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내 남자의 남자 12
"저걸 어떻게 해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소파에 누워서 좀 쉬라고."
희준이 깨질 유리그릇처럼 안아 소파에 눕혀주었다.
"나 일 해야 해요."
"조금만 쉬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지금 누가 무리한 일을 한 건지 모르겠네요."
"힘센 마나님이 봐주시지요."
서류가 정리되자 세련의 속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안에 들어오는 부드러운 감촉이 마치 세련의 속살 같았다.
마저 정리하고 세련에게 다가갔다.
피곤했는지 잠들어있는 세련에게 속옷을 입혀주고 그의 겉옷을 덮어주었다.
"천사가 따로 없군. 이런 회의를 잊을 뻔했군."
희준은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아무도 들이면 안 돼. 아내가 피곤해서 쉬고 있으니까 알아들었나?"
희준이 한참 회의에 몰입하고 있을 때 사무실에 청소하는 사람이 들어갔지만 청소는 10분도 안 걸리고 끝이 났다.
"청소 끝나셨어요?"
"네. 사장님이 말씀하셨던 것이 별것 아니더라고요. 그럼."
"수고하세요."
명령을 어길시 에는 차가운 불호령을 감내해야 했다.
신기하게도 세련이 나타나고 부터는 희준은 많이 부드러워져있었다.
세련이 출근하고부터는 간혹 이긴 하지만 칭찬도 할 줄 알았다.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었다.
차갑게 내뱉는 말들은 사소한 것 중에 하나였다.
희준의 변화에 회사가 초긴장 상태로 지내야 했다.
결재서류들이 날아다니는 것은 사소한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겪었기에 세련의 휴식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몇 시간이 흐른 뒤에 희준이 회의가 끝나 사무실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 안에서 기다리는 세련 때문에 발걸음을 빨리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을 때 우지직 거리며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희준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비서 들어 와봐."
희준의 목소리에 스며있는 분노 때문에 비서들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당장 들어오지 못해."
비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를 가기 전에 덮어주고 갔던 재킷은 바닥에 널브러져있었고,
그 자리에 잠들어있어야 할 세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지 들어보아야 했다.
"내 아내 어디 갔나?"
"한 번도 안 나가셨는데요. 어머!"
"그럼 잠자던 사람이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말인가?"
"하지만 정말 아무도..."
"뭔가?"
"그게 사장님이 청소를 하라고 했다고 청소부가 들어갔다가 나간적은 있습니다."
"그게 언젠가?"
"회의 들어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왔기에 의심하지 않고 들여보냈습니다."
"제기랄! 경호원들 불러들이고 비서실장 들어오라고 해. 서둘러."
세련이 사라지자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비서실장과 경호원들이 보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회의 들어간 후에 아내가 사라졌다. 내 지시로 청소를 한다고 들어왔던 사람이 있었던 모양인데 서둘러."
"알겠습니다."
"만약 아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만 두지 않겠다."
"네."
오로지 세련이 덥고 있었던 재킷만 손안에 쥐고 있었다.
경찰들이 도착하고 CCTV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이상한 곳이 없어서 포기하려고 할 때 지하 주차장에서 눈에 안 띄려는 차를 한 대 발견했다.
청소부 차림의 한 남자가 트렁크에 무언가를 실고 있었다.
하지만 흐릿한 화면 때문에 정확하지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화면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분석에 들어갔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조급한 마음만 더해갔다.
희준은 기다리는 시간 일분일초가 생지옥과도 같았다.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만약을 대비에 혁준의 소재파악도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준은 무기력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손 놓고 앉아 세련이 어찌되었을지 상상만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칠 것 같았다.
"차 드세요."
날카로운 신경에 한마디라도 내뱉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
흐트러진 그의 몰골에 직원들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살기 띤 눈빛을 본다면 줄행랑이라도 칠 것 같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있나?"
희준과는 상관없이 비서실장에게 사정없이 깨지고 위축돼 있는 상태였다.
지금 사장님 상태보다 사모님이 더 걱정되지 않아?
사모님한테 변고라도 생긴다면 비서실전체 사표 쓸 준비들 해. 젠장."
희준은 속이 타서 재가되어버렸다.
자신으로 인해 세련이 고통 받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혀를 깨물고 싶었다.
주머니에서 울려대는 전화를 확인해보니 번호도 뜨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혁준 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킥킥 킥킥. 자기 너무 오랜만이지?]
"거기 어디야?"
[왜?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거야?]
혁준의 정신상태가 올바르지 않은 것 같았다.
"내 아내 거기 있나?"
[이런 내가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저년이 보고 싶었던 거야? 날 너무 서운하게 만드는 것 아니야?]
"이봐 만나서 이야기 하지. 지금 어디야? 내가 갈게."
[서두르지 말라고 난 아직 재미도 보지 못했는데. 너무 쉬운 것은 재미없잖아.]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을 혁준이었다.
"혁준."
여자는 싫지만 당신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내가 봉사해야지 어쩌겠어.
야들야들하게 길들여서 보내 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희준은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세련이 잘못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 아내한테 손대지 말고 나하고 대화하지."
[이런 제한 시간이 벌써 다됐네. 내가 또 전화하지. 히히 히히.]
"딸깍!"
"혁준. 혁준. 제길!"
세련을 길들인다는 말은 무참히 유린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렇게 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찾았는데 그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어찌될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혁준이 실행에 옮기기 전에 세련을 찾아내야 했다.
"아직 인가?"
[죄송합니다. 소재 파악이 아직 되지 않고 있습니다. 차량도 도난차량입니다.]
"빨리 움직여.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안 좋은 상황에 처해있다. 사람들을 더 풀고, 경찰 쪽에서도 빨리 찾으라고 해."
[알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와 혁준과 같이 다녔던 곳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경호원 두 명과 같이 움직였지만 어디에도 두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혁준이 단골인 바bar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일주일 넘게 오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본 사람이나 만났던 사람은 없는 건가?"
"글쎄요. 아! 두 달 정도 됐나 새 파트너를 구한 것 같았는데."
"그럼 그 사람이 누군지 알려줄 수 있나?"
"그게..."
수표의 효과는 대단했다.
웨이터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파트너를 알고 있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마침 경찰도 합세를 했기에 조용한 룸으로 들어갔다.
"물어볼 것이 있소."
"뭡니까? 난 지금 바쁜데."
상대방의 거드름에 인내심이 필요했다.
"이건 한사람의 목숨이 달린 중요한 문제요."
상대방은 호기심이 일어났는지 자세를 바로하고 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혁준이라고 알고 있습니까?"
혁준의 유명세를 알기에 말을 돌리지 않기로 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게 뭐 잘못 됐습니까?"
"그게 아니고 혁준의 새 파트너를 알고 있다고 들었소."
"아! 민을 말하는 거군요. 잘 알고 있지요. 예전의 파트너였으니까."
이곳에서 혁준의 소재를 파악해야 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큰일이었다.
"민이라는 사람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알고 싶소. 그리고 차번호도 알려주면 고맙겠소."
"먼저 이유를 알아도 되겠습니까?"
"시간이 없소. 납치사건에 연류된 것 같은데 사는 곳을 알려주시오."
"나, 납치요? 그럴 사람이 아닌데...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지갑에 명함이 있으니까."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망설이던 남자가 한 가지 솔깃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혁준이 잘 가는 곳이 있는데 거긴 딱 한번 가봤습니다. 그곳은 뭐라 말하기 참 묘한 곳이라서..."
경찰과 같이 움직이면서 혁준이 잘 가는 곳과 파트너의 소재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민이라는 남자도 혁준과 마찬가지로 회사에 휴가를 냈다고 했다.
조회를 해서 민의 집으로 가보았지만 그곳도 혁준의 집과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었고
단서가 될 만한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도 찾아보았지만 주차장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직감적으로 두 남자의 행로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뚜렷한 것이 없었다.
조사에 의하면 그곳은 변태 성욕자들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회원제로 출입이 제한되어있어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수색영장을 받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고 말입니다."
"제기랄. 사람 목숨이 중요하지 그까짓 수색영장이 중요한 거요?"
안 그러면 고소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도 그런 곳을 다 쓸어버리려고 하지만 겉으론 불법하는 것이
들어나지 않으니 그게 문제입니다."
희준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한데 수색영장이 발부되기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내가 예약을 하고 들어가면 어떻겠소?"
그 방법이 나을듯합니다."
세련이 무사하기만을 바랄뿐이었다.
지금까지 지체한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세련. 내가 가니까 조금만 참으시오."
세련은 어지러워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희준과의 사랑이 이런 느낌을 안겨준 적은 없었는데 이상했다.
이상하게 소파에 누워있는 감촉이 아니라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혹시 자신이 깊이 잠들어서 희준이 집으로 데려다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직감은 집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두움 속에 갇혀 있다가 환한 햇살에 갑자기 내보여진 느낌이었다.
햇살에 눈이 적응할 때까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어느 정도 빛에 적응됐다고 생각된 순간 살며시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안을 둘러보니 화장대와 한쪽에는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양쪽으로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기둥 뒤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이상한 기구들과 여러 종류의 채찍들이 걸려있었다.
눈을 돌려 다른 쪽을 보니 미니바bar가 눈에 들어왔다.
이방의 용도가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손을 올려 목을 만져보았다.
가죽처럼 뻣뻣한 감촉이 만져지고 끈으로 연결된 고리들이 침대 한쪽에 묶어져 열쇠로 채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