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상의 여인을 좋아한다! (실제 경험담)
이 경험게시판은 예상과는 달리 무척 까다롭다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어떤 글을 올려야 하는 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곳에 처음 온 사람이 자기 소개하는 것은 금지 사항인가?
아무튼 내가 올리는 글들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방장님이 언제든지 삭제하십시오. (솔직히 기분은 나쁘지만) 겸허하게 따르겠습니다. 다만, 이곳에 올려서는 안되는 규정을 보다 자세하게 정해야 될 거 같습니다.
*****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상의 여인들을 (그것도 나보다 나이가 아주 많은 여인들) 좋아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나보다 30살 이상 나이가 많은 큰 이모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1960년대 후반) 친구들은 사창가에 다녀온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 중에는 임질 같은 성병에 걸려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워낙 가난해서 그런데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영화구경(무조건 미국영화)이 유일한 취미였다.
지금 조선일보 건물 자리에 당시 시네마코리아라는 극장이 있었는데 입장료가 50원이었고 미국영화만 2편씩 보여주었다. 나는 거기서 아주 많은 영화들의 보았는데, 험프리 보카드와 잉글릿 버그만이 나오는 <카사브랑카>, 록 허드슨과 에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오는 <자이언트>, 엘비스프레슬리와 앤 마가렛이 나오는 <비바 라스베가스>, 후랑크 시나트라와 앤 마가렛이 나오는 <포켓에 가득 찬 행복> 등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영화와 영화배우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나는 당시 앤 마가렛을 볼 때마다. "아, 이건 조물주의 위대한 작품이다! 신이 아니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고, 요염하고, 발랄한 여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신은 존재한다!"라고 생각하며 유신론자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앤 마가렛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백마부대로 월남에 파병되어 닌호아라는 곳에서 근무했는데, 어느 날, 미군 친구가 나트랑에 앤 마가렛이 위문 공연 왔으니 같이 가보자고 했다. "오, 하나님!" 나는 요즘 어린 여학생들이 학교를 빠지고 좋아하는 연애인들을 만나러 가서 "오빠! 오빠!"하면서 울고불고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시는 어느 극장이든 언제나 초만원이었다. 좌석에 앉아서 구경하는 기회는 드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용케 좌석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웨렌 비티와 나타리 우드가 나오는 <초원에 빛>이라는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그때 내 옆자리에 앉았던 여인이 꾸벅꾸벅 졸면서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4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긴 검정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아주 기분 좋은 향내가 났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머리를 치우지 않았다. 나는 영화 장면을 보면서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갑자기 아랫배와 그 밑에 있는 남성의 심벌(다른 말을 쓰면 게시판에서 짤리겠지?)이 벌떡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키가 큰 편이고 다리도 길었다. 가슴이 세차게 콩닥거렸지만 그녀의 검은 치마를 걷어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새하얀 넓적다리가 보였다. 나는 한참 망설이다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코를 고는 소리까지 냈다. 드디어 그녀의 성기까지 손이 닿자 소위 음모라는 것이 아주 무성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노팬티였다! 아래에 있는 내 물건은 심하게 몸부림쳤다. 당시 20세였던 나는 생판 모르는 40대 아주머니의 그곳을 오랫동안 만졌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유방까지 쓰다듬었다. 감히 주무를 용기는 없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잠들었던 그 아줌마의 손이 단단하게 텐트를 치고 있는 내 물건을 살그머니 잡았다! 아! 그녀도 나를 원하고 있었구나! 무언의 허락을 받은 나는 그녀의 성기와 유방을 신나게 주물렀다. 그녀의 성기에서 뜨거운 액체가 흐르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내 바지에 단추를 풀고 내 물건을 꺼내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가벼운 신음소리가 났다. 잠시 후, 그녀가 소근거렸다. "우리 같이 나갈래?"
그 아주버니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전기구이 통닭과 맥주를 파는 곳이었다. "아! 내가 얼마나 먹고 싶었던 것인가?" 사실 나는 그때까지 꿈속에서는 여러번 전기구이 통닭을 먹어보았지만 실제로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아주머니의 나이는 43세였으니까 나보다 23세가 많았다. 그녀의 다정한 미소는 나를 안정시키기에 충분했다. 내가 다니는 대학을 말하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말이냐고 반문했다. 그녀는 전쟁 미망인으로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팔러 다니는 아줌마였다. 경찰들에게 걸리면 몸으로 때운다고 했다. 그녀는 남자 없이는 잠을 못 잘 정도로 남자를 좋아했는데, 한번 잔 남자들은 그녀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고 때리고 돈을 빼앗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학생은 참 착하고 아주 잘 생겼어. 솔직히 학생도 흥분했지? 그 나이 남자들은 다 그런 거야. 나도 사실 굉장히 흥분했어. 나 같이 늙은 여자와 친구할 수 있겠어? 통닭과 맥주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만날 때마다 내가 그걸 사줄 게. 여관비도 물론 내가 내고. 내게 그 정도 여유는 있어."
"와, 이게 무슨 횡재냐? 호박이 넝쿨채 굴러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저도 아줌마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저는 나이 많은 여자들을 좋아하거든요."
여관에서 아줌마의 서비스는 대단했다. 우선 내 몸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에구, 때가 아주 많네. 여자들과 사랑하려면 몸 특히 고추를 깨끗이 씻어야 해." 나도 그녀의 몸을 씻어주었다.
우리는 손과 혀로 서로의 몸을 애무했다. 아줌마는 내 얼굴 (눈, 코, 입, 귀)은 물론 손가락 발가락까지 애무해주었다. 그리고 오래동안 헤비 키스를 했다. 나도 그녀가 내게 해준대로 그녀에게 해주었다. 나는 두 번 사정을 했고 아줌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흥분했다.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르자 여관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녀는 입에 수건을 물었다.
그후 우리는 만나는 날짜와 시간(목요일과 토요일 오후 5시) 그리고 장소(처음 통닭과 맥주를 마시던 곳)를 정하고 내가 군대에 갈 때까지 약 1년 6개월 정도 사랑을 나누었다.
우리는 많은 추억을 남겼다. 그 아줌마는 내게 정말 잘해주었다. 물론 나도 그녀에게 잘해주었다. 내가 목이 마르다고 하면 그녀는 자신이 물을 먹고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녀는 헤비 키스를 무척 즐겼다. 키스를 하면서도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했다. 그녀는 미군들과도 여러 번 관계를 했다고 고백했다. 미군들이 좋아한다며 성기 속에 벗긴 바나나, 가지, 바카스병을 넣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불이 붙은 담배를 그녀의 성기 속에 넣기도 했는데 그녀가 허리와 두 다리를 움직이자 담배가 연기를 뿜으며 타들어 가는 나는 크게 놀랐고 묘한 흥분을 느꼈다. 어느 날, 그녀가 자신의 항문과 내 고추에 와세린을 바르고 내 고추를 거기에 넣어보라고 했을 때 나는 굉장히 놀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의 특기는 고추 빠는 것이었다. 자신은 어렸을 때 오빠들의 고추를 많이 빨아주었다고 했다. 나도 여자의 꽃밭 빠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우리는 소위 69이라는 것을 굉장히 오래 했다. 어떤 때는 여관의 계단을 내려가기가 힘이 들었다. 그리고 내 고추와 두 젖은 며칠 동안 얼얼했다.
그녀의 제의로 산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녀는 생리적 욕구를 느낄 때, 절대로 공중변소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냥 풀섶에서 해결했다. 나는 돌아서서 그녀를 가려주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던 젊은이들에게 들켰다. 그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큰 소리로 웃자 그녀가 중얼거렸다, "내가 너희를 아냐 너희가 나를 아냐." 이 말에 나도 모르게 폭소가 터져 나왔다.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글이 경험 게시판에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면 방장님은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즉시 삭제하십시오. 저도 3번 삭제 당하면 이곳에 글 올리는 것을 단념하겠습니다.)
p.s. 이 글은 90퍼센트 이상 실제로 경험한 사실입니다. 아무리 경험담이라도 이런 글은 야설방에 올려야 하나요?
아무튼 내가 올리는 글들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방장님이 언제든지 삭제하십시오. (솔직히 기분은 나쁘지만) 겸허하게 따르겠습니다. 다만, 이곳에 올려서는 안되는 규정을 보다 자세하게 정해야 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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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상의 여인들을 (그것도 나보다 나이가 아주 많은 여인들) 좋아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나보다 30살 이상 나이가 많은 큰 이모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1960년대 후반) 친구들은 사창가에 다녀온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 중에는 임질 같은 성병에 걸려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워낙 가난해서 그런데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영화구경(무조건 미국영화)이 유일한 취미였다.
지금 조선일보 건물 자리에 당시 시네마코리아라는 극장이 있었는데 입장료가 50원이었고 미국영화만 2편씩 보여주었다. 나는 거기서 아주 많은 영화들의 보았는데, 험프리 보카드와 잉글릿 버그만이 나오는 <카사브랑카>, 록 허드슨과 에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오는 <자이언트>, 엘비스프레슬리와 앤 마가렛이 나오는 <비바 라스베가스>, 후랑크 시나트라와 앤 마가렛이 나오는 <포켓에 가득 찬 행복> 등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영화와 영화배우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나는 당시 앤 마가렛을 볼 때마다. "아, 이건 조물주의 위대한 작품이다! 신이 아니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고, 요염하고, 발랄한 여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신은 존재한다!"라고 생각하며 유신론자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앤 마가렛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백마부대로 월남에 파병되어 닌호아라는 곳에서 근무했는데, 어느 날, 미군 친구가 나트랑에 앤 마가렛이 위문 공연 왔으니 같이 가보자고 했다. "오, 하나님!" 나는 요즘 어린 여학생들이 학교를 빠지고 좋아하는 연애인들을 만나러 가서 "오빠! 오빠!"하면서 울고불고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시는 어느 극장이든 언제나 초만원이었다. 좌석에 앉아서 구경하는 기회는 드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용케 좌석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웨렌 비티와 나타리 우드가 나오는 <초원에 빛>이라는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그때 내 옆자리에 앉았던 여인이 꾸벅꾸벅 졸면서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4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긴 검정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아주 기분 좋은 향내가 났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머리를 치우지 않았다. 나는 영화 장면을 보면서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갑자기 아랫배와 그 밑에 있는 남성의 심벌(다른 말을 쓰면 게시판에서 짤리겠지?)이 벌떡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키가 큰 편이고 다리도 길었다. 가슴이 세차게 콩닥거렸지만 그녀의 검은 치마를 걷어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새하얀 넓적다리가 보였다. 나는 한참 망설이다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코를 고는 소리까지 냈다. 드디어 그녀의 성기까지 손이 닿자 소위 음모라는 것이 아주 무성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노팬티였다! 아래에 있는 내 물건은 심하게 몸부림쳤다. 당시 20세였던 나는 생판 모르는 40대 아주머니의 그곳을 오랫동안 만졌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유방까지 쓰다듬었다. 감히 주무를 용기는 없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잠들었던 그 아줌마의 손이 단단하게 텐트를 치고 있는 내 물건을 살그머니 잡았다! 아! 그녀도 나를 원하고 있었구나! 무언의 허락을 받은 나는 그녀의 성기와 유방을 신나게 주물렀다. 그녀의 성기에서 뜨거운 액체가 흐르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내 바지에 단추를 풀고 내 물건을 꺼내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가벼운 신음소리가 났다. 잠시 후, 그녀가 소근거렸다. "우리 같이 나갈래?"
그 아주버니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전기구이 통닭과 맥주를 파는 곳이었다. "아! 내가 얼마나 먹고 싶었던 것인가?" 사실 나는 그때까지 꿈속에서는 여러번 전기구이 통닭을 먹어보았지만 실제로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아주머니의 나이는 43세였으니까 나보다 23세가 많았다. 그녀의 다정한 미소는 나를 안정시키기에 충분했다. 내가 다니는 대학을 말하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말이냐고 반문했다. 그녀는 전쟁 미망인으로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팔러 다니는 아줌마였다. 경찰들에게 걸리면 몸으로 때운다고 했다. 그녀는 남자 없이는 잠을 못 잘 정도로 남자를 좋아했는데, 한번 잔 남자들은 그녀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고 때리고 돈을 빼앗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학생은 참 착하고 아주 잘 생겼어. 솔직히 학생도 흥분했지? 그 나이 남자들은 다 그런 거야. 나도 사실 굉장히 흥분했어. 나 같이 늙은 여자와 친구할 수 있겠어? 통닭과 맥주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만날 때마다 내가 그걸 사줄 게. 여관비도 물론 내가 내고. 내게 그 정도 여유는 있어."
"와, 이게 무슨 횡재냐? 호박이 넝쿨채 굴러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저도 아줌마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저는 나이 많은 여자들을 좋아하거든요."
여관에서 아줌마의 서비스는 대단했다. 우선 내 몸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에구, 때가 아주 많네. 여자들과 사랑하려면 몸 특히 고추를 깨끗이 씻어야 해." 나도 그녀의 몸을 씻어주었다.
우리는 손과 혀로 서로의 몸을 애무했다. 아줌마는 내 얼굴 (눈, 코, 입, 귀)은 물론 손가락 발가락까지 애무해주었다. 그리고 오래동안 헤비 키스를 했다. 나도 그녀가 내게 해준대로 그녀에게 해주었다. 나는 두 번 사정을 했고 아줌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흥분했다.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르자 여관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녀는 입에 수건을 물었다.
그후 우리는 만나는 날짜와 시간(목요일과 토요일 오후 5시) 그리고 장소(처음 통닭과 맥주를 마시던 곳)를 정하고 내가 군대에 갈 때까지 약 1년 6개월 정도 사랑을 나누었다.
우리는 많은 추억을 남겼다. 그 아줌마는 내게 정말 잘해주었다. 물론 나도 그녀에게 잘해주었다. 내가 목이 마르다고 하면 그녀는 자신이 물을 먹고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녀는 헤비 키스를 무척 즐겼다. 키스를 하면서도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했다. 그녀는 미군들과도 여러 번 관계를 했다고 고백했다. 미군들이 좋아한다며 성기 속에 벗긴 바나나, 가지, 바카스병을 넣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불이 붙은 담배를 그녀의 성기 속에 넣기도 했는데 그녀가 허리와 두 다리를 움직이자 담배가 연기를 뿜으며 타들어 가는 나는 크게 놀랐고 묘한 흥분을 느꼈다. 어느 날, 그녀가 자신의 항문과 내 고추에 와세린을 바르고 내 고추를 거기에 넣어보라고 했을 때 나는 굉장히 놀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의 특기는 고추 빠는 것이었다. 자신은 어렸을 때 오빠들의 고추를 많이 빨아주었다고 했다. 나도 여자의 꽃밭 빠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우리는 소위 69이라는 것을 굉장히 오래 했다. 어떤 때는 여관의 계단을 내려가기가 힘이 들었다. 그리고 내 고추와 두 젖은 며칠 동안 얼얼했다.
그녀의 제의로 산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녀는 생리적 욕구를 느낄 때, 절대로 공중변소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냥 풀섶에서 해결했다. 나는 돌아서서 그녀를 가려주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던 젊은이들에게 들켰다. 그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큰 소리로 웃자 그녀가 중얼거렸다, "내가 너희를 아냐 너희가 나를 아냐." 이 말에 나도 모르게 폭소가 터져 나왔다.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글이 경험 게시판에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면 방장님은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즉시 삭제하십시오. 저도 3번 삭제 당하면 이곳에 글 올리는 것을 단념하겠습니다.)
p.s. 이 글은 90퍼센트 이상 실제로 경험한 사실입니다. 아무리 경험담이라도 이런 글은 야설방에 올려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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