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게시판에 있는 글의 일부입니다.
이 글들을 죽~ 읽어가면서 느꼈던 것인데.. 물론 다른 케이스라는건 알고있지만..
제 바램은 님이 그분의 곁에서 힘이 되주셨으면 하네요..
물론 님도 결혼 해얄 때가 있겠죠.. 하지만 그 전까진..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러다보면 여자분도 님에게 맘을 열고 몸을 허락하겠죠.. 하지만 그 전에 님이 섹스하고싶다고해서
마음대로 하면 안될거 같네요.. 혹시나 그분의 생각에 님도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면 님분만 아니라 그분에게도 그리 좋은 결과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좀 더 기다려보세요.... 이해해 주시구요...
남녀간에 섹스 자체가 목적이 아닌 사랑의 도구로써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비번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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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9년째인 나는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던 작년에 비로소 여유를 가질 수가 있었다.
연년생 형제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있는 시간을 좀더 알차게 나만을 위해 쓰고 싶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나는 평소에 관심은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아쉬웠던 소설 강의를 듣기로 했다. 교수님들로부터 감수성이 있다는 말을 여러번 들어온 터라 조금만 노력하면 무언가 이룰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신문을 통해 각 문화센터의 강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본 후 집에서 가까운 문화센터에 등록을 했다. 남편은 소설공부를 할 거라는 내게 뱃살이나 빠지게 에어로빅이나 하지 소설은 웬 소설이냐며 정신적인 사치가 아니냐고 했다.
물론 악의없이 한 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정말 서운했다. 원고지를 사다 주지는 못할망정 등을 다독여주며 ‘잘했어’라는 반응을 보여줄 거라 기대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고 돌아서는 남편의 뒤통수를 쥐어박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남편과 나 사이에는 정말 공통점이 없었다. 작품성이 있다는 평을 받은 영화는 꼭 비디오로라도 보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홍콩 액션 영화를 즐겨 본다. 향을 즐기자며 원두커피를 타오면 녹차를 타달라며 나를 성가시게 한다. 이렇게 공통점이 없다보니 가슴을 터놓고 얘기해본 기억이 희미하다. 지금 우리 부부가 하는 이야기란 고작 아이가 누굴 닮아서 똑똑하다느니 누구 와이프는 능력이 있어 가게를 차려 돈을 잘 벌어온다느니 시댁 제사 때 미리미리 내려가 일 좀 하라느니 하는 것이 전부였다. 모두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결론은 나의 소리높은 반격으로 일단락을 짓게 되는데 그러면서 남편이 내뱉는 말이 더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래서 당신과는 대화를 못해.”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상이었던 내게 소설을 배우러 다니는 시간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비상구처럼 느껴졌다. 길을 지나면서 사람들의 행동과 말투도 유심히 보게되고 산과 나무의 다채로운 변화도 눈에 들어왔다. 그간 무심하게 보고 지나쳤던 사물들이 다시 생생하게 살아서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을 종이 위에 풀었고 같은 반 사람들의 평도 들었다. 수강생은 대개 내또래의 아주머니들이었기에 얘기도 잘 통해 재미가 있었다.
내가 ‘여자와 아내’라는 제목으로 권태로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아내라는 이름으로 모든 꿈들이 깨지는 아픔을 겪은 순간의 실망감을 글로 발표한 날의 일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수강생 몇이 모여 차를 마시기로 한 자리에 그 남자도 따라왔다. 반에 몇 안되는 남자 수강생으로 한두 번 눈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자연스레 개인의 작품 평이 오갔고 그 남자는 내 작품에 대해 문장이 아주 깔끔하고 내용도 설득력이 있었다며 칭찬을 했다. 몇사람이 더 그의 평에 토를 달아 칭찬을 해줬고 그날 나는 누군가가 내 재능을 인정해 줬다는 사실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다음 주에도 그는 내 작품을 칭찬했다. 몇번 읽은 후 내용을 정확히 분석해야만 나올 수 있는 그런 평이었다. 우리는 그 주에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차를 마시고 그의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왔다.
그후로 그를 보는 내 마음에 변화가 왔다. 그를 보고 있으면 동질감도 느껴지고 대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정말 내가 작가가 된 듯한 생각도 들었다. 그를 향한 마음이 강해질수록 그러면 안된다는 이성의 소리도 커졌다.
남편이 출장간 어느날 나는 아이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그와 교외로 나갔다. 저녁에 들어왔을 때 아이가 열에 들떠 있었다. 나는 내가 나쁜 짓을 해서 아이가 대신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되어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다행히 응급실로 간 아이는 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죄를 짓는다면 더 나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문화센터에나가는 일을 중단했다.
내가 계속해서 빠지자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됐다며 그의 전화를 끊었다. 나를 지탱해온 가느다란 실이 툭 끊기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그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더이상 만나서도 안되고 만날 필요도 없다고 생각이 됐지만 내 몸은 어느새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집에 와서 풀어보니 작은 만년필이었다. 나를 이해하고 존중해 주었던 유일한 남자 그는 그렇게 만년필 한자루로 내 가슴에 남았다.
제 바램은 님이 그분의 곁에서 힘이 되주셨으면 하네요..
물론 님도 결혼 해얄 때가 있겠죠.. 하지만 그 전까진..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러다보면 여자분도 님에게 맘을 열고 몸을 허락하겠죠.. 하지만 그 전에 님이 섹스하고싶다고해서
마음대로 하면 안될거 같네요.. 혹시나 그분의 생각에 님도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면 님분만 아니라 그분에게도 그리 좋은 결과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좀 더 기다려보세요.... 이해해 주시구요...
남녀간에 섹스 자체가 목적이 아닌 사랑의 도구로써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비번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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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9년째인 나는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던 작년에 비로소 여유를 가질 수가 있었다.
연년생 형제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있는 시간을 좀더 알차게 나만을 위해 쓰고 싶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나는 평소에 관심은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아쉬웠던 소설 강의를 듣기로 했다. 교수님들로부터 감수성이 있다는 말을 여러번 들어온 터라 조금만 노력하면 무언가 이룰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신문을 통해 각 문화센터의 강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본 후 집에서 가까운 문화센터에 등록을 했다. 남편은 소설공부를 할 거라는 내게 뱃살이나 빠지게 에어로빅이나 하지 소설은 웬 소설이냐며 정신적인 사치가 아니냐고 했다.
물론 악의없이 한 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정말 서운했다. 원고지를 사다 주지는 못할망정 등을 다독여주며 ‘잘했어’라는 반응을 보여줄 거라 기대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고 돌아서는 남편의 뒤통수를 쥐어박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남편과 나 사이에는 정말 공통점이 없었다. 작품성이 있다는 평을 받은 영화는 꼭 비디오로라도 보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홍콩 액션 영화를 즐겨 본다. 향을 즐기자며 원두커피를 타오면 녹차를 타달라며 나를 성가시게 한다. 이렇게 공통점이 없다보니 가슴을 터놓고 얘기해본 기억이 희미하다. 지금 우리 부부가 하는 이야기란 고작 아이가 누굴 닮아서 똑똑하다느니 누구 와이프는 능력이 있어 가게를 차려 돈을 잘 벌어온다느니 시댁 제사 때 미리미리 내려가 일 좀 하라느니 하는 것이 전부였다. 모두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결론은 나의 소리높은 반격으로 일단락을 짓게 되는데 그러면서 남편이 내뱉는 말이 더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래서 당신과는 대화를 못해.”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상이었던 내게 소설을 배우러 다니는 시간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비상구처럼 느껴졌다. 길을 지나면서 사람들의 행동과 말투도 유심히 보게되고 산과 나무의 다채로운 변화도 눈에 들어왔다. 그간 무심하게 보고 지나쳤던 사물들이 다시 생생하게 살아서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을 종이 위에 풀었고 같은 반 사람들의 평도 들었다. 수강생은 대개 내또래의 아주머니들이었기에 얘기도 잘 통해 재미가 있었다.
내가 ‘여자와 아내’라는 제목으로 권태로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아내라는 이름으로 모든 꿈들이 깨지는 아픔을 겪은 순간의 실망감을 글로 발표한 날의 일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수강생 몇이 모여 차를 마시기로 한 자리에 그 남자도 따라왔다. 반에 몇 안되는 남자 수강생으로 한두 번 눈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자연스레 개인의 작품 평이 오갔고 그 남자는 내 작품에 대해 문장이 아주 깔끔하고 내용도 설득력이 있었다며 칭찬을 했다. 몇사람이 더 그의 평에 토를 달아 칭찬을 해줬고 그날 나는 누군가가 내 재능을 인정해 줬다는 사실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다음 주에도 그는 내 작품을 칭찬했다. 몇번 읽은 후 내용을 정확히 분석해야만 나올 수 있는 그런 평이었다. 우리는 그 주에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차를 마시고 그의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왔다.
그후로 그를 보는 내 마음에 변화가 왔다. 그를 보고 있으면 동질감도 느껴지고 대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정말 내가 작가가 된 듯한 생각도 들었다. 그를 향한 마음이 강해질수록 그러면 안된다는 이성의 소리도 커졌다.
남편이 출장간 어느날 나는 아이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그와 교외로 나갔다. 저녁에 들어왔을 때 아이가 열에 들떠 있었다. 나는 내가 나쁜 짓을 해서 아이가 대신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되어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다행히 응급실로 간 아이는 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죄를 짓는다면 더 나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문화센터에나가는 일을 중단했다.
내가 계속해서 빠지자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됐다며 그의 전화를 끊었다. 나를 지탱해온 가느다란 실이 툭 끊기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그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더이상 만나서도 안되고 만날 필요도 없다고 생각이 됐지만 내 몸은 어느새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집에 와서 풀어보니 작은 만년필이었다. 나를 이해하고 존중해 주었던 유일한 남자 그는 그렇게 만년필 한자루로 내 가슴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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