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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소꿉친구와 어른놀이 - 상편

* 상편


“뭐해?”
“나? 그냥 집에 있어.”
“나와. 맥주 한잔 하자.”

무슨 일이 생기면 오밤중에라도 부담 없이 불러내서 하소연을 할 수 있는 친구. 내게 있어 유미는 그런 친구였다. 나에게 친구가 썩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친구들 중에서 유미는 단연코 나와 역사가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우리 엄마와 유미네 엄마가 서로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함께 놀며 자랐다. 엄마들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걸음마 연습까지 같이 했다나? 그렇게 시작된 우정은 유치원과 초, 중, 고교를 지나서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를 다녀온 지금까지도 쭉 이어지고 있었다.

비록 유미에게 불알은 없지만, 내게 있어 불알친구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유미를 떠올릴 것이다. 어릴 적에는 엄마들끼리 장난삼아 우릴 결혼시킨다느니 뭐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은데, 좀 자라고 나서는 서로 이성친구도 따로 사귀게 되면서 그런 장난은 자연스레 사라져버렸다.

“나 여친이랑 헤어졌어.”
“또 왜? 잘 사귀는 것 같더니.”

추리닝 바람으로 나온 유미를 데리고 동네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샀다. 그러고는 어릴 때 함께 놀았던 추억의 놀이터 앞에 앉아 징징대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너도 알잖아. 그게 워낙 안 맞아서…….”
“뭐? 속궁합?”

너무 오랜 시간을 봐서 그런지 유미에게는 거리낄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연애를 하다가 생기는 고충들에 대해서도 유미에겐 꽤 적나라하게 털어놓는 편이었고, 그 중에서는 남녀 간에 쉽사리 하지 못할 노골적인 얘기들도 더러 있었다.

“그냥 안 맞기만 하면 차라리 개선을 해보려고 노력이라도 하지, 이건 뭐 목석도 아니고…… 언제까지 인형이랑 하는 기분을 느껴야하나 싶어서 그냥 그만 만나자고 했어.”
“야, 그래도 발랑 까진 여친보다는 순진한 여친이 낫지 않어?”
“모르는 소리야. 차라리 발랑 까진 게 낫지……, 마냥 순진하기만 한 애들 보면 연애를 무슨 즐거움으로 하는지도 모르겠고.”

얼마 전에 헤어진 여친은 그야말로 목석같은, 섹스에 있어서 적극성이라곤 그야말로 눈곱만큼도 없었던 여자였다. 처음엔 그 청순한 이미지에 끌려서 사귀었는데 잠자리를 치르고 보니 이건 뭐 청순을 넘어서 무성욕자도 아니고…….

몇 달을 사귀는 동안 섹스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내가 리드해야 했음은 물론이요, 여친에게서 적극적인 애무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원하는 대로 체위를 바꾸는 것도 그녀의 과도한 낯가림 때문에 언제나 곤혹스러웠다.

펠라치오나 69체위 같은 것들은 꿈도 못 꾸었기에 섹스라고 해봐야 늘 가슴 몇 번 주무르다 삽입, 그리고 몇 번 흔들다 찍…… 이것의 반복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이러한 고충에서 느끼는 불만들을 유미에게 고스란히 털어놓곤 했었다.

“너 그거 알아? 그런 여자애들 성욕에 눈 뜨게 해주는 것도 남자의 역할이야. 진짜로 내공이 센 남자들은 그런 목석같은 애들마저 길들여버린다고.”
“정말……? 난 그런 수준까진 못 올라가봐서 선뜻 감이 안 오는데.”

내가 유미에게 성적인 이야기를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이유는, 물론 유미가 불편해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녀 역시, 비록 자주는 아니더라도, 나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거리끼지 않고 늘어놓을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 일방적으로 떠들기만 하는 편이었다면 아마 그토록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유미하고의 대화에는 항상 독특한 즐거움이 있었다. 암만 죽마고우라고 해도 유미는 엄연히 여자였기 때문에, 남자들은 해주지 못하는 이야기를 내게 해줄 수 있었다. 동성들끼리만 할 수 있을 법한 수준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이성이랄까? 그래서 유미는 내게 있어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사람인 셈이었다.

유미 역시 내게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유미는 동성친구, 소위 ‘남사친’이라는 애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 친구들과 모두 성적인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주고받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김유미’라고 하면, 마치 나의 전여친처럼 청순함과 순수함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녀석들이 더 많았다.

유미는 내숭이 심한 성격이었다. 하긴 그래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봐온 나에게는 유미의 그런 내숭이 뻔히 들여다보였고, 유미는 그래서 더더욱 나에게만 그런 이야기를 맘 편히 털어놓을 수 있다고 했었다. 이성으로 느끼는 사람들에겐 좀체 그런 이야기를 하기가 힘들대나……? 이것은 바꿔 말하면 즉, 나는 눈곱만큼도 남자로 보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사실 우리는 그럴 만한 사이였기에 별로 불만스럽지도 않았다.

아무튼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서로 뜻 깊은 친구인 셈이었다.

“그런데 너, 마치 그런 남자를 만나본 적이 있다는 것처럼 얘기한다?”
“흠, 뭐 오래 만났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유미의 이야기에 갑자기 귀가 솔깃했다. 내숭쟁이 김유미의 비밀스런 사생활을 엿듣는 것은 그 자체로 무척 재미있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유미를 1년간 짝사랑했던 내 고등학교 동창에게 그녀의 내숭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는데, 그걸 듣고 못 믿겠다며 주먹다짐이 일어났을 정도니깐…….

“뭔데? 어떤 남자였는데? 얘기해줘.”
“아, 몰라.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나.”
“실컷 궁금하게 만들고 이러면 어쩌자고? 빨리 얘기해줘. 네 표현에 따르면 그 남자가 널 ‘길들였다’ 이거야?”
“뭐…… 그 정도 수준까진 아니었는데, 새로운 눈을 뜨게는 해줬지.”
“그게 뭔데? 빨리 말해줘. 빨리.”
“얘가 왜 이래?”
“나 궁금한 거 못 참잖아. 우리 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어?”

유미는 입을 열게 만들기까지가 조금 피곤해서 그렇지, 한번 말문을 열어놓으면 곧잘 털어놓는 성격인지라 나는 쉴 새 없이 재촉해댔다. 게다가 이번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내숭쟁이 김유미를 휘두른 남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나로서도 이 때 처음 알았기 때문이었다.

“신입생 때 친구 소개로 잠깐 만났던 사람 한 명 있어. 의대 다니는 오빠였는데, 뭐 배경이 좋으니까 호기심도 생기고 해서 몇 번 만났었지.”
“야, 너 나한테 그런 얘기 해준 적 없었잖아.”
“내가 무슨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넌 그 때 군대 갔잖아.”
“암튼, 그래서?”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 오빠를 소개해준 친구가, 처음에 성인 커뮤니티에서 이 오빠를 알게 된 거더라고.”
“성인 사이트 말이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이트더라고. 암튼 그런 곳에서 알게 된 사이니까 당연히 섹스 목적도 있었을 테고, 실제로 그 오빠랑 친구는 몇 번인가 만나서 잔 적이 있었대. 그래도 서로 사귀지는 못하고 애매한 관계로 지내다가, 그 오빠 쪽에서 친구에게 주변에 괜찮은 애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해서 얘가 나를 이어 준거야. 지금 생각하면 참 괘씸하지.”
“진짜? 그럼 넌 그걸 다 알고서 만난거야?”
“처음엔 당연히 몰랐지. 나도 알게 된 건…… 몇 번 해보고 나서 알게 된 거고.”
“어, 어떻게 알았는데? 자기 입으로 말하디?”
“첨에 모텔에서 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갈수록 이상한 요구를 하는 거야. 사진을 찍자거나 뭐 그런 것들 있잖아. 당연히 거절했었는데, 점점 거절하기 힘들어지더라고.”
“왜?”
“섹스를 너무 잘했거든.”
“…….”
“흥분이 머리꼭대기까지 올라오면 좀 맛이 가버리잖아. 한창 정신없을 때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거절하기도 귀찮고, 또 그 상태에서 들으니까 묘하게 끌리기도 하고 그래서 승낙해버렸지.”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나도 모르게 발정 난 암캐처럼 몸을 흔드는 유미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려는 얼굴 모를 사내의 모습을 멋대로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 상상을 하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이상해져서 나는 유미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 그래서……?”
“처음엔 혼자만 본다고 하더니, 나중엔 은근슬쩍 자꾸 유혹하는 거야. 자기가 가끔씩 드나드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에 올려서 사람들 반응을 보고 싶다고. 내 몸 사진에 남자들이 무슨 댓글 남길지 궁금하지 않냐며……”
“설마…… 올렸어?”
“솔직히…… 좀 궁금하긴 했어. 남자들이 뭐라고 할지……”
“…….”

유미의 대답은 인정이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그럼 성인 사이트에 보란 듯이 유미의 몸 사진이 올라간 적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나는 순간 그 사이트 주소를 물을 뻔 했지만 너무 속보이기도 하거니와, 유미의 몸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상하게 보여질까봐 멈칫하고 말았다.

절친한 친구라는 이유 때문에 적나라하게 평가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편이긴 하지만, 유미는 내가 봐도 몸매가 꽤 잘빠진 편이었다. 아니, 단순히 잘 빠졌다기보다는 남자의 무언가를 자극하는 몸매였다. 유미 본인은 항상 하체비만처럼 보인다며 투덜거리지만, 소위 ‘육덕’을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있어서 유미의 몸은 아주 이상적이었다.

오동통하게 물이 오른 엉덩이나 적당히 살이 붙은 허벅지는, 타이트하게 끼는 바지를 입었을 때 유미의 뒤태를 굉장히 야한 느낌으로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하곤 했었다. 실제로 유미도 자신의 그런 어필 포인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타이트한 바지를 즐겨 입는 편이기도 했다. 입으로는 투덜거려도 그 포인트에 남자들이 환장한다는 것을 알고 이용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훌륭한 내숭인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남자들이 봤어?”
“당연하지. 조회 수만 해도 수만 명이 넘었는데.”
“수, 수만 명……?”

가끔씩 유미와 시내에 나가면, 그녀의 뒤태나 다리에 눈길을 던지고 가는 남자들의 시선을 나는 곁에서 자주 느끼는 편이었다. 그들의 그런 시선이 내게는 다소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내 기억엔 나는 유미를 그런 에로틱한 눈으로 쳐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녀와 사귀거나 섹스를 하는 상상 자체를 할 수가 없었기에 이성적인 관심을 애초에 배제했다는 것이 옳겠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그런 것들과는 아예 차원을 달리하는 이야기였다. 수만 명의 남자들이 유미의 몸 사진을 보고, 음란한 댓글을 달고, 자위를 했을 거란 상상을 떠올리니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묘한 기분이 속에서 울렁거렸다.

“어떤 사진인데? 혹시 나한테도 보여줄 수 있……어?”
“지금은 다 지웠어.”
“…….”

나는 질문을 던지며 최대한 무덤덤하게 묻는 것처럼 들리려고 애썼으나, 돌아온 그녀의 대답에 허탈감을 느꼈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남자들 반응은 어땠는데?”
“글쎄…… 별의별 댓글이 다 있었어. 야플에, 욕플에, 초대남 신청에…… 쪽지도 엄청 날아오고. 나는 그 오빠가 보여주는 몇몇 개만 읽었지만 그 외에도 무진장 날아온 모양이더라고.”
“너는 그거 보면서 기분이 어땠어?”
“뭐…… 복잡했지.”

들리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게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호기심과 더불어 기묘한 자극이 물씬 솟구쳐 나는 이것저것을 더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딱히 아는 게 없다보니 뭘 어떻게 더 물어봐야 할지도 애매했다.

“그럼…… 그 이후에도 사진을 계속 올렸던 거야?”
“그리 오래가진 않았어. 그만둬야겠다 싶은 계기가 있었거든.”
“뭔데?”
“우연히 혼자 댓글을 보다가 그 오빠가 예전에 쓰던 닉네임을 보게 됐는데, 검색을 해보니까 그동안 그 오빠가 찍어 올렸던 여자들 사진이 고스란히 뜨는 거야. 나중에 내 사진도 그 사이에 컬렉션처럼 끼어있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찝찝하더라고.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 사진들 속에서 내 친구 사진도 봤거든. 그 오빠를 소개해준.”
“…….”
“암튼 그 일 있고나서 오빠한테 내 사진 다 지워달라고 부탁했어. 그러고 나서 몇 번인가 더 만나다가 자연스레 안 보게 됐고.”
“그 남자가 순순히 지워줬어? 협박 같은 거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행히 그렇게까지 또라이는 아니었어. 뭐, 혹시 모르지, 내 친구 사진을 계속 갖고 있었던 거 보면 내 사진도 아직 갖고 있을지도……. 근데 신경써봤자 골치만 아프잖아. 어쨌든 내 눈앞에선 다 지우고 사이트에서도 내렸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지. 들리는 말로는 그 후에 미국으로 가서 이젠 연락도 안 돼.”
“너, 너 진짜 간도 크다…… 그러다가 큰일 났으면 어쩌려고.”
“안 어울리게 웬 잔소리? 암튼 길게 만났던 건 아니지만 나름 색다른 경험이었지.”

나름대로 유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유미의 그런 경험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것이었기에, 나는 내심 그녀에게 섭섭하면서도 한편으론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관계라 해도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걸까? 어쩌면 유미는 내 생각 이상으로 내게 감추고 있는 게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에게 있는 말 없는 말 모두 까발리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근데, 이거랑 속궁합 맞추는 문제랑 무슨 상관이 있어? 사진을 찍어 올린다고 해서 여자가 꼭 흥분을 하리란 법은 없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남자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저것을 리드해 가다보면 의외로 여자 쪽에서도 ‘케미’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취향의 발견은 보통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니까. 속궁합도 마찬가지일걸? 어느 한쪽이든 다양한 시도를 주도할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포인트를 찾게 될지도 모르지. 대개는 서로 자기가 아는 것들만 고집하다가 안 맞아서 헤어지는 경우가 많잖아.”
“으음, 그러네…….”

그보다도 나는 그녀가 처음에 했던 몇몇 표현들, 이를테면 ‘길들이다’라는 것이나 ‘새로운 눈’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묻고 싶었다. 그 의대 남자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서 그녀에게 있었던 변화는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그녀가 느낀 감각이란 대체 어떤 것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하지만 유미를 잘 아는 나로서는, 그녀가 그 이상의 대화까지는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그녀 스스로 더 이야기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더 캐묻기가 힘들었고, 아쉬웠지만 그날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


유미와의 그 대화를 다시 끄집어내게 된 계기는, 그 이후 한참이나 더 지나고 나서였다.

어느 한가로운 주말에 집에서 쉬고 있던 나를 유미가 갑자기 불러냈다. 오피스텔을 옮기게 되었으니 이삿짐 옮기는 일을 좀 도와달라는 용건이었다. 계집애가 뭐 이런 일을 시키나 싶어 마냥 귀찮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방으로 박스들을 옮겨주었다.

한참 일하던 도중에 유미는 새로 사올 것들이 있다며 마트에 장을 보러 가버렸고, 나는 혼자 남아 기계적으로 그녀의 짐들을 옮기기만 했다. 그리 짐이 많지는 않아서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버렸다. 방바닥에 홀로 멀뚱멀뚱 앉아있던 차에, 심심함을 달래려고 그녀의 노트북을 켜게 되었다.

이 때 솔직히 사적인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녀와는 워낙 거리낌 없는 사이이기도 했고, 또 사람을 불러다 실컷 일을 시켰으니 이 정도 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했다.

노트북을 켜긴 했지만 아직 인터넷 연결을 하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냥 그대로 끌까 하다가, 괜히 짓궂은 마음이 들어 폴더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보았다. 혹시나 야동 같은 거라도 발견하게 되면 잔뜩 놀려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수상쩍어 보이는 폴더들을 뒤지고 다니던 중에…… 문득 의심이 가는 폴더 하나를 보게 되었다.

분명히 폴더 내용물은 별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폴더 용량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옵션에서 숨김 파일 보기설정을 체크했다. 그러자 투명하게 숨김 처리 되어있었던 안쪽의 폴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그것이 그녀의 상식으로 해둘 수 있는 최고의 안전장치였으리라.

뭐기에 이리 숨겨놨지? 일부러 숨겨놓을 정도면 뭔가 있기는 있다는 뜻인데…… 그런 생각이 들자 여기서 그만둬야 함을 느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몹쓸 구석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할수록 오히려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숨김 폴더를 더블클릭했다.

‘…….’

그 순간, 눈앞에는 수많은 사진들이 떠올랐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로 폴더를 빼곡히 메우고 있는 그 살색의 사진들……. 처음에는 그저 인터넷의 야사 모음집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웬 여자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대놓고 클로즈업한 사진이 심심찮게 보였으니까.

설마 이게 유미의 몸뚱이일줄 내가 처음에는 어떻게 알았으랴. 기껏해야 그 사진들이 여러 명이 아닌 한 여자의 몸을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진의 구도는 더욱 과감해지고 있었고……, 급기야 나중에는 얼굴을 찍은 사진까지 보게 되었다.

‘서, 설마 그 때 얘기했던 그 사진이……’

화면에 떠오른 유미의 얼굴, 그 얼굴을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심지어 유미의 얼굴이 찍힌 그 사진은 얼굴만 찍힌 게 아니라 거의 나신이 다 드러나 있었다. 졸지에 나는 네 살 무렵 같이 여탕에 갔었던 적 이후 처음으로, 유미의 벌거벗은 몸을 보게 되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의 몸이 아닌…… 다 자란 그녀의 알몸을 말이다.

게다가 그 사진의 구도는 너무도 노골적이고, 아찔했으며, 또한 음란했다. 사진을 찍은 이는 아예 유미의 몸뚱이를 만천하에 자랑하려는 듯이, 얼굴을 드러내면서도 몸매가 강조되는 절묘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놓았던 것이다. 유미의 젖꼭지가 그렇게 진한 갈색이라는 사실도 그 사진을 보고 처음 알았다.

‘아……’

만약 유미가 내게 있어 정말로 껍데기만 이성일 뿐인, 불알친구에 가까운 존재였다면 이론적으로는 그녀의 알몸 사진을 보았다고 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아랫도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빳빳이 발기되었고, 마우스를 쥔 손은 사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친 듯이 클릭을 반복하고 있었다.

‘미친 년……! 오래 만난건 아니라더니 무슨 사진이 이렇게나 많아?’

폴더의 스크롤바는 거의 끝이 보이지 않을 수준이었고, 심지어 폴더 안에 또 하위폴더가 몇 개는 더 있었다. 게다가 사진 속의 장소나 상황도 수시로 뒤바뀌고 있었다. 처음엔 모텔이나 오피스텔 방 안으로 보이는 곳에서만 사진을 찍더니, 점점 야외로 장소가 바뀌어갔고 나중에는 심지어 공공장소에서까지 몸 노출을 하고 찍힌 사진도 있었다.

‘여, 여기 OO도서관이잖아! 여긴…… OO공원이고. 여기서 이러고 사진을 찍었단 말이야?’

우리 집에서 채 10분 거리도 되지 않는 공공 도서관과, 산책할 때 자주 가는 동네 공원의 모습이 사진 속에서 보이자 나는 얼이 빠졌다. 그곳들 모두 내가 유미랑 가본 적이 있는 곳임은 물론이고, 요즘도 볼일이 생기면 한 번씩 발길이 가는 장소였다.

우리에게 있어선 매우 일상적이고 친숙한 그 공간에서, 사진 속의 유미는 내가 생전 보지도 못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찔하게 짧은 원피스를 입고 마치 도서관의 책을 고르는 척 허리를 숙이고 있었는데, 원피스 안에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노팬티 차림의 그녀를 뒤에서 찍어놓으니 엉덩이는 물론이고 그 사이의 조갯살까지 훤히 보이는 사진이 되고 말았는데, 구도로 보아하니 일부러 그 부위를 강조하려고 찍은 사진인 것 같았다.

한편 공원에서 찍은 사진은 더 가관이었다. 이번엔 아예 아래위로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위로 걷어 올린 채, 유두와 음부를 드러내놓고 보란 듯이 V질을 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 뒤로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녀가 노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보였고, 사진 속에서 V사인을 그리고 있는 유미의 표정은 마치 그 아찔한 스릴을 즐기고 있는 듯…… 묘한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김유미…… 이거 완전……’

덜덜 떨리는 손을 주체하기도 힘들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 변태적 사진들의 끝은 어디인지 꼭 봐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우선 어디론가 사진을 모두 옮겨버리고 싶었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마땅히 옮길 만한 외장 장치가 없었던 데다, 인터넷도 되지 않아서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이건 또 뭐지? 배달노출……?’

그러던 중에 시선을 잡아끄는 제목의 파일들을 보게 되었다. 그 사진들은 다른 사진들과 다르게 어쩐지 조금 특이했다. 단순한 사진 파일이 아니라, 사진을 업로드한 게시글을 그대로 캡쳐해서 정리해놓은 것 같았다. 즉, 액자처럼 사진 속에 사진이 있는 형태였다.

파일 속의 캡쳐 된 게시글은 ‘미미의 배달노출’이라는 제목이었고, 그 아래에는 역시나 유미의 사진들이 여러 장 올라와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당시 사이트에서 유미가 쓴 별명이 ‘미미’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게시물에는 유미의 사진뿐만 아니라, 아마도 그 의대 오빠로 추측되는 남자가 달아놓은 설명글도 눈길을 끌었는데 확대해서 읽어보니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귀여운 미미에게 어느덧 세 번째 배달노출을 시켰습니다. 복장은 보시다시피 위쪽은 시스루 망사에 노브라, 아래쪽은 찢어진 스타킹과 노팬티 조합입니다. 문을 열자마자 배달원이 미미의 젖꼭지와 그곳의 털을 빤히 살펴보더군요. 돈을 가지러 가는 척하며 미미가 허리를 숙여 배달원에게 엉덩이를 보여주었습니다. 두 구멍이 훤하게 보여서 그런지 배달원의 눈이 큼지막해지던걸요. 그래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는지 배달원 앞에서 나름대로 포즈도 잡고, 조금은 적극적으로 변한 우리의 미미입니다. 배달원이 가고 나서 구멍을 확인해보니 첫 시도를 했을 때보다 확실히 젖어있군요. 다음엔 또 어떤 컨셉으로 도전해볼까요?’

사진 속의 유미는 옷을 입은 건지 벗은 건지 모를 꼴로…… 아니, 차라리 홀랑 벗은 것만도 못한 차림을 하고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음식 배달원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사진들은 배달원을 대하는 유미의 모습을 안쪽에서 몰래 촬영한 것들이었다. 화질 때문에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배달원이 유미의 몸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표정만큼은 똑똑히 보였다.

젖꼭지가 훤히 보이는 시스루 망사에다, 찢어진 팬티스타킹 너머로는 속옷도 없어서 털과 음부가 고스란히 다 보였고, 게다가 사진을 살펴보니 그 상태에서 유미는 배달원에게 엉덩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허리를 숙여 돈을 꺼내는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게시물을 올린 남자는 유미를 일부러 다 벗겨서 생판 모르는 배달원에게 보여주고는…… 그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 사이트에 올렸던 것이었다.

‘이, 이건 완전 성노예잖아……’

아마 사진 속에서 얼굴을 뚜렷이 알아보지 못했다면 나는 결코 그 사진 속의 여자를 유미라고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보니 사진들에는 저마다 두 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하나는 사이트에 올리기 위한 모자이크 버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원본 즉, 모자이크 되지 않은 유미의 맨얼굴이 공개된 버전이었다.

대다수 남자들에겐 도도하고 새침한 매력으로 알려져 있는 유미가, 그 내숭 가득한 김유미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더 기가 차는 사실은 사진 속에서만 보면 유미는 그런 플레이를 전혀 거부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유미는 무슨 심리에서인지…… 게시물을 캡쳐한 것뿐만 아니라 그곳에 달린 회원들의 댓글까지도 모조리 캡쳐를 해서 파일로 남겨두었는데, 그 덕분에 나는 유미의 사진을 본 남성 회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한 환호와 감탄에서부터 시작해서 온갖 음담패설로 이루어진 그 뜨거운 반응들…….

개중에는 유미의 몸에 대해 낱낱이 구석구석 묘사를 하면서 적나라하기 짝이 없는 댓글을 쓴 회원들도 많았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자신의 메신저 아이디 따위를 남겨놓고 소위 ‘초대남’ 신청을 갈구하고 있었다.

조회 수는 수만 명에, 댓글만 해도 수백 개…… 이 많은 남자들의 시선과 관심, 그리고 흥분으로 얼룩진 음담패설들을 한 몸에 받으며 유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 왔어!”

그 순간 유미의 목소리가 그 조용한 정적을 깨고 울리자,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놀라서는 황급히 노트북의 전원을 꺼버렸다. 유미가 장을 보고나서 가져온 짐이 무거운 탓에, 그녀가 입구 쪽에서 느릿느릿 시간을 끌었던 것이 내게는 천만 다행스런 일이었다.

“아, 무거워 죽겠네. 이것 좀 안으로 옮겨줘.”
“어어…… 잠시만.”

그녀가 신발장 앞에 물건을 내려놓고 주춤대는 사이에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다행히 그녀는 내가 노트북을 쓰고 있던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짐을 옮겨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나는 섣불리 일어설 수가 없었다. 바지 앞쪽이 불룩하게 텐트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어디 가? 좀 옮겨달라니까?”
“자, 잠시만. 배가 너무 아파서. 거기 잠시만 놔둬……”
“야! 나도 아직 안 쓴 화장실에서 네가 먼저 똥 싸면 어떡해!”

유미가 뭐라고 떠들어댔지만 나는 바지 앞을 가린 채 잽싸게 화장실로 튀어 들어갔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진 속에서 온갖 음란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김유미가 평소 때의 얼굴로 돌아와 내게 소리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변기 위에 잠시 앉아있으니, 곧이어 유미가 바깥에서 부스럭대고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은 채 빳빳하게 선 물건을 손에 쥐었다. 유미가 그렇게나 가까이 있는데도……, 난 얇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것을 흔들기 시작했다.

정액이 뿜어져나가는 순간, 생전 느껴본 적 없던 기묘한 아찔함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


“무슨 똥을 그렇게 오래 싸냐!”
“…….”

화장실 문을 열고 내가 나타나자마자 유미는 나에게 면박을 주었다.

“으으, 아직 내가 앉지도 않은 변기 시트에 이정훈의 궁뎅이가 먼저 닿다니……. 나중에 앉을 때 얼마나 찝찝할까.”
“…….”
“야, 됐고. 우리 배고픈데 뭐 시켜먹을까?”
“어……?”
“네가 오늘 도와줬으니까 누나가 특별히 치킨 쏜다. 어때, 보람차지?”
“어어……. 응.”
“뭐야. 반응이 왜 그래? 너 어디 아퍼?”

‘시켜먹자’는 말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움찔했다는 것을 유미는 알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의 치부를 모두 드러내놓고는 배달원에게 노출 행위를 하던 유미의 모습이 떠올라…… 나는 방금 전에 사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가빠왔다.

“흠, 배탈이라도 난 거야?”
“아니야. 괜찮아. 치킨먹자.”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진짜 괜찮아.”

나는 유미가 치킨을 주문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에서 자꾸만 무슨 말이 불쑥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기에, 입을 열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힘껏 억눌렀다.

주문전화를 마친 유미는 아직 정리가 덜 된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잡지책을 보기 시작했다. 뒹굴뒹굴 태연하게 누워있는 그 꼴은, 어느 모로 봐도 좁은 방에 외간남자와 단둘이 있는 여자의 상황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유미가 정말로 날 남자로 보지 않는다면 이런 질문쯤은 해도 되지 않을까……?

“저기, 유미야.”
“엉.”

사뭇 비장하게 입을 연 나와는 다르게 유미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엉.”
“그게, 딱히 너 말곤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너한테 물어보는 거긴 한데……”
“엉.”
“아니, 아니, 물어볼 사람이 없다기보다는 네가 여자라서 물어보는 거긴 한데……”
“아이 씨! 뭐라는 거야? 질질 끌지 말고 똑바로 말해.”

유미가 발끈하며 성을 내자 나는 괜히 주눅이 들었다. 평소엔 유미가 화를 내도 잘만 받아쳤는데……. 그런 내 태도를 그녀도 조금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나는 더 오해를 사기 전에 입 밖으로 얼른 질문을 꺼냈다.

“너, 너…… 혹시 ‘배달노출’이라고 들어봤어?”
“뭐?”

그 순간, 나는 유미의 눈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왠지 그녀와 눈을 마주치면 속마음을 들킬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내가 노트북을 뒤졌다는 사실을 유미가 눈치챌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유미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볼 수가 없었다.

“배달…… 노출? 그게 뭔데?”

하지만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내 기억으론, 유미는 적어도 나에게는 거짓말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숭으로 가득한 그녀가 주변 남자들에게 이것저것 거짓말을 하는 꼴이야 심심찮게 봐왔지만, 바꿔 말하면 남자로 느끼지도 않는 나에겐 거짓말을 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아니, 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그 대답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복잡한 기분을 심어주었다. 모른 체를 하는 그녀의 태도가 가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생전 처음으로 김유미의 가식을 직접 겪어보는 입장이 되자 알게 모르게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었다.

“아, 그게 뭐나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그녀에게, 일천한 지식으로 설명을 늘어놓으려니 정말 곤혹스러웠다.

“나도 그냥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건데…… ‘야외노출’의 한 종류인 것 같아. 자기 애인이나 파트너의 몸을 공개된 장소에서 은근히 노출시키는 거 말이야. 그러니까 배달노출은…… 음식을 배달시키고 일부러 파트너를 반쯤 벗겨서 배달부가 그걸 보게 만드는 거지. 상대방은 숨어서 그걸 지켜보는 거구.”
“에이, 그게 뭐야…… 누가 보면 무슨 미친놈이나 미친년으로 알겠네.”

그 미친년이 너잖아…… 어디서 내숭이야?

“근데, 나한테 그건 왜 물어?”
“아, 그냥. 보다 보니까 요새는 참 신기한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도 혹시나 알까 싶기도 했고……”
“흐음, 난 처음 들어보는데…….”
“그, 그래? 너라면 만약 그런 거 하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글쎄…… 뭐 재미있을 수도 있겠네. 한번 정도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는 느낌이었다. 경거망동해선 안 될 것 같았지만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을 내뱉고 말았다.

“우, 우리 한번 해볼래?”
“뭐?”

내뱉고 나서야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 아니…… 그러니까, 내가 사실은 그거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너도 알다시피 나 이제 여친도 없고. 내가 그렇다고 섹파 같은 게 따로 있길 하나…… 그냥 재미삼아 부담 없이 해보고 싶었긴 한데 이런 이야기 꺼낼 사람이 너 말고는 딱히 없잖아. 그래서…… 하하……”
“…….”

유미가 입을 닫고 침묵하자 나는 속이 울렁이는 느낌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수상하다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네 말은, 나더러 옷 벗고 나가서 치킨 받아오라는…… 뭐 그런 뜻이야?”
“아,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는…… 네가 싫으면 안 해도 되고……”
“당연히 싫지! 누구 좋으라고 그런 짓을 해?”
“아, 알았어. 싫으면 뭐…….”

괜히 도둑이 제발 저려서 더 권유해보지도 못하고 나는 움츠러들었다. 별 해괴한 소리를 다 한다는 눈으로 나를 쏘아붙이던 유미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잡지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네가 말하는 그런 것들은 결국 남자들 눈요깃거리를 위한 거 아니야?”
“응? 무슨 말이야?”
“노출을 하려면 남녀가 똑같이 하든지. 네가 말하는 뉘앙스를 보니까 그 ‘노출’이란 걸 하는 쪽은 일방적으로 여자인 것 같은데, 그래서야 그게 어디 공평해? 왕게임이나 다름없지.”
“…….”

순간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맞는 말이긴 했다.

“그, 그럼…… 같이 하자고 하면 해볼 거야?”
“그것도 싫어.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그러고서 유미는 책장을 한 장 넘기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하고 싶으면 네가 먼저해보든지.”
“내, 내가?”
“왜? 그럼 나한테 시키기만 할 생각이었어?”

나는 아주 잠깐 동안 머릿속으로 사진 속에서 보았던 유미처럼 거의 반쯤 헐벗고 타인 앞에 서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일단 생소한 것은 둘째 치고, 심미적으로도 그리 보기 좋지가 않았다. 대체 남자가 노출 따위를 해서 뭘 한담……?

유미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도 내가 그런 짓은 아예 엄두를 못 낼 거라 여기고 있는 게 분명해보였다. 그 태도는 마치 ‘용기도 없는 주제에 그런 말 함부로 꺼내지 마’하고 쏘아붙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왠지 친구이기 이전에 남자로서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고, 유미도 별다른 기색 없이 잡지책만 넘겼다. 정적이 깨진 것은 치킨 배달원이 도착했을 때였다. 딩동, 하는 벨소리를 듣고 유미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내 지갑 어딨더라?”
“있어봐. 내가 나갈게.”
“왜?”

의아해하는 유미의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유미 앞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졌다. 깜짝 놀란 유미가 채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난 사각팬티만 입은 채로 알몸이 되었다. 하지만 그 팬티 한 장마저도 보란 듯이 벗어버렸다.

“야, 야…… 너 뭐하는……?”

가랑이 사이에서 대롱거리며 흔들리는 물건을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유미가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렸다. 이로써 어릴 적 여탕에서 이후, 처음으로 유미에게 내 그곳을 보인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조금 전에 그녀의 알몸을 보았었으니까…….

“만 삼천 원입…… 으악!”

홀딱 벗은 내가 문을 열어젖히자, 배달원이 봉투를 건네다말고 기겁해서 뒤로 물러났다. 나 또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지폐를 건넸다. 지폐를 세어본 배달원은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표정이 되어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

내가 의기양양하게 치킨을 들고 들어오자 유미는 얼이 빠진 표정이 되어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다리 가운데에서 흔들리는 물건을 왠지 뿌듯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내보이며 씩 웃었다.

“이제 네 차례지?”


- 중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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