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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가장푸른 바다(3)

그날 이후로 둘은 준우가 군대에 가기전까지 가끔씩 만남을 계속하였다.



희영도 식구들에게 준우와의 만남을 알리지 않았고 준우또한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한채 희영을 만나고 있었다.



실없는 농담과 식사, 영화보기가 일상적인 만남이었지만 희영은 그날 들었던 예언이 점점더 현실화 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넌 여자친구 없어?"



"여자친구 있으면 누나 만날일 없잖아요?"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말투였지만 희영은 준우가 가난한 대학생으로써 고단하고 힘든 일상을 보내면서 자신을 만나는 짧은 순간에만 안식과 평화를 느낀다는걸 알수 있었다.



"준우는 고시 준비 안할꺼야?"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그럼 계획은 있는거야?"



"글쎄요....군대나 갔다와서 생각해 볼까해요."



"경제적 문제때문이야?"



준우는 희영의 질문은 못들은척하며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건 뭐야? 나 주는 거야?"



"졸업 축하해요"



희영은 생각지도 못한 준우의 태도와 선물에 놀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풀어봐도 되지?"



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희영은 들뜬 마음으로 기대감으로 선물을 풀르느라 자꾸 손이 엇나갔다.



준우가 준비한 선물은 푸른색 비키니 수영복이었다.



"어머...이게 뭐야? 한겨울에 왠 수영복? 너 정말 웃긴다"



희영은 웃으며 수영복을 들어보였다.



"색깔 너무 이쁘다. 그런데 왠 수영복이야?"



"최소한으로 입으면 덜 젖잖아요"



희영은 다시 만난 첫날의 대화가 떠오르며 미소를 지었다.



희영은 무심한듯한 준우가 사실은 둘만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사이즈는 어떻게 안거야? 정확한데"



"대충 눈치로"



"눈치만으론 힘들텐데? 기억으로?"



희영은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말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몇번을 만나면서도 준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을 한번도 언급한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그날의 일이 자신의 입으로 언급되자 희영은 표정까지 변하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버지가 몸이 안좋으셔서 오늘은 일찍 들어가봐야 해요"



준우는 자리를 일어서며 말했다.



희영은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외면하고 팔짱을 끼었다.



"누나......졸업축하해요"



준우는 마지막말을 남기고 사라져갔다.



희영은 졸업후 학생들을 위한 개인레슨을 하였다.



친근감있고 남을 편하게 하는 외모와 자상한 교습방법 때문에 처음부터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처음에는 경제적인 이익을 기대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몇개월이 지나자 평판이 좋아졌고 희영에게 레슨받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감당할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희영이 본인도 가르치는것에 즐거움을 느꼇고 훌륭한 연주가 되는것은 예전에 포기했지만 어쩌면 누군가를 가르치는것은 상당한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희영은 준우와 만남을 계속하며 자신이 경제적인 도움을 줄테니 입대를 미루고 사시를 준비하라고 제안했다.



준우는 처음에는 들은척도 안하다가 희영의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를 하자 점점 희영을 멀리했다.



준우가 군대에 입대하기 몇달전부터는 아예 희영의 전화도 받지 않았고 희영이 명절날 외삼촌을 핑계로 찾아왔을때도 마치 바쁜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집을 나서며 희영을 외면했다.



희영은 준우가 입대한후 삼주가 지나서야 준우 아버지에게서 준우의 입대 소식을 알게되었다. 



어렴풋이나마 이런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런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자 준우가 진정으로 피하고 싶은건 자신의 제안이 아니라 희영이라는 한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우가 입대한후 몇일만에 벌써 더욱 쇠락해진 외삼촌의 집과,  말끔하게 정리하고 떠나버린 준우의 방을 보면서 희영은 더이상은 나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이 우리둘 사이의 마지막이 되겠지"



희영은 준우의 방에 서서 결심이라도 하는듯이 스스로에게 말했다.



마루에선는 외삼촌의 힘든 기침소리가 연이어 나왔다.



희영은 마루로 나와서 마치 준우의 기억이라도 지우려는듯이 외삼촌집을 청소했다.



방과 마루를 쓸고 닦고 세탁기를 돌리고 설겆이를 하고 더러워진 창을 세제를 사용하여 닦았다.



희영은 그렇게 구석구석 청소하면서 준우와 처음으로 연결되었던 이곳에서 모든 기억을 지우면 예견된 운명에서 벗어날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외삼촌은 술에 좀 취한채 담배재 터는것을 자주 잊은채 희영을 쳐다 보았다.



희영이 청소를 마치고 제법 근사한 저녁까지 준비해서 대접하자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옛날에 널 데리고 대공원에 간적이 있어다"



"정말요? 전 기억이 전혀 없는데"



"니가 아주 어렸을때....학교도 가기전이지"



"삼촌 이야기 해주세요"



"그때 죽은 준우 애미랑 준우랑 널 데리고 대공원에 갔었지. 준우가 한살이나 됬을까? 아마 준우녀석 세상 첫나들이었을꺼다. 그 녀석 집을 나서자 마자 얼마나 우는지....집에선 순하고 잘 울지도 않는 녀석이 문밖나서자 마자 우는거야....쉬지도 않고....첨엔 그러려니 하다가....나중되니까 무슨일있나 싶어서 걱정이 되더라고....어디 아픈건 아닌가? 첫아이라서 니 숙모나 내가 무슨 경험이 있어? 둘이서 학을떼고 있는데.....애는 계속울지....도저히 안되겠다 대공원이고 뭐고 다시 돌아가야겠다 그런생각이었지... 그런데 참 신기한게 니가 포대기에 쌓인 준우 안으니까 울음이 거짓말 처럼 딱 끊기는 거라....하도 신기해서 너한테 준우 뺏으느까 또 우는거야.....다시 니가 안아주면 울음끄치고......니 숙모랑 나랑 하도 신기해서 몇번이나 해봐도 같은거야.....참 이상타 하면서.....아이고 이제 한숨놨네...그랬지"



준우 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소주를 털어너었다.



희영은 그말을 듣자 마치 예전에 보았던 영화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떠올르는듯이 선명한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실제 경험인지, 외삼촌의 말을 듣고 뇌가 만들어낸 환상인지는 알수는 없지만 영상만은 뚜렸하게 보였다.



벚꽃이 이제 거의 다 떨어져버린 날씨가 화창한 어느 오월의 대공원에서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어린 여자애가 포대에 쌓인 아기를 안은채 얼르고 있는 장면이 손에라도 잡힐듯이 선명해졌다.



그녀의 한쪽가슴에서는 준우가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없이 울음을 지으며 유두를 빨던 기억마저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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