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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사무치는..하루하루가 지나고.. 슬픈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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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네이버3에 가입한게 2000년 4월 정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곳 경방에 처음으로 글을쓰게 되는군요....

조금은 지루할지도 모르는 아니...아직은 어리고 인생...

그 자체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멋대로 지껄일지도 모를듯한

상스가....지나온 저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려고 합니다...

후후...막상 글재주도없 넘이 글로써 표현하려니 생각과는 다르게

어떻게 서두를 이어 나가야 할지 모르겠군여....

상스 처음 좌절이란걸 느끼었을때....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이 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친한친구에게 보증을 서준것이 잘 못 되어

부도가나고 저희 어머니는 한동안 어머니 친구분의 다방에 나가서

카운터를 봐주게 되었죠...

그때부터 인것 같습니다...저희 집의 화목하고 다정한 가정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것이....

서울 명지대학교의 남가좌동에 살다가 집 까지 차압을 당하고

쫏기다 시피 도망쳐 그때당시는 주위에 논밭이 드물게 보였던

서울 거여동 쪽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재수없는 상스의

인생이 뒤틀리기 사작했죠....

거여동으로 식구들 모두가 거처를 옮긴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이었고 바로 위의 누나는 6학년 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부도로 인하여 아버지는 거의 한달에 한번 보기가

힘들었고 어머니는 1주일에 한번 씩만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약 4개월뒤인 추운겨울 ....제가많이 아퍼 집에서

꼬박 3일째 앓던 중이 었습니다...저희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저의 볼을 쓰다듬에 주시고 제 바루 밑의 남동생

손을 꼬옥 붙잡으시더니 당분간 이모네 집에서 있을터이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눈물을 흘리 시더군요...

당시에 어리기만 했던저....

아픈 나를 놔두고 동생만 데리고 가버리는 엄마가 왜그리고

미웠는지...그것이 마지막 이라는 것을 모르고

나를 놔두고 동생만 데리고 가는 어머니가 그렇게 미울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그렇게 동생만을 데리고 가버리고

저와 누나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남가좌동 근처에

우리 세 식구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죠..

그때 알었습니다...

동생만 데리고 가버린 어머니가 누나와 나의 친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당시 어리기만 했던 저 충격이 상당히컷나 봅니다....

학교도 수없이 빠지기 일수였고 날이 갈수록 드는 생각은

왜 드라마나 소설책에서만 보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야 하는것인가..

그런..내가 살어가면서 전혀 득이 될수 없는 생각만들게 되더군요...

아버지는 어떻게든 우리 세 식구 잘 살어 보겠다는 일념하나로

다시 사업을 시작 하셨지만...뜻데로 되지 않으셨는지...

제가 6학년 올라가던 시기에 저희는 경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6학년을 시작하며 약 5개월이 지났을 무렵

누나와 나를 낳어 준 친 어머니라는 분을 첨음 보게되었습니다...

낳은정 보다는 길러준 정이 더욱더 깊다고 하지여...

그래요...그랬습니다..

친엄마라는 사람...처음 만나도 그저 아무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러게 처음으로 엄마를 보게 되었구 그게 마지막이었지요...

그로부터 일년후제가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아버지가 하시던 일이 그럭저럭 자리를 잡혀가던중

서울로 다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말하자면..

아버지는 서울에 살게 되었고 저와 누나는 부천

큰아버지의 집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부평에서 서울 남가좌동의 명지 중고등 학교에

다니던 저와 누나는...

아니 누나와는 거리가 먼 저는 상당히 삐뚤어져 나가기만 했습니다...

그당시에 큰아버지의 집은 큰 머니와 큰아버지는 필리핀에서

거주하던 당시여서 친척 누나와 형과 친 할머니 한분과 지내던 시기였습니다...

저라는 인간...

세상 모든 서러움이 단지 나에게만 일어 난다는 생각에

학교두 거의 나가지 않다 시피하고....

결국은 중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 시작되던 시기에

저의 하복을 챙겨 학교로 찾어온 아버지에 의하여

자퇴 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땅시에 상스...아니 저 이 동 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내가 직접 꺽어온 나뭇 가지로

종아리 세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못난 자식 테어나 처음 으로 손찌검을 하게된 저의 아버지...

그날 친 할머니 앞에서 무릅 꿇고 세시간을 넘게 통곡을 하시더군요...

아버지가 못나서 자식 놈 제대로 가르침도 못받게 하고

오히려 몽둥이 질까지 하였다고..

후후...그때까지 정신 차리지 못한 상스....

그길로 집을 뛰쳐나와 8개월이 넘게 다른 친구들 형들과

양아치 짓이란짓은 모두 하면서 돌아 다녔습니다...

저희 아버지...한국 산업디자이너 대표 이사셨습니다...

믿으실런지는 모르지만....

대우전자 공기 방울 세탁기 나올 당시에도

그세탁기 초창기 모델이 저희 아버지가 디자인 해준겁니다....

항상 자기 자신 보다는 아버지 또는 우리 가족보다

더욱더 못한 사람들을 우선 적으로 생각하셨고

오히려 몸 성하고 그런 분들 보다는 장애인 분들을

모아다 기술을 가르치며 그것을 낙으로 생활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런 아버지 항상 실망 시키며 지낸지 6개월후 어드덧 저도

내 또래의 친구들은 모두들 공부하며 학교에 다니는 것이

부러워 지더군요...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집으로 뛰쳐들어가

다음해 중학교 1학년 2학기에 복학을 하였습니다..

사람 마음 이란게...웃기 더군요...

처음에는 학교만 다시 다닐수 있다면...

모든지 할수 있을 것만 같었던 나 였는데...

그런 결심 정확히 한달 만에 무너 졌습니다...

그뒤로 다시 집을 뛰쳐 나간뒤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상당히 나쁜 짓을 하고 다녔죠....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는 지은죄가 너무 커 말을 할수 없지만

결국은 보다못한 아버지가 큰아버지가 있으신

필리핀으로 보네 버리시더군요...

그곳으로 단지 알파뱃만을 겨우 띄고간 저...

한달간은 학교 다니며 선생이 떠들건 말건 별 신경을 쓰지도 않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뒤 점점 영어에 눈을 띄기 시작하며

저라는 인간이 처음으로 공부에 눈을 뜨게 되었져...

약 일년이 지난후 비자 문제와 더불어 한국에 나가서

검정고시를 본후 필리핀에서 대학을 다니라는 큰아버지의

의견에 한국에 들어 왔지만....

역시 천성이란건 어쩔수 없는지

필리핀 가기전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 사뭇 보고 싶더라고요

그 보고싶음을 억누르지 못한체 결국은 친구들을 만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까지 놓여 결국은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이 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때 아버지 또한 큰아버지 까지 한국에 들어와

눈물을 지으며 한탄을 하셨습니다...

그래봤자 내가 지은죄...후후

6개월후에 부모 의탁으로 나온뒤...

아버지와 누나와 저...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런 빠듯하지만....행복했던삶,....

얼마 가지를 못하더군요...

1996년 1월 3일...아버지께서 아버지 친구분의

개업식에 다녀오신다며 회사에서 퇴근후 집 앞에 주차를 시키신후

친구분의 개업식에 가셨습니다...

누나와 저 저녁늦게 잠이 들무렵 약 새벽 2시쯤음

전화가 오더라구요...

아무렇지 않게 받은 전화...

경찰서랍니다...

저의 아버지 깨서 횡단보도를 건너 오시던중...

출이 만취해 운전하던 운전자에게 치여 지금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응급실에 게시다고....

걱정말라고 단지 머리 몄바늘 꿰매고 나오 실거라고

그러더군요....

그래도 남자였던지...

누나를 진정 시키고 저혼자 택시타고 병원에 도착해

찾은 아버지...

정말로 경찰의 말대로 아버지가 머리 몄바늘 꿰매고

웃으시며 나올줄 알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맞이 하던것은 응급실에서

산소 호흡기에 겨우 숨을 이어가며 의식 불명인 아버지 뿐이더군요..

담당 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사고가 나면서 머리를 다치셨는데...

머리가 차라리 깨져서 피가 밖으로 흘렀으면 다행이지만...

그러지를 못하고 뇌 안에서 피가 응고가되 었답니다...

즉...뇌사져...후후...

그로부터 중환자 실로 옮겨진 20일후 누나와 제가

친척 형과 저녁을 해결하기 위하여 신촌에 다녀온뒤...

누나와 내가 보는 앞에서 숨을거두 셨습니다...

솔직히 받어 들일려 했습니다...

의사의 말로두 살어 나실 가망성이 5%이내이고

살어 나셔두 식물인간이나 다름 없다고 하였기에...

그 어린나이에도 그래도 집안의 장남이라고 누나 또한 동생이

울지어도 나만큼은 누나와 동생에게 힘이 되어주자고 다짐 했지만...

왜 그렇게 눈물이 흘러내리던지....

참으려참으려 애를써도 병원이 떠나가라 흐느끼는 눈물은

어쩔수가 없더군요...

그뒤 가해자 측과 저희 아버지가 들어놓은 생명 보험금이

대략 2억이 넘게 나왔습니다...

그런데...저희가 그 보험금을 탈수가 없더군요...

누나 그리고 나 둘다 미셩년자...

법적으로는 집안의 장남 상속자가 저로 되있지만...

안되더라구요....

그때당시에 제가 6학년때 처음 만난 친엄마가 나타났습니다...

솔직히 그리 믿음이 가지는 않었지만...

그래도 친엄마 더군다나 아버지의 형제들

큰집 식구들이 아버지의 보험금으로 자신들의 허용심을 체우려

한다는 것을 알고 친척들집을 거의 뒤집어 놓다 시피한

저였기에 모든것을 친엄마에게 위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것이 실수더군요....

그당시에 친엄마가 같이 온남자가 있었는에..

저와 누나 에게는 외삼촌이라고 말을 하였기에...

누나는 당시에 명지 여자고등학교에 재학중이여서

남가좌동 근처에 하숙집에서 생활을 하였고

저와 엄마 그리고 외 삼촌이라는 생소한 사람과...

서울 안암동에 자리를 잡고 저희 엄마는

아버지 에게서 나온 보험금으로 양재동 삼호물산뒤에

커피숍을 차려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당시에 저는 안암동 아니 신설동이져...

수도학원을 다니며 검정고시에 열중하였고

학원이 오후 1시에 끝나자마자 엄마의 가게로 나가서

일손을 도왔습니다,.....

그거 아시져....

어무리 확실한 거짓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들통 난다는것...

같이 엄마와 4개월을 지내던중...

점차 외삼촌 이라는 사람이 엄마의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나는 그때 당시에 이미 알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단지 아직은 어렸던 나...나를위하여 그래도 엄마라는 둘래에 나를 놓아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같이 살것을 거부하며 어린 나이에 하숙생활을 결심하였는지도요..

아무튼충격이 상당히 컷던 저였기에...학원을 다녀온후

소주 한병과 수면제 100알을 먹고 죽을 결심을 했던거죠...

그렇게 약을 먹고 침대에누워 있던중...

집에 볼일이 있었던건지...

삼촌이라는 엄마의 내연의 남자가 집에 들어와

저의방에 흩어진 약과 술병을 보고 이병원 저병원

뛰어 다녔습니다...

2군데의 병원을 거쳐 결국은 고려대 병원에 들어가

위세척을한뒤 2~5일간 중환자 실에 입원 하여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한체 바로 퇴원시킨후 친 엄마와

그 남자가 저를 방안에 가두어 놓고 목도로 약 2시간 가량을

때리더군요...이유인즉...

엄마와 그남자가 신발과 청바지 한벌씩 해입을려고

둔 40만원을 너가 두시간도 안되서 까먹냐는 이유였습니다...

정말로 서럽더라구요...그때의 기분은 어떻게 상상도 안갑니다...

그렇게 두두려맞고 일주일간을 집에서 몸져 누운뒤....

바로 집을나와 응암동에 혼자 피자가게에서 생활을 하며...

정말로 독하게 지냈습니다....

아침 10시에 가게 문열고 저녁 11시에 가게가 끝나면

바로 독서실로 달려가 검정고시 준비를 하며 지낸지

3개월...그해 4월 검정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제가 합격하던 당시 아니 그전에 제가 집을 나온뒤....

그모든 고통은 저의 누나가 당해내야 했지요....

저희 누나 나라는 인간 하나때문에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대학도 포기하고 아니...

사실 적으로 말하면...

누나가 대학에 원서넣을때 원서값도

엄마라는 분이 주지를 않었습니다....

누나가 엄마에게 매달렸답니다...

저 대학, 공부다 포기할수 있으니...

동생과 살수있게 월새방 한칸이라도 마련해 달라고...

더이상 엄마에게 아무조건 없이 동생과 둘이 살겠다고...

저의 친엄마라는 인간...

단호하게 거절했답니다....

너희 아빠 죽고 남긴 이돈 너희가 아니라

나한테 자기 자신에게 남긴돈이라고....

너희들은 내가 먹여주고 입혀주는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해 해야한다고....

그딴 소리할려면 꺼지라고....

그뒤로는 저희 누나 하숙비도 안주더군요...

결국 그해 4월 저는 검정고시를 합격하였고

19세의 나이에 신촌의 단란주점 삐끼집에서 돈을벌며

생활을 하였습니다...

누나는 결국 하숙집에서도 쫏겨나고...

한달에 10만원 내고 생활하는 고시원에 들어가

오로지 나 하나만을 바라보며 술집에서 일을하였져...

그렇게 서로 누나는 나를 나는 누나를 바라보며

함께 살 날들을 기다리며 생활 하였지만...

제가 철이 없던건지...

이여자 저여자와 동거를 하면서 지내고...

결국은 같이 동거하던 여자에게 5백만원의 월세 보증금을

사기 당한뒤 입고있던 옷만 입고 누나가 저를 위해

결심한 보증금 300만원의 일수방에 들어가 누나와생활을 하였습니다..

정말로 누나의 눈물나는 생활력에 1년뒤 500만원의 돈을 벌어

방두칸짜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해 정신차리고 위니아 에어컨 서비쓰 센터에

들어간 저...얼마전 헤어진 3년사귄 여자와 만나서

그때 당시에는 정말로 부러울것 없이 누나와 저의

행복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생활을 하던중...

허영심인지...아닌면 배운게 도둑질라고

쉽게 돈벌고 쉽게 돈쓰던 저였기에 그런지....

이리저리 빛을 끌어 신촌에서 단한주점을 차리게 되었져...

아니나 다를까 같이 동업하던...선배...뒤통수치고...

도망 가더라고요... 그렇게 한동안 실의에 빠져

하루 하루를 거의 술로 보네다 시피 하였습니다...

물론 옆에서 누나와 여친의 보살핌이 컷지요...

그러던중.. 제작년? 음주 운전에 걸리어 면허 취소...후후...

아마도 낙방에 있을겁니다...

정신 못차리고 일한답시고 무면허에 계속 운전대 붙들고 다녔습니다...

벌금 200만원이 나왔지만...낼 엄두도 못 내면서 말이죠...

약 그렇게 8개월을 다니다 선배와 강릉으로 일을하러 갔었져...

없는돈 빡빡 긁어모아 강릉에 갔지만...

이건 답답해 하던 선배의 장난에 바람 쐬러 온것 뿐이 안되더군요....

화가 났습니다...

없는돈 긁어 모아 단지 바람쐬러 강릉에 다녀온것이라니...

서울 올라와 술한잔 걸치고 집에 들어가 옷 갈어입고

안양의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갈려고 했는데...

집앞의 움주운전 단속에 걸릴줄이야....

결국 무면허 움주운전에 전에 취소당할 당시에 내지 못한 벌금에

의하여 구속...영등포 구치소에서 한달 넘게 있다가

집에서 내어준 돈으로 나왔습니다....

세상...정말로 웃깁니다...

왜 도데체 내가 무엇을 그렇게 전생에 크디큰 잘못을 하였기에...

이렇게 사는지...후후...

남들도 다 그렇겠지만...저도 떵떵 거리며 돈걱정 없이 잘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 이더군요....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너무도 어린나이에

가까운 친인척 또한 피붙이 자식들까지 등지고 안면 몰수하는

부모두 저에게 있었습니다...

지금 저희 친 엄마라는분...

일본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당시에 외삼촌이라고 속이던 내연의남자...

그사람두 지금은 버림 받고 지내고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그 남자도 이용당한거지만...

어떻게 자기가 배아퍼 낳은 자식들을 돈몄푼에 버린단 말입니까...

지금은 제가 바보인건지...아니면 아직도 제가 세상을 보는눈이

멍청한건지...3년사귀 여자와헤어지고 그여자 잊지못하여

다른여자에게 눈을 돌린뒤 그여자에게 보증서주고

20일전 그여자게게 800만원 다시 사기당하고..후후...

제가 전생에 지은죄가 많은 것 이 겠죠.....

산다는 것....가끔은 정말로 불공평 하다고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저도 행복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내가 슬퍼도 다른사람에게 그슬픔 안보이려 내가 슬퍼하면

그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 분위기 망칠까봐..애써...

웃음지으며 그 분위기 맞추어 주는것도 싫습니다...

세상을 보는지혜...

어떻게 하면 세상을 올바르고 즐겁게 지낼수 있을런지...

저희 누나 4월에 결혼했습니다...

매형...삼성 다니고요...10월7일...2일 남었군요...

10월 7일에 저희 누나 아기 낳습니다....

저때문에 힘들어했고 지금도 힘겨워하는 우리누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그행복 지금 혼자 살면서

하루하루 힘겨워하는 저에게도 조금이나 돌아올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진실되게 빕니다....

지금도 저 혼자 사는 집에 책장에는 누나가 저에게 2년동안

일기 식으로 써준 노트가 한권있습니다...

그것을 볼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저희 아버지 돌아가시고 저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놈 입니다...

가기 싫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이런 내모습 보이기가 싫군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가 결혼하거나 성공하면...

"아버지 나...아버지 아들 동진이가 이렇게 잘돼서

어버지 차자 왔어어요..."

그런말 하며 찾어 뵙고 싶네요....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지금껏 나 하나만을 바라보며 어떤일 마다않고

뒷바라지 해준 누나....

이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상스...아니 동진이...

정말 열심히 살겁니다....

상스가 오늘 술을 무지 많이 먹고 괜싫이 쓸대없는 말을

주절 거린듯 하네요....후후...

어쩌면 경방에 첨쓰는 이글이 이리도 어색한지...

혹은 제가 술이깬 내일이면 이글이 지워 질수도 있겟군요...

좀전에 그날누나의 방송을 들으며 약간 글쩍이다

선배와 밖에나가 다시 술한잔 하고 들어와 다시 끄적입니다....

가족님들....항상 평안하고 즐겁게 보네시기를....

그래도 아직은 상스 팔팔 합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한 상스보다 더욱더 어렵고 힘들고

그러한....삶을 살어 오신분들도 많으니까여....

아직은 젊고 팔팔한 상스 젊음을 무기로 잘 살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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