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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육이오 상흔


또 하나의 육이오 상흔


나를 슬프게 하는 노래가 하나 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주는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이 노래가 지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사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마누라 그리고 나와 한 집에 사는 호건이와 호건이 엄마는 매년 현충일만 되며 국립묘지에 참배를 하러 간다


난 내 친구였던 강 상호 일병을 애도하기 위하여 가고 이미 세상을 하직한 내 아내는 하룻밤 풋사랑이지만 정을 나누었던 상호 오빠를 매년 애도하다가 5년 전에 그를 따라 갔고 상호를 아버지로 알고 있는호건이와 오헉이 내외는(사실은 군대 가기 전에 서로 마누라를 바꾸어 이틀을 잤는데 호건이 엄마가 내 아이를 임신을 하여 호건이를 낳고 상호 호적에 입적을 시켰음) 아버지와 시아버지에 인사를 하러가고 호건이 엄마는 자신에게 면사포를 씌워준 남편 상호의 영전에 애도를 표하기 위하여 찾아가며 아늬 아등 딸 내외는 사연도 모르고 시아버지인 내가 가자고 하니 영문도 모르고 따라오는 것이다.



사실 육이오가 나기 전부터 우리 부락은 딱 두 가구뿐이었다.


요즘이야 전기가 올라오고 펌프가 있으며 내가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바꾼 덕에 물을 펑펑 쓰지만 친구 상호하고 뜻을 맞추어 올라오기 전만하여도 집도 절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문론 나와 상호가 15살이 먹기 전까지 살던 부락은 컷고 사람도 많았으며 나와 상호는 형제가 많았다.


그랬기에 나와 상호는 도토리 밥보다 못 한 그런 존재감이라고는 젼혀 업승 사람이었다.


우리 형제는 13남매 중에 6번째였고 상호는 10남매 중에 세 째였다.


상호와 난 나이도 같았지만 의견도 투합이 되었다.


우리 들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부모님 밑에서 농사일을 배웠다.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말이다.


일에 관한한은 나나 상호나 부모님이나 형 누나들에게 지적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지금에야 밝힐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나와 상호 둘만의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건 우리가 15살이 되는 해의 설이 지나면 그 동안 여분으로 몰래 장만을 하여두었던 농기구들과 곡식들을 가지고 깊은 산으로 올라가기로 말이다.



상호와 난 시간만 나면 우리가 갈서 산길도 없는 산에 갔고 가면서도 빈손으로 가는 것아 아니라 농사를 짓는데 쓰일만한 것 내지는 움막집이라 자을 때 쓰일 나무판자 하나라고 가지고 갔고 15살이 되어서 올라와 불을 질러 화전은 만들기로 한 것의 나무 사이에 있던 돌부터 멀리 옮기고 열다섯이 되는 해에 정식으로 산으로 올라가 오두막 하나만 짓고서 산을 개간하기로 약속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갈 곳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상호와 저 둘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농사를 지어 고구마나 옥수수 등의 우리가 심어서 수확을 하여 한 가마니 이상 집에다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절대 집에 왕래를 하지 않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해방이 되던 해에 우리들은 가출을 단행하였습니다.


첫 해에 고생을 정말이지 말로는 어떻게 표현을 하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고생을 하였습니다.


나무를 해가 팔아서 산 보리쌀이 우리들의 식량이었고 그도 하루에 두 끼 이상을 먹은 젓이 없었습니다.


아무 나물이나 끓여먹다가 죽다가도 살아았고 소나무 속껍질을 뜯어다가 옥수수 가루와 함께 풋대 죽을 끓여먹기가 다반사였다.


보리쌀로 죽이라도 해 먹는 날은 한 달이면 한 번 정도 있었을까 할 정도로 우리는 절약을 하면서도 아주 부지런하게 일을 하였습니다.



두 째 중후반부터(감자가 나오면서) 그리고 이듬해에는 자급자족 수준의 농사가 되었습니다.


삼 년 째 가을 우리는 약속대로 당당하게 지게에 고구마 한 가마니 옥수수 한 가마니 반을 가지고 집으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나 상호 부모님은 우리가 어디서 죽었는지 모른다고 아예 없는 자식 취급하였다는데 우리기 빈약하지만 금의환향하여 집으로 가자 가족들을 우리를 얼싸안고 잔치까지 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상호와 저는 아빠들만 데리고 우리가 개간한 땅을 보여주자 우리더러 형제처럼 의지하며 살라고 하시고는 집으로 갔습니다.



요즘은 비포장이지만 도로라도 있지만 당시에 우리가 살던 여기서 우리 부모님이 사는 곳 까지 가려면 하루 반이 꼬빡 걸리는 그런 오지도 그런 오지가 없다고 할 정도로 오지였습니다.


산길도 우리가 일일이 나무를 베고 풀도 베어서 만들어 진 길이었지 길도 하나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농사가 안정권에 들어가자 장가 갈일이 생각났습니다.


그게 아마 19살 되;던 해였지 싶습니다.


색시 구하는 것도 급하지만 그 보다는 움막집이라도 집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고구마 감자 옥수수를 장으로 가져가서 팔았고 그리고 못과 대패 톱 못 등을 샀습니다.


철물점 아저씨가 우리들에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깊숙한 산에서 화전을 일구고 사는데 장가들 아니가 되어가기에 집을 하나 더 짓기 위해 연장들과 필요한 것을 산다고 하였더니 각시 먹여 살릴 정도는 되느냐고 크게 관심을 보이시기에 우리만 먹는 것이 아나라 부모님에게도 작지만 일부 가져다준다고 하자 다음 장날 필히 오라고 하였습니다.



다음 장날 그 철물점으로 갔을 때는 거지 행색을 한 두 사람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다짜고짜 자기들을 우리 화전 밭으로 데리고 가자며 앞장을 섰습니다.


길도 없는 길을 가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간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로 동갑내기 딸을 두고 있는데 입에 풀칠만 해 줄수 있는 사람이라면 첩자라라도 마다하지 않을 판국에 철물점주인으로부터 우리들 이야기를 듣고는 아침부터 철물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였다.



두 사람은 우리가 일군 화전을 보자마자 덩치가 상호에 비하여 조금 큰 나를 보고 한 사란이 박 서방 하며 내 손을 잡자 다른 사람이 상호 손을 덥석 잡더니 강 서방 하고 불렀고 그 두 사람은 거기서 남아 우리가 짓고 있던 집이 완성이 되는 날까지 함께 일을 하더니 내려갔고 이틀 후 그 두 남자들이 여자를 각기 둘 데리고 오더니 나이 많은 한 여자를 장모라고 소개하고 어린 처자를 내 아내라고 하며 막무가내로 맡기고는 가버렸고 상호 역시 새0drkr지도 않은 여자를 각시로 맞이하였다.



상호 마누라와 우리 마누라는 우리처럼 고추친구였다.


그러니 서로의 비밀이 없었다.


상화와 나처럼 말이다.


우스운 말이지만 그 두 여자들은 상대 보지 털이 몇 개인지도 서로 알 정도였다.


그러니 부부간에 있었던 일도 모조리 공유하고 있었다.


호미가 문제가 생겨 장에 다녀온 상호 처다 전쟁이야기를 하였다.


상호 처의 말에 따르면 남자란 남자는 보이기만 하면 징용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상호가 가야 한다면 갔다가 오자는 것이었다.



우리의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둘 다 군에 가면 농사는 누가 짓느냐.


마누라들이 짓겠다고 나섰다.



말이 전쟁인데 죽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어떻게 하느냐.


해답이 없었다.



또 하나만 죽고 하나만 살아서 오면 어떻게 하느냐.


역시 해답이 없었다.



두 마누라 모두가 아이를 배지 않았는데 후사는 어떻게 하느냐.


역시 답이 없었다.



이틀을 그 문제로 골머리를 싸매는데 상호가 넌지시 자가 마누라가 흘린 말이라며 내어놓은 안이 있었다.




둘 다 죽을 경우 마누라들이 농사를 짓고 누가 하나 죽고 하나만 살아오면 살아온 남자를 두 여자가 서방으로 모시고 살고 누가 살아오던 상호가 낳은 아이는 상호 호적에 입적을 시키고 내 마누라가 상호만 살아와 상호의 아이를 임신하면 내 호적에 넣자고 말이다.


아무리 머리를 글려도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문제는 시작이었다.



가령 내가 죽고 상호가 살아 왔을 마누라가 상호의 몸을 쉽게 받아들이겠느냐가 문제였다.



상호가 나를 설득시키려 하였다.


근대에 입대하기 전에 마누라를 바꾸어 자 보자고 말이다.


쉽게 할 수 있는 그런 말은 아니었지만 난 수긍을 하였다.


그런데 여자들 설득이 문제였다



좆 맛을 아는 여자 같았으면 설득이 쉬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상호 마누라나 우리 마누라 둘 다 좆 맛은 전혀 몰랐다.


씹을 하는 것은 아기를 만드는 일로만 알았다


의외로 상호마누라는 적극적이었다.


물론 자가가 흘린 말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마누라는 손톱도 안 들어갔다.



고민 끝에 묘책을 쓰기로 하였다.


사실 내 좆이 상호 좆에 비하려 훨씬 굴고 길다.


그래서 그런지 잠자리에서 잠자리를 할 때만다 마누라는 아프다고 짜증을 부렸다.



나에 비하여 상호 좆을 말 그대로 좆만하다.


발기기 되어도 어른 엄지 크기였고 길이도 1/4정도 짧았다.


상호와 머리를 맞대었다.


나와 내 마누라가 밭을 매고 있을 때 우리를이 보라고 오줌을 싸며 먼 산을 보라고 말이다.


“여보 저런 좆으로 쑤시는데 민정 댁 무슴 말 안 하던가”약속대로 상호가 먼산을 보며 좆을 끄집어나고 오줌을 누는 것을 옥수수 가지 사이로 가리키며 말하자


“어머머 임자 것이 저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 꼬? 우리아버지 사람 봐도 잘 못 봤지”하고 말하면서도 마누라는 상호 좆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였다


“저렇게 작은 것이 그리도 부러워 보여”하고 묻자


“암요 부럽고말고요.”계속 보면서 말하기에


“그럼 우리 민정 댇 말처럼 이틀만 빠꾸어 자보자”하고 말하자


“.......................”마누라가 입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상화아 난 마누라를 바꾸어 자보기로 약속을 하고는 호롱불도 밝히지 않았다.



“인근아 거 그 굵고 긴 좆으로 우리 마누라 보지 걸레 만들지 말고 살살 해라 알았냐?”상호가 나에게 신신당부하자


“그래 그렇다고 눌어난 우리 마누 라 보지 맛없다고 하는 말은 피해라”하고 나도 당부하고 서로의 집으로 들어갔다



자기가 흘린 제안이라서 그랬던지 상호 마누라는 어둠속이지만 별빛으로 인해 사람 구별 정도는 할 만 한 빛에도 상호 마누라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어찌 될지 모르니 서로 이해합시다.”하고 말하며 상호 마누라 옆에 앉자


“휴~전쟁이 원수지”상호 마누라는 자기가 흘린 말이 발단이 되었기에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아니 되레 고쟁이가 엉덩이에 걸려 잘 안 벗겨지자 스스로 엉덩이를 들어 올려주기까지 하였고 알몸이 되자 방바닥에 눕더니 그래도 여자인지라 남의 남정네 앞에서 알몸을 고스란히 보인다는 것이 부끄러웠던지 한 손으로 보지둔덕을 가렸고 한손과 팔로는 젖가슴을 숨기고도 시선은 옷을 벅고 있는 아에게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다 살아 돌아오면 이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하나가 살아오지 못 하면 이렇게라도 하며 살아야겠지요?”하고 말하면 난 상호 마누라 몸 위로 올라갔고


“.................”그러자 상호 마누라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더니 내 목을 두 팔로 감았다.


“윽! 그이보다 굵고 커요”상호 마누라가 말하였다.


“싫어요?”천천히 움직이며 물었다.


“싫은 것은 아니지만 찢어지진 않겠죠?”상호 마누라가 웃은 모습이 별빛 덕에 유난히 노랗게 보였다.



“민정 댁은 상호와 나와 다 해 봤으니 진실을 말 할 수 있겠죠?”마누라의 보지구멍에 비하여 한 결 빡빡함을 만끽하며 장난스럽게 묻자


“둘 다 살아오면 좋겠지만 딱 한 사람만 살아온다면 민정 댁은 누가 살아 왔으면 하나요?”하고 말하자


“호호호 예전부터 말에 있죠? 남자는 굴고 긴 게 좋다고 하잖았어요? 언니는 좋겠네 형부 코가 커서라고 호호호”역시 화끈한 민정 댁이었다.


우리 마누라 같으면 그런 말을 하기는커녕 하기만 하여도 옥을 직사하게 하고 남을 여자였다



“하하하 민전 댁 맛은 알아요?”떡칠을 하면서 물었다.


“조금 그런데 효정이는 하기 싫어 죽겠다던데요. 난 좋구만.”속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잘해서 둘다 살아오면 상호 몰래 줄래요”빠르게 떡칠을 하며 물었다.


“호호호 효정이도 지금 그이하고 이런 이야기 하고 있을지 모르겠죠?”민정 댁이 대답을 회피하였다.


“하하하 그럴지 모르죠? 나중에 어때요?”다시 물었다.


“안 발각 될 자신이 있으면 마음대로 해 보세요”싫지 않음을 은근히 내비쳤다.


민정 댁과 난 거의 뜬눈으로 새우며 서로를 갈구하였지만 상호의 말에 따르면 내 마누라는 세 번을 하자 더 이상 못 하겠다며 말치는 바람에 하지 못 하다가 새벽에 이기척에 눈을 뜨니 내 마누라가 고쟁이를 입으려고 하는 손간 고쟁이를 당겨 겨우 한 번 더 하였다고 했다.



그렇게 상호와 난 마누라 바꾸어 자기를 이틀 하였고 상호가 내 마누라와 한 것에 비하여 거의 곱절 이상을 더하고도 상호와 마누라의 눈을 피하여 입대하기 전까지 아마 다섯 번은 더 한 것으로 기억한다.



여자들의 꼼꼼함은 남자의 그것에 비하면 정말 대단하였다.


이틀을 남편을 바꾸어 잤던 상호나 나는 서로 알겠다며 의리로 다짐을 하는 것으로 대충 얼버무리려 하였으니 여자들 특히 민정 댁은 그렇디 않았다.



남편들 더러 장에 가서 그 귀한 종이와 먹지에 연필은 지워 고치기 쉽다면서 잉크와 펜까지 사오라고 닦달을 부린 것이다



준비다 되자 겨우 국민 학교 출신 주제의 내 남녀가 머리를 맞대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들 중에는 거의 한글을 이해하고 쓰로 읽기를 자유롭게 하는 애들이 허다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일제 밀기의 과도기에 조등학교를 다닌 우리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 그대로 개판이나 다름이 없었다.


개중에서 .좋금 낳은 사람이 민정 댁과 나였다.


우리 마누라는 가나다라와 숫자 세기 정도만 능하였고 상호는 자기 이름 석 자 쓰는데도 한 시강 이상이 걸릴 정도라 누가 보면 글을 쓴다고 보기보다는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 편이 졸을 것 같은 그런 솜씨였다.


하지만 말은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결국 오두막집 평상 마루에서 민정 댇과 내가 머리를 마주하고 상로와 마누라가 곳수수 반에서 일을 하기로 결ㅇ정을 하였다.


이틀 밥의 잠자리가 왠지 아쉬웠던 민정 댁과 나로서는 천혜의 기회였다.


<우리 강상호 박인근 남 민정 이 효정은 다음 얏곡을 상실하게 지킬 것을 서명합니다.>이 문구 하나 만드는데 한 가절 반이상 결렸다.


물론 상호와 마누라 눈을 피하여 시쳇말로 번개 씹을 하 가면서 말이다.



이틑 날 다시 민정 댁과 나는 머리를 마주하였다.


민정 댁이 초반부터 생각이 났었든지 잉크를 흘려 나의 손에ㅐ 잉크를 묻게 하여 닦아주며 묘한 웃음을 주었지만 상호와 마누라가 가까이서 옥수수 알갱이를 뜯는 작업을 하기에 십을 하기에는 우주 불안한 위치였지만 자기 남폄늬 좆 맛이 아닌 외간남자의 좆 맛을 봐 버린 민정 댁은 겁도 없이 나부대었다.


살살 달래며 다시 문구를 정리하였다.



<남민정과 이효정은 둘의 남편인 강상호 박인근 둘 모두가 살아 올 경우 이번의 일은 없었던 일로 한다.>이 문구가 완성이 된 것 역시 해가 지기 직전이었고 그날은 민정 댁 소원대로 나와 민정 댁이 씹을 하지 못 한 날이었다.



사흘 째 되는 날 이미 영장을 받은 상태라 마음도 조급하고 몸도 조급한 상태였다.


여름 농사로 몸이 탈진이 된 상태라며 민정 댁이 상호에게 아랫동내로 내려가 씨암탉 두 마리를 구해오라고 하더니 우리 마누라에게는 산에 올라가 산삼이나 아님 옻나무 등을 캐 오라고 지사하였다.



그들이 사라지자 민정 댁은 아예 노골적으로 하자고 덤벼들었고 덤벼드는 여자 마다할 내가 아니었기에 차분하고 질퍽하게 분탕질을 쳤고 그리고 세 번째 문구를 완성하였다.



<남편 강상호 박인근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살아 돌아 올 경우 남민정과 이 효정은 살아온 남자를 공동의 남편으로 삼고 서로 시기나 질시를 절대 하지 않은가>세 번쩨 문구는 둘이 없는 사이에게 아주 질퍽한 관계를 한 후라 일사천리로 완성이 되었다.



<남민정 이혀정이 낳은 아이는 그 씨가 강상호 씨든 박인근 씨든 법으로 나무라의 남편 호적에 입적을 시킨다>넷째 문구는 닭고기를 뜯으며 내명이 깊이 짜낸 문구였다.


그리고 네 명이 각자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으면 그만아라고 생각하였는데 민정 댁이 발목을 잡았다.


뭔가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별 다른 내용이 없었다.



“민정 댁 이제 이름 쓰고 지장 찍어 서로 보관합시다.”


“아뇨 전장에 나가시는 남편들이 안심을 할 그런 문구 하나 더 넣어야 해요”뭐든지 하면 똑 소리 나게 하는 민정 댁있었다.


반면 내 마누라는 말 그대로 좋은 것이 좋다고 하는 두루뭉술한 그런 여자라 이 사람이 이런 갑다, 저 사람이 저런 갑다 이 사람 말도 맞아 보이고 저 사람 말도 맞아 보이는 지조 없는 여자의 본보기라고 할 정도였다.



상호도 나도 우리 마누라도 완벽하다고 하는 데도 오로지 민정 댁만 뭔가 하나가 찜찜하다며 올돌하게 생각하였다.



그 다음 날 오후 마누라가 산나물약초를 구하러가고(군대에 변변한 약이 없다는 소문이 민가에까지 퍼진 것이다)상호 역시 뒷산 너머에 있는 윤 초시라는 노인이 군대에 가서 쓰일지 모른다며 무슨 약초가 있다며 자져가란 전갈을 받고 간 것이다.



“!”난 놀랐다


민정 댁이 종이 한 장에 한 구절의 글을 가지고 왔다


<강상호 박인근 남민정과 그리고 이 효정은 죽는 그날까지 이 일에 대하여 발설하지 않을 것이며 발설을 할 경우 발설은 하는 사람은 이 화전촌에서 영원히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약속 한다.“


앞에 네 가지의 내용은 겉치레나 다름이 엊ㅂㅅ다면 마지막 한 구절은 모든 것을 함축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결과는 뻔하였다.


나와 민정 댁이 감격하여 끌어안았고 그 결과로는 다시 끈적끈적한 육체의 향연을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걸로 난 우리마누라에 비하여 엄청 밝히는 여지임을 알았다.



상호와 마누라가 돌아오자 우리는 그것을 종합하여 네 장의 종이에 먹지 세장을 끼워


넣고 필체가 가장 좋은 민정 댁이 정성을 들여 작성을 하고 우리는 각각의 종이에 연명을 하고 지장을 찍음으로서 법적인 효력까지는 모르겠지만 네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문서를 작성하였고 그리고 일주일 후 우리는 여장을 받고 면소재지에 집합을 하여였다.



멋모르는 아이들은 태극기를 돌고 날뛰었지만 정작 군대에 보내는 가족들은 눈물 판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난 무서운 것을 봤다.


우리 마누라의 경우 나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고 마지막 모습이려니 하고 눈물을 닦지도 않고 바라조기만 할 뿐인데 상호 마누라 민정 댁은 울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나를 보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인 것이다.


나로서는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리나 무심한 군용트럭을 그들을 멀리하고 전장으로 나갔고 대행이 상호와 난 같은 소대에 배치를 받았다.


전쟁은 치열하였다.


더구나 우리가 입대를 한 시기가 종전을 앞둔 상황이었고 중공군이 개입을 하면서 벌이는 인해전술을 정말 진을 뺄 정도로 강력하였다.



휴전이 임박하였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한 치의 땅이라도 거 빼앗고 또 빼앗기지 않으려는 전투는 정말 일진일퇴를 거듭하였다.


아마 그때 가장 많은 사상자들이 나온 것으로 안다.


전쟁이란 것이 밤과 낮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잠은 자야 하였다.


본대까지 쳐들어왔을 경우는 밤을 새며 싸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싸우다가 밤에 잠을 조금이라도 잔 대원들이 투입이 되면 그동안 싸우던 군인들이 막사로 가서 쉬고 투입된 대원들이 싸움을 하는 그런 형식의 전투는 아침저녁으로 적진이 아군 진지로 변하였다가 눈 깜짝 할 사이에 적군 진지로 변하는 등 그야말로 치열한 전투의 연속이었다.



휴전을 하루 앞두고 야간 전투 조에서 비보가 들려왔다.


아군이 섬멸을 당하고 말았다는 비보였다.


그 조에 상호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하루만 버텼어도 살아서 당당하게 고향으로 갈 수가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이주 후 난 특별휴가를 받았다.


상호의 유골을 상호 집으로 이송하는 이송 병으로서 말이다.


워낙 사망 장병들이 많다 보니 군 소재지에는 나처럼 동향의 생존 장병들이 모시고은 사망한 장병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매장하는 전문 군인들이 배치가 되어 있었다.


화전촌의 상호 집으로 갔을 때는 상호 마누라가 해산을 하느라고 친정 여동생이 산후조리를 돕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모시고 간 유해가 상호 유해인 것을 안 민정 댁은0 초상집으로 변하고 말았다.


상호 아버지 어머니가 올라왔고 상호를 우리가 사는 산에 묻을 수 없자고 고집을 하였지만 상호 마누라 민정 댁은 상호가 나와 함께 피땀을 흘려 간척한 화전 밭을 그냥 두고 가지 못 하고 거기에 묻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민정 댁 칭정에서도 민정 댁 편을 들어주는 바람에 상호의 무덤은 화전 팝 제일 위 경관이 좋은 것에 묻어주었다.



장례를 치르자 군 소재지에는 나처럼 동향의 생존 장병들이 모시고은 사망한 장병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매장하는 전문 군인들은 유가족들에게 건성의 인사만 남기고 면 소재지로 철수를 하였고 상호 부모님과 형제들이 남아서 삼우제를 지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삼우제가 끝이 나기 무섭게 가을 겉이를 해야 할 일손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모조리 내려가자 상호와 내가 만든 화전촌에는 나와 내 마누라 그히고 상허 처인 민정댁과 막 태어넌 아이가 전부였다.


“여보 민정이 쟤 애 상호 씨 애가 아니고 당신 애래요”건너갔다 와요“상호 부모 형제 그리고 민정 댁 친정 식구들이 산에서 내려가자마자 마누라가 나의 등을 떠밀었다


“뭐라고? 정말이오?”토끼눈을 하고 마누라에게 따지듯이 묻자


“민정이한테 가서 물어보면 알 것이어요.”하고 재촉을 하였다



“민정 댁 아기 누구 아기요”단숨에 달려가 물었다


“상호 씨 많이 안 닮았어요?”무덤을 만들고 겨우 삼우제를 지낸 여자의 웃음 치고는 좀 그랬다.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서로 바꾸어 잤잖아요? 그리고 그 이후로 올라오려고 하는 것을 몸이 피곤하다면 거부하였고 되레 상호 씨하고 몰래 했었잖아요. 아마 그때 인 것 같아요”하고 말하며 아이에세 젖을 물리기에


“이름은”퉁퉁 불은 젖을 빨고 있는 아기 볼을 만지며 묻자


“아빠가 지어주세요”하고 말하기에


“강 호건 어때요?”하고 말하며 나머지 젖을 주물렀지만 차마 말까지 놓을 수는 없었다.


군대에 입대를 하기 전에 공식적으로 합의하에 잠자리를 한 처지이며 또 상호 몰래 멸 변의 잠자리를 같이 하였지만 민정 댁은 상주란 생각을 하였던 것이지만 탐스러운 젖가슴을 그냥 두고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나머지 슬며시 주무른 것이다


“그렇게 이름을 빨리 지어요?”민정 댁이 눈을 흘기며 말하기에


“우리 소대 소대장님 이름이 호건이라”하고 말하며 웃자


“내려가세요, 효정이 기다려요”하고 등을 미는데


“얘 아이 아빠하고 자 난 내일 자면 되잖아”언제 왔는지 마누라가 상호 삼우제를 치르고 남은 막걸리가 든 주전자와 생선 토막을 가지고 와서 내 앞에 놓으며 말하자


“효정아 정말로 인근 씨를 내 남편처럼 여겨도 되겠니?”민정 댁이 마누라 눈치를 살피며 묻자


“이년아 그러자고 남편 바꾸어 잤고 그리고 내 남편도 아닌데 묘소에서 죽은 남편이나 시부모님에게나 한다는 큰절한다고 너희 친정아버지가 못 하게 말리려 하는 것 못 봤니?”마누라가 민정 댁에게 눈을 흘기며 말하였다


멍한 여자인줄로만 알았던 마누라에게 그런 큰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호건이라고? 민정아 호건이가 울면 고함지르고 올게”하고는 내 아기라는 호건이를 번쩍 안더니 나를 향해 눈을 흘기는가 싶더니 종종걸음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갔다.



“허허허 나만 이렇게 살아와서 미안하오.”진정이 배어있지 않은 말이었지만 단 둘이 되는 순간 그런 말이라도 하여 위로를 시켜야 한다는 마음에서 민정 댁을 슬며시 끌어안으며 말하자


“호건이 아빠라도 살아왔으니 다행이지 뭐예요”놀랍게도 민정 댁이 내 품을 파고들며 웃지 뭔가.


남편이 죽고 친구인 나 혼자만 살아왔다고 설성을 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각서는 이행하실 거죠?”내 품으로 더 깊이 파고들며 각서 운운 하는 것이 실성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도장까지 찍고 지장도 찍지 않았소?”하고 말하면 하반신을 만지려 들자


“이제 호건이 아빠를 서방님이라고 부를래요. 서방님”하고 부르기에


“집사람 들으면 어쩌려고.......”밖을 두리번거리며 묻자


“효정이도 그러자고 했어요, 서방님 참 여기 다쳐 오신 것은 아니죠?”하고 말하더니 바지 가장자리를 단숨에 잡아버렸다.


“흐흐흐 암 다치지 않았지. 여기 곰팡이 쓴 것은 아니지?”나도 지지 않고 민정 댁 아니 호근이 엄마의 고쟁이 안으로 손을 넣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나와 호근이 엄마는 밤을 지세우면 그 동안 풀지 못 한 운우의 정을 풀었고 다음 날 날이 세자마자 호근이를 데리고 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호근이를 호근이 엄마 품에 안겨주 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를 끌다시피 끌고는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막무가내로 나의 옷을 벌리고 질펀하게 사랑놀이를 벌렸다.


그리고 이주 휴가였으나 면사무소를 통하여 농번기 일을 조금 더 돕다가 가겠다고 휴가연장 신청을 하였고 휴가연장 신청이 받아들여져 일주일을 집에서 더 머물면서 주간으로는 수확을 하느라고 눈코 뜰 세가 없었고 밤이면 두 마누라의 질투에 찬 성화를 견디지 못 하고 사알놀이를 벌린 결과 우리마누라도 아들을 배었고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출산을 하였다는 연락을 호건이 엄마로부터 받있다.



그리고 십 이 년 전 우리 마누라가 먼저 세상을 하직하였고 우리 마누라 자리에 호건이 엄마가 건제하며 아이들도 이제는 우리의 관계를 그런가 보다하고 보고 있으며 우리 마누라가 죽었을 때 우리 아들과 함께 호건이도 상주노릇을 하였으며 두 이이들이 장가를 들어 폐백을 받은 때도 우리는 셋이서 함께 받았다.



이제 내 나이도 거의 천명을 다 하였지 싶다.


고추친구에 그것도 부족하여 마누라도 누가 전사하면 살은 사람이 나머지 남은 여자를 건사하기 하였던 친구와의 약속 나름 잘 지켰다고 생각하자만 이제 앞으로는 다시 나와 같은 불행한 세대가 나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


독자님의 아주 짤막한 제보로 한글 2007로 10페이지에 해당하는 글로 만들려고 보니 억지가 많이 들어 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야설은 야설 일 뿐임을 독자님들이 더 잘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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