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의 눈을 가진 남자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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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특별한 수업.
"그게...도대체 무슨 말씀이죠?"
수혁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그날보다 더 큰 충격에 휩쌓였다.하지만 수혁에게 충격적 선언을 하는 박사장의 표
정은 마냥 태평하기만 했다.
"니가...유일한 능력자라고 생각했던 모양이군...하기야..한때 나도 그랬으니까 무리는 아닐꺼다."
"당신도...아니 박사장님도...매료안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까?"
수혁의 말에 박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피식 웃어버렸다.
"매료안? 누가 지은 이름이냐?터무니없는 작명센스로군."
"네?"
"그 눈은 본디 심안(心眼)이라고 불린다.매료안이라고?...그딴 이름을 짓다니..."
수혁은 지금 상황이 꿈인지 아닌지 한참이나 헷갈려 해야만했다.
-그 눈...너는 그눈을 물려받은 남자란다...그것이 저주일지 축복일지는...니 하기나름인게야..-
할머니의 그 말이 떠올랐다.확실히 수혁이 유일무이한 인간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수혁은 단 한번도 자
신이외의 누군가가 매료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게다가 유경이 소개시켜 준거라고 한
다면 그도 매료안에 대해 알고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건 그렇고...초급단계라고 했던건 무슨뜻이죠?"
"아앙.."
갑자기 한 소녀의 신음소리가 들린다.박사장이 대답대신 자신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한 소녀의 가슴을 거칠
게 움켜쥐었기 때문이었다.짜증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수혁이었다.하지만 상대는 보스인 유경도 존칭을 쓰는 거물
급 남자.성깔대로 막대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혁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가 대답을 줄때까지 기다렸다.
"매료안 이라는 표현을 쓴것은...니가 심안의 2단계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쓰고 있는거다."
"2..단계?"
"니들은 방에 들어가 있어."
"네 주인님."
그의 옆에서 시립하고 있거나,혹은 그의 성적 도구가 되었던 소녀들이 공손히 인사를 올리더니 물러갔다.박사장
은 볼록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지더니 앞에 놓인 양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한잔 할텐가?"
"아뇨.차를 가져왔습니다."
박사장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심안...이라고 하는것은 본디 중세시대의 마녀가 갖고 있던 능력이었다."
"마...녀?"
수혁은 어이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지금 때가 어느땐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터무
니없지만 자신도 그 능력을 쓰는 사람이 아닌가?마녀라고 해서 터무니 없다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마녀중에서도 뱀술사가 쓰는 능력.그게 심안이다.마녀사냥이라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그들은 물
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그 혈계혈통의 능력을 가진 자가 동양인과 결혼을 하거나 몸을 섞어, 너와 나같
은 변종들이 태어나게 된거지."
"말도...안돼.."
수혁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자신의 매료안은 할머니에게서 받은 능력이라 굳게 믿고 있던 그였다.충격에 휩쌓여
아무말도 못하고 있을때 앞에 있던 박사장이 슬쩍 담배를 밀어주었고 수혁은 떨리는 손으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심안에는 몇가지 단계가 있다."
첫번째 개안.
눈을뜬다는 의미.자신의 심안을 인지한다.인지할뿐,자신의 의지로는 조종하지 못한다.상대방에게 쉽게 호감을
얻는 일이 가능하다.누구보다 사교성이 좋고,또한 이성은 물론 동성에게도 인기도 많다. 시력이 증가하지만,자신
의 능력을 컨트롤 할수는 없다.
두번째 투심.
상대의 마음을 조정한다.물론 희노애락을 다 느끼게 할 수는 없다.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
거나,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종의 큰 호감을 의지로써 임의로 심어주는것이 가능하다.술법을 행할때에 푸른
빛이 눈가에 돌게 되며,피술법자는 그 빛무리를 본 순간부터 투심에 걸린다. 한사람에게 여러번 쓰면 쓸수록 더
큰 효과가 있다.
세번째 통안.
상대의 마음을 침투해 조종한다.물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살인을 저지르게 한다거나 하는 식의 조종이 아닌,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경,그리고 복종등을 유발하게 하는 일이 가능하다.투심의 단계를 지나면 눈에서는 전혀 빛
무리가 일어나지 않으며,얇은 벽정도는 꿰뚫어 보는 일이 가능해진다.
네번째 영안.
영적인 존재를 본다.흔히 말하는 무당이 가진 능력과는 별개로,초 자연적인 현상이나 사물의 이치등을 한번에 깨
달을 수 있으며,사물과 환경에 대한 이해능력도 증가한다.다섯번째 단계로 가는 중간과정쯤으로 볼 수있다.
다섯번째 환상안.
다른사람으로 하여금 짧은순간 환영혹은 환상을 보게한다.눈을 마주치게 한것만으로도 상대에게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며 환상을 어떤식으로 보여주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을 잠시나마 조종하는것도 가능하다.본디 심
안을 갖고 있던 혈통에 한해서만 이를 수 있는 경지라 칭해진다.
"알겠냐?이게 바로 니가 매료안이라고 단정지은 심안의 뒤에 숨겨진 무한한 세계이다."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과학적으로 절대 말도 안되는 그런 말을?"
"휴우...유경이새끼 동생놈 아니랄까봐 싸가지는 밥말아 쳐먹었군.그럼 니가 지금 매료안이랍시고 제비질에 써
먹고 있는 능력은 요즘세상에 과학적으로 증명될 일이라 생각하냐?"
수혁은 할말을 잃고 담배를 비벼껐다.부정하고 싶었지만 박사장이 해준말은 믿을수 밖에 없는 말들이었다.게다가
두번째 단계라고 했던 자신의 능력과 박사장이 말해줬던 투심의 능력은 일치하고 있지 않는가?푸른색 빛이 감도
는 것까지도...
"잠깐...그렇다면?"
문득 해변에 놀러가서 낚시를 할때가 떠올랐다.짧지만 보았다.시퍼런 바닷물 아래에 떠도는 물고기의 모습이.
그렇다면 자신은 제 삼단계인 통안으로 가고 있다는 뜻일까?
"그렇다면....이 녀석은...."
아까 성적인 수발을 비롯해 노예처럼 부려먹던 소녀들은 결코 돈으로 매수된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박사장은
제 삼단계 이상을 마스터한 인물이라는 말이 된다.그 여자들에게 통안을 걸어 복종을 유발하게 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사장님은 어디까지 가신 겁니까?"
박사장은 벌써 세번째 담배를 피워물었다.길게 연기를 뿜은 그의 표정은 뭔가 후회가 깃들어 있는듯 했다.
"이제 세번째.그리고...다신 쓰지 않으려 하고 있다."
"어째서죠?"
"세상 모든 것은 남용하면 부작용이 있는법이다.난 그 부작용으로 점점 시력이 줄어들고 있지.편두통에도 시달
린다.너...심안을 쓸때마다 눈으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 받았겠지?"
"네."
"물론 내가 잘못사용한걸지도 모르지.난 그 심안으로 성공했고,성공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늘상 사용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안쓴지 몇년이 넘었지.저 아이들을 내 집으로 끌어들일때가 마지막 심안이었다."
"부..작용.."
이제서야 할머니의 말이 이해가 가는 수혁이었다.하지만 멈출순 없었다.수혁이 생각하는 성공 그리고 목표에 그
는 아직 반도 도달하지 못했다.부작용하나때문에 지금의 자신의 능력을 안쓸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뭐...그거야 니 마음이겠지.쓰건 안쓰건,니가 부작용에 걸리건 안걸리건...내 알바 아니다.하지만 확실한건 미
친듯이 남용은 하지 마라.분명 니 뇌와 눈에 부담에 걸릴테니까.심안이란건 쓰면 시력이 증가하지만 팍팍쓰면 그
부작용으로 다시 시력이 감퇴되는 양면거울같은 빌어먹을 능력이다."
수혁은 조용히 앞에 놓은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왠지 모르게 목이타서였다.
"별로.그런것에 개의치 않아요.제가 놀란것은 그런 부작용이란게 있다는것보다 나 이외에 다른사람도 이 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니까요."
박사장은 피식 웃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재밌는 녀석이었다.부작용따윈 게의치 않는다니...용감한건지 무식한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안하무인의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안을 가진자는 많다.하지만 그 능력을 인지하고 쓰는 자는 얼마 되지 않지. 조금이라도 심안의 기운을 갖고
태어난 놈들은 천지에 널렸다. 국회의원이나 잘나가는 사업가.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에 있어서 잘나가는 것들은
열에 아홉 심안을 가지고 있다.그걸 너나 나처럼 이용해 먹는 놈들이 거의 없을 뿐이야."
"그렇군요."
수혁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자신이 유일무이한 자가 아니라면 유일무이의 5단계 경지까지 이르러 버리면
끝나는거 아닌가?살짝 미소까지 짓는 그였다.
"이래서 인생이란건 재밌는거라고 하는거로군."
"하지만 말이다...아까 말했다시피 이건 마녀들의 눈이었고 능력이었다.동양인의 몸으로 소화할 능력이 아니란거
지.자꾸쓰면 후회할 날이 올지 모른다."
"저는 남용을 하진 않을겁니다.하지만 지금 제가 쓰는 정도가 남용의 수준이라고 한다 한들 멈추고 싶은 마음은
없군요."
"그런가....휴우,...정말 그 형에 그 동생이로군.유경이 녀석 밑에 놈 아니랄까봐 인생 막사는건 다들 비슷하구
만? 하기야 그 능력을 제비질에 써먹을 정도니 뭐..."
"지는 지 SM적 성향을 위해 쓰는 주제에..."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지만 수혁은 꾹 참았다.게다가 어찌보면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자신의 능력에
대한 앞으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르쳐 주었으니까.
"그렇다면...어떻게 하면 그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거죠?"
"그런건 없다."
"네?"
박사장은 술잔에 잔을 채우더니 천천히 들이켰다.
"뛰어넘는 방법따윈 없어.니 행동에 따라서나 니가 자각하기에 따라서 진화한다.그리고 니가 어떤 노력을 한다
고 해서 되는것이 아냐.그건 타고나는거다. 니 몸이 그 눈에 맞는 몸이라면,안달하지 않아도 천천히 그 단계를
올라갈 거다."
수혁은 피식하고 웃었다.상당히 맘에 드는 대답이 아닌가? 자신이 선택받은 자라면 조급해 하지 않아도 그 끝을
볼수 있을것이 아닌가. 도박을 좋아하는 수혁은 이 무모한 도박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싶어졌다.
"그럼..처음에 눈의 힘을 개방시켜준다고 했던 의미는 뭐죠?"
"이 사실을 안것만 하더라도 니 눈엔 한단계 진보가 있을껄? 알고 쓰는것과 모르고 쓰는건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까 말야.유경이 자식도 뭔가 애매하게 알고 있으니 널 나한테 보낸거겠지."
"애매하게라...."
유경은 매료안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해도 어느정도 박사장과 자신이 같은 부류라는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자신에게 이 사람을 소개시켜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경이 형님도...정말 알수 없는 사람이다."
수혁이 혼자 생각에 잠겨있을때 자신의 앞으로 무언가가 툭하고 떨어졌다.
"내 명함이다.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자주해서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환영해줄테니까."
"감사합니다 사장님.먼저 자리를 일어나겠습니다."
자신의 명함을 대수롭지 않게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구겨넣는 수혁을 보며 박사장은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한번
만 도움을 달라고 자신에게 아부를 하는 이들도 천지에 널렸거늘, 먼저 도움을 줄수 있다고 나오는데도 저렇게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는것은 수혁이 처음이었다.
"너..나이가 몇이지?"
"만으로 스물다섯입니다."
"좋은 나이로군.가봐라."
"네..그럼."
살짝 목례를 하더니 밖으로 나가는 수혁을 보며 박사장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간만에 재밌는 녀석을 발견했다는
생각 마져 들었다.
"저 나이에 투심이라니...어쩌면 저 놈은 다섯단계까지 갈 수있는 괴물일지도 모르겠군."
수혁은 시동을 걸고 박사장의 저택을 빠져나왔다.하늘에 구름이 가득한 것이 곧 비가 쏟아질것만 같았다.수혁은
운전을 하면서 휴대폰번호를 눌렀다.지금 이상황 가장 궁금한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네 유경형님 저 수혁입니다."
-어 그래 수혁이냐.-
"소개시켜주신분 잘 만났습니다."
-그런가..-
유경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용하고 차분했다.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악물었다.
"언제부터였습니까?왜 알면서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말이라면 그만두자.싸우려고 건건 아닐꺼 아니냐.-
"그렇지만.."
-그냥 감이었을 뿐이야.-
수혁은 뭐라고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조직내에서 이만큼이나 따지듯 유경에게 전화걸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
을 것이다.하지만 수혁의 입장에선 너무나 많이 참은 것이었다.조직내에서 존재하기위해서는 유경이라는 인물의
그림자가 너무 컸다.그를 안지 1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수혁에게 있어서 유경은 알수없는 남자였다.
"나중에...찾아뵙겠습니다."
수혁은 전화를 끊고는 도로 한가운데에 비상등을 켜고 차를 멈춰세웠다.품안을 뒤적거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디로 가야할까."
답이 나오지 않는 물음이었다.앞으로 몇달간 푹쉬고 싶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해외여행이라고 하니 자신의 할머니가 떠올랐다.평생 해외여행을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머니.하지만 무당이
라는 신분때문에 나가지 못했다.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할머니는 그 자리를 떠나서는 안된다고 늘상 말했기 때문
이었다.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나도 해외에 갈 기분은 아니야."
수혁은 다시 집으로 차를 몰았다.창밖에 드디어 비가 한두방을 맺히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앞으로 한
달 정도는 죽은사람처럼 푹 쉬고만 싶었다. 내일 날씨가 좋아지자마자 낚시를 하러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수혁은
여유롭게 시디를 틀었다.
"뭐가 걱정인가?그냥 지금처럼 나아가면 되는거다.나에겐 매료안이 있으니까..."
-
"에이썅...하여간 번거로운 녀석이라니까.."
상철은 연신 네비게이션 위치를 확인하며 차를 몰았다.전화기는 이미 안터지는 지역으로 들어온지 오래다.여행을
다녀온후 한달이상이나 연락 두절이 되어버린 수혁이었다.물론 그 안에 괜찮은 오다가 없어 수혁을 찾을 일도 없
었지만 종종 유경이 수혁이를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그때마다 상철은 연락이 안되는 수혁의 전화
음성사서함에 욕지꺼리를 녹음해 놓는 거밖에 도리가 없었다.
우우우웅!
"이런 씨발!"
벌써 세번째다.자신의 차가 진흙탕에 빠져 바퀴가 헛도는 것이.상철은 신경질적으로 엑셀을 밟아 도랑을 빠져나
왔다.
"아놔..이새끼는 무슨 늙은이도 아니고 맨날 낚시질을 하러다니는거야 도대체?"
계속해서 의미없는 길안내를 하는 네이게이션 마져 귀찮아진 상철은 아예 전원을 꺼버리며 투덜리면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저건가?"
그러고 보니 멀리 물소리가 들리는거 같기도 하다.연락이 끊어진지 두달여가 되어갈때쯤 음성을 확인한 수혁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었다.머리도 식힐겸 낚시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하면서....상철은 수혁의 설명만 듣고 이런
오지에 찾아온 자신이 왠지 자랑스럽게까지 생각되었다.
"저기까진 차로 못들어가겠군."
상철은 들고온 서류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언덕을 하나 넘으니 저수지가
나왔다.멀리서 편한 복장으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비춰지자 상철은 자기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옘병.이런 장소는 씨발 또 어떻게 알고 쳐 기어들어오는건지..."
상철은 수혁이 낚시를 하고 있는곳까지 겨우겨우 다다를수 있었다.
"오랜만이다.연락 못해서 미안하다."
"아오..이걸 확! 이엉아가 매번 널 만나러 이런 오지까지 오셔야겠냐?"
"미안하다고 했잖아.차 도색새로했냐?"
"뭐?"
"색깔이 바뀌어 있길래."
"아...저거?좀 색이 질리길래 색을 다시 칠했다.근데 꽤 예리한데?다른놈들은 다 차 바꾼줄 알던데.."
"아..번호판이 그대로길래."
"뭐라고?"
수혁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낚시대를 거둬 들었지만 상철은 한동안 멍할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내 차 번호판이 보인다고?"
슬쩍 뒤를 돌아보았지만 나무가 겹겹히 우거져 자신의 차 번호판은 커녕 형태만 약간 보일뿐이었다.
"자자.아무튼...일때문에 온거지?"
"어?어...응...이거.."
상철은 수혁에게 언제나처럼 서류를 내밀었다.왠일인지 수혁이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동안 상철은 안절부절 못하
며 수혁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한참이나 낚시를 다닌데다가 한달이상 쉬었던 수혁인지라 얼굴엔 듬성듬성 수염
이 나있었고,옷차림도 편한 트레이닝복이었지만 상철의 오다파일을 보는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가만..."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진속의 인물을 한참이나 응시했다.너무나 귀여운 얼굴.싱그러운 풋풋함이 느껴지는
소녀 한명이 웃고 있었다.
"유리나보다 더 어려보이는데?"
이 생활을 하면서 최고로 어려보이는 여자였다.화장기가 없는 얼굴이었지만 싱그럽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귀여운 18세의 소녀인것만 같았다.
"그..그게 말이다...저기..."
"뭔데?뭐하는 여자야?얘."
"이쁘긴 하지 않냐?그치?하하하"
"이쁜건 이쁜데..말을 해보라고.이 아이 뭐야."
"그게말이다...파주쪽에 땅부자였던 김뭐시기 하는 영감알지?"
"어.일순간 벼락부자 됐었던 그 노친네아냐."
"그래임마!너 아는구나! 암튼 그 노인네가 얼마전에 세상을 떴걸랑.이 여자가 그 노인손녀야.유일한 상속녀지."
"그래?"
수혁은 다시한번 사진속의 미녀를 바라보았다.어딘가 모르게 해변에서 만났던 유라와 비슷한 느낌도 난다.그만
큼 귀여운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하지만 언제나 처럼 따로 그녀의 프로필이 정리되어 있지 않자 수혁은 한참이나
빈 서류봉투를 뒤적거렸다.
"이름은 최지율.가족없이 혼자살고 말했지만 그 영감의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땅부자야.근데 한가지 문제가 있
는데 말이야..."
"문제?"
상철답지 않게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본 수혁이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고등학생이다..."
수혁은 한참이나 멍하니 상철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그의 눈이 분노로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했다.상철은 행여나
불똥이 튈까 후다닥 뒷걸음질로 수혁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벌렸다.
"뭐야!!!!!!고등학생!!!!"
"야야야!지..진정해봐.내가 오죽하면 너한테 찾아왔겠냐.응?"
"야! 씨발 너 돌았지?나보고 지금 미성년자 따고서 감방가라는거 아냐?"
수혁은 씩씩거리며 낚시대를 접어들었다.상철은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더욱더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야야야..기다려봐..오히려 어린애라 더 쉬울수도 있는거아니냐?응?그리고 무엇보다 초대형 오다라니까!"
낚시대를 집어던지려던 수혁의 몸이 뚝 하고 멎었다.
"초대형..오다?"
수혁이 갈등하는 것을 본 상철이 조금씩 수혁의 곁으로 다가온다.
"야야..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근데 말이다.니가 원하는 오다는 한동안 없어도 나 책임못진다?내가 정말 간만에
따온 오다라는거 너도 알지?"
수혁은 손에든 낚시대를 천천히 내리더니 가방에 챙겨넣었다.확실히 자신은 아무오다나 다 받는 다른녀석들과 달
리 오다를 받기 힘든 경우가 종종있다.심하게는 삼개월이상 못받은적도 있었다.게다가...
"어쩌면 내가 가진 매료안을 시험해볼 절호의 여자일지도 모르지."
수혁은 다시한번 지율이라 불린 소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딱 봐도 천방지축으로 보이는 나이어린 소녀 그 자체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한대 피워물고는 허공에 뿜었다.상철은 초조한 표정으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정적이 흐르고 수혁의 입술이 떨어졌다.
"좋아...해보자..."
"뭣이?"
그만두자..라고 하려던 상철의 눈이 대문짝 만하게 커졌다.수혁은 바닥에 담배를 비벼끄더니 사진을 챙겨넣었다.
"해보자고 까짓거.자세한 프로필뽑아서 줘봐."
"그게...도대체 무슨 말씀이죠?"
수혁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그날보다 더 큰 충격에 휩쌓였다.하지만 수혁에게 충격적 선언을 하는 박사장의 표
정은 마냥 태평하기만 했다.
"니가...유일한 능력자라고 생각했던 모양이군...하기야..한때 나도 그랬으니까 무리는 아닐꺼다."
"당신도...아니 박사장님도...매료안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까?"
수혁의 말에 박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피식 웃어버렸다.
"매료안? 누가 지은 이름이냐?터무니없는 작명센스로군."
"네?"
"그 눈은 본디 심안(心眼)이라고 불린다.매료안이라고?...그딴 이름을 짓다니..."
수혁은 지금 상황이 꿈인지 아닌지 한참이나 헷갈려 해야만했다.
-그 눈...너는 그눈을 물려받은 남자란다...그것이 저주일지 축복일지는...니 하기나름인게야..-
할머니의 그 말이 떠올랐다.확실히 수혁이 유일무이한 인간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수혁은 단 한번도 자
신이외의 누군가가 매료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게다가 유경이 소개시켜 준거라고 한
다면 그도 매료안에 대해 알고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건 그렇고...초급단계라고 했던건 무슨뜻이죠?"
"아앙.."
갑자기 한 소녀의 신음소리가 들린다.박사장이 대답대신 자신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한 소녀의 가슴을 거칠
게 움켜쥐었기 때문이었다.짜증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수혁이었다.하지만 상대는 보스인 유경도 존칭을 쓰는 거물
급 남자.성깔대로 막대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혁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가 대답을 줄때까지 기다렸다.
"매료안 이라는 표현을 쓴것은...니가 심안의 2단계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쓰고 있는거다."
"2..단계?"
"니들은 방에 들어가 있어."
"네 주인님."
그의 옆에서 시립하고 있거나,혹은 그의 성적 도구가 되었던 소녀들이 공손히 인사를 올리더니 물러갔다.박사장
은 볼록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지더니 앞에 놓인 양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한잔 할텐가?"
"아뇨.차를 가져왔습니다."
박사장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심안...이라고 하는것은 본디 중세시대의 마녀가 갖고 있던 능력이었다."
"마...녀?"
수혁은 어이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지금 때가 어느땐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터무
니없지만 자신도 그 능력을 쓰는 사람이 아닌가?마녀라고 해서 터무니 없다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마녀중에서도 뱀술사가 쓰는 능력.그게 심안이다.마녀사냥이라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그들은 물
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그 혈계혈통의 능력을 가진 자가 동양인과 결혼을 하거나 몸을 섞어, 너와 나같
은 변종들이 태어나게 된거지."
"말도...안돼.."
수혁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자신의 매료안은 할머니에게서 받은 능력이라 굳게 믿고 있던 그였다.충격에 휩쌓여
아무말도 못하고 있을때 앞에 있던 박사장이 슬쩍 담배를 밀어주었고 수혁은 떨리는 손으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심안에는 몇가지 단계가 있다."
첫번째 개안.
눈을뜬다는 의미.자신의 심안을 인지한다.인지할뿐,자신의 의지로는 조종하지 못한다.상대방에게 쉽게 호감을
얻는 일이 가능하다.누구보다 사교성이 좋고,또한 이성은 물론 동성에게도 인기도 많다. 시력이 증가하지만,자신
의 능력을 컨트롤 할수는 없다.
두번째 투심.
상대의 마음을 조정한다.물론 희노애락을 다 느끼게 할 수는 없다.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
거나,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종의 큰 호감을 의지로써 임의로 심어주는것이 가능하다.술법을 행할때에 푸른
빛이 눈가에 돌게 되며,피술법자는 그 빛무리를 본 순간부터 투심에 걸린다. 한사람에게 여러번 쓰면 쓸수록 더
큰 효과가 있다.
세번째 통안.
상대의 마음을 침투해 조종한다.물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살인을 저지르게 한다거나 하는 식의 조종이 아닌,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경,그리고 복종등을 유발하게 하는 일이 가능하다.투심의 단계를 지나면 눈에서는 전혀 빛
무리가 일어나지 않으며,얇은 벽정도는 꿰뚫어 보는 일이 가능해진다.
네번째 영안.
영적인 존재를 본다.흔히 말하는 무당이 가진 능력과는 별개로,초 자연적인 현상이나 사물의 이치등을 한번에 깨
달을 수 있으며,사물과 환경에 대한 이해능력도 증가한다.다섯번째 단계로 가는 중간과정쯤으로 볼 수있다.
다섯번째 환상안.
다른사람으로 하여금 짧은순간 환영혹은 환상을 보게한다.눈을 마주치게 한것만으로도 상대에게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며 환상을 어떤식으로 보여주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을 잠시나마 조종하는것도 가능하다.본디 심
안을 갖고 있던 혈통에 한해서만 이를 수 있는 경지라 칭해진다.
"알겠냐?이게 바로 니가 매료안이라고 단정지은 심안의 뒤에 숨겨진 무한한 세계이다."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과학적으로 절대 말도 안되는 그런 말을?"
"휴우...유경이새끼 동생놈 아니랄까봐 싸가지는 밥말아 쳐먹었군.그럼 니가 지금 매료안이랍시고 제비질에 써
먹고 있는 능력은 요즘세상에 과학적으로 증명될 일이라 생각하냐?"
수혁은 할말을 잃고 담배를 비벼껐다.부정하고 싶었지만 박사장이 해준말은 믿을수 밖에 없는 말들이었다.게다가
두번째 단계라고 했던 자신의 능력과 박사장이 말해줬던 투심의 능력은 일치하고 있지 않는가?푸른색 빛이 감도
는 것까지도...
"잠깐...그렇다면?"
문득 해변에 놀러가서 낚시를 할때가 떠올랐다.짧지만 보았다.시퍼런 바닷물 아래에 떠도는 물고기의 모습이.
그렇다면 자신은 제 삼단계인 통안으로 가고 있다는 뜻일까?
"그렇다면....이 녀석은...."
아까 성적인 수발을 비롯해 노예처럼 부려먹던 소녀들은 결코 돈으로 매수된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박사장은
제 삼단계 이상을 마스터한 인물이라는 말이 된다.그 여자들에게 통안을 걸어 복종을 유발하게 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사장님은 어디까지 가신 겁니까?"
박사장은 벌써 세번째 담배를 피워물었다.길게 연기를 뿜은 그의 표정은 뭔가 후회가 깃들어 있는듯 했다.
"이제 세번째.그리고...다신 쓰지 않으려 하고 있다."
"어째서죠?"
"세상 모든 것은 남용하면 부작용이 있는법이다.난 그 부작용으로 점점 시력이 줄어들고 있지.편두통에도 시달
린다.너...심안을 쓸때마다 눈으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 받았겠지?"
"네."
"물론 내가 잘못사용한걸지도 모르지.난 그 심안으로 성공했고,성공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늘상 사용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안쓴지 몇년이 넘었지.저 아이들을 내 집으로 끌어들일때가 마지막 심안이었다."
"부..작용.."
이제서야 할머니의 말이 이해가 가는 수혁이었다.하지만 멈출순 없었다.수혁이 생각하는 성공 그리고 목표에 그
는 아직 반도 도달하지 못했다.부작용하나때문에 지금의 자신의 능력을 안쓸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뭐...그거야 니 마음이겠지.쓰건 안쓰건,니가 부작용에 걸리건 안걸리건...내 알바 아니다.하지만 확실한건 미
친듯이 남용은 하지 마라.분명 니 뇌와 눈에 부담에 걸릴테니까.심안이란건 쓰면 시력이 증가하지만 팍팍쓰면 그
부작용으로 다시 시력이 감퇴되는 양면거울같은 빌어먹을 능력이다."
수혁은 조용히 앞에 놓은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왠지 모르게 목이타서였다.
"별로.그런것에 개의치 않아요.제가 놀란것은 그런 부작용이란게 있다는것보다 나 이외에 다른사람도 이 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니까요."
박사장은 피식 웃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재밌는 녀석이었다.부작용따윈 게의치 않는다니...용감한건지 무식한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안하무인의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안을 가진자는 많다.하지만 그 능력을 인지하고 쓰는 자는 얼마 되지 않지. 조금이라도 심안의 기운을 갖고
태어난 놈들은 천지에 널렸다. 국회의원이나 잘나가는 사업가.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에 있어서 잘나가는 것들은
열에 아홉 심안을 가지고 있다.그걸 너나 나처럼 이용해 먹는 놈들이 거의 없을 뿐이야."
"그렇군요."
수혁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자신이 유일무이한 자가 아니라면 유일무이의 5단계 경지까지 이르러 버리면
끝나는거 아닌가?살짝 미소까지 짓는 그였다.
"이래서 인생이란건 재밌는거라고 하는거로군."
"하지만 말이다...아까 말했다시피 이건 마녀들의 눈이었고 능력이었다.동양인의 몸으로 소화할 능력이 아니란거
지.자꾸쓰면 후회할 날이 올지 모른다."
"저는 남용을 하진 않을겁니다.하지만 지금 제가 쓰는 정도가 남용의 수준이라고 한다 한들 멈추고 싶은 마음은
없군요."
"그런가....휴우,...정말 그 형에 그 동생이로군.유경이 녀석 밑에 놈 아니랄까봐 인생 막사는건 다들 비슷하구
만? 하기야 그 능력을 제비질에 써먹을 정도니 뭐..."
"지는 지 SM적 성향을 위해 쓰는 주제에..."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지만 수혁은 꾹 참았다.게다가 어찌보면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자신의 능력에
대한 앞으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르쳐 주었으니까.
"그렇다면...어떻게 하면 그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거죠?"
"그런건 없다."
"네?"
박사장은 술잔에 잔을 채우더니 천천히 들이켰다.
"뛰어넘는 방법따윈 없어.니 행동에 따라서나 니가 자각하기에 따라서 진화한다.그리고 니가 어떤 노력을 한다
고 해서 되는것이 아냐.그건 타고나는거다. 니 몸이 그 눈에 맞는 몸이라면,안달하지 않아도 천천히 그 단계를
올라갈 거다."
수혁은 피식하고 웃었다.상당히 맘에 드는 대답이 아닌가? 자신이 선택받은 자라면 조급해 하지 않아도 그 끝을
볼수 있을것이 아닌가. 도박을 좋아하는 수혁은 이 무모한 도박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싶어졌다.
"그럼..처음에 눈의 힘을 개방시켜준다고 했던 의미는 뭐죠?"
"이 사실을 안것만 하더라도 니 눈엔 한단계 진보가 있을껄? 알고 쓰는것과 모르고 쓰는건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까 말야.유경이 자식도 뭔가 애매하게 알고 있으니 널 나한테 보낸거겠지."
"애매하게라...."
유경은 매료안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해도 어느정도 박사장과 자신이 같은 부류라는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자신에게 이 사람을 소개시켜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경이 형님도...정말 알수 없는 사람이다."
수혁이 혼자 생각에 잠겨있을때 자신의 앞으로 무언가가 툭하고 떨어졌다.
"내 명함이다.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자주해서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환영해줄테니까."
"감사합니다 사장님.먼저 자리를 일어나겠습니다."
자신의 명함을 대수롭지 않게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구겨넣는 수혁을 보며 박사장은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한번
만 도움을 달라고 자신에게 아부를 하는 이들도 천지에 널렸거늘, 먼저 도움을 줄수 있다고 나오는데도 저렇게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는것은 수혁이 처음이었다.
"너..나이가 몇이지?"
"만으로 스물다섯입니다."
"좋은 나이로군.가봐라."
"네..그럼."
살짝 목례를 하더니 밖으로 나가는 수혁을 보며 박사장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간만에 재밌는 녀석을 발견했다는
생각 마져 들었다.
"저 나이에 투심이라니...어쩌면 저 놈은 다섯단계까지 갈 수있는 괴물일지도 모르겠군."
수혁은 시동을 걸고 박사장의 저택을 빠져나왔다.하늘에 구름이 가득한 것이 곧 비가 쏟아질것만 같았다.수혁은
운전을 하면서 휴대폰번호를 눌렀다.지금 이상황 가장 궁금한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네 유경형님 저 수혁입니다."
-어 그래 수혁이냐.-
"소개시켜주신분 잘 만났습니다."
-그런가..-
유경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용하고 차분했다.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악물었다.
"언제부터였습니까?왜 알면서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말이라면 그만두자.싸우려고 건건 아닐꺼 아니냐.-
"그렇지만.."
-그냥 감이었을 뿐이야.-
수혁은 뭐라고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조직내에서 이만큼이나 따지듯 유경에게 전화걸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
을 것이다.하지만 수혁의 입장에선 너무나 많이 참은 것이었다.조직내에서 존재하기위해서는 유경이라는 인물의
그림자가 너무 컸다.그를 안지 1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수혁에게 있어서 유경은 알수없는 남자였다.
"나중에...찾아뵙겠습니다."
수혁은 전화를 끊고는 도로 한가운데에 비상등을 켜고 차를 멈춰세웠다.품안을 뒤적거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디로 가야할까."
답이 나오지 않는 물음이었다.앞으로 몇달간 푹쉬고 싶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해외여행이라고 하니 자신의 할머니가 떠올랐다.평생 해외여행을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머니.하지만 무당이
라는 신분때문에 나가지 못했다.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할머니는 그 자리를 떠나서는 안된다고 늘상 말했기 때문
이었다.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나도 해외에 갈 기분은 아니야."
수혁은 다시 집으로 차를 몰았다.창밖에 드디어 비가 한두방을 맺히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앞으로 한
달 정도는 죽은사람처럼 푹 쉬고만 싶었다. 내일 날씨가 좋아지자마자 낚시를 하러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수혁은
여유롭게 시디를 틀었다.
"뭐가 걱정인가?그냥 지금처럼 나아가면 되는거다.나에겐 매료안이 있으니까..."
-
"에이썅...하여간 번거로운 녀석이라니까.."
상철은 연신 네비게이션 위치를 확인하며 차를 몰았다.전화기는 이미 안터지는 지역으로 들어온지 오래다.여행을
다녀온후 한달이상이나 연락 두절이 되어버린 수혁이었다.물론 그 안에 괜찮은 오다가 없어 수혁을 찾을 일도 없
었지만 종종 유경이 수혁이를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그때마다 상철은 연락이 안되는 수혁의 전화
음성사서함에 욕지꺼리를 녹음해 놓는 거밖에 도리가 없었다.
우우우웅!
"이런 씨발!"
벌써 세번째다.자신의 차가 진흙탕에 빠져 바퀴가 헛도는 것이.상철은 신경질적으로 엑셀을 밟아 도랑을 빠져나
왔다.
"아놔..이새끼는 무슨 늙은이도 아니고 맨날 낚시질을 하러다니는거야 도대체?"
계속해서 의미없는 길안내를 하는 네이게이션 마져 귀찮아진 상철은 아예 전원을 꺼버리며 투덜리면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저건가?"
그러고 보니 멀리 물소리가 들리는거 같기도 하다.연락이 끊어진지 두달여가 되어갈때쯤 음성을 확인한 수혁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었다.머리도 식힐겸 낚시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하면서....상철은 수혁의 설명만 듣고 이런
오지에 찾아온 자신이 왠지 자랑스럽게까지 생각되었다.
"저기까진 차로 못들어가겠군."
상철은 들고온 서류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언덕을 하나 넘으니 저수지가
나왔다.멀리서 편한 복장으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비춰지자 상철은 자기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옘병.이런 장소는 씨발 또 어떻게 알고 쳐 기어들어오는건지..."
상철은 수혁이 낚시를 하고 있는곳까지 겨우겨우 다다를수 있었다.
"오랜만이다.연락 못해서 미안하다."
"아오..이걸 확! 이엉아가 매번 널 만나러 이런 오지까지 오셔야겠냐?"
"미안하다고 했잖아.차 도색새로했냐?"
"뭐?"
"색깔이 바뀌어 있길래."
"아...저거?좀 색이 질리길래 색을 다시 칠했다.근데 꽤 예리한데?다른놈들은 다 차 바꾼줄 알던데.."
"아..번호판이 그대로길래."
"뭐라고?"
수혁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낚시대를 거둬 들었지만 상철은 한동안 멍할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내 차 번호판이 보인다고?"
슬쩍 뒤를 돌아보았지만 나무가 겹겹히 우거져 자신의 차 번호판은 커녕 형태만 약간 보일뿐이었다.
"자자.아무튼...일때문에 온거지?"
"어?어...응...이거.."
상철은 수혁에게 언제나처럼 서류를 내밀었다.왠일인지 수혁이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동안 상철은 안절부절 못하
며 수혁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한참이나 낚시를 다닌데다가 한달이상 쉬었던 수혁인지라 얼굴엔 듬성듬성 수염
이 나있었고,옷차림도 편한 트레이닝복이었지만 상철의 오다파일을 보는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가만..."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진속의 인물을 한참이나 응시했다.너무나 귀여운 얼굴.싱그러운 풋풋함이 느껴지는
소녀 한명이 웃고 있었다.
"유리나보다 더 어려보이는데?"
이 생활을 하면서 최고로 어려보이는 여자였다.화장기가 없는 얼굴이었지만 싱그럽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귀여운 18세의 소녀인것만 같았다.
"그..그게 말이다...저기..."
"뭔데?뭐하는 여자야?얘."
"이쁘긴 하지 않냐?그치?하하하"
"이쁜건 이쁜데..말을 해보라고.이 아이 뭐야."
"그게말이다...파주쪽에 땅부자였던 김뭐시기 하는 영감알지?"
"어.일순간 벼락부자 됐었던 그 노친네아냐."
"그래임마!너 아는구나! 암튼 그 노인네가 얼마전에 세상을 떴걸랑.이 여자가 그 노인손녀야.유일한 상속녀지."
"그래?"
수혁은 다시한번 사진속의 미녀를 바라보았다.어딘가 모르게 해변에서 만났던 유라와 비슷한 느낌도 난다.그만
큼 귀여운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하지만 언제나 처럼 따로 그녀의 프로필이 정리되어 있지 않자 수혁은 한참이나
빈 서류봉투를 뒤적거렸다.
"이름은 최지율.가족없이 혼자살고 말했지만 그 영감의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땅부자야.근데 한가지 문제가 있
는데 말이야..."
"문제?"
상철답지 않게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본 수혁이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고등학생이다..."
수혁은 한참이나 멍하니 상철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그의 눈이 분노로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했다.상철은 행여나
불똥이 튈까 후다닥 뒷걸음질로 수혁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벌렸다.
"뭐야!!!!!!고등학생!!!!"
"야야야!지..진정해봐.내가 오죽하면 너한테 찾아왔겠냐.응?"
"야! 씨발 너 돌았지?나보고 지금 미성년자 따고서 감방가라는거 아냐?"
수혁은 씩씩거리며 낚시대를 접어들었다.상철은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더욱더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야야야..기다려봐..오히려 어린애라 더 쉬울수도 있는거아니냐?응?그리고 무엇보다 초대형 오다라니까!"
낚시대를 집어던지려던 수혁의 몸이 뚝 하고 멎었다.
"초대형..오다?"
수혁이 갈등하는 것을 본 상철이 조금씩 수혁의 곁으로 다가온다.
"야야..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근데 말이다.니가 원하는 오다는 한동안 없어도 나 책임못진다?내가 정말 간만에
따온 오다라는거 너도 알지?"
수혁은 손에든 낚시대를 천천히 내리더니 가방에 챙겨넣었다.확실히 자신은 아무오다나 다 받는 다른녀석들과 달
리 오다를 받기 힘든 경우가 종종있다.심하게는 삼개월이상 못받은적도 있었다.게다가...
"어쩌면 내가 가진 매료안을 시험해볼 절호의 여자일지도 모르지."
수혁은 다시한번 지율이라 불린 소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딱 봐도 천방지축으로 보이는 나이어린 소녀 그 자체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한대 피워물고는 허공에 뿜었다.상철은 초조한 표정으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정적이 흐르고 수혁의 입술이 떨어졌다.
"좋아...해보자..."
"뭣이?"
그만두자..라고 하려던 상철의 눈이 대문짝 만하게 커졌다.수혁은 바닥에 담배를 비벼끄더니 사진을 챙겨넣었다.
"해보자고 까짓거.자세한 프로필뽑아서 줘봐."
추천61 비추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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