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가 연애에 미치는 영향
옷깃만 스쳐도, 손끝만 닿아도 두근두근했다던 그 어느 적 연애의 낭만을 논하기엔 우리 시대의 연애는 너무 되바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섹스는 더 이상 사랑의 종착지도, 검증의 척도도 아닌 데이트 코스의 하나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연애의 핵심에 자리한 섹스에 대한 근원적 질문 하나. 그와 당신의 연애에 있어 섹스가 만들어내는 파장이란?
우리 엄마, 아빠 연애하던 시절에는 손만 잡아도 동네방네 스캔들감이었다.
반면, 우리 세대의 연애에 있어 스킨십과 섹스는 너무 흔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섹스와 연애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조합이다.
연애에 있어 섹스는 어떤 의미일까?
남자와 여자가 섹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과연 흔해진 섹스가 우리 시대의 사랑을 짧게 단축시켜버리는 원인이 되는 걸까?
COUPLE 1 : 배려와 사랑으로 시작된 섹스는 사랑을 더 깊어지게 한다.
졸업 전 소개팅으로 만난 그녀는 발랄함 그 자체였다. 차마 키스 조차도 섣불리 시도하기 힘들 정도로 그녀는 순수하고 귀여웠다.
사귄 지 한 달이 훨씬 지나서 첫 키스를 했는데, 이미 그녀에게 푹 빠져 있던 터라 키스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하지만 나도 남자다. 아무리 순수한 그녀를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한다지만, 같이 있다 보면 만지고 싶고, 키스하다 보면 더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들었다. 무
작정 덤비면 그녀가 놀랄 것 같았고, 나 또한 그렇게 막무가내로 그녀를 안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계속 만나다가 나는 취직을 했고, 첫 휴가 때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단둘이 휴가를 떠나자고 제안했다.
휴가지에서 드디어 첫 섹스를 하게 되었다. 그 어떤 어색함도 없이 말이다.
섹스 자체가 좋았냐 안 좋았냐를 떠나서, 좋아하는 여자와의 섹스여서 그 감흥이 남달랐던 것 같다.
비로소 우리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나는 그녀와 섹스를 하면 섹스를 해서 좋다는 느낌보다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행복하다. 김진섭(가명·30세·회사원)
연애가 처음도 아니었고 섹스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섹스에 대해 수줍거나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다.
남자친구는 처음부터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며 아껴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순진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살짝 부담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손만 잡고 다녀도, 키스만 해도 너무 좋았다.
물론 같이 있다 보면 스킨십도 진해지고 섹스를 원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지만, 왠지 나를 지켜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확연했고 나 또한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게 좋았다.
드디어 첫 섹스를 할 때 우리는 술이 진탕 취하지도 않았고 그가 무섭게 달려들었던 것도 아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고, 그는 나를 배려했다. 여느 남자들이 그러하듯 처음이냐 아니냐를 두고 따지는 것도 없었다. 서로를 믿고 있으니까.
우리에게 섹스는 단지 서로를 좀더 가까이 원하는 행위일 뿐이다. 다만 그와 섹스를 하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한층 강렬하게 전달되는 기분이어서 좋다. 이민아(가명·28세·회사원)
COUPLE : 2 섹스로 시작된 관계는 섹스가 시들해지면 식기 마련이다.
동료의 친구인 그녀와는 술자리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녀의 섹시한 분위기와 센스에 반하고 말았는데,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오랜 남자친구가 있었다.
단 둘이 두어 번 술자리를 더 가지면서 그녀를 그에게서 빼앗을 자신이 생겼다.
유난히 그녀가 빨리 취한 것 같은 어느 날, 그녀를 슬쩍 호텔로 이끌었다. 그날 밤 우리는 날이 밝을 때까지 섹스를 했던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그녀와 나는 섹스 궁합이 너무도 잘 맞았다.
그 후로는 술을 마시면 곧장 호텔로 향했고 얼마 뒤 그녀가 남자친구와 헤어져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다.
그때부턴 만나면 늘 호텔, 그녀의 집, 내 방에서 섹스를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나니 이제 그녀와의 섹스는 만나면 의례적으로 해야 하는 하나의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점점 횟수는 물론 격정의 농도도 줄었고, 뜸해진 섹스 횟수만큼 생각하는 시간, 연락하는 횟수, 만나는 날짜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점차 멀어지게 되었고 몇 번의 다툼 뒤에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장요한(가명·33세·디자이너)
나는 섹스로 외로움을 달래고 애정을 확인하는 편이다.
전 남자친구와는 그래서 갈등이 있었다. 약간 고지식한 그는 당당하게 요구하는 나를 밝히는 여자 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를 만났고 연애관, 섹스관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분위기가 자연스레 그렇게 흘러갔다.
그와의 섹스는 정말 좋았다. 우리는 늘 어쩌면 이리 잘 맞는지 감탄하며 섹스를 했고, 그래서 나는 당연히 남자친구를 정리하고 그와 사귀게 되었다.
그런데 섹스가 즐거운 연애는 분명 좋은 것이지만, 섹스뿐인 연애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만나면 늘 실내로 들어가 섹스를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날 그에게 “오빠는 섹스 때문에 날 만나나요?”라고 묻기까지 했다.
당연히 그는 화를 냈고 나를 좋아한다 했지만, 처음부터 그가 날 사랑한 이유는 섹스 때문이라는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만나면 늘 그 문제로 싸웠고, 나는 그에게서 결코 정서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그를 떠났다. 이마리(가명·30세·디자이너)
COUPLE : 3 섹스, 연애의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나는 섹스를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다. 직업의 성격상 접대 받을 일이 많다보니 룸살롱에도 많이 다니는데 그런 관계도 거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들 사이에서는 얼마나 많은 여자와 ‘일회성 관계’를 맺었는지가 자랑거리가 되기도 해서 그런 얘기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편이다.
여자친구와는 2년 전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아무렇지 않게 원 나이트 스탠드를 즐기던 나지만, 그녀와는 사귄 지 2개월 정도가 지난 후에 첫 섹스를 했다.
확실히 첫 섹스 후 더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섹스 후 감정이 확 바뀐 것은 아니다.
섹스가 먼저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라, 감정의 변화에 맞춰 자연스럽게 섹스가 이루어진 것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녀와 하는 것도 좋고 다른 여자와 하는 것도 좋은 것일 뿐, 다른 여자와 한다고 해서 그녀에 대한 감정이 식지도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육체적 관계보다는, 힘들 때 믿고 의지하는 것이 더 감정을 깊게 만드는 것 같다. 박수호(가명·32세·증권사 과장)
감정의 깊이가 꼭 섹스를 통해서만 깊어지는 건 아니다.
연애를 하면 시간과 감정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섹스를 하게 되니 굳이 섹스로 인해서 섹스 전과 후의 감정이 달라지진 않는 것 같다.
우리는 딱히 언제 섹스를 할 것이냐를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하지도 않았고,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흐르는 대로, 감정과 욕망이 흐르는 대로 하다 보니 섹스가 필요한 순간에 이르렀다.
물론 그 후에 둘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긴 했다.
아무래도 서로의 발가벗은 천연의 상태를 보고 안 보고의 차이는 있으니 말이다.
그 후로는 만나면 당연하게 섹스를 한다. 섹스가 목적이라기 보다도 데이트 코스의 하나쯤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섹스 때문에 삐걱거렸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가 섹스할 때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많이 배려해 그런 것 같다.
나는 섹스를 한 남자와 꼭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극 보수주의자는 아니지만, 이 남자와는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 그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최란(가명·31세·의사)
COUPLE : 4 섹스가 관계의 모든 고비를 감당해낼 수는 없다.
그녀와 나는 처음부터 달랐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매력에 끌렸던 게 사실이지만 우리는 만날수록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런 우리 사이에 유일하게 잘 맞았던 것이 바로 섹스였다.
만나면 당연스레 섹스를 했고, 싸워도 섹스로 풀었으며 딱히 할 일이 없으면 섹스를 하는 식이었는데, 습관이라기보다는 그녀와의 섹스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 번 싸우면 곧 다시 안 볼 사람들처럼 싸웠고 3년 동안 두어 번 헤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꼭 둘 중 하나가 연락해 다시 만나곤 했는데, 아무래도 ‘몸정’ 때문이지 않았을까.
섹스를 할 때만큼은 진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강렬히 원했다. 하지만 아무리 섹스가 좋아도 그녀와의 결혼생활을 상상하면 피로가 몰려드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성질을 당해낼 재간도, 그녀의 자유분방한 스케줄과 사고방식에 맞출 자신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결혼 얘기가 오가던 차에 또 싸우고 헤어졌다. 강영효(가명·36세·회사원)
나는 기본적으로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그는 재미없는 남자의 전형이었다.
결혼하면 주말에 소파에 드러누워 TV 리모컨만 누를 것 같은 그런 남자 말이다. 그래도 섹스만은 기가 막히게 궁합이 좋았다.
얘기를 하면 늘 한쪽이 짜증을 내며 대화가 끝나곤 했는데, 섹스만큼은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사랑했던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 맞고 즐거웠다.
어쩌면 그토록 안 맞는 우리가 3년 넘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다 섹스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싸우고 난 후에도 말보다는 섹스로 푸는 게 효과적일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기본적으로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기에 섹스 이외의 모든 상황에서 부딪히고 불만족스러워도 얼마든지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여겼다.
아무래도 나는 섹스할 때의 열정을 ‘사랑의 엑기스’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몸정’인 것 같다 결론 짓고 헤어졌다. 굿바이 섹스를 끝으로. 나미애(가명·33세·프리랜서)
COUPLE 5 섹스관에 대한 차이는 연애의 걸림돌이 된다.
그녀는 신입사원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첫눈에 그녀를 마음에 둔 나는 그녀의 주위를 맴돌다 필요할 때 짠하고 나타나 결국 그녀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어린 그녀는 유독 섹스에 보수적이었다. 나는 섹스는 데이트 코스의 일부일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하게 섹스를 요구했는데, 종종 짐승 취급을 당했다.
점점 오기가 생겼고 집요하게 그녀에게 들이댔다. 마치 그녀와 한 번 자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라도 된 듯이, 데이트할 때마다 그녀를 붙잡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그녀에게 헤어지자 했더니 그녀가 던진 말. “오빠,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럼 해드릴게요.”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잤다.
하지만 뻣뻣하게 몸을 굳히고 있는 그녀와의 섹스가 즐거울 리가 없었다. 얼마 못 가 우리는 헤어졌다.
즐거움을 공유할 수 없는 연애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김영수(가명·34세·회사원)
그에게 끌렸던 이유는 너무도 듬직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선 나이가 많아 부담스러울 거라며 말렸지만 어쨌든 선배로서 존경하고 남자로서 믿음이 가는 그와의 연애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듬직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매일같이 섹스하자고 아이처럼 졸라대기 시작하는데, 참 실망스러웠다.
그와 만나기 전에 섹스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실 나는 섹스가 힘들고 아프고 부끄럽기만 했다.
그는 나더러 보수적이라 했지만, 난 단지 섹스가 싫은 여자일 뿐이다.
섹스에 점점 더 집착하면서 애원하고 어르고 달래다가 급기야 화까지 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원하는 것이 내 몸인 건가 하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어느 날 그가 많이 지쳤는지 헤어지자고 했다.
왠지 미안하고, 그가 그 정도로 원한다면 못해줄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드디어 섹스를 했다. 하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이미 우리 사이의 섹스에 사랑 따윈 없었다. 그는 오기로, 나는 마지못해 한 것이었으니까. 박희영(가명·28세·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