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 후배와의 관계
며칠전이다. 하던 일이 잘 마무리되서 기분좋게 부서 회식을 하게 되었다. 1차는 횟집에서 간단히 술을 곁들여셔 끝내고 2차는 노래방을 갔다. 그런데 부하 직원이자 대학 같은과 후배인 그녀가 술을 좀 과하게 했다. 그래서 나도 피곤하던 차에 잘 됐다하고 나머지 후배들에게는 얘 데리고 먼저 좀 가겠다고 했더니 대환영이다. 여직원 보내고 지네들끼리 좋은 데 갈 심산이다. 얘하고 나는 이웃에 살기 때문에 같이 가더라도 의심할 놈은 없다. 내 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얘는 같은 과 4년 후배인데 결혼한지 3년인가 되었다. 대학원 마치고 취업해서 노처녀로 오랫동안 있다가 뒤늦게 외국에서 학위따고 온 늙다리 박사하고 결혼했었다. 그런데 아직 애도 없고 남편과는 성격 차이도 있고 시댁과의 문제도 있어서 부부 사이가 원만치 못하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운전하면서 보니까 얘는 조수석에 길게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데 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야, 너 이렇게 술먹고 들어가면 남편이 워라 않하니하자 그런 소리 할 사람도 없어요 하는 것이었다. 외국 출장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심심하겠나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동네 근처에 왔는데 갑자기 나에게 오빠, 술 한잔 더 먹으면 않되요하는 것이었다. 얘는 지금까지 나에게 오빠라고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학교 다닐때는 형, 직장에서도 형, 요즘은 실장님이라 한다. 그것도 물기가 촉촉한 목소리로 그러는 것이었다. 평소 목소리는 좀 허스키하고 보이시한 편이다. 항상 씩씩하고 쾌활했었는데 결혼하고 많이 어두워진것 같았다.
술 먹기는 밤이 너무 깊었고 어디가서 차나 한잔 하자했다.
얘하고는 사실 남모르는 사연이 있다. 학교 다닐때는 4년 차이니까 한참 후배였고 대학원 다닐때 조교로 학부 수업 몇번 들어가서 본 기억이 있는데 수업 중이었는데 팔을 들어서 우연히 겨드랑이 털을 본 적이 있다. 꽤 많았고 길었었다. 얼굴은 탈렌트 조은숙같은 스타일인데 몸이 너무 말라서 별명이 올리브였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건포도라고 키득대는 녀석들도 있었다. 이후 나이차가 많아서 같이 어울릴 기회는 거의 없었는데 몇년 후 우리 부서로 입사를 한 것이다. 첫 출근하던 날 선배라고 얘를 데리고 사무실마다 다니며 인사를 시켰었다. 그때 다들 농담으로 야, 잘 어울리는데 언제 날 잡았어하고 농담을 하니까 그애 얼굴이 빨개졌었다. 후배라서 편한 마음으로 업무를 가르쳐주고 어려운 일이 있는 것 같으면 도와주곤 했었다. 때로 귀챦은 일을 후배라고 부담없이 시키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가끔 겨드랑이 털 생각을 하곤 했었다.
얘가 입사하고 1년쯤 되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는데 나중에 옆 부서 여직원에게 그애를 놔두고 그럴 수 있냐는 농담 비슷한 비난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이순간 나에게 오빠라고 부르면서 울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힘들다고 그 사람 귀국하면 이혼 수속 밟을 거라고 하면서 대학교 다닐 때부터 오빠를 좋아했었는데 오빠가 결혼해서 혹시 이혼이라도 할 까 몇년을 결혼도 않하고 기다렸었다는 것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회사에 들어 온 첫 날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시킬 때 마치 오빠의 신부가 된 느낌이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녀의 겨드랑이 털을 본 순간부터 아련한 느낌을 가진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는 가끔 수업에 들어가는 조교 형이었을 뿐이었다. 특별히 가까이 할 명분이 없어서 애만 태우다가 회사에서 다시 만났는데 사내 연애를 할 용기까지는 없었고 그 때도 그녀의 입사 동기들이 주변을 멤돌았었다.
그녀도 먼 발치에서 내 모습을 보곤 했다고 한다. 짝사랑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차마 고백할 용기는 없었다고. 이제 불꽃같은 젊은 시절 다 보내고 삼십 중반이 넘어서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차를 다 마시고 오늘 있었던 일은 우리 잊어버리자 하고 그애를 집으로 보냈다. 우리 집에 들어가서 잠들어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니 깨끗하게 드러온 것 잘 한 것 같았다.
지금 한가한 시간, 업무 시간중에 이 글을 쓰면서 유리창 넘어 사무실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본다.
얘는 같은 과 4년 후배인데 결혼한지 3년인가 되었다. 대학원 마치고 취업해서 노처녀로 오랫동안 있다가 뒤늦게 외국에서 학위따고 온 늙다리 박사하고 결혼했었다. 그런데 아직 애도 없고 남편과는 성격 차이도 있고 시댁과의 문제도 있어서 부부 사이가 원만치 못하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운전하면서 보니까 얘는 조수석에 길게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데 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야, 너 이렇게 술먹고 들어가면 남편이 워라 않하니하자 그런 소리 할 사람도 없어요 하는 것이었다. 외국 출장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심심하겠나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동네 근처에 왔는데 갑자기 나에게 오빠, 술 한잔 더 먹으면 않되요하는 것이었다. 얘는 지금까지 나에게 오빠라고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학교 다닐때는 형, 직장에서도 형, 요즘은 실장님이라 한다. 그것도 물기가 촉촉한 목소리로 그러는 것이었다. 평소 목소리는 좀 허스키하고 보이시한 편이다. 항상 씩씩하고 쾌활했었는데 결혼하고 많이 어두워진것 같았다.
술 먹기는 밤이 너무 깊었고 어디가서 차나 한잔 하자했다.
얘하고는 사실 남모르는 사연이 있다. 학교 다닐때는 4년 차이니까 한참 후배였고 대학원 다닐때 조교로 학부 수업 몇번 들어가서 본 기억이 있는데 수업 중이었는데 팔을 들어서 우연히 겨드랑이 털을 본 적이 있다. 꽤 많았고 길었었다. 얼굴은 탈렌트 조은숙같은 스타일인데 몸이 너무 말라서 별명이 올리브였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건포도라고 키득대는 녀석들도 있었다. 이후 나이차가 많아서 같이 어울릴 기회는 거의 없었는데 몇년 후 우리 부서로 입사를 한 것이다. 첫 출근하던 날 선배라고 얘를 데리고 사무실마다 다니며 인사를 시켰었다. 그때 다들 농담으로 야, 잘 어울리는데 언제 날 잡았어하고 농담을 하니까 그애 얼굴이 빨개졌었다. 후배라서 편한 마음으로 업무를 가르쳐주고 어려운 일이 있는 것 같으면 도와주곤 했었다. 때로 귀챦은 일을 후배라고 부담없이 시키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가끔 겨드랑이 털 생각을 하곤 했었다.
얘가 입사하고 1년쯤 되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는데 나중에 옆 부서 여직원에게 그애를 놔두고 그럴 수 있냐는 농담 비슷한 비난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이순간 나에게 오빠라고 부르면서 울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힘들다고 그 사람 귀국하면 이혼 수속 밟을 거라고 하면서 대학교 다닐 때부터 오빠를 좋아했었는데 오빠가 결혼해서 혹시 이혼이라도 할 까 몇년을 결혼도 않하고 기다렸었다는 것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회사에 들어 온 첫 날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시킬 때 마치 오빠의 신부가 된 느낌이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녀의 겨드랑이 털을 본 순간부터 아련한 느낌을 가진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는 가끔 수업에 들어가는 조교 형이었을 뿐이었다. 특별히 가까이 할 명분이 없어서 애만 태우다가 회사에서 다시 만났는데 사내 연애를 할 용기까지는 없었고 그 때도 그녀의 입사 동기들이 주변을 멤돌았었다.
그녀도 먼 발치에서 내 모습을 보곤 했다고 한다. 짝사랑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차마 고백할 용기는 없었다고. 이제 불꽃같은 젊은 시절 다 보내고 삼십 중반이 넘어서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차를 다 마시고 오늘 있었던 일은 우리 잊어버리자 하고 그애를 집으로 보냈다. 우리 집에 들어가서 잠들어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니 깨끗하게 드러온 것 잘 한 것 같았다.
지금 한가한 시간, 업무 시간중에 이 글을 쓰면서 유리창 넘어 사무실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본다.
추천83 비추천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