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탈-8
"성 오르테가 왕국 만세!!"
"지오네 핀 오르테가 공주 만세!!"
동굴의 입구는 좁았지만 안은 3층 건물이 들어설 정도로 무척이나 컸다. 실제로 안에는 건물이 있었고, 그 곳에서는 수많은 대륙인들이 크툴인들을 피해 힘든 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지오네를 비롯한 일행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피해가 막심했지만 자신들은 살아 남은 것이다.
"공주님, 공주님!! 아마 깜짝 놀라실겁니다!! 그 분이 돌아오셨어요!!"
환호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제법 예복을 차려 입은 여인들이 지오네에게 다가왔다. 의외의 소식에 지오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
"가 보시면 아실 거에요. 호호호...!"
그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등 뒤로 불길한 자가 따르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소수의 시민들의 환호 속에 어느덧 동굴 가장 깊숙한 곳의 3층 건물에 다다른 일행은 조심해서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판이 문을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 안에서 익숙한 냄새가 확 풍겨 왔다. 이제는 지겹기까지 한 피 비린내였다.
"공주님.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이 흔적...!!"
"자기야."
"어헉!!!"
판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뜨뜻 미지근하고 축축한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아쉬운 듯 혀를 낼름거리며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로 판을 흘겨 보았다.
"우후후, 귀여운 것..."
"..."
세 여자들은 기가 막혔지만 뒤통수에 달린 큼지막한 눈에 놀라 차마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고귀한 그녀들이 언제 악마를 본 적이나 있었겠는가. 기사 나부랭이의 안위보다 뒤통수에 달린 눈깔이 더 신경쓰였다.
"싫어도 알게 될거야. 어서 올라가."
판에게는 서슴없이 말을 놓는 남자였다.
...............................
"왔냐?"
"친구, 아주 즐거웠다네. 자네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미청년을 발견했거든. 내가 찜했네."
"그거 다행이구만."
건물 안의 가장 깊숙한 방 안에서는 샤샤가 왠 여자 둘을 사이에 끼고 드러누워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남자가 방문을 열자 밤꽃 냄새와 함께 훅끈한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우웁...!!"
여자들 중 하나가 냄새를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서민들의 땀과 눈물을 바탕으로 고귀한 삶을 누린 그녀에게 있어서는 견딜 수 없었나보다. 샤샤의 눈매가 순간 꿈틀했지만 피식 웃으며 다시 술을 들이켰다.
"사내 새끼들은 왜 데려 왔어. 마음에 드는 놈이 있으면 꿍쳐 놓고 놀 것이지. 재수 없는 새끼."
샤샤의 경멸 어린 말투에 남자는 오르가즘을 느끼는 표정으로 몸을 베베 비틀며 부르르 떨었다.
"아아. 멋져. 좀 더 욕해줘. 언젠간 반드시 너의 후장을 따 먹어 버리겠어."
"씨발...!! 어쩌다 저런 새끼랑 계약을 해 가지고는...!!!"
샤샤는 제 성질을 참지 못해 애꿎은 여자의 젖가슴을 꽈악 움켜 잡았다. 유방의 살집이 손가락 사이로 밀려 나올 지경이 되자 여자가 두 손을 가슴으로 모아 쥔 채 고통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의외로 앙 다문 입술에서는 작은 비명 소리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
심하게 두들겨 맞은 얼굴이 공포로 질려 있는 것으로 보아 샤샤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오... 오빠? 오빠 맞지?"
"...응?"
샤샤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표정을 보며 미소지을 때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가 귓전을 파고 들었다.
오빠.
영원히 자신과는 관계없을. 아니 모니터 너머에서만이 들을 수 있었던 그 마법의 단어가 샤샤의 오감을 자극했다. 그의 어여쁜 똘똘이도 놀랐는지 순간 움찔, 거리며 긴장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오빠라니?"
뭇 오타쿠들이 사모해 마지 않는 마법의 단어. 오빠.
샤샤 역시 이 꿈같은 현실을 쉽사리 믿지 못하는 일개 백수에 불과했다.
"샤샤, 샤샤 오빠 맞지? 샤샤 오빠...!!!"
지오네는 커다란 눈망울 가득 눈물을 머금고 울음을 주체하지 못해 어깨가 들썩거렸다. 몰살 당했다고 생각했던 가족 중 가장 믿고 의지하던 큰오빠가 버젓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샤샤는 순간 그런 지오네를 꼭 껴안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귀축이 되었지만 그도 원래는 5.25인치 디스크 열장에 담긴 채 반 전체를 누비던 "동급생" 세대였던 것이다. 쉽게 말해 근본은 순애물이었다.
"잠깐, 너...!!!"
에서 마주쳤다. 그런데 갑자기 이 초록색 병신 눈깔 놈이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30도 정도 고개를 팩 돌린 채 피식 웃는 것이 아닌가.
"...풉!!"
샤샤의 얼굴이 대번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맨몸으로 되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이 새끼한테는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다.
예전에 계약을 맺기 위해 머리 꼭대기에 서생원이 강림하실 정도로 대판 싸울 때 틈만 나면 그 탐스러운 물건을 따 먹어 버리겠다고 손을 뻗는 통에 상당히 애를 먹었던 것이다. 물론 계약 이후에 얀만 애꿎은 채찍질을 당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었다.
"꺼져 임마!! 남자 새끼는 니 마음대로 처리하고 계집년들은 우리 애들한테 던져 줘!! 나보고 오빠라고 한 년은 냅두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기사와 공주들이 샤샤를 주목했다. 남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다음 두 쌍의 남녀와 더불어 침대에 누워 있던 나신의 여자들까지 일으켜 세워 방 문을 나섰다. 샤샤는 방문을 닫기 전 입술을 낼름 햩으며 자신의 거시기를 바라보는 마족 남자에게 오한을 느꼈다.
"에효... 내 인생아. 저런 놈도 감지덕지 해야 하나? 아무튼 자콥 이 새끼 잡히면 눈깔을 뽑아다 똥구녕에 수납시켜 주마."
실내에는 어느새 지오네와 샤샤만이 남았다. 지오네에게는 친 오빠였지만 샤샤 자신에게는 아무 관계도 아니다. 냅다 덮치기에는 뭔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제와서 근친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 마법의 단어가 샤샤의 정신을 왠지 모르게 옮아 메고 있었다.
"오빠..."
.......................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이냐!!"
방을 나선 이후로 4명의 여자와 두 명의 사내는 다른 의미에서 공포에 질렸다. 여자들은 미래에의 불안으로, 남자들은 호모끼가 듬뿍 넘쳐나는 마족의 취향으로.
"따라오세요."
마족 남자가 거침없이 2층으로 내려갔다. 여인들은 서로 주저하면서도 남자의 걸음을 따라갔다. 그가 2층의 한 방 문을 열었다.
방 안에서는 조금 전 샤샤의 방에서 느꼈던 그것보다 더더욱 진한 냄새가 확 풍겨 왔다.
"자 여러분, 손님오셨습니다."
짝짝.
남자가 가볍게 손을 마주치자 어둠 속에서 번득이는 안광이 나타났다. 공작가의 영애들은 공포에 질렸지만 이미 샤샤에게 능욕당한 여인들은 체념한 채로 순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안에 도사리고 있던 자들은...
쾅!!!
"꺄아악!!! 살려줘!!!"
탕탕!!!
문이 닫히는 순간 필사적으로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판과 그레모는 반사적으로 검을 빼어 들려고 했지만 예의 마족이 금새 문 앞을 가로막고 섰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레모도 뭔가 비슷한 걸 시부렁거리긴 했지만 남자의 귀에는 오직 판의 목소리만 들리는가 보다. 그는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험악하게 일그러진 판의 볼을 꼬집었다.
"아휴~ 귀여워. 오빠라고 불러 봐."
콧수염까지 기른 중년의 외모를 한 마족이 두 볼을 붉으스름하게 붉히며 징그러운 행동을 하자 판은 소스라치게 놀라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어느새 칼은 저 너머로 날아가 버린 뒤였다. 남자가 무저항 상태가 된 판을 거칠게 벽으로 밀어 붙인 뒤 그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성기에 가져다 대었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등 뒤에서 판을 붙잡고 귓가에 속삭이는 남자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 육봉은 크고 아름답지... 이 놈을 어떻게 생각 해?"
"이놈!! 판을 놓아라!!"
그레모가 마족의 어깨를 잡아 채었다. 그러자 마족 남자의 눈이 비로소 그레모를 향했다. 무척이나 귀찮다는 눈빛이었다.
"아, 당신도 있었군요. 당신은 순서를 기다리세요."
그레모는 화들짝 놀랐다.
"이, 이 새끼!!! 설마 내 엉덩이도 노리고 있는 것이냐!!"
그 순간 마족 남자의 혀가 그레모의 귀를 파고 들었다.
"어거거거...!!!"
아차하는 사이에 그레모도 조금 전에 보았던 크툴인 병사처럼 마족 남자의 혀에 빨려 죽었다. 귀로 빨아들인 탓인지 눈알과 뇌수가 가장 먼저 빨려 들어가고 강한 흡입력에 의해 그 다음으로 두개골이 깨져 머리가 움푹 파여 들어가며 두부가 작게 쪼그라들었다.
마족은 식사를 마친 뒤 불쾌한 눈빛으로 미이라가 된 그레보를 바라보았다.
"산적같이 생긴 자가 주제 파악을 못하는군요. 당신은 야식으로 먹으려고 남겨 두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마족 남자와 판의 눈빛이 마주쳤다. 두 눈빛에서 섬뜩한 빛이 흘러 나왔다.
"역시, 메인 디쉬는 이 쪽이죠. 달링♡"
좁은 실내에 황금빛 기광이 일렁이고 있었다. 사람의 몸이 어떻게 황금빛으로 일렁일 수 있겠느냐마는 오로지 단 한명, 샤샤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이...이게, 실패라고요??"
"...그래..."
대륙 검사 중에서도 수위에 드는 얀에게서는 이제 과거의 그 당당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국왕과 갈레라 후작의 변기 정도로 전락해 버린 그녀는 더이상 예전의 강인한 소드 마스터로서의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찰싹-!!
"꺄악!!"
이미 붉은 선이 뱀처럼 전신을 휘감고 있는 얀의 육체에 또다시 한번의 격통이 찾아왔다. 얀은 인상을 찡그리며 하얀 나신을 뒤틀었지만, 두 손이 들어 올려진 채 쇠사슬에 묶이고 개목걸이 하나만 달랑 채워진 상태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아아악!!!"
샤샤의 몸은 그 생각보다 휠씬 심각한 상태였다. 일반적인 수련자라면 자신이 수련하는 무기나 단련된 육체에 오라를 머물게 하여 파괴력과 강도를 높이지만, 샤샤의 몸은 그런 수련을 거쳐 정신의 길을 열어 오라를 인도하는 방법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열린 것은 육체의 문, 즉 모공을 비롯한 전신의 구멍이었다.
더구나 정통의 수련법도 아닌, 전신의 기혈을 역으로 돌리는 방법으로 오라의 양만 폭발적으로 상승시켜 시전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다는 것을 안 얀도 벽에 가로막힌 상황에서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연구했다 홧김에 팔아버린 책이었다.
사실상 평범한 인간이라면 쓸 때마다 한 번 씩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에 샤샤만 머리 끄댕이를 쥐어 뜯어며 심각하게 고민할 뿐이었다.
"지금부터 검을 잡고 수련해도 이미 늦었겠죠? 전신의 구멍이 열렸으니... 아주 활짝 말입니다."
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좁은 실내를 울렸다.
"...샤샤."
이제 얀은 겁에 질린 얼굴로 샤샤를 보았다. 그 인간 이상의 잔인함과 폭발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었다.
똑. 똑.
이미 샤샤의 소유였던 정육점 바닥은 피에 잠겨 있었다. 영혼이 더럽혀진 수백 여자들을 모두 죽여 그 생피로 악마를 소환하는 것을 얀은 방금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 보았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샤샤는 이미 중요한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샤샤, 제발...!! 나를 풀어 줘. 너는 뭔가 이상해...!! 넌 대체..."
"...마왕이 될 겁니다."
"...뭐?"
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무엇이 되겠다고?
"마왕이 될 겁니다!! 이 빌어먹을 세상, 아아악!!! 내 뜻대로 살아보려 했건만 신 새끼는 나를 아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 그럴 바엔 내가 찾아가서 죽여주마!!!"
"허억...!!"
샤샤는 진심이었다. 얀은 그 광기가 너무 무서웠다. 자신도 찢겨 악마의 제물이 될까 무서웠다. 아까부터 저 벽 너머에서 초록색 눈동자를 번득이는 존재는 짐작컨데 샤샤 이상으로 무서운 존재였다. 더군다나 그 악마의 자식 같은 녀석들 역시...
"두려운가요?"
방 내부는 진정 마계였다. 마왕을 꿈꾸는 사내, 희생된 제물의 파편, 어둠 속에 도사리는 악마, 그리고 곧 이어 희생될지도 모르는 얀, 자신. 서성이는 샤샤의 걸음에 피와 조각난 내장이 쓸려 나가며 역한 냄새를 토해내고 있었다.
"으으으..."
"무서워 하지 마세요, 누님. 누님은 아직 이용가치가 충분해요. 때문에 조교를 하면서도 아직은 처녀를 지켜 드리고 있는 겁니다."
국왕의 취향에 따라 매끈하게 면도된 피부에 차가운 손길이 닿자 얀은 움찔거리면서도 야릇한 무엇인가를 느꼈다.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육체는 마치 현실을 도피하듯 쾌감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읍...!!"
샤샤의 혀가 얀의 앙 다문 입술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 잇몸을 정성스레 햩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샤샤는 얀의 두 뺨을 감싸 잡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을 허락했다. 공포에 물든 두 눈동자가 왠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츄르릅.
쪼옥...
음탕한 소리와 함께 오른쪽과 왼쪽 잇몸을 고루 햩은 샤샤의 요사스러운 혀는 천천히 볼을 타고 올라와 얀의 눈동자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질척한 무엇인가가 눈꺼품을 강제로 벌리는 것이 느껴지자 얀은 혐오감에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열리질 않았다.
"왜 그렇게 떨고 계시는 겁니까?"
"...모 ...몰라..."
무서웠다. 오로지 무서웠다.
순수한 공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쪼르륵...
노란 액체가 얀의 매끈한 사타구니를 타고 줄줄 흘러 나와 바닥을 적시자 샤샤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망토 자락이 얀의 오줌에 살짝 젖었던 것이다.
.........................
"오빠..."
샤샤는 얼굴에만 오라가 흐르기 시작했는지 안면이 누렇게 뜨기 시작했다. 빛의 세계의 주민들에게나 허락된 존재라고 여기고 있던 여동생이라니. 난데없는 횡재에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여동생을 보고 불타오르지 않는다면 남자도 아니다."
이런 어느 전설적인 오덕후의 개같은 소리를 굳게 믿고 있는 샤샤였기에 단지 오빠라는 말 한마디로도 자신의 아랫도리가 적지 않게 흥분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평소처럼 냅다 덮칠 수가 없었다. 샤샤는 재빨리 설정에 들어갔다.
"간신히 도망쳤지만 기억을 잃고 주다스피스트에 흘러 들어가 검사로서 두각을 드러내어 기사 작위를 받은 비운의 오빠. 오케이."
"반갑다, 여동생아! 하하... 근데 니 이름이 뭐더라?"
"오빠?"
지오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어떻게 자신을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왕가에 아무리 형제가 많다지만 지오네와 샤샤는 친형제 지간이었기 때문에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아, 내가, 거시기... 뭐더라..."
자기 입으로 어찌 설명하랴. 토티스를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이럴 때는 머리 팽팽 돌아가는 놈이었는데. 그 때 방 문이 열리며 예의 그 마족 남자가 들어 왔다. 왠지 피부가 매끈거리는 것이 느끼하기 짝이 없었다.
"쩝, 잘 먹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설명을 드리는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오네는 벽 저 너머에서 어떤 가공할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제 이름은... 대충 넘어 가시고 샤샤, 그는 지금 과거의 기억이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기억 상실증이죠."
충격적인 사실에 지오네가 샤샤를 바라보자 그녀의 등 뒤에 서서 마족 남자를 향해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욕을 하던 샤샤는 뻘쭘한 표정으로 방긋 웃었다.
"오... 오빠!? 괜찮은 거야!?"
두근.
"이거 왜 이래 갑자기?"
지오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껴안자, 얀의 심장이 갑자기 콩당콩당 탭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으로 겪는 야릇한 감정에 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자신의 품 안에서 흐느끼는 지오네를 껴안았다.
"그래. 어차피 모든 걸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알고만 있으면 되."
이상하게도 아랫도리가 축 쳐지는 기분이었다.
...................................
"재미있는 놈이군."
수하의 보고가 이 남자를 자극했다. 돌핀. 검은 망토로 전신을 감싸고 얼굴마저 검은 천으로 둘러 눈빛도 보이지 않는 이 거구의 남자는 최근 들어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해 보아라."
"그게... 왕녀 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저희 병사들이 그 악마놈에게 달려 들었는데, 저희들의 합공에도 놈의 거무스름한 매직 실드를 벨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차례차례로 놈의 마법에... 머리가 터져 죽고 말았습니다."
"하, 하지만 소집령이 떨어졌습니다!! 만약 하멜 총사령관님의 말씀을 어겼다가는.. 커컥!!"
남자는 갑자기 목을 조여오는 질긴 무언가에 숨이 탁 막히는 것을 느끼고는 급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길다란 것은 오라가 맺힌 검에도 잘려 나가지 않았다.
"그르륵...!!"
목이 더욱더 강하게 조여오자 남자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검을 떨어 뜨렸다. 눈이 뒤집히며 게거품이 뿜어져 나올 때 쯤에야 그 붉은 물체는 남자의 목을 풀어 주었다.
"네놈들의 수련이 형편없구나. 내 혀는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다."
혀. 물건의 정체는 혀였다. 허공에서 뱀과 같이 요동치던 그것은 돌핀이 뒤집어 쓰고 있던 얼굴의 검은 천 사이로 튀어 나온 길이가 5미터는 넘어 보이는 긴 혀였다.
"빨고, 당기고, 조이는 기술은 하늘 아래 내가 최고지. 누가 지상 최강의 혀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 붙어 보자꾸나. 후후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