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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회전그네 <1부>

1부 - 눈을 뜨다.



"오늘도야?"

"네."

새삼스럽게 오늘도냐고 묻는 담임의 말에 준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사실상 할사람만 해도 되는
야간 자율학습을 빠지는데에 왜 이런 일련의 거짓말 절차가 있어야하는지 준후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래 알았다.모의고사 성적...너 위험하니까 관리잘해.얼마 안남았으니까."

"네."

준후는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교무실을 나섰다.좋은 집안에 입양된 덕택에 고아원 아이들은 꿈도 못꾸는 고등학교
에 들어오긴 했지만,그는 여전히 자신의 두뇌를 학문에 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늘 필요할 때만 하자는 주의였
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준후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았다.공부대신 음악을 사랑하는 그는 근처에 있는 연습실로 향한 것이었다.
실용음악학원을 겸하고 있는 곳이었지만, 그곳의 원장은 언제라도 준후가 와서 연습할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여어.오늘은 야자를 띵까는 불량 청소년 필인거냐."

준후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언제왔는지 기주가 키홀더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자
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준후는 또 자신을 찾아온 친구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여지간히 할일 없구나 너.이렇게 자주 오는걸 보니."

"근데 너 어디가냐?"

"아...그냥 뭐.음악하는 애들 보러."

"꼭 가야하는 자리야?"

"뭐?"

준후가 의아한 듯이 묻자 기주는 피식하고 웃어보였다.고개를 갸웃하는 준후를 무시한채로,기주는 자신의 친구
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흠...일단 교복을 입으면 좀 곤란한데."

"뭔지는 말해주고 곤란하다고 해야지."

"가보면 알아.일단 내 옷 입어라.차에 몇벌 넣어갖고 다니니까."

준후는 영문도 모른채 기주를 따라나섰다.사실 뭐하러 가는건지 따져도 되는 것이지만,왠지 기주가 자신을 찾
아온것은 이유가 있을것만 같았기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물론,그의 호기심도 큰 몫을 한 것이지만.

"윽...나보고 정장을 입으라는 거냐?그것도 차안에서?"

"정 안내키면 차 밖에서 입어도 된다."

"...."

준후는 뭐라 투덜거리면서도,뒷자리에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차 자체가 워낙 넓은 데다가,선팅도 짙게 되
어 있으니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근데...어디로 가는거냐?"

"너..기억하냐?우리 예전에 뒷뜰에서 자주 했던 짓."

"뒷뜰?아아..."

기주의 말에 준후는 피식하고 웃었다.고아원시절,어디서 구해왔는지 고작 열여섯밖에 안되었던 기주는 종종 소주
를 구해왔던 것이었다.훈육교사에게 적발되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탓에, 그 둘은 늘 고아원 뒷뜰에 있는 풀숲에
몰래 숨겨놓곤 했었다.그리고 모두들 잠든 밤이면 나와서 소주를 마시면서 어른흉내를 낸적도 있었다.물론 지금
도 어리긴 하지만.

"한마디로.술마시러 가자...이거 아니냐?"

"비슷해.그치만 그게 다는 아니지."

기주는 피식 하고 웃으며 말했다.준후는 더이상 뭐라고 묻지 않았다.비록 학생으로써 하면 안되는 나쁜짓에는
틀림없었지만,왠지 모르게 짜릿했다.그에게는 야간자율학습 대신 연습실에 가서 악기연주를 하는것이 유일한
일탈이었으니까.

게다가 절친한 친구인 기주가 자신에게 범죄를 시킬리도 없다.그는 준후에게 있어서 평생 같이할 암묵적인 동반
자라는 믿음이 있었다.

"뭐야 여기는?"

준후는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연신 주변을 둘러보았다.기주는 룸미러로 살짝 준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피스텔.그리고 넥타이 삐뚤어졌다.단정하게 메."

"참내.뭐 선이라도 보냐?"

"그럴지도 모르지."

"엥?"

기주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고 피식 하고 웃었다.학교에서 약 20분 정도를 달려,그들이 들어간 곳은
어느 오피스텔의 주차장이었다.

"네가 사는곳은 아닐테고,뭐하는곳이냐 여기?"

"왜 내가 여기서 살지 않는다는 확신을 하는거냐?"

기주의 말에 준후는 살짝 턱으로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차표를 뽑았잖아.지네집에 주차하는데 방문자용 주차카드를 왜 뽑냐.인식기 달겠지."

"흠...뭐....내가 여기서 살지 않는것은 맞는데 이유는 틀렸다."

"뭔 말이야?"

"여긴 내 일터거든.그리고 주차권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뽑아두는거고."

여전히 아리송한 말이었지만 준후는 무슨 뜻이냐고 재촉하지 않았다.왠지 모르게 곧 저절로 알게 될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3층입니다.-

엘레베이터가 멈추고,앞장서서 걸어가는 기주의 뒤를 준후는 조용히 따라갔다.그닥 호화스럽지도,그렇다고 평범
하지도 않은 오피스텔이었다.

"여기가 내 담당구역이야."

"뭐가?"

뜬금없는 기주의 말에 준후는 다시 되물었고,기주는 여전히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채로 말을 이었다.

"보통 룸싸롱 이런걸 맡는데...나는 요거 오피스텔 달랑 하나 맡았다고."

그제서야 준후는 무슨말인지 이해가 갔다.건달 세계에서 말하는 "구역"혹은 "나와바리"를 말하는 것인 모양이었
다.갓 스무살치고는 파격적인 대우였지만,그 세계를 모르는 준후는 그저 그런가보다 할 뿐이었다.

"근데 왜 오피스텔을 맡는데?여기에 건달이 뭐가 필요하다고."

"보면알아."

기주는 짧게 대꾸하고는 초인종을 눌렀고,한참지나서야 문이 열렸다.인터폰으로 세심하게 누가 왔는지 확인을
한 모양이었다.

"뭐..뭐야..."

이윽고 오피스텔이 열리고 나서의 광경에 준후는 그저 입을 쩍 하고 벌려버렸다.화려한 인테리어와 자욱한 담
배연기.딱봐도 건달들로 보이는 몇몇의 인물들이 보였고, 안에는 또 여러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그리고
안에는 건달들이 아닌,일반인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도박판..?"

그랬다.트럼프들이 쉴새없이 움직이는 걸로 봐서는 언뜻봐도 도박판이었다.준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밖과는
전혀 다른 내부 광경들을 보고 있던 순간,건달들 몇명이 험악한 인상으로 준후를 바라보았다.

"눈깔어.내 친구니까."

"아..네..네!죄송합니다..."

기주의 한마디에 덩치가 산만한 두 녀석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스무살인 기주보다 그들이 어릴리가 없었다.준후
는 새삼스레 기주가 나이에 비해 꽤 높은 자리라는걸 실감할수 있었다.

"회사로 치면...뭐 초고속 승진같은 건가."

준후는 속으로 실소를 내뿜었다.뭐가 어찌된건지는 모르지만,기주는 어린나이에 용케도 이정도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물론 그것이 어둠의 세계라는 점이 있긴 하지만.

"감이 좀 오냐?"

"감따윈 필요없잖아.누가봐도 도박판인데."

"아..하긴 그렇구나."

"...."

기주는 곧 준후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그의 설명을 듣던 준후는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그의 말
에 의하면, 이 오피스텔 전체가 하나의 큰 도박장이었다.즉,여기 말고도 다른 호실도 모두 여기와 같은 도박장
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단속을 피하려고 여기에 있는거야.물론 오래 해먹을수 있는 하우스는 아니지만."

"근데 여기에 여자들은 왜 있는거냐?"

그러고 보니 도박장에 연신 젊은 여자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하나같이 쟁반위에 마실거리나 간식거리를 들
고 나르는 것으로 보아,도우미 같은 존재인 모양이었다.

"그냥 직원이야.보다시피."

준후는 "그냥 직원"치고는 상당히 묘하다고 생각했다.어차피 음료수만 나르거나 뒤치닥 거리를 하는 이들이라면
그냥 편하게 입어도 될것을,그들은 하나같이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호기심이 밀려왔지만,더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안궁금하냐?왜 여기까지 대려왔는지."

"술먹자는 거잖아.뭐 덧붙이자면 니 구역을 자랑하려는 의도도 약간은 보인다만."

"흠...뭐 그런건 아니야.술을 마시고 싶은데 이곳을 벗어나면 곤란해서 온거 뿐이지.들어와."

몇개의 방중에,기주가 들어간 방은 유일하게 단 한명도 사람이 없었다.기주는 지나가는 여자한명을 잡더니,자신
의 방으로 술을 넣으라고 주문하고는 문을 닫았다.

"방음도 완벽하네.신기할 정도로."

"동네방네 도박장이라고 티낼 필요는 없으니까."

"뭐.일리는 있네."

준후는 그래도 정장차림이 영 불편했다.거의 똑같다고 할수 있을만큼 비슷한 체형이었기에 기주의 양복은 몸에
꼭 맞았지만,그래도 불편한거 까지는 어쩔수 없었다.

"어떤거 같냐?"

"뭐가?"

"여기 말이야.넌 처음 볼꺼 아냐."

"흠...확실히 이런곳은 처음보긴해.은근 재밌어 보이는데 저 카드놀이."

준후의 말에 기주는 피식 웃어버렸다.사실 기주는 어렸을적 부터 도박을 할줄 알았다.고아원 시절 준후가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면 그는 늘 대답을 회피해 버리고는, 당연한 덕목이라는 듯이 준후에게 화투를 가르쳤다.명석한
탓에 빨리 배워버리는 준후의 습득능력에 놀라긴 했지만.

"배워 볼텨?"

"트럼프 말이냐?"

"어."

준후는 호기심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기주는 역시나 라는 얼굴로 웃었다.

"아서라.나쁜것은 또 내가 다 가르쳤다고 하고 다니려고?부잣집 도련님이 이런거 하면 못쓴다."

"실없는 소리마.어차피 처음부터 가르쳐줄 생각으로 데려왔으면서 뭘."

기주는 실소를 터트렸다.준후는 정말 눈치하나는 기막히게 빠른 아이였다.저번에 보았던 뭔가 답답한 표정의 준
후의 얼굴이 맘에 걸렸던 기주는 오늘만큼은 준후를 실컷 놀게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비록 자신보다 한살 아래이긴 하지만,그는 늘 준후와 어울리는 것이 즐거웠다. 때문에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겠지만.

"잘봐."

기주는 서랍에서 트럼프를 하나 꺼내어 테이블위에 늘어놓았다.

똑똑똑.

"들어와."

막 기주가 입을 열려는 찰나,노크소리와 함께 양주몇병과 간단한 과일이 놓인 쟁반을 들고 한 여인이 들어왔다.

"어머!실장님! 이분 누구에요?디게 잘생기셨다~"

늘어져있는 트럼프만 보고있던 준후는 그녀의 말에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눈꼬리가 섹시하게 위로 올라간 여성이었다.미인이라고는 못하지만,묘한 색기가 흘렀다.게다가 딱붙는
원피스위로 보이는 그녀의 몸매 굴곡역시 그녀의 이미지에 한몫하고 있었다.

"내 친구야.꼬리치지 말고 가서 일해."

"칫.재미없으시긴."

그녀는 연신 준후에게 눈웃음을 쳐 보이더니,술잔을 셋팅해 주고는 밖으로 나갔다.준후역시 다시 트럼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잘봐.숫자는 2부터 10까지.그리고 그다음에는 J,Q,K,에이스 순으로 간다.무늬는 모두 네개고..."

준후는 기주의 두서없는 설명을 열심히 귀담아 들었다.천성적으로 도박에 미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늘 그는
이런것에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기주역시 그런 준후를 잘 알기에,그를 여기로 데려온 것이었다.

기주라 한들,나쁜쪽으로 준후를 사용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다만 저번에 봤을때의 준후의 표정에 뭔가 그늘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라는 이유 하나 뿐이었다.

"대충 알겠냐?"

준후는 단 한번의 설명에도 되묻지 않고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기주가 설명한것은 포커의 룰이었다.그것도 룰만
설명했을뿐,아직 배팅에 대한 것은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거...섯다 처럼 장난질 하는거냐?"

"장난질은 어디서나 하지."

"쳇.그러니 호구들은 계속 벗겨먹히겠네."

"뭐.이바닥이 다 그런거 아니겠냐.다음은 배팅하는 방법이야."

이번에 기주는 직접 실전처럼 카드를 나눠 주었다.하면서 배우는것이 가장 빠를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쪼르르르.

술잔에 술이 따라졌다.준후는 아직 양주맛을 잘 알 나이가 아니었지만,왠지 모르게 묘하게 알딸딸해 짐이 느껴
졌다.그에게 있어서 음주는 어른들의 그것처럼,하나의 문화가 아니었다.단지, 왠지모를 답답한 반복적인 일상속
에서 잠시나마 탈출하는 일탈이자 비상구, 그 자체였다.

"풀하우스.내가 이겼지?"

"이런 방식이로구만."

"대충 알겠냐?이제?"

기주는 물어보고도 속으로 피식 웃었다.도박이라는것이 어디 한번 듣고 딱 이해가 되는 것이었던가.한번 홀랑
털려도 보고,따기도 해봐야 아는것이 겜블이었다.하지만 기주의 예상과는 달리, 준후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것 같은데 대충."

"뭐?"

기주는 본인이 가르쳐 놓고도 황당함이 느껴졌다.한번 설명했을 뿐인데 알다니....왠지 기주의 눈에는 그것이
준후의 허세로 보였던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뭐..일단 그렇다 치고...요즘 생활은 어떻냐?"

"그냥 똑같지.매일매일 학교가고,끝나면 집에오고. 간혹가다 연습실가고."

"무료하구만.부잣집 도련님 삶도 그닥 좋은것만은 아닌 모양이군?"

"글쎄.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말이라고 하겠지.막 답답해 죽겠거나 그러진 않아.다만."

"다만?"

"가끔 회의가 들어서 그런것일 뿐이지."

기주는 뭔가 씁쓸해 보이는 준후의 얼굴을 보며 잔을 비웠다.자신보다도 더 자유롭게 살것만 같았던 그가 저런
고민을 갖고 있다니 왠지 모르게 자신도 씁쓸해 지는것이 느껴졌다.

"여자친구는 있냐?"

"뭐?"

"뭘 물어봐.니네 학교 기지배랑 머슴아 같이 다니는 학교아니냐?"

"....보통은 그런걸 남녀 공학이라고 한다."

"뭐 어쨌든간."

"없어 그런거."

"입양되고 나서 한번도?"

"어."

"그냥 친구도 없냐?"

"귀찮아 그런건."

"흐음..."

기주는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고아원 시절에야 아주 어렸을때부터 함께였고,입양된 것은
준후가 열다섯 되던 해였다.

"그 이후에도 여자친구 같은건 없었다면...이 놈은 무슨 사춘기도 없나..."

기주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그는 준후가 머리는 좋지만,절대 모범생이 아니란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자랑은 놀지도 않았다니...왠지 모르게 기주는 오늘 자신의 친구에게 선물을 줘야 할것만
같았다.

"뭘 자꾸 피식 거리냐?기분나쁘게."

준후는 기주의 표정에 못마땅하단 듯이 말하며 얼굴을 찌푸렸다.기주는 아무 대꾸도 없이 한참을 준후를 바라보
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준이 너 포커 한판 쳐볼래?저쪽방에 다른사람들이랑."









"정말 장난질 안할거냐?"

"속고만 살았냐.내가 왜 사랑하는 친구를 선수들 틈바구니에 넣어주냐.여긴 타짜없는 판이니까 껴서 한번 쳐보
라고."

"나 돈없어."

"내가 줄테니까 써."

"뭐하러 그러는데?"

"친구가 스트레스에 쌓여있는거 같을 뿐이야."

기주의 말에 준후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사실 그도 약간은 무리에 껴서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더
이상 튕기지는 않기로 한 것이었다.기주는 칩을 꺼내어 준후에게 건내주었고,그 양에 준후는 깜짝 놀라고 말았
다.

"뭐야 이거?왜이렇게 많이 줘?"

"이정도가 뭐가 많아. 이런 양은 두세판이면 금방 동나는 양이야."

"뭐?"

준후는 어안이 벙벙해졌지만,아까의 배팅룰을 되새겨보니 무리도 아닌거 같았다.두세판이 아니라,정말 큰 판이
라면 한판에 몇억이 오가기도 하는 것이었다.

"자자자.여기 이 분도 좀 껴주십쇼 사장님들.요새 막 포커치시는 분인데...자금좀 있으시니까요."

준후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기주는 넉살좋게 먼저 있던 방 인원들에게 너스레를 떨었고,딱 봐도 초짜티가 나는
준후를 보자 그들은 별 불만없이 준후를 껴주었다.

"저 앞에 검은안경 쓴사람.좀 잘치니까 조심해라."

"알았어."

기주는 살짝 준후에게 속삭이고는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어따...상당히 어려보이는디?"

모두 중년의 나이뿐인 포커판에,딱 봐도 앳되어 보이는 준후가 앉자 한명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준후는 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듯 자신의 앞에 칩을 늘어놓았다.

"상관없겠죠.도박할 나이는 될테니까."

"으잉?그걸 으째 믿어....민증을 한번 까봐야 쓰겄는디?"

정작 기주가 말한 "검은안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그의 양옆에 앉은 두명이 계속 준후에게 시비를 걸
었다.준후는 천만원 짜리 칩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미성년자가.....이렇게 칩들고 하우스 올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단순 명쾌한 준후의 말에 그들은 피식 웃으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총각 담배 태우는가?"

"아..네."

그가 언제 시비를 걸었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담배를 건냈고,준후는 최대한 안 어리숙하게 보이려 애쓰며 불을
붙였다.일종의 "텃세"가 끝나자 신속하게 패는 돌아갔다.

"에이스 두장에...퀸이 한장."

첫패치고는 나쁘지 않았다.잠시 고민한 준후는 퀸을 오픈했고,그와 동시에 다른 이들의 오픈패를 쑥 훑어보았
다.

"어쭈...어린놈이 제법 신중한데..."

검은안경태의 중년남자는 준후의 행동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도박판에서 속칭 "김사장"으로 통하는 그는 나
름 포커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딱 봐도 초짜같은데,남의 패를 살피는 준후의 눈이 제법 날카롭자 그는
속으로 호기심이 들어왔다.김사장은 슬쩍 자신의 패를 보았다.딱 봐도 이번판은 별것 없는 패가 들어왔다.

"어디한번....어떤식으로 나오는지 간을 볼까."

김사장은 피식 웃으며 계속해서 배팅을 했다.

"에이 쓰벌.개패가 들어왔구마잉.나는 죽을라요."

네명이 있는 판에서 한명이 툴툴 거리며 죽어버렸다.준후는 냉정한 표정으로 다이를 외친 사람의 패와,살아있는
셋의 패,그리고 자신의 패를 꼼꼼히 분석했다.

"클로버 하나만 더 있으면...플러쉬인가?"

비록 지금 막 배웠지만,넷이 치는것 치고는 그닥 나쁘지 않은 패였다.준후는 무표정을 유지하면서 신중히 배팅
을 했다.

"어이고...다들 뭐가 떴길래 그렇게들 달리슈들?나는 죽을라우."

드디어 검은 안경태,그러니까 김사장과 준후만 남았다.준후는 계속해서 배팅을 했고,김사장역시 침착하게 받아
주었다.

"역시나 플러쉬다."

히든카드가 들어왔고,그것은 운좋게도 클로버였다.준후는 표정관리를 하며 칩을 내려놓았다.

"생각을 해보자.저녀석의 패는 뭘까."

준후는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바닥에 있는 패를 유심히 보니,떠봐야 스트레이트 일거 같았는데,이상하게도 상
대는 계속해서 배팅을 했다.

"계속 갈까?그래봐야 스트레이트인데."

준후가 생각하는 그 동안에도,김사장은 여유가 넘치는 표정이었다.그는 준후의 패가 무엇인지 대략 짐작이 갔
다.바닥에 깔린 클로버 네 장.그리고 연신 카드의 무늬를 살피는 것으로 보아 크로버 플러쉬였다.

"어디...걸려드는지 안드는지..볼까나."

김사장은 피식 웃으며 더 많은 돈을 배팅했다.준후는 살짝 긴장이 되었다.자신의 밑에 크로버 네장이 깔렸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이트를 가지고 저렇게 레이스를 할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만약,김사장이 갖고 있
는 세장의 카드가 똑같다면,풀하우스가 나올것이고 준후는 패배하게 되어있었다.

"한발 물러서자.첫판에 모험을 해서 좋을게 없지."

준후는 카드를 내려놓았고,"다이"라고 중얼거렸다.김사장은 피식 웃으며 앞에 쌓인 칩들을 끌어당겼다.한참이나
생각하던 준후는 김사장의 중얼거림에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운이 좋네.퀸 원페어로 큰 돈을 먹어보고."








기주는 연신 씩씩 거리는 준후를 보며 웃음을 겨우 참아내었다.

"그래서...다 꼬라박았냐?세판만에?"

"그 사람들 무슨 그 나이 먹도록 포커만 쳤다냐?"

아무리 똑똑한 준후라 해도,도박에서 경험의 유무는 엄청난 차이였다.기주도 그것을 대충 알기에 약간은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참아.어차피 재밌게 맛만 봤으면 된거지 뭐."

"쳇."

천성적으로 지는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준후는 특히 더 분한 모양이었다.하지만 기주는 왠지 처음 그의
학교를 방문했을때 보지 못했던 준후의 신나하는 표정이 보이는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좀 더 꿔줘.내가 가서 다 발라줄테니까."

"안돼."

"왜?갚을테니까 줘봐."

"갚지는 않아도 돼.그런 문제가 아니니까."

"그럼 뭔데?"

"오늘은 따로 할일이 있어.사실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거든."

"뭐?"

"정아야.들어와봐."

의아해 하는 준후의 표정을 뒤로하고 기주는 문을향해 외쳤고,아까 양주와 안주를 가져왔던 그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인사해.여긴 내 친구 준이."

"아하~그렇구나.안녕하세요~"

"그리고 준아.이쪽은 최정아라고...아까봤지?우리 직원."

준후는 도대체 왜 그녀를 소개받아야 하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채 꾸벅 인사했다.그가 뭐라고 기주에게 물어볼
시간도 없이,기주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아 그럼 둘이 한잔하고 있어.난 바쁜일이 있어서."

기주는 살짝 정아에게 눈짓을 보냈고,그녀는 눈웃음으로 답했다.오직 준후만이 기주의 뒷모습을 알수 없다는 듯
이 바라볼 뿐이었다.

"오빠.한잔 받아요."

"에?아...네."

정아는 싹싹하게 웃으며 준후의 잔에 양주를 채워주었다.여자와 단둘이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준후인지라,그의
표정은 뻘쭘하기 그지없었다.

"실장님이랑 친구시라면서요?"

"아..예."

"어머.근데 스물 일곱치고는 되게 어려보이신다."

"에?"

준후는 살짝 멍해졌다가 이내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버렸다.

"이 자식 나이를 속이고 건달짓하는건가?"

생각해보니 윗사람이면 모를까,부하들을 부리려면 갓 스무살은 너무 어리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준후는 이제
서야 실내에서 마시는 데도 정장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던 기주의 속뜻을 알수 있었다.

"저도 한잔 주세요 오빠.그리고 말 놔요."

"아...응."

준후는 속으로 기주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지만,내색하지 않고 정아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그녀의 하얀 다리가
원피스의 옆트임사이로 드러난다.준후는 왠지 모르게 무언가 뜨거운 열이 확 올라오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근데..몇살이야?"

"저요?올해 스물둘이요."

그녀의 대답에 준후는 은연중에 은채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깨달아내었다.동갑이지만 둘은 판이하게 달랐다.은채
에게 느껴지는 청순함이 정아에게는 느껴지지 않았으니까.뭐 반대로 따지면 은채역시 정아같은 색기는 갖고 있
지 않았지만 말이다.

"여기서 무슨일 하는거야?그냥 서빙이야?"

"음...서빙도 하고...이런저런 일 해요.왜요?궁금해요?"

은근히 가슴골이 보이도록 고개를 숙이며 묻는 정아의 말에 준후는 살짝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뭐...그냥...근데 기주는 왜 안오는거야?"

괜시리 말을 돌리는 준후를 보며,정아는 그가 귀엽다는 듯이 베시시 웃었다.

"오빠...참 내 스타일이다."

"뭐?"

"막 미남은 아니지만 뭐랄까...남자답게 생겼잖아."

몇잔이나 오갔다고,아니,몇분이나 지났다고 정아는 말을 놓고 있었지만,준후는 개의치 않았다.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그녀가 자신보다 연상인 것을.

준후는 계속해서 정아가 재잘재잘 말하는 탓에,기주가 없어도 지루하지 않게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원래 술을
즐기며 마실 나이가 아니니,당연히 어린 혈기로 먹는 술은 금새 취기가 확 하고 올라왔다. 집에서 알아챌텐데..
하는 걱정은 일찌감치 접은지 오래였다. 어차피 집에서 전화를 걸어봐야,휴대폰은 기주의 차안에 있는 교복주머
니 속에 있으니까.

"오빠 나 옆에 앉아도 돼?"

"응?아...그래."

30여분 정도 술잔을 기울였을까.준후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꼬이는 발음으로 대답했고,정아는 살짝 일어나 그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오빠 키 꽤 크네?몇이야?"

"180정도.그닥 큰 편은 아니야."

"에이~그정도면 크지 뭐."

"아냐 요새 애들은 한 반에 185넘는 애들이 꽤 많..."

"응?한 반에?"

"아무것도 아냐."

준후의 얼버무리는 말에도 그녀는 살짝 웃으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여인의 향수내음,그리고 술냄새가
묘하게 야릇하게 섞여 준후의 코를 살짝 찔렀다.생전 처음 느끼는 야릇한 느낌.준후는 술기운과 함께 무언가 뜨
거운것이 올라오는것만 같았다.

"오빠.나 하는 일 뭐냐고 물었지?"

"아..어."

준후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고 말았다.정아의 손이 자신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가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정아의 손은 이제 그의 은근한 부위를 더듬고 있었다.

"여자들은 이런 일을 해.중요한 손님이 도박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풀어주는 역할..."

준후는 그제서야 여자친구에 대해 물어봤었던 기주의 의도를 알수 있었다.더불어 어째서 그녀들이 아슬아슬한
복장으로 다니는지도.

"하지만 아무에게나 이렇게 해주지 않아.특히 나는 더더욱."

정아는 능숙하게 준후의 벨트를 풀더니 이윽고 바지 지퍼를 스르르 내려버렸다.준후가 뭐라고 하는 찰나,그녀는
준후의 몸으로 자신의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오빠....나 맘대로 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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