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겨드랑이 털에 집착하는 이유(5,끝)
언제부터였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내 마음 속에 불안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처럼 나도 겨드랑이 털이 없는 여자를 아내로 얻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혼해서 후회하기 전에 확실히 확인하고 결혼하자는게 나의 결심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니 새로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1, 2학년 때에는 동아리에 가입해서 평범하면서도 즐거운 대학 생활을 가졌다. 여름이 오면 같은 동아리나 우리 과 여학생들의 겨드랑이 털을 보면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각종 미팅이나 고팅이 있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인물 괜찮고 착하다고 평판이 좋았으므로 1순위 대상이었다. 미팅에 나오는 여자애들과 마주 앉으면 자기 소개를 하고 눈을 마주치면서 내가 처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 여자애는 겨드랑이에 털이 얼마나 있을까 였다. 긴 팔 옷을 입는 계절에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가끔 다방 안이 더운지 팔을 걷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슬쩍슬쩍 팔뚝을 훔쳐보곤 했다. 팔뚝에 짙은 털이 나있는 여자를 보면 조금 더 위의 겨드랑이에는 무성한 털이 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되면서 바지 속이 뻗뻗하게 발기되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여름철 같은 경우에는 겨드랑이 털을 만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행운도 가끔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쑥맥이라 여자를 꼬셔서 벗기고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애프터 신청해서 몇번 만나거나 서로 학보를 교환하곤 했다. 그렇지만 겨드랑이 털뿐만 아니라 플러스 알파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이 들면서 대충 만나다가 대부분은 헤어지곤 했다. 나에게 여자의 겨드랑이 털은 필요 조건이었지만 충분 조건도 만족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었다. 그리고 미팅에 나온 여자애들은 아무래도 내 겨드랑이 털보다는 내가 다니는 학교, 전공, 장래 전망, 가정 환경 같은데 더 관심이 있었다. 내가 여자를 분류하는 방법은 지극히 간단했다. 겨드랑이에 털이 많고 매력적인 여자, 겨드랑이에 털만 많은 여자, 아니면 적거나 없는 여자….
나는 꽤 좋은 학교, 학과에 외모도 당시 쾌남 탤런트 누구와 비슷하다는 얘기를 듣곤 했었지만(신장 176) 수줍음을 많이 타는 편이었고 이런 나의 색다른 관심이 서글서글한 인상과는 달리 왠지 모를 찝찝한 느낌으로 상대에게 대하게 되어서 그랬는지 지속적으로 만나는 여자는 없었다. 물론 동아리나 과에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내는 털 많은 여자애들이 수두룩하게 있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여자애들의 대부분은 얼마 전 동문 모임이 있어서 만났을 때 대부분 겨드랑이 털을 면도하고 있었다. 간혹 과묵한 편인 나에게 빠져서 따라다니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술취한 척 나에게 기대는 그 여자들을 부축해준다고 겨드랑이 부위를 잡고 부축하곤 했었다. 물론 그녀들의 곱슬곱슬한 겨드랑이 털을 느끼기 위해서 였다. 때로는 겨드랑이 밑의 땀이 내 손바닥을 적시기도 했다. 나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었고 이 여자들을 데리고 여관을 가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물론 성적 욕망이 없어서는 아니고 대개는 여럿이 같이 있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잘생기고 매너좋은 후배, 동기, 혹은 선배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내 두뇌의 데이터 베이스에는 지금도 그녀들의 겨드랑이 털에 대한 정보, 털의 색, 길이, 우거진 정도, 곱슬곱슬한 정도, 체취 등이 남아 있다.
동정을 바친 것은 군대갔다 와서 만난 K대 출신 수학 선생이었다. 그녀와의 이야기는 이미 앞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내가 그녀를 떠나 보낸 것은 그녀의 문란했던 과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녀가 거의 무모증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겨드랑이에 무성한 털이 있었다면 나는 그녀와 결혼해서 잠자리마다 그녀의 겨드랑이 털 하나하나를 빨면서 그녀의 털 만큼 많은 그녀의 과거 남자들과의 관계를 상상하면서 쾌락을 느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녀가 나의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똑같이 먹고 튄 놈이라고 여겼을 걸 생각하면 조금은 안타깝다.
이제 지금의 내 아내를 만난 얘기를 하겠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수학선생과 헤어진 후 얼마 후였다. 내가 업무상 자주 다니는 회사에 신입 여사원이 한 명 들어왔는데 빼어 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서(신장 168) 힐을 신고 있으면 올려다 보이는 것 같았다. 그 회사 직원들과 공동 과제를 수행하면서 그녀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주로 내가 하는 일은 그 과제에서 중심되는 업무였으므로 회사는 달라도 동료 직원처럼 어울리곤 했다. 그리고, 그 회사가 우리 회사와 우리 집 사이였으므로 반드시 내 일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우리 회사에서 그 회사로 서류나 자료를 급히 전달할 일이 있으면 의례 내가 퇴근하면서 갖다 주곤 하였었다. 그러면서 그녀를 만나 자연스럽게 얘기도 붙여보고 그녀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녀의 팔뚝에는 짙은 털이 나 있어서 그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한 6개월 후 회식을 하게 되서 우리 회사 직원 몇 사람과 그 회사 직원 몇 사람이 가든에서 모이게 되었다. 술이 한바퀴 돌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잔 하신 우리 부장님이 그쪽 부장에게 나를 가리키며 어디 좋은 색시 있으면 중매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쪽 부장이 우리 미스 김 어때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녀도 웃으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그쪽 회사 직원들이 자기네 회사에서 찜한 사람이 많아서 절대 안 된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회식이 끝나고 2차를 가려는데 그녀가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서 집에 일찍 가봐야 하는데 혹시 지하철 역까지 내 차로 좀 데려다 줄 수 없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일찍 갈 계획은 없었지만 음주단속 때문에 술도 마음껏 못 마시던 참이라 잘 되었다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말도 없이 그녀를 태우고 내빼듯이 그 자리를 떠났다. 회식을 하던 가든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차로 한 15분 거리였으므로 몇마디 얘기를 나눌 시간은 되었다. 차 안에서 그녀는 내 나이를 묻더니 보기보다 나이가 많다고 깜짝 놀라는 척을 하였다. 그녀는 나보다 4살 어렸는데 나를 자기 또래로 생각했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날 같이 있었던 몇몇 동료들 얘기를 했다. 그렇게 잡담을 하다가 보니 지하철 역에 도착하였고 어디 가서 커피나 한잔 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그래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잘 됐다. 우리 집도 그 근처니 내가 집에 까지 태워주겠다, 대신 택시 값은 내라고 하였더니 그녀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였다. 그녀의 집으로 가면서 그녀의 신상에 대해서 슬쩍 물어보았더니 학교는 E여대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올라와 언니 둘과 남동생 하나해서 네 식구가 아파트를 하나 얻어 살다가 큰 언니는 몇 년 전에 출가했고 조만간 작은 언니도 시집을 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날은 그렇게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에 곱게 내려주고 왔다.
며칠 후 퇴근 길에 그 회사에 갖다 줄 서류를 맡아서 들어갔더니 그녀가 아마 울었는지 얼굴이 구겨져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에게 서류를 갖다 주고 나오려는데 그녀가 복도로 따라 나오더니 나에게 시간 있으면 오늘 저녁 술 한잔 사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마고 했더니 그럼 먼저 어디 술집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자기는 일 정리하고 바로 따라 가겠다고 하였다. 그날 그녀와 만난 곳은 신촌이었는데 신촌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은 늙어 죽어도 신촌을 못 떠난다며 웃었다.
그녀는 아침에 부장에게 업무 때문에 한바탕 야단을 맞았는데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굉장히 억울해서 울었다는 것이었다. 퇴근 무렵에 오해가 풀려서 부장이 사과하고 오늘 술 한잔 사주겠다고 해서 마시고 풀라고 했었는데 나를 보니까 생각이 바뀌어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입은 옷은 늦여름이라 반팔이었는데 식사를 하면서 팔을 쳐들을 때마다 기회를 봐서 그녀의 겨드랑이를 쳐다보곤 하였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겨드랑이가 하얗고 매끈한 것으로 보아 면도를 꽤 공들여 한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팔뚝에 난 털을 믿었다. 그날은 저녁을 먹고 간단히 마실 것을 사서 차를 몰고 연대 뒷산으로 갔다. 당시는 차를 몰고 대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제한이 없었다. 우리 집이 근처니까 술을 먹어도 차를 그대로 두고 가면 되었으니까 부담이 없었다. 벤치에 앉아서 캔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 직장에서 힘든 일들, 학창 시절 얘기를 하다 보니 참으로 정다워진 것 같았다. 그녀는 술이 약한 듯 캔 하나를 마시더니 피곤하다고 내 어깨에 기대는 것이었다. 밤 공기가 쌀쌀해서 내 웃저고리를 벗어서 그녀를 덮어주니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옷을 어깨에 덮어주면서 그녀와 눈이 마주 쳤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이 빛나면서 너무 사랑스럽게 보여 키스를 했더니 놀랍게도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그날 이후 그녀와는 거의 매일 퇴근 후면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일단 키스를 한번 하니까 그 다음에는 프렌치 키스가 되고 얼마 후에는 젖가슴에 손이 가게 되었다. 체격이 좋으니까 유방도 풍만해서 비록 옷 위였지만 만질 때마다 너무 좋았다. 나란히 붙어 앉아 있거나 팔장을 끼고 걸을 때면 내 팔꿈치에 그녀의 젖가슴이 눌려지고 스치곤 할 때 참 행복했다. 어느 날이던가 저녁 먹고 나서 차를 몰고 한강 고수부지로 나갔다. 초겨울이라 강바람이 차가워서 차 밖으로 나가기는 힘들어서 그냥 차 안에서 음악을 듣기로 하였다.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등을 지더니 브래지어의 호크를 벗겨 달라고 하였다. 나는 덜덜 떨면서 그녀의 옷 속에 손을 넣었다. 그녀의 따뜻한 맨 살이 손에 닿았다. 대충 등 한 복판을 찾아가니 호크가 있었는데 손이 떨러서 몇 번 더듬었더니 호크가 벗겨지는 것 같았다. 어깨 끈이 없는 것이었는지 그녀는 브래지어를 옷 아래로 꺼내더니 핸드백에 넣은 다음, 나를 보고 부끄러운 듯, 아휴 이것 때문에 답답해 죽겠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시트를 눕히더니 기대서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나를 안았다. 한참을 프렌치 키스를 하다가 나는 그녀의 웃옷을 올렸더니 처음으로 보는 그녀의 유방이 수줍게 나타났다. 나는 고개를 숙여서 그녀의 젖가슴 냄새를 깊이 음미하다가 젖꼭지를 입에 넣어 빨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간지럽다고 허리를 활처럼 휘면서도 내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는 것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드디어 나는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것을 행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옷을 더 올려서 겨드랑이를 보았다. 거기에는 정말로 아름다운 털이 자라나 있었다. 내가 최고로 치는 부드럽고 긴 털이 겨드랑이에서 팔을 따라 잔디처럼 누워있는 형상의 겨드랑이 털이었다. 여름에 면도했던 털이 가을을 거쳐서 초겨울이 된 이즈음 다시금 곱게 자라난 것이다. 어, 털이 많네라고 하자 그녀는 부끄러운지 아무 말도 안했다. 손가락으로 쓰다듬어도 보고 털 끝을 이빨로 살짝 물어뜯어도 보았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아휴 간지러 하면서 몸서리를 쳤지만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녀의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겨드랑이 털에 묻어있는 미약한 냄새를 들이마시며 그래 이 여자다 하고 속으로 외쳤다.
이듬해 봄 우리는 결혼을 했다. 예식장, 예단 문제, 혼수 문제, 함지는 문제 등으로 약간의 트러블은 있었지만 결혼할 때면 누구나 겪는 수준이었고 결혼식 날은 가족, 친구들, 회사 동료들의 축복 속에 행복하게 결혼을 했다.
신혼 첫날 밤은 시내 호텔에서 보냈는데 친구들이 따라와서 나이트를 데려갔다 와서는 정말 아무 것도 못하고 잠을 자고 말았었다. 그래도 새벽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잠에서 깨어나 보니 그녀가 내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 그녀의 허리 아래는 만지지도 구경도 못했었기 때문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아내의 팬티를 벗기려고 하였다. 망사 팬티라 시커먼 음모가 다 보였다. 조그만 팬티를 내리자 무성한 역삼각형의 밀림이 나타났다. 나도 얼른 팬티를 벗고 삽입을 시도했다. 포르노를 보면 대기면 하면 삽입이 되곤 했었는데 어찌된 게 나는 그게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기사 나의 성경험이란 수학 선생과의 하룻밤 밖에 없었고 그것도 능란한 그녀의 리드 덕에 가능했었던 것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강제로 집어 넣을려고 하자 아내는 아파 죽겠다고 하면서 우는 것이었다. 결국 땀만 흘리다가 아무 것도 못하고 공항갈 시간이 가까워져 짐을 싸서 호텔을 나왔다.
신혼 여행은 태국 파타야로 갔었는데 호텔에 도착하자 아내는 면도칼을 꺼내는 것이었다. 겨드랑이 뿐만 아니라 다리에도 짙은 털이 나서 면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주로 슬랙스 차림이거나 스커트를 입어도 짙은 스타킹을 착용했었다. 그래도 스타킹 밑에서 나는 면도칼을 빼앗고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지금부터는 네 몸에 있는 털은 다 내꺼니까 터럭 하나라도 네 맘대로 다치면 절대 안된다.…
아내와의 첫 행사는 그날 밤 어렵게 성공했는데 피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정말 처음인 것 같았다. 첫날 밤 피가 나오지 않을 확률이 꽤 높다는 설을 들은 적이 있으므로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아내를 벗겨놓고 자세히 관찰해보니 겨드랑이와 성기 주변 뿐 아니라 팔뚝, 배꼽 주변과 아래, 다리, 심지어는 항문 주위에도 연하지만 털이 나 있었다. 정말 황홀했다. 결혼 한번 잘 했다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이후 아내는 소매 없는 옷이나 스커트는 입지 못 했다. 몸에 면도칼 대는 것을 엄금했으므로. 다만 얼굴 면도는 허락을 했다. 규칙적으로 면도를 하지 않으면 화장이 잘 먹지 않는다는 강력한 어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와의 성생활은 결혼한지 거의 10년이 되는 지금도 신혼 때처럼 짜릿하다. 아내의 겨드랑이 털을 입에 물고 빨다가 아래로 내려가서 털이 수북한 성기에 얼굴을 묻는다. 아내는 거기에 미리 향수를 뿌려 놓기 때문에 그대로 취해서 잠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내 외 다른 털을 느낄 기회가 오면 나는 그 유혹을 떨쳐 버리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여름에 처갓집 모임이 있으면 가슴이 설렌다. 처형들을 비롯한 처갓집 여자들의 겨드랑이 털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큰 처형은 원래 털 세대라 시커멓고 풍성한 겨드랑이 털을 꺼리낌 없이 내놓고 있는 편이지만 작은 처형은 주변에서 원래 깔끔을 떤다는 말을 듣는 편이라 그런지 면도를 정기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한번은 면도한지 한 일주일 되었는지 팔을 들어서 겨드랑이를 드러내었을 때 보니까 넓게 면도한 자리에 털이 파릇파릇 돋고 있었다. 아내 말로는 여고 시절에는 빗으로 겨드랑이 털을 서로 장난 삼아 빗겨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가장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오랜만에 장모님이 서울에 올라오실 때이다. 장모님은 일찍 시집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결혼할 때 연세가 오십대 중반이었는데 피부가 곱고 주름살이 거의 없으셔서 그런지 나이보다 매우 젊어서 모르는 사람들은 사십대로 본다고 하였었다. 아내를 비롯한 세 자매가 모두 장모님의 피를 이어 받아 털이 많은 것 같았다. 장모님도 겨드랑이 털이 무성하면서 긴 편이라 반팔 옷을 입어도 팔을 들어 올리면 소매 옆으로 몇 올의 털이 빠져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여자의 몸이란 완전히 들어낼 때보다 조금 가릴 때 더 에로틱한 것 같다. 처 이모님들도 겨드랑이에 털이 많은 지 한번은 처외삼촌 회갑 잔치 때 처이모들이 오라버니 생일을 축하한답시고 앞에 나와서 춤을 추었는데 민소매 옷을 입고들 오셔서 춤추며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시커먼 겨드랑이 털들이 드러나서 잔치 끝나고 오빠에게 야단을 크게 맞았다고 한다. 물론 내 결혼 전이라 그렇게 멋진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예전 고등학교 때 친구 몇 놈이랑 낄낄대며 본 빨간 책 중에는 부부교환이란 제목의 만화도 있었는데 그런 걸 보고 나서 우리도 이 다음에 장가가서 심심하면 가끔 바꿔서 놀아보자고 농담처럼 얘기한 적도 있다. 요즘 이것이 스와핑이란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아내에게 이런 애기를 하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물론 나도 아직 스와핑이란 단어가 낯설지만 관심은 있다. 나는 결혼한 이후 아내의 겨드랑이 털을 남이 볼까 두려워서 여름이면 민소매 옷을 입지 못하도록 했었다. 물론 아내가 내가 출근한 사이에 민소매 옷을 입고 외출해서 자신의 겨드랑이 털을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 주었는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인가는 아내와 함께 주말에 백화점 같은데 쇼핑을 갈 때 더운데 민소매 옷을 입고 가지 하고 내가 권하고 있다. 아내가 거리나 백화점에서 팔을 쳐들을 때마다 곁에 있는 남자들의 시선을 보는 것이 에로틱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스와핑의 첫걸음이 아닐까 한다. 친구들 와이프들도 대부분 겨드랑이 털을 면도하지 않는 것 같다. 한 녀석 와이프만 빼고 친구들 와이프들의 겨드랑이 털은 다 보았다. 한번은 친구 몇 놈과 각자 가족 동반으로 해수욕장으로 여름 휴가를 갔었는데 내 아내만은 수영복을 안 입는다고 해서 일순 친구들의 얼굴의 실망의 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었다. 내가 몸의 털을 손대지 못하게 해서 면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영복을 입기가 곤란한 것도 있겠지만 아내도 어릴 때 빼고는 수영복을 입은 적이 없어 남 앞에서 수영복 입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 같다. 친구들 와이프들 중에도 수영복을 안 입는 아줌마 들도 있었는데 출산 후 망가진 몸매 때문에 못 입는 것 같았다. 내 아내는 결혼, 출산 후 오히려 체중이 빠져서 다른 아줌마들이 부러워 한다. 그때 저녁이 되면 애들 재우고 부부들끼리 술을 먹었는데 한 친구의 와이프가 아주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술이 한두 잔씩 돌아가자 기분들이 풀어져서 그랬는지 그녀가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벌렸는데 허벅지 안쪽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민박집 방안이 그렇게 밝지가 않아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커먼 털만 보이는 것으로 봐서 안에 팬티를 입지 않은 것 같았다. 휴가를 가서 이삼일 지나면 대게 여자들도 긴장이 풀어지면서 허술해지는 것 같아 즐거울 뿐이다.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나는 아내와의 잠자리에서 성적 환상의 재료로 써먹고 있다.
요즘은 겨울이라 아내의 겨드랑이 털 빼고는 볼 수가 없지만 사무실이나 지하철에서 여자들이 팔을 쳐들을 때마다 아, 저 옷 속에는 털이 나 있겠지 하는 환상에 사로잡히곤 한다.
지금까지 하나도 안 야하고 지루한 글을 읽어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대학교에 입학하니 새로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1, 2학년 때에는 동아리에 가입해서 평범하면서도 즐거운 대학 생활을 가졌다. 여름이 오면 같은 동아리나 우리 과 여학생들의 겨드랑이 털을 보면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각종 미팅이나 고팅이 있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인물 괜찮고 착하다고 평판이 좋았으므로 1순위 대상이었다. 미팅에 나오는 여자애들과 마주 앉으면 자기 소개를 하고 눈을 마주치면서 내가 처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 여자애는 겨드랑이에 털이 얼마나 있을까 였다. 긴 팔 옷을 입는 계절에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가끔 다방 안이 더운지 팔을 걷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슬쩍슬쩍 팔뚝을 훔쳐보곤 했다. 팔뚝에 짙은 털이 나있는 여자를 보면 조금 더 위의 겨드랑이에는 무성한 털이 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되면서 바지 속이 뻗뻗하게 발기되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여름철 같은 경우에는 겨드랑이 털을 만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행운도 가끔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쑥맥이라 여자를 꼬셔서 벗기고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애프터 신청해서 몇번 만나거나 서로 학보를 교환하곤 했다. 그렇지만 겨드랑이 털뿐만 아니라 플러스 알파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이 들면서 대충 만나다가 대부분은 헤어지곤 했다. 나에게 여자의 겨드랑이 털은 필요 조건이었지만 충분 조건도 만족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었다. 그리고 미팅에 나온 여자애들은 아무래도 내 겨드랑이 털보다는 내가 다니는 학교, 전공, 장래 전망, 가정 환경 같은데 더 관심이 있었다. 내가 여자를 분류하는 방법은 지극히 간단했다. 겨드랑이에 털이 많고 매력적인 여자, 겨드랑이에 털만 많은 여자, 아니면 적거나 없는 여자….
나는 꽤 좋은 학교, 학과에 외모도 당시 쾌남 탤런트 누구와 비슷하다는 얘기를 듣곤 했었지만(신장 176) 수줍음을 많이 타는 편이었고 이런 나의 색다른 관심이 서글서글한 인상과는 달리 왠지 모를 찝찝한 느낌으로 상대에게 대하게 되어서 그랬는지 지속적으로 만나는 여자는 없었다. 물론 동아리나 과에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내는 털 많은 여자애들이 수두룩하게 있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여자애들의 대부분은 얼마 전 동문 모임이 있어서 만났을 때 대부분 겨드랑이 털을 면도하고 있었다. 간혹 과묵한 편인 나에게 빠져서 따라다니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술취한 척 나에게 기대는 그 여자들을 부축해준다고 겨드랑이 부위를 잡고 부축하곤 했었다. 물론 그녀들의 곱슬곱슬한 겨드랑이 털을 느끼기 위해서 였다. 때로는 겨드랑이 밑의 땀이 내 손바닥을 적시기도 했다. 나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었고 이 여자들을 데리고 여관을 가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물론 성적 욕망이 없어서는 아니고 대개는 여럿이 같이 있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잘생기고 매너좋은 후배, 동기, 혹은 선배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내 두뇌의 데이터 베이스에는 지금도 그녀들의 겨드랑이 털에 대한 정보, 털의 색, 길이, 우거진 정도, 곱슬곱슬한 정도, 체취 등이 남아 있다.
동정을 바친 것은 군대갔다 와서 만난 K대 출신 수학 선생이었다. 그녀와의 이야기는 이미 앞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내가 그녀를 떠나 보낸 것은 그녀의 문란했던 과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녀가 거의 무모증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겨드랑이에 무성한 털이 있었다면 나는 그녀와 결혼해서 잠자리마다 그녀의 겨드랑이 털 하나하나를 빨면서 그녀의 털 만큼 많은 그녀의 과거 남자들과의 관계를 상상하면서 쾌락을 느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녀가 나의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똑같이 먹고 튄 놈이라고 여겼을 걸 생각하면 조금은 안타깝다.
이제 지금의 내 아내를 만난 얘기를 하겠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수학선생과 헤어진 후 얼마 후였다. 내가 업무상 자주 다니는 회사에 신입 여사원이 한 명 들어왔는데 빼어 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서(신장 168) 힐을 신고 있으면 올려다 보이는 것 같았다. 그 회사 직원들과 공동 과제를 수행하면서 그녀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주로 내가 하는 일은 그 과제에서 중심되는 업무였으므로 회사는 달라도 동료 직원처럼 어울리곤 했다. 그리고, 그 회사가 우리 회사와 우리 집 사이였으므로 반드시 내 일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우리 회사에서 그 회사로 서류나 자료를 급히 전달할 일이 있으면 의례 내가 퇴근하면서 갖다 주곤 하였었다. 그러면서 그녀를 만나 자연스럽게 얘기도 붙여보고 그녀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녀의 팔뚝에는 짙은 털이 나 있어서 그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한 6개월 후 회식을 하게 되서 우리 회사 직원 몇 사람과 그 회사 직원 몇 사람이 가든에서 모이게 되었다. 술이 한바퀴 돌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잔 하신 우리 부장님이 그쪽 부장에게 나를 가리키며 어디 좋은 색시 있으면 중매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쪽 부장이 우리 미스 김 어때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녀도 웃으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그쪽 회사 직원들이 자기네 회사에서 찜한 사람이 많아서 절대 안 된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회식이 끝나고 2차를 가려는데 그녀가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서 집에 일찍 가봐야 하는데 혹시 지하철 역까지 내 차로 좀 데려다 줄 수 없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일찍 갈 계획은 없었지만 음주단속 때문에 술도 마음껏 못 마시던 참이라 잘 되었다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말도 없이 그녀를 태우고 내빼듯이 그 자리를 떠났다. 회식을 하던 가든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차로 한 15분 거리였으므로 몇마디 얘기를 나눌 시간은 되었다. 차 안에서 그녀는 내 나이를 묻더니 보기보다 나이가 많다고 깜짝 놀라는 척을 하였다. 그녀는 나보다 4살 어렸는데 나를 자기 또래로 생각했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날 같이 있었던 몇몇 동료들 얘기를 했다. 그렇게 잡담을 하다가 보니 지하철 역에 도착하였고 어디 가서 커피나 한잔 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그래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잘 됐다. 우리 집도 그 근처니 내가 집에 까지 태워주겠다, 대신 택시 값은 내라고 하였더니 그녀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였다. 그녀의 집으로 가면서 그녀의 신상에 대해서 슬쩍 물어보았더니 학교는 E여대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올라와 언니 둘과 남동생 하나해서 네 식구가 아파트를 하나 얻어 살다가 큰 언니는 몇 년 전에 출가했고 조만간 작은 언니도 시집을 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날은 그렇게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에 곱게 내려주고 왔다.
며칠 후 퇴근 길에 그 회사에 갖다 줄 서류를 맡아서 들어갔더니 그녀가 아마 울었는지 얼굴이 구겨져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에게 서류를 갖다 주고 나오려는데 그녀가 복도로 따라 나오더니 나에게 시간 있으면 오늘 저녁 술 한잔 사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마고 했더니 그럼 먼저 어디 술집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자기는 일 정리하고 바로 따라 가겠다고 하였다. 그날 그녀와 만난 곳은 신촌이었는데 신촌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은 늙어 죽어도 신촌을 못 떠난다며 웃었다.
그녀는 아침에 부장에게 업무 때문에 한바탕 야단을 맞았는데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굉장히 억울해서 울었다는 것이었다. 퇴근 무렵에 오해가 풀려서 부장이 사과하고 오늘 술 한잔 사주겠다고 해서 마시고 풀라고 했었는데 나를 보니까 생각이 바뀌어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입은 옷은 늦여름이라 반팔이었는데 식사를 하면서 팔을 쳐들을 때마다 기회를 봐서 그녀의 겨드랑이를 쳐다보곤 하였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겨드랑이가 하얗고 매끈한 것으로 보아 면도를 꽤 공들여 한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팔뚝에 난 털을 믿었다. 그날은 저녁을 먹고 간단히 마실 것을 사서 차를 몰고 연대 뒷산으로 갔다. 당시는 차를 몰고 대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제한이 없었다. 우리 집이 근처니까 술을 먹어도 차를 그대로 두고 가면 되었으니까 부담이 없었다. 벤치에 앉아서 캔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 직장에서 힘든 일들, 학창 시절 얘기를 하다 보니 참으로 정다워진 것 같았다. 그녀는 술이 약한 듯 캔 하나를 마시더니 피곤하다고 내 어깨에 기대는 것이었다. 밤 공기가 쌀쌀해서 내 웃저고리를 벗어서 그녀를 덮어주니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옷을 어깨에 덮어주면서 그녀와 눈이 마주 쳤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이 빛나면서 너무 사랑스럽게 보여 키스를 했더니 놀랍게도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그날 이후 그녀와는 거의 매일 퇴근 후면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일단 키스를 한번 하니까 그 다음에는 프렌치 키스가 되고 얼마 후에는 젖가슴에 손이 가게 되었다. 체격이 좋으니까 유방도 풍만해서 비록 옷 위였지만 만질 때마다 너무 좋았다. 나란히 붙어 앉아 있거나 팔장을 끼고 걸을 때면 내 팔꿈치에 그녀의 젖가슴이 눌려지고 스치곤 할 때 참 행복했다. 어느 날이던가 저녁 먹고 나서 차를 몰고 한강 고수부지로 나갔다. 초겨울이라 강바람이 차가워서 차 밖으로 나가기는 힘들어서 그냥 차 안에서 음악을 듣기로 하였다.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등을 지더니 브래지어의 호크를 벗겨 달라고 하였다. 나는 덜덜 떨면서 그녀의 옷 속에 손을 넣었다. 그녀의 따뜻한 맨 살이 손에 닿았다. 대충 등 한 복판을 찾아가니 호크가 있었는데 손이 떨러서 몇 번 더듬었더니 호크가 벗겨지는 것 같았다. 어깨 끈이 없는 것이었는지 그녀는 브래지어를 옷 아래로 꺼내더니 핸드백에 넣은 다음, 나를 보고 부끄러운 듯, 아휴 이것 때문에 답답해 죽겠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시트를 눕히더니 기대서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나를 안았다. 한참을 프렌치 키스를 하다가 나는 그녀의 웃옷을 올렸더니 처음으로 보는 그녀의 유방이 수줍게 나타났다. 나는 고개를 숙여서 그녀의 젖가슴 냄새를 깊이 음미하다가 젖꼭지를 입에 넣어 빨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간지럽다고 허리를 활처럼 휘면서도 내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는 것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드디어 나는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것을 행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옷을 더 올려서 겨드랑이를 보았다. 거기에는 정말로 아름다운 털이 자라나 있었다. 내가 최고로 치는 부드럽고 긴 털이 겨드랑이에서 팔을 따라 잔디처럼 누워있는 형상의 겨드랑이 털이었다. 여름에 면도했던 털이 가을을 거쳐서 초겨울이 된 이즈음 다시금 곱게 자라난 것이다. 어, 털이 많네라고 하자 그녀는 부끄러운지 아무 말도 안했다. 손가락으로 쓰다듬어도 보고 털 끝을 이빨로 살짝 물어뜯어도 보았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아휴 간지러 하면서 몸서리를 쳤지만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녀의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겨드랑이 털에 묻어있는 미약한 냄새를 들이마시며 그래 이 여자다 하고 속으로 외쳤다.
이듬해 봄 우리는 결혼을 했다. 예식장, 예단 문제, 혼수 문제, 함지는 문제 등으로 약간의 트러블은 있었지만 결혼할 때면 누구나 겪는 수준이었고 결혼식 날은 가족, 친구들, 회사 동료들의 축복 속에 행복하게 결혼을 했다.
신혼 첫날 밤은 시내 호텔에서 보냈는데 친구들이 따라와서 나이트를 데려갔다 와서는 정말 아무 것도 못하고 잠을 자고 말았었다. 그래도 새벽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잠에서 깨어나 보니 그녀가 내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 그녀의 허리 아래는 만지지도 구경도 못했었기 때문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아내의 팬티를 벗기려고 하였다. 망사 팬티라 시커먼 음모가 다 보였다. 조그만 팬티를 내리자 무성한 역삼각형의 밀림이 나타났다. 나도 얼른 팬티를 벗고 삽입을 시도했다. 포르노를 보면 대기면 하면 삽입이 되곤 했었는데 어찌된 게 나는 그게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기사 나의 성경험이란 수학 선생과의 하룻밤 밖에 없었고 그것도 능란한 그녀의 리드 덕에 가능했었던 것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강제로 집어 넣을려고 하자 아내는 아파 죽겠다고 하면서 우는 것이었다. 결국 땀만 흘리다가 아무 것도 못하고 공항갈 시간이 가까워져 짐을 싸서 호텔을 나왔다.
신혼 여행은 태국 파타야로 갔었는데 호텔에 도착하자 아내는 면도칼을 꺼내는 것이었다. 겨드랑이 뿐만 아니라 다리에도 짙은 털이 나서 면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주로 슬랙스 차림이거나 스커트를 입어도 짙은 스타킹을 착용했었다. 그래도 스타킹 밑에서 나는 면도칼을 빼앗고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지금부터는 네 몸에 있는 털은 다 내꺼니까 터럭 하나라도 네 맘대로 다치면 절대 안된다.…
아내와의 첫 행사는 그날 밤 어렵게 성공했는데 피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정말 처음인 것 같았다. 첫날 밤 피가 나오지 않을 확률이 꽤 높다는 설을 들은 적이 있으므로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아내를 벗겨놓고 자세히 관찰해보니 겨드랑이와 성기 주변 뿐 아니라 팔뚝, 배꼽 주변과 아래, 다리, 심지어는 항문 주위에도 연하지만 털이 나 있었다. 정말 황홀했다. 결혼 한번 잘 했다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이후 아내는 소매 없는 옷이나 스커트는 입지 못 했다. 몸에 면도칼 대는 것을 엄금했으므로. 다만 얼굴 면도는 허락을 했다. 규칙적으로 면도를 하지 않으면 화장이 잘 먹지 않는다는 강력한 어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와의 성생활은 결혼한지 거의 10년이 되는 지금도 신혼 때처럼 짜릿하다. 아내의 겨드랑이 털을 입에 물고 빨다가 아래로 내려가서 털이 수북한 성기에 얼굴을 묻는다. 아내는 거기에 미리 향수를 뿌려 놓기 때문에 그대로 취해서 잠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내 외 다른 털을 느낄 기회가 오면 나는 그 유혹을 떨쳐 버리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여름에 처갓집 모임이 있으면 가슴이 설렌다. 처형들을 비롯한 처갓집 여자들의 겨드랑이 털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큰 처형은 원래 털 세대라 시커멓고 풍성한 겨드랑이 털을 꺼리낌 없이 내놓고 있는 편이지만 작은 처형은 주변에서 원래 깔끔을 떤다는 말을 듣는 편이라 그런지 면도를 정기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한번은 면도한지 한 일주일 되었는지 팔을 들어서 겨드랑이를 드러내었을 때 보니까 넓게 면도한 자리에 털이 파릇파릇 돋고 있었다. 아내 말로는 여고 시절에는 빗으로 겨드랑이 털을 서로 장난 삼아 빗겨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가장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오랜만에 장모님이 서울에 올라오실 때이다. 장모님은 일찍 시집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결혼할 때 연세가 오십대 중반이었는데 피부가 곱고 주름살이 거의 없으셔서 그런지 나이보다 매우 젊어서 모르는 사람들은 사십대로 본다고 하였었다. 아내를 비롯한 세 자매가 모두 장모님의 피를 이어 받아 털이 많은 것 같았다. 장모님도 겨드랑이 털이 무성하면서 긴 편이라 반팔 옷을 입어도 팔을 들어 올리면 소매 옆으로 몇 올의 털이 빠져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여자의 몸이란 완전히 들어낼 때보다 조금 가릴 때 더 에로틱한 것 같다. 처 이모님들도 겨드랑이에 털이 많은 지 한번은 처외삼촌 회갑 잔치 때 처이모들이 오라버니 생일을 축하한답시고 앞에 나와서 춤을 추었는데 민소매 옷을 입고들 오셔서 춤추며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시커먼 겨드랑이 털들이 드러나서 잔치 끝나고 오빠에게 야단을 크게 맞았다고 한다. 물론 내 결혼 전이라 그렇게 멋진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예전 고등학교 때 친구 몇 놈이랑 낄낄대며 본 빨간 책 중에는 부부교환이란 제목의 만화도 있었는데 그런 걸 보고 나서 우리도 이 다음에 장가가서 심심하면 가끔 바꿔서 놀아보자고 농담처럼 얘기한 적도 있다. 요즘 이것이 스와핑이란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아내에게 이런 애기를 하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물론 나도 아직 스와핑이란 단어가 낯설지만 관심은 있다. 나는 결혼한 이후 아내의 겨드랑이 털을 남이 볼까 두려워서 여름이면 민소매 옷을 입지 못하도록 했었다. 물론 아내가 내가 출근한 사이에 민소매 옷을 입고 외출해서 자신의 겨드랑이 털을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 주었는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인가는 아내와 함께 주말에 백화점 같은데 쇼핑을 갈 때 더운데 민소매 옷을 입고 가지 하고 내가 권하고 있다. 아내가 거리나 백화점에서 팔을 쳐들을 때마다 곁에 있는 남자들의 시선을 보는 것이 에로틱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스와핑의 첫걸음이 아닐까 한다. 친구들 와이프들도 대부분 겨드랑이 털을 면도하지 않는 것 같다. 한 녀석 와이프만 빼고 친구들 와이프들의 겨드랑이 털은 다 보았다. 한번은 친구 몇 놈과 각자 가족 동반으로 해수욕장으로 여름 휴가를 갔었는데 내 아내만은 수영복을 안 입는다고 해서 일순 친구들의 얼굴의 실망의 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었다. 내가 몸의 털을 손대지 못하게 해서 면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영복을 입기가 곤란한 것도 있겠지만 아내도 어릴 때 빼고는 수영복을 입은 적이 없어 남 앞에서 수영복 입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 같다. 친구들 와이프들 중에도 수영복을 안 입는 아줌마 들도 있었는데 출산 후 망가진 몸매 때문에 못 입는 것 같았다. 내 아내는 결혼, 출산 후 오히려 체중이 빠져서 다른 아줌마들이 부러워 한다. 그때 저녁이 되면 애들 재우고 부부들끼리 술을 먹었는데 한 친구의 와이프가 아주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술이 한두 잔씩 돌아가자 기분들이 풀어져서 그랬는지 그녀가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벌렸는데 허벅지 안쪽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민박집 방안이 그렇게 밝지가 않아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커먼 털만 보이는 것으로 봐서 안에 팬티를 입지 않은 것 같았다. 휴가를 가서 이삼일 지나면 대게 여자들도 긴장이 풀어지면서 허술해지는 것 같아 즐거울 뿐이다.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나는 아내와의 잠자리에서 성적 환상의 재료로 써먹고 있다.
요즘은 겨울이라 아내의 겨드랑이 털 빼고는 볼 수가 없지만 사무실이나 지하철에서 여자들이 팔을 쳐들을 때마다 아, 저 옷 속에는 털이 나 있겠지 하는 환상에 사로잡히곤 한다.
지금까지 하나도 안 야하고 지루한 글을 읽어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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