으로 동네 싸움을 벌리는 때가 있었다. 특별한 놀이가 없었던 시절에 전쟁놀이가 무척 신났던 것 같다. 무기(장대나 몽둥이, 돌던지기)가 우세하고 숫적으로도 많은 중국애들에게 우리는 번번이 패해서 도망치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날, 중국애들이 숫적으로 적었을 때, 우리가 싸움을 걸어서 그들을 물리친 적이 있었다. 중국애들은 모두 도망쳤는데 국민학교 3학년쯤 되는 계집애는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한국애들에게 잡혔다. 한국애들은 어린 포로(?)에게 되년, 오랑캐년이라고 욕을 하고 손찌검까지 하려 했다. 나는 한국애들을 극구 만류하고 그 애에게 물었다. "넌 왜 도망가지 않았냐?"

"난 너희들과 싸우고 싶지 않아. 친하게 지내고 싶어."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3살 어린 국민학교 2학년생이었고 이름은 진수이라고 했다.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귀엽고 이상한 매력이 있는 아이였다.

그후 진수이는 나를 만나면 생글생글 웃었고, "오빠"라고 부르며 아는 체를 했다. 내게 빵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 나는 오래 동안 그곳에 가지 않았다. 당시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공부가 무척 중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어쩌다 P군의 집에 갔었는데 그가 집에 없었기에 그냥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 주위에 초록색 부라우스와 검정 치마 교복을 입은 중국 여중생들이 모여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서 즐거워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교복을 입은 중국 여학생들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 애가 내게 달려오더니, "S 오빠! 나 몰라?"하고 소리쳤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어렸을 때의 진수이라는 이름이 생각났다. "아, 너 진수이로구나! 그렇지? 아주 예뻐졌구나!"

"오빠도 아주 멋있어! 나는 오빠 생각 많이 했는데..."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내게 주었다. "나도 가끔 네 생각했어." 나는 그녀의 친구들을 생각해서 겨우 이 한마디를 남기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돌아갔다.

그후 또 1년이 지나 나는 고2가 되었다. 그때 나는 미술부는 아니었지만 독학으로 연필이나 목탄으로 풍경과 인물을 스케치하는 법을 배웠고 그림그리는 것을 즐겼다. 연필로 매우 빠르게 그리는 것이 나의 장기였다.

어느 날, 혼자 공원에서 열심히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일본식, 중국식, 한식 건물들, 동상, 바다, 선박. 섬 등을 10분만에 한 장씩 그려냈다. 그날 따라 그림이 잘 그려졌고 즐거웠다. 한참 몰두하고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보니 초록색 부라우스와 검정 치마를 입은 중국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S 오빠, 나 진수이야. 한참 구경했는데 이제야 쳐다보네."

중2학년인 그녀는 1년 전보다 훨씬 크고 매력적이었다. 나는 즉석에서 그녀의 모습을 3장 그려주었다. 얼굴을 클로즈업한 것, 벤치에 앉은 옆모습, 서 있는 전신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좋아서 깡충거리며 나를 끌어안았다.

그후 우리는 서로 집 주소를 가르쳐주고 서신을 교환하며 자주 만났다. 그녀의 집 근처에도 만났고, 학교가 파할 무렵, 우리 학교 근처에서 나를 기다리며 서성거리고 있는 그녀를 만났고, 정해진 공원 벤치에서도 만났다. 우리는 생선튀김을 먹으러 선창가에 자주 갔다. 사춘기인 우리는 급격히 친해졌다.

어느 여름날 오후, 우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표정이 밝고 명랑한 진수이는 언제나 나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팔짱도 키고, 어깨동무로 하고 팔로 내 허리를 감기도 했다. 그때 나는 문득 꽃을 꺾어 그녀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당시 그 공원에는 꽃이 하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강아지풀을 잔뜩 따서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무척 좋아하며 말했다. "나는 오빠 무척 좋아하는데, 오빠도 나 좋지?"

"좋으니까 만나지..."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았지만 고작 이런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빠, 내 몸 만지고 싶지?"

"......그래."

"오빠가 커서 나와 결혼할 만큼 나를 사랑한다면 뽀뽀도 해주고 내 몸을 만지게 해줄게. 사실 나는 한국 대학에 가고, 오빠 같은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고 싶어."

"야, 너 어린 것이 벌써부터 별 생각을 다하는구나! 나도 너와 결혼하고 싶은 정도로 너를 사랑해. 하지만 그건 10년쯤 후에나 가능할거야!"

주위는 어두워졌고 인적이 없었다. 우리는 벤치에서 앉은 채 서로 끌어안고 뽀뽀를 했다. 나는 가볍게 그녀의 젖을 만졌다. 크지는 않았지만 무척 탱탱한 촉감이었다.

우리의 만남은 뜻밖에 빨리 끝났다. 그녀의 부모가 큰 빚을 지게 되었고, 농사를 지으러 시골로 이사를 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치열한 대학입시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손재주가 많고 일을 열심히 하는 나의 아버지의 수입은 적은 편이 아니었지만 6명의 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대학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국비장학금을 주는 S대학 영어교육과에 들어가서 영어교사가 되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 나는 진수이를 찾으려고 무척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예쁘고, 착하고, 재미있는 지금의 집사람을 사귀게 되었다.

50년 전에 처음 알게 된 진수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녀의 소원대로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살아 있을까? 아니면 대다수의 중국인들처럼 대만으로 가서 그곳 남자와 살고 있을까? 지금까지도 그녀의 귀엽고 매력적인 어린 시절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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