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37 -
37부
#1-수수께끼의 집단.
콰지직!
난간이 산산히 부숴진다.
본격적으로 큰 기술을 쓰는 모양이었다. 유나는 재빨리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빨리 워프를 해서 탈출해야 하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상대는 누군지는 몰라도 마나를 다루는 인물들.워프가 끝난후에는 잔상으로 목적지가 남는다. 준의 거처가 발각될수 있는 위험소지가
있었다.유나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는 빠른속도로 가방을 뒤져 작은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묶었다. 얼굴이 알려져서 좋을게 없다는 판단에서
였다.
“뭐하고 있어?쥐새끼 잡지 않고.”
한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복면인 둘의 몸이 날아오르듯 유나가 있는
서재쪽으로 뛰어올랐다.유나의 손이 급하게 인을 그렸고, 복면인들의 손에는 긴 검이 한자루씩 뽑혀졌다.
“아이스 티스! (Ice
Teeth)”
급하게 맺은 수인은 2써클의 마법이었다. 얼음송곳들이 갑자기 작은 서재에서부터 수십개가 쏟아져 나오자, 복면인들은
황급히 당황하며 다시금 1층으로 몸을 날렸다.
“마법사?”
서있기만 하던 사내의 눈이 꿈틀했다.유나의 방을 덮치려던
사내들도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칼.어떻게 하지?”
대장격인 듯한 칼이란 사내는 양옆에 서있는 둘과는
달리 살짝 미소마져 머금고 있었다.그의 손에 등에 있는 칼집으로 빠르게 이동하는가 싶더니, 어느덧 그의 손에는 긴 장검이 하나 들려져
있었다.
“어떻게 하긴.의외의 수확이잖아? 우리가 애타게 찾던 마법사를 찾았으니 말이야.”
난간은 어느덧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만큼 갈라져 있었다.유나의 마법이 구멍을 여기저기 뚫은 까닭이었다.
“뭐하고 있나!어서 마법사를 잡아!거리를 벌려서는
안된다.”
칼의 명령에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고쳐쥐었다.하지만 둘은 섯불리 접근하지 못했다.아무런 대책없이 마법사에게
달려드는것은 그야말로 불나방과도 같은 짓이었다.
‘마법을 알고 있잖아.아무리 봐도 보통놈들이 아냐.’
유나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칼이라 불린 사내 양옆에 있는 복면인들은 검을 옆으로 눕히고는 유나쪽을 바라보았다.유나는 손수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린채로
난간에 섰다.서재안에서 계속 있다가는 좁은 공간에 포위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그것은 곧 마법사에게 있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너무 상황이 안좋다. 검을 쓰는 사람이 셋.’
마법사의 최대의 적인 체술가가 그것도 셋이나 눈앞에 있는것은
유나로써는 상당히 안좋은 경합이었다.유나는 천천히 걸어나와 등에 벽을 대고 섰다. 적어도 등뒤는 점해지지 않으리라는 판단하에서
였다.
칼이 무언가 유나를 보며 입을 열려던 찰나, 유나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생각외로 엄청난 스피드이 수인속도를 보며, 칼의
표정은 삽시간에 구겨졌다.
“프로즌 웨이브!”
칼이 표창몇개를 꺼내어 날리려는 그 순간, 유나의 입에서 시동어가
울려퍼졌다.그와 동시에 복면인들이 서있던 앞부분의 땅이 갈라지며 엄청난 물줄기들이 솟아 올랐다.
“피해!”
칼의 몸이
빠른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하지만 다른 복면인둘은 칼만큼의 반사신경을 갖고 있지 않은 모양인지 그대로 유나가 소환한 파도에 몸이 잠겨버렸고
그것들은 곧바로 얼어붙어 버렸다.
“크아아아!”
“으아악!”
순식간의 일이었다.파도는 둘을 덮쳤고, 그것은
마법이름 그대로 얼어붙어 복면인들은 얼음지옥에 갇힌 것마냥 냉동되었다. 품격있어 보이는 고택의 넓다란 1층은 삽시간에 빙판으로
변해버렸다.
채애앵!
칼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얼음송곳을 보고는 황급히 검을 휘둘르며 그것들을
튕겨내었다.
‘보통 계집년이 아니다. J의 말로는 마법이 이렇게 빨리 발동되는것이 아니라 했는데...이년은
도대체...’
칼은 생각을 접고 황급히 유나쪽으로 표창을 집어 던졌다.마법을 실제로 보는것은 처음이지만 그가 갖고 있는 정보는
많았다. 그가 알기론 마법사를 대할때에는 황급하게 거리를 줄여야만 한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근거리전에 약하기 때문이었다.표창을 날린것 역시
그녀의 마법을 잠시 묶기 위함이었다.
‘칫!’
유나는 황급히 몸을 빼며 1층으로 뛰어내렸다.유나쪽으로 날아올랐던 그는
유나가 1층으로 뛰어내려 착지하는 것을 보고는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그와 동시에 그의 발이 강하게 난간을 걷어찼고, 그는 다시금 유나를
향해 돌진했다.
‘빠르다.’
유나는 그제서야 그가 시시껄렁한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물론 자신에게 정확히
표창을 날린 솜씨나 행색은 분명 칭찬할 만 했으나, 유나의 4써클 마법을 피한것은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순발력이자
실력이었다.
채애앵!
칼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유나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양손은 차갑고 딱딱한 얼음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그것으로 자신의 검을 막아낸 것이었다.그의 발이 기이하게 뒤로 빠지며 유나에게 무수히 많은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분명한것은..세라만큼은 아니라는거야.하지만 오너가 없는 이 시점에 이 사람은 뭐란 말인가?’
마법으로
뭉쳐있는 양손으로 빠르게 칼의 공격을 막아내며 유나는 생각에 잠겼다.체술가이긴 하지만 세라에게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
세계의 오너는 그녀가 알기로 딱 세명뿐이라는 것이다.준과 차우,그리고 김노인이외에 다른 오너가 없다는 것은 곧 다른 페어리들 역시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하지만 이들의 무위는 일반인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뭐 이런년이 다있어...’
칼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동료들이 싸늘한 얼음덩어리로 바뀌어 일대일 상황이 되어버린 지금은,무조건 그녀와 거리를 좁혀야했다.하지만 문제는 유나의 체술이
무시할만한것이 못된다는 점이었다.
‘J그녀석이 분명 마법사의 체술은 형편없다고 했거늘..이년은 뭐야?’
칼은 독하게
마음을 먹고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유나의 손에 맺혀있던 얼음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지만, 그녀는 다시금 마법을 강화하여 양손에 기운을
맺었다.
‘말도 안돼!’
유나는 그렇게 소리지르고 싶었다.눈앞에 있는 복면인의 검에서 짙푸른 검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유나가 알기로도 검기를 다루는 것은 그야말로 고도의 검술이었다.
‘치잇!’
유나는 신속하게 몸을
날렸다.어떻게 해서든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그냥 검이라면 양팔에 맺힌 얼음으로 대항할수 있겠지만, 검기라면 그것을 뚫고 자신의 팔까지 잘라버릴
정도의 위력이기 때문이었다.
‘다행이야.걱정했던 것보다 높은 수준이 아니다.’
칼이 자신을 ㅤㅉㅗㅈ아오는 것으로 봐서는
검기를 날리는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유나는 판단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도망다닐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지?’
윌리엄스의 대저택에서는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유나는 달리면서 빠른속도로 수인을 맺어 칼을
향해 날렸지만 그때마다 그는 검기가 맺힌 검을 휘둘러 자신을 방어했다.아무리 큰 대 저택이라 한들 도망다니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저택으로 나가는 것 역시 다른 사람들이 다칠 위험이 컸다.
‘그 방법뿐이다.’
결심을 굳힌 유나의 몸이 급격히
정지했다.칼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빠른속도로 유나와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칼의 두 눈이 번쩍 하고 빛이 난다.그의 몸이 빠르게
유나와의 거리를 좁혔고, 그의 검이 망설임없이 유나의 몸안으로 푸욱 들어가 버렸다.
파식!
그러나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수 없었다.자신이 관통시킨 유나의 몸이 얼음조각으로 변하며 산산히 부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그는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재빨리 얼음덩어리에서
검을 뽑았다.유나가 자랑하는 얼음분신이 발동된 것을 그가 알리 없었다.
“트리플 프로즌 스피어!”
어느덧 유나는 칼의
뒤를 점령한 후였고,그녀의 입에서 주문의 영창이 울려퍼졌다.그와 동시에 그의 앞으로 도합 세개의 얼음의 창들이 마치 폭격기처럼 몰려들었다.
마유미의 트리플 플레임 스피어에 대항하기 위해, 유나가 프로즌 스피어를 개량하여 만든 회심의
마법이었다.
“크윽!”
칼의 몸으로 기다란 얼음의 창이 관통했다.처음 두개는 가까스로 검을 휘둘러 쳐내었지만,마지막
한방은 그의 방어권을 가볍게 뚫고 그의 몸을 관통해 버린다.
유나는 양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프로즌 스피어의 특성상 피술법체에 맞는
순간 그대로 얼어붙기 때문이었다.유나가 손을 맞잡은 순간 얼음의 창은 칼의 몸을 얼리지 않은 채로 그의 몸에서 증식을
멈췄다.
“대답해.너 정체가 뭐야?”
“으으윽...”
유나의 물음에 칼은 대답대신 붉은 선혈을 통해
내었다.유나는 손을 맞잡은 채로 칼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말해!”
“큭..어차피 죽을텐데 그걸 말할거
같은가..”
“살려줄수도 있어.”
“어설픈 회유 하지마라 마법사.이미..복부가 관통당했거늘..큭..”
그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그가 말을 이을때마다 바닥은 그의 피가 점점더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블랙맘마는..어떤
집단이지?”
“어서 죽여라...”
그는 신음하듯 유나를 보며 중얼거렸다.유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상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왜...주저되나?큭..하긴 일반인을 상대로 너희들이 살인을 한적이 없을..테니.”
유나의
인상이 차갑게 굳어졌다.상대는 유나의 생각한것보다 더 많이 자신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덧붙여 그의 눈에는 유나에게 조금이라도 정보를 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마져 보였다.
“크아아악!”
칼의 비명이 일순간 울려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히 사그라 들기
시작했다.유나가 맞잡은 손을 놓자마자 마나의 반응정지가 해제되며 급속히 냉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유나의 프로즌 스피어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칼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흡사 방출한 댐같이 솟구치던 그의 붉은 선혈마져도 루비빛 얼음덩어리가 되어 굳어가고
있었다.
유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거대한 파도가 그대로 큰 얼음동상이 되어 홀을 장식하고 있었고,
그안에는 복면인 둘이 처음의 경악한 표정 그대로 얼어붙은채 갇혀 있었다.유나는 살짝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가까스로 막아내긴 했지만 칼의
공격에 팔 여기저기가 긁혀 있었다.
유나는 살짝 심각해진 얼굴로 다시금 윌리엄스의 집 1층을 바라보았다.전투로 인해 군데군데 부숴진
부분들이 눈에 띄였다.
‘일단은...돌아가서 생각해 봐야겠어.리미에게 이야기 해줘야
겠다’
#2-리미양의 자존심
리미는 신중하게 현장의 상황을 응시했다.잘게
잘린 건물들.그것은 마치 레이져로 정교하게 깎은 기계부품을 보는거 같았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아직 이 세계에서 개발된
무기중 이런 최첨단이 있을리가 없어.설사 있다 한들 이런 건물에 테러로 쓰일 이유자체가 없어.’
리미는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다.틀림없었다. 세라와 동급..혹은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자가 검기로 한것이 분명했다.
“저기요..”
리미는 살짝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보았다.호기심 어린 동그란 두 눈망울이 리미를 향해 있었다.
“말씀하시죠.”
리미는 연금술을
해서 흔적을 찾으려던 손을 멈추고는 황급히 일어서며 연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리미가 귀엽다는듯 요리조리 훑어보고
있었다.
‘이여자...설마 지금에서야 나를 인지한건 아니겠지?’
리미의 예상은 적중했는지, 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 준씨 조수인가요?”
“조수요?”
리미의 되물음에 연희가 호기심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리미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준을 살짝 바라보고는 대답했다.
“네번째 부인이라고
해두죠.”
“네?”
“네번째로 만났으니까요.”
리미의 알수없는 말에 연희는 의문가득한 얼굴로 리미와 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아무리 기다려도 리미의 부연설명이 없자 연희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쪼르르 리미를 따랐다.
“그..그럼 준씨의
부인은 몇인데요?”
“음...한 여섯명 정도 되는거 같군요.”
“그..그게 가능해요?우리나라는 일부다처제가
아닌데..”
“글쎄요.가능하던데요.”
연희는 그저 입을 쩌억 벌리고 리미를 바라볼 뿐이었다.머리를 질끈 묶어올린
소녀같은 모습이 귀여웠지만 리미는 연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음..그럼 조수는 아닌거네요?”
전혀 예상밖의 대답이
연희로 부터 나오자,리미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갑자기 그게 무슨..?”
“전 준씨의 조수가 되고 싶어서
왔거든요.아무래도 탐정을 하려면 저같은 브레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와이프 말고.”
리미의 눈가가 꿈틀했다.애초에 준을 향한
사모의 눈빛을 읽은 리미로써는 그녀를 떼어놓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 것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리미의 자격여부를 놓고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었다.
“흐음.재미있군요.브레인이 여기 없다는 가정하에 말씀하신거 같은데.”
“호호!제 말이
그렇게 들렸나요?뭐..그렇게 받아들이시면 할수 없구요.”
“호오..그렇다면 연희씨께서 이 사건현장만 보고 프로파일링 식의 수사로
증거를 잡으실수도 있겠군요?그렇게 브레인이라 자부할수 있다면 말이죠.”
“무리는 아니죠.제가 독파한 추리서적만 몇천부가
넘어요.”
준은 왠지 시끌시끌한 광경에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한쪽에서 고운 미녀둘의 눈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갈색빛이
감도는 머리를 아름답게 뒤로 넘기는 미녀 한명과, 그녀보다 약간 키가 큰 귀염상의 여인 하나가 서로 노려보고 있는 모습은 준이 보기에도 이해가
안되는 광경이었다.
‘쟤들 뭐하는거야..’
준은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경험상 저런 구도가 벌어졌을때는 그냥
개입하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하는것이 낫다는 것이 그의 삶의 지론이었다.
“자.이 건물의 잔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리미의 질문에 연희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현장을 바라보았다.아까의 어리바리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표정이었다.
“우선, 일반적인 폭탄을 쓰진 않았을 겁니다.이렇게 잘게 단면을 매끄럽게 자르는 폭탄이란 존재하지
않겠죠.”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생각이기도 하구요.”
리미의 덧붙임에 연희의 두 눈은 자존심이 상한듯 활활
불타올랐다.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리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흠!흠! 범인은 테러의 목적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어필하기 위해 이런짓을 한것 같군요.”
“무슨뜻이죠 연희씨?”
“이 건물은 어느 부호의 소유건물입니다.약
한달전부터 입주는 되지 않았었죠.리미씨도 그정도는 아시겠죠?”
리미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그녀에게 한방먹였다고 생각했는지 연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인명살상을 위해서라면 왜 이런 건물을 택했을까요? 누군가에게 무엇을 어필하기 위한 범행입니다.예를 들면
자기의 능력과시 같은거죠.”
“그럼 누구의 짓인지 예상되는 인물은 있나요?”
리미의 말에 연희는 무언가 뜨끔한듯 괜시리
다른곳을 응시했다.리미는 그녀답지 않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연희에게 말했다.
“흐음..앞서서 말씀하신 추리는 썩 괜찮았지만 뒷심이
부족하군요.”
“무..무슨뜻이죠?”
“혹시 J라는 방화범을 아시는지요?”
“모를리가요.제가 이래뵈도
탐정동호회 출신인데요.한때 날렸던 방화범 이잖아요.지금은 잠잠하지만요.”
“그래요.그가 마지막에 예고했던 방화지점이 바로 이
건물이었죠.거기까지는 모르시나봐요?”
“흐..흠!아..알고 있었어요.”
“오..알고 계셨다면 왜 그와 연관지어 추리하지
않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연희씨.”
연희는 괜시리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고 리미는 그녀답지 않게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리미가 그녀를 더욱더 몰아붙이려는 바로 그때, 저 편에 있던 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리미.어서
이리로!”
#3-오랜만에 모인 일행들.
“흐음...”
김노인은 평소와 다른 좌중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아주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준의 모습부터가 그랬다.
‘저놈이 왜 저렇게 열심히
하지?’
건물이 깍두기처럼 썰린 광경을 보고 준이 충격을 받아 틈틈히 수련에 열중하는 것이겠지만, 김노인이 그런 자세한 내막을
알리가 없었다.
‘그리고 왜 쟤들은 맨날 우르르 달고 오지?’
김노인의 눈이 게슴츠레 해졌다.한쪽에서는 노아와 수아가
마유미의 야무진 감시아래 뛰어놀고 있었다.말이 좋아 뛰어노는거지, 다 큰 처녀 둘이 팔랑팔랑한 원피스를 입고, 그것도 숲속을 새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은 그녀들이 페어리라는 것을 감안해도 사뭇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리고 쟤들은 또 왜 끼리끼리 모여서 뭘
속닥거리는거지?’
김노인은 체면상 끼지도 못하고 멀뚱히 바라봐야만 했다.유나와 리미는 둘만 모여 무언가 쑥덕쑥덕 논의하기 바빴고,
세라와 초희역시 마주보고 서있던 것이다.
“야 유희.”
“네.”
“쟤들 뭐하는
걸까?”
“뭐가요?”
“뭔가...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는것 같은 이 느낌이 뭐지?”
“....그렇게 호기심
많은 분이실줄은 몰랐네요.”
“나이가 들어 그런가봐.”
“.....”
그런 그들의 대화는 아는지 모르는지,
한쪽에서는 리미와 유나가 서로 속닥거리며 정보를 공유하기 바빴다.
“그게 사실이야?”
“그렇다니까.분명히
봤어.윌리엄스의 집에서..아니, 본정도가 아니야.나와 싸웠다니까.”
“그럼 그들을 없엔거야?”
“쉿.주인님이 들으면
혼나.”
“에휴..너 어쩌려고..”
"정당방위 였다니깐!어쩔수 없었다구."
리미는 머리가 아프다는듯 이마를
감싸쥐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유나에게 말했다.
“그러면..그들이 거의 오너에 필적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거지?”
“응. 뭐..대단하지는 않지만 이 세계의 사람이라곤 믿을수가 없었어. 검기를 검에 입히는 경지에 이른자도
있었으니까.”
리미의 표정은 심각해졌다.늘 낙천적이고 자신감에 넘치는 유나의 표정이 심각할 정도면 그냥 웃어 넘길정도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유나는 윌리엄스의 집에서 가져온 책을 리미에게 넘기며, 복면 3인방과 결전을 벌였던 일들을 빠짐없이 리미에게 설명해
주었다.
“블랙맘마라고?”
“응..짚히는데라도 있어?”
리미는 며칠전 준, 연희와 사건현장을 보러 갔을때를
떠올렸다.준이 급하게 부르는 바람에 연희와의 신경전을 종료하고 서둘러 달려간 그녀. 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건물 파편중 하나를
내밀었고, 그곳에는 정교하게 칼로 새긴듯한 자그마한 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단단한 콘크리트에 마치 그림을 그리듯 무언가로 세겨넣은 뱀
문양의 조각. 물론 연희가 있었기에 서둘러 현장을 뜨긴 했었지만, 리미는 이제야 무언가 드러나는 듯했다.
“정확히는 블랙맘마가
아니고 블랙맘바일거야.”
“암튼..그게 뭔데?”
“현존하는 이 세계의 독사중 가장 빠르고 강한독을 가졌다는 뱀이야.
물론 사전적의미가 그렇다는 거고... 그리고 나와 주인님이 사건현장에 갔을때에, 뱀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돌판이
있었지.”
“그럼..내가싸운 인물하고 그 건물을 덮친 놈들하고 동일집단 이라는 거야?그 블랙맘바라는 것들이?”
“일단
J가 소속되어 있었다고 했잖아. 그 건물역시 J가 태우려고 했다가 크룬전쟁이 일어나면서 살아남았던 건물이야.뭔가 이상해.마법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고, 검기를 씌울정도의 능력자들이 일반인중에 존재한다면 결코 허투루 볼 만만한 집단이 아니라는 거지.”
“주인님께는 이야기 하지
마.”
“어쩔 생각이야?”
유나는 리미의 물음에 분한듯 입술을 깨물었다.준에게 개인행동 때문에 혼나고 싶지 않았다.
준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그녀의 사정은 따로 있었다.
“세라는 주인님하고 결혼을 하는데..나는 단독행동으로 혼이나라고?그럴순
없어.나 혼자서라도 조사해서 알아내고 말거야.그때 말할거야 주인님한테.”
리미는 말없이 유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성격을 리미가
모를리 없었다.승부욕이 강한 그녀. 세라 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게다가 준이 걸린 일이라면 더더욱 지기 싫어하는 그녀에게
리미는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좋아.대신...단독행동은 하지마.하더라도 나에게 미리 말이라도
해줘.”
“알았어.”
“그리고 지금은 중요한 시기야.전쟁이 끝난게 아닐수도 있어. 노아도, 수아도 각각 그녀들에게 맞는
기술을 개발하고 훈련 프로그램을 짜지 않으면...”
리미는 뭐라고 덧붙이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명상을 마친 세라가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녀의 뒤에는 왠일인지 초희가 뒤따르고 있었다.
“의외로군. 너 역시 명상을 통해 수련을
한다니.”
“아무래도.가장 큰 것은 마음속의 나 자신과 끝없이 싸우는 것이 아닐까 해서요.”
세라의 대답에 초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는 유일하게 초희가 인정한 체술의 정점에 있는 자. 그녀의 수준이라면 검을 들고 휘두르는 일련의 행위들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초희씨.”
가면으로 입부분이 가려진 초희의 두 눈이 세라를 향했다. 세라는 살짝 감았던 눈을 떴다.햇살에
반짝이는 그녀의 맑은 눈망울에 초희의 얼굴이 투영되었다.
“계속 이곳에서 머물 건가요?”
“무슨 뜻이지?프로센으로의
귀환을 말하는 건가?”
“네.”
세라의 대답에 리미,유나는 물론 마유미까지도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수아와 노아도
더이상 장난을 치지 않고는 동그래진 눈으로 우르르 마유미의 뒤에서서 세라를 응시했다.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로군.”
“아뇨.그런 것이 아닙니다.지킬 사람,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라도 좋습니다.하지만...”
초희의
눈망울이 살짝 빛났다.
“존재 자체의...불균형 때문이로군.”
“그렇습니다.”
“네 말도 맞아.너희 주인은
점점 나이를 먹고, 세월이라는 굴레에 점점 예속되겠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겠지.여기서는 오직 오너의 마나속에서 숨을
쉬니까.”
“그게..걱정이군요.혹여나 지금의 행복이..그것때문에 달아날까봐서요.”
“너 다운
고민이네.”
“초희씨는 어떤가요?”
“나? 난 이미 돌아가길 포기했지.”
“그냥 순응하시는
건가요?”
세라의 침착한 질문에 초희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멀리서 여전히 수상하다는 눈으로 여기저기를 응시하는 김노인과, 그런
그의 뒤에서 서 있는 유희의 모습이 보였다.
“유희는 9써클의 마스터다.”
초희의 말에 법사형 페어리인 유나와 마유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든 계열을 다루는 9써클의 마법사. 그것은 그냥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시시껄렁한 개념이 아니었다. 프로센에 단 한명,
그리고 프로센의 인접국가들을 모두 합쳐도 전 대륙에 둘뿐인 것이 9써클의 마법사였다. 오너의 마나만 있다면야 한없이 성장할수 있는 페어리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대단치 않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리고 9써클의 마스터에겐...세월의 흐름을 잡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초희의 말에 좌중은 모두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다만 노아만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마유미에게
‘9써클이 뭐야?’라고 질문하고 있었을 뿐.
“유희씨가...김사부님이 나이를 먹는것 자체를 마법으로 잡아두고 있다는
거군요.”
“말하자면 그래. 우리들의 오너는 알고 있지 않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저희 모두가 프로센으로 돌아가게
되면 저희 오너 역시 저희들만 온전하다면 여기 있는것보다도 오래 행복을 누릴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라의 발언에
리미는 눈을 크게 떴다.평소에 그런 발언을 절대로 하지 않는 세라이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명실상부한 라이벌 관계인 초희에게는 쉽게 털어놓을수
있는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한 배를 타고 있는 리미나 유나등에게는 조금 오래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로군.세라 너는 프로센에서의 기억을 갖고 있는 유일한 2세대 페어리가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 잔인하기 그지
없는 징벌과정과 훈련과정..그리고 강제적인 마나의 최적화 과정역시 기억하고 있겠군.”
세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초희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세라를 바라보았다.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나머지 페어리들은 쉽게 대화에 나서지 않으며 둘의 말을 경청할
뿐이었다.
“그런걸 다 기억하고도...프로센이라는 나라에 대해 악감정이 없는가?”
세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물론
아무것도 없다고는 할수 없었다.어찌보면 그녀는 선택권이 없었을지도 몰랐겠지만...그녀가 당한 혹독한 훈련과 마법적 실험들은 누구라도 원한을
품을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없다곤 할수 없겠죠.하지만...그것이 아니라면 전 지금의 주인님을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초희는 말없이 세라를 바라보았다.워낙 표정변화가 없는 그녀지만, 무언가 아득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눈빛이었다.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수 있는 흑색 무복이 바람에 펄럭인다.
“너라면 그렇게 이야기 할지도 모르지만..난
달라.”
“무엇이 말인가요?”
초희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가 싶더니, 살며시 눈을 떴다.언제봐도 더블워커
특유의 신비로운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잘 모르겠다면...내 이야기를 들려주지...악몽과도
같던 과거를
말야.”
**********************************************************************************************
글이
잘 안써지네요.휴휴;
38부에서는 초희의 과거편부터 시작됩니다.
즐거운 한주 되세요
#1-수수께끼의 집단.
콰지직!
난간이 산산히 부숴진다.
본격적으로 큰 기술을 쓰는 모양이었다. 유나는 재빨리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빨리 워프를 해서 탈출해야 하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상대는 누군지는 몰라도 마나를 다루는 인물들.워프가 끝난후에는 잔상으로 목적지가 남는다. 준의 거처가 발각될수 있는 위험소지가
있었다.유나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는 빠른속도로 가방을 뒤져 작은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묶었다. 얼굴이 알려져서 좋을게 없다는 판단에서
였다.
“뭐하고 있어?쥐새끼 잡지 않고.”
한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복면인 둘의 몸이 날아오르듯 유나가 있는
서재쪽으로 뛰어올랐다.유나의 손이 급하게 인을 그렸고, 복면인들의 손에는 긴 검이 한자루씩 뽑혀졌다.
“아이스 티스! (Ice
Teeth)”
급하게 맺은 수인은 2써클의 마법이었다. 얼음송곳들이 갑자기 작은 서재에서부터 수십개가 쏟아져 나오자, 복면인들은
황급히 당황하며 다시금 1층으로 몸을 날렸다.
“마법사?”
서있기만 하던 사내의 눈이 꿈틀했다.유나의 방을 덮치려던
사내들도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칼.어떻게 하지?”
대장격인 듯한 칼이란 사내는 양옆에 서있는 둘과는
달리 살짝 미소마져 머금고 있었다.그의 손에 등에 있는 칼집으로 빠르게 이동하는가 싶더니, 어느덧 그의 손에는 긴 장검이 하나 들려져
있었다.
“어떻게 하긴.의외의 수확이잖아? 우리가 애타게 찾던 마법사를 찾았으니 말이야.”
난간은 어느덧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만큼 갈라져 있었다.유나의 마법이 구멍을 여기저기 뚫은 까닭이었다.
“뭐하고 있나!어서 마법사를 잡아!거리를 벌려서는
안된다.”
칼의 명령에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고쳐쥐었다.하지만 둘은 섯불리 접근하지 못했다.아무런 대책없이 마법사에게
달려드는것은 그야말로 불나방과도 같은 짓이었다.
‘마법을 알고 있잖아.아무리 봐도 보통놈들이 아냐.’
유나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칼이라 불린 사내 양옆에 있는 복면인들은 검을 옆으로 눕히고는 유나쪽을 바라보았다.유나는 손수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린채로
난간에 섰다.서재안에서 계속 있다가는 좁은 공간에 포위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그것은 곧 마법사에게 있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너무 상황이 안좋다. 검을 쓰는 사람이 셋.’
마법사의 최대의 적인 체술가가 그것도 셋이나 눈앞에 있는것은
유나로써는 상당히 안좋은 경합이었다.유나는 천천히 걸어나와 등에 벽을 대고 섰다. 적어도 등뒤는 점해지지 않으리라는 판단하에서
였다.
칼이 무언가 유나를 보며 입을 열려던 찰나, 유나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생각외로 엄청난 스피드이 수인속도를 보며, 칼의
표정은 삽시간에 구겨졌다.
“프로즌 웨이브!”
칼이 표창몇개를 꺼내어 날리려는 그 순간, 유나의 입에서 시동어가
울려퍼졌다.그와 동시에 복면인들이 서있던 앞부분의 땅이 갈라지며 엄청난 물줄기들이 솟아 올랐다.
“피해!”
칼의 몸이
빠른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하지만 다른 복면인둘은 칼만큼의 반사신경을 갖고 있지 않은 모양인지 그대로 유나가 소환한 파도에 몸이 잠겨버렸고
그것들은 곧바로 얼어붙어 버렸다.
“크아아아!”
“으아악!”
순식간의 일이었다.파도는 둘을 덮쳤고, 그것은
마법이름 그대로 얼어붙어 복면인들은 얼음지옥에 갇힌 것마냥 냉동되었다. 품격있어 보이는 고택의 넓다란 1층은 삽시간에 빙판으로
변해버렸다.
채애앵!
칼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얼음송곳을 보고는 황급히 검을 휘둘르며 그것들을
튕겨내었다.
‘보통 계집년이 아니다. J의 말로는 마법이 이렇게 빨리 발동되는것이 아니라 했는데...이년은
도대체...’
칼은 생각을 접고 황급히 유나쪽으로 표창을 집어 던졌다.마법을 실제로 보는것은 처음이지만 그가 갖고 있는 정보는
많았다. 그가 알기론 마법사를 대할때에는 황급하게 거리를 줄여야만 한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근거리전에 약하기 때문이었다.표창을 날린것 역시
그녀의 마법을 잠시 묶기 위함이었다.
‘칫!’
유나는 황급히 몸을 빼며 1층으로 뛰어내렸다.유나쪽으로 날아올랐던 그는
유나가 1층으로 뛰어내려 착지하는 것을 보고는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그와 동시에 그의 발이 강하게 난간을 걷어찼고, 그는 다시금 유나를
향해 돌진했다.
‘빠르다.’
유나는 그제서야 그가 시시껄렁한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물론 자신에게 정확히
표창을 날린 솜씨나 행색은 분명 칭찬할 만 했으나, 유나의 4써클 마법을 피한것은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순발력이자
실력이었다.
채애앵!
칼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유나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양손은 차갑고 딱딱한 얼음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그것으로 자신의 검을 막아낸 것이었다.그의 발이 기이하게 뒤로 빠지며 유나에게 무수히 많은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분명한것은..세라만큼은 아니라는거야.하지만 오너가 없는 이 시점에 이 사람은 뭐란 말인가?’
마법으로
뭉쳐있는 양손으로 빠르게 칼의 공격을 막아내며 유나는 생각에 잠겼다.체술가이긴 하지만 세라에게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
세계의 오너는 그녀가 알기로 딱 세명뿐이라는 것이다.준과 차우,그리고 김노인이외에 다른 오너가 없다는 것은 곧 다른 페어리들 역시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하지만 이들의 무위는 일반인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뭐 이런년이 다있어...’
칼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동료들이 싸늘한 얼음덩어리로 바뀌어 일대일 상황이 되어버린 지금은,무조건 그녀와 거리를 좁혀야했다.하지만 문제는 유나의 체술이
무시할만한것이 못된다는 점이었다.
‘J그녀석이 분명 마법사의 체술은 형편없다고 했거늘..이년은 뭐야?’
칼은 독하게
마음을 먹고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유나의 손에 맺혀있던 얼음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지만, 그녀는 다시금 마법을 강화하여 양손에 기운을
맺었다.
‘말도 안돼!’
유나는 그렇게 소리지르고 싶었다.눈앞에 있는 복면인의 검에서 짙푸른 검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유나가 알기로도 검기를 다루는 것은 그야말로 고도의 검술이었다.
‘치잇!’
유나는 신속하게 몸을
날렸다.어떻게 해서든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그냥 검이라면 양팔에 맺힌 얼음으로 대항할수 있겠지만, 검기라면 그것을 뚫고 자신의 팔까지 잘라버릴
정도의 위력이기 때문이었다.
‘다행이야.걱정했던 것보다 높은 수준이 아니다.’
칼이 자신을 ㅤㅉㅗㅈ아오는 것으로 봐서는
검기를 날리는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유나는 판단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도망다닐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지?’
윌리엄스의 대저택에서는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유나는 달리면서 빠른속도로 수인을 맺어 칼을
향해 날렸지만 그때마다 그는 검기가 맺힌 검을 휘둘러 자신을 방어했다.아무리 큰 대 저택이라 한들 도망다니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저택으로 나가는 것 역시 다른 사람들이 다칠 위험이 컸다.
‘그 방법뿐이다.’
결심을 굳힌 유나의 몸이 급격히
정지했다.칼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빠른속도로 유나와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칼의 두 눈이 번쩍 하고 빛이 난다.그의 몸이 빠르게
유나와의 거리를 좁혔고, 그의 검이 망설임없이 유나의 몸안으로 푸욱 들어가 버렸다.
파식!
그러나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수 없었다.자신이 관통시킨 유나의 몸이 얼음조각으로 변하며 산산히 부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그는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재빨리 얼음덩어리에서
검을 뽑았다.유나가 자랑하는 얼음분신이 발동된 것을 그가 알리 없었다.
“트리플 프로즌 스피어!”
어느덧 유나는 칼의
뒤를 점령한 후였고,그녀의 입에서 주문의 영창이 울려퍼졌다.그와 동시에 그의 앞으로 도합 세개의 얼음의 창들이 마치 폭격기처럼 몰려들었다.
마유미의 트리플 플레임 스피어에 대항하기 위해, 유나가 프로즌 스피어를 개량하여 만든 회심의
마법이었다.
“크윽!”
칼의 몸으로 기다란 얼음의 창이 관통했다.처음 두개는 가까스로 검을 휘둘러 쳐내었지만,마지막
한방은 그의 방어권을 가볍게 뚫고 그의 몸을 관통해 버린다.
유나는 양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프로즌 스피어의 특성상 피술법체에 맞는
순간 그대로 얼어붙기 때문이었다.유나가 손을 맞잡은 순간 얼음의 창은 칼의 몸을 얼리지 않은 채로 그의 몸에서 증식을
멈췄다.
“대답해.너 정체가 뭐야?”
“으으윽...”
유나의 물음에 칼은 대답대신 붉은 선혈을 통해
내었다.유나는 손을 맞잡은 채로 칼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말해!”
“큭..어차피 죽을텐데 그걸 말할거
같은가..”
“살려줄수도 있어.”
“어설픈 회유 하지마라 마법사.이미..복부가 관통당했거늘..큭..”
그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그가 말을 이을때마다 바닥은 그의 피가 점점더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블랙맘마는..어떤
집단이지?”
“어서 죽여라...”
그는 신음하듯 유나를 보며 중얼거렸다.유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상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왜...주저되나?큭..하긴 일반인을 상대로 너희들이 살인을 한적이 없을..테니.”
유나의
인상이 차갑게 굳어졌다.상대는 유나의 생각한것보다 더 많이 자신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덧붙여 그의 눈에는 유나에게 조금이라도 정보를 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마져 보였다.
“크아아악!”
칼의 비명이 일순간 울려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히 사그라 들기
시작했다.유나가 맞잡은 손을 놓자마자 마나의 반응정지가 해제되며 급속히 냉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유나의 프로즌 스피어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칼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흡사 방출한 댐같이 솟구치던 그의 붉은 선혈마져도 루비빛 얼음덩어리가 되어 굳어가고
있었다.
유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거대한 파도가 그대로 큰 얼음동상이 되어 홀을 장식하고 있었고,
그안에는 복면인 둘이 처음의 경악한 표정 그대로 얼어붙은채 갇혀 있었다.유나는 살짝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가까스로 막아내긴 했지만 칼의
공격에 팔 여기저기가 긁혀 있었다.
유나는 살짝 심각해진 얼굴로 다시금 윌리엄스의 집 1층을 바라보았다.전투로 인해 군데군데 부숴진
부분들이 눈에 띄였다.
‘일단은...돌아가서 생각해 봐야겠어.리미에게 이야기 해줘야
겠다’
#2-리미양의 자존심
리미는 신중하게 현장의 상황을 응시했다.잘게
잘린 건물들.그것은 마치 레이져로 정교하게 깎은 기계부품을 보는거 같았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아직 이 세계에서 개발된
무기중 이런 최첨단이 있을리가 없어.설사 있다 한들 이런 건물에 테러로 쓰일 이유자체가 없어.’
리미는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다.틀림없었다. 세라와 동급..혹은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자가 검기로 한것이 분명했다.
“저기요..”
리미는 살짝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보았다.호기심 어린 동그란 두 눈망울이 리미를 향해 있었다.
“말씀하시죠.”
리미는 연금술을
해서 흔적을 찾으려던 손을 멈추고는 황급히 일어서며 연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리미가 귀엽다는듯 요리조리 훑어보고
있었다.
‘이여자...설마 지금에서야 나를 인지한건 아니겠지?’
리미의 예상은 적중했는지, 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 준씨 조수인가요?”
“조수요?”
리미의 되물음에 연희가 호기심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리미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준을 살짝 바라보고는 대답했다.
“네번째 부인이라고
해두죠.”
“네?”
“네번째로 만났으니까요.”
리미의 알수없는 말에 연희는 의문가득한 얼굴로 리미와 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아무리 기다려도 리미의 부연설명이 없자 연희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쪼르르 리미를 따랐다.
“그..그럼 준씨의
부인은 몇인데요?”
“음...한 여섯명 정도 되는거 같군요.”
“그..그게 가능해요?우리나라는 일부다처제가
아닌데..”
“글쎄요.가능하던데요.”
연희는 그저 입을 쩌억 벌리고 리미를 바라볼 뿐이었다.머리를 질끈 묶어올린
소녀같은 모습이 귀여웠지만 리미는 연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음..그럼 조수는 아닌거네요?”
전혀 예상밖의 대답이
연희로 부터 나오자,리미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갑자기 그게 무슨..?”
“전 준씨의 조수가 되고 싶어서
왔거든요.아무래도 탐정을 하려면 저같은 브레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와이프 말고.”
리미의 눈가가 꿈틀했다.애초에 준을 향한
사모의 눈빛을 읽은 리미로써는 그녀를 떼어놓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 것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리미의 자격여부를 놓고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었다.
“흐음.재미있군요.브레인이 여기 없다는 가정하에 말씀하신거 같은데.”
“호호!제 말이
그렇게 들렸나요?뭐..그렇게 받아들이시면 할수 없구요.”
“호오..그렇다면 연희씨께서 이 사건현장만 보고 프로파일링 식의 수사로
증거를 잡으실수도 있겠군요?그렇게 브레인이라 자부할수 있다면 말이죠.”
“무리는 아니죠.제가 독파한 추리서적만 몇천부가
넘어요.”
준은 왠지 시끌시끌한 광경에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한쪽에서 고운 미녀둘의 눈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갈색빛이
감도는 머리를 아름답게 뒤로 넘기는 미녀 한명과, 그녀보다 약간 키가 큰 귀염상의 여인 하나가 서로 노려보고 있는 모습은 준이 보기에도 이해가
안되는 광경이었다.
‘쟤들 뭐하는거야..’
준은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경험상 저런 구도가 벌어졌을때는 그냥
개입하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하는것이 낫다는 것이 그의 삶의 지론이었다.
“자.이 건물의 잔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리미의 질문에 연희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현장을 바라보았다.아까의 어리바리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표정이었다.
“우선, 일반적인 폭탄을 쓰진 않았을 겁니다.이렇게 잘게 단면을 매끄럽게 자르는 폭탄이란 존재하지
않겠죠.”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생각이기도 하구요.”
리미의 덧붙임에 연희의 두 눈은 자존심이 상한듯 활활
불타올랐다.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리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흠!흠! 범인은 테러의 목적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어필하기 위해 이런짓을 한것 같군요.”
“무슨뜻이죠 연희씨?”
“이 건물은 어느 부호의 소유건물입니다.약
한달전부터 입주는 되지 않았었죠.리미씨도 그정도는 아시겠죠?”
리미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그녀에게 한방먹였다고 생각했는지 연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인명살상을 위해서라면 왜 이런 건물을 택했을까요? 누군가에게 무엇을 어필하기 위한 범행입니다.예를 들면
자기의 능력과시 같은거죠.”
“그럼 누구의 짓인지 예상되는 인물은 있나요?”
리미의 말에 연희는 무언가 뜨끔한듯 괜시리
다른곳을 응시했다.리미는 그녀답지 않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연희에게 말했다.
“흐음..앞서서 말씀하신 추리는 썩 괜찮았지만 뒷심이
부족하군요.”
“무..무슨뜻이죠?”
“혹시 J라는 방화범을 아시는지요?”
“모를리가요.제가 이래뵈도
탐정동호회 출신인데요.한때 날렸던 방화범 이잖아요.지금은 잠잠하지만요.”
“그래요.그가 마지막에 예고했던 방화지점이 바로 이
건물이었죠.거기까지는 모르시나봐요?”
“흐..흠!아..알고 있었어요.”
“오..알고 계셨다면 왜 그와 연관지어 추리하지
않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연희씨.”
연희는 괜시리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고 리미는 그녀답지 않게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리미가 그녀를 더욱더 몰아붙이려는 바로 그때, 저 편에 있던 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리미.어서
이리로!”
#3-오랜만에 모인 일행들.
“흐음...”
김노인은 평소와 다른 좌중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아주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준의 모습부터가 그랬다.
‘저놈이 왜 저렇게 열심히
하지?’
건물이 깍두기처럼 썰린 광경을 보고 준이 충격을 받아 틈틈히 수련에 열중하는 것이겠지만, 김노인이 그런 자세한 내막을
알리가 없었다.
‘그리고 왜 쟤들은 맨날 우르르 달고 오지?’
김노인의 눈이 게슴츠레 해졌다.한쪽에서는 노아와 수아가
마유미의 야무진 감시아래 뛰어놀고 있었다.말이 좋아 뛰어노는거지, 다 큰 처녀 둘이 팔랑팔랑한 원피스를 입고, 그것도 숲속을 새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은 그녀들이 페어리라는 것을 감안해도 사뭇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리고 쟤들은 또 왜 끼리끼리 모여서 뭘
속닥거리는거지?’
김노인은 체면상 끼지도 못하고 멀뚱히 바라봐야만 했다.유나와 리미는 둘만 모여 무언가 쑥덕쑥덕 논의하기 바빴고,
세라와 초희역시 마주보고 서있던 것이다.
“야 유희.”
“네.”
“쟤들 뭐하는
걸까?”
“뭐가요?”
“뭔가...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는것 같은 이 느낌이 뭐지?”
“....그렇게 호기심
많은 분이실줄은 몰랐네요.”
“나이가 들어 그런가봐.”
“.....”
그런 그들의 대화는 아는지 모르는지,
한쪽에서는 리미와 유나가 서로 속닥거리며 정보를 공유하기 바빴다.
“그게 사실이야?”
“그렇다니까.분명히
봤어.윌리엄스의 집에서..아니, 본정도가 아니야.나와 싸웠다니까.”
“그럼 그들을 없엔거야?”
“쉿.주인님이 들으면
혼나.”
“에휴..너 어쩌려고..”
"정당방위 였다니깐!어쩔수 없었다구."
리미는 머리가 아프다는듯 이마를
감싸쥐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유나에게 말했다.
“그러면..그들이 거의 오너에 필적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거지?”
“응. 뭐..대단하지는 않지만 이 세계의 사람이라곤 믿을수가 없었어. 검기를 검에 입히는 경지에 이른자도
있었으니까.”
리미의 표정은 심각해졌다.늘 낙천적이고 자신감에 넘치는 유나의 표정이 심각할 정도면 그냥 웃어 넘길정도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유나는 윌리엄스의 집에서 가져온 책을 리미에게 넘기며, 복면 3인방과 결전을 벌였던 일들을 빠짐없이 리미에게 설명해
주었다.
“블랙맘마라고?”
“응..짚히는데라도 있어?”
리미는 며칠전 준, 연희와 사건현장을 보러 갔을때를
떠올렸다.준이 급하게 부르는 바람에 연희와의 신경전을 종료하고 서둘러 달려간 그녀. 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건물 파편중 하나를
내밀었고, 그곳에는 정교하게 칼로 새긴듯한 자그마한 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단단한 콘크리트에 마치 그림을 그리듯 무언가로 세겨넣은 뱀
문양의 조각. 물론 연희가 있었기에 서둘러 현장을 뜨긴 했었지만, 리미는 이제야 무언가 드러나는 듯했다.
“정확히는 블랙맘마가
아니고 블랙맘바일거야.”
“암튼..그게 뭔데?”
“현존하는 이 세계의 독사중 가장 빠르고 강한독을 가졌다는 뱀이야.
물론 사전적의미가 그렇다는 거고... 그리고 나와 주인님이 사건현장에 갔을때에, 뱀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돌판이
있었지.”
“그럼..내가싸운 인물하고 그 건물을 덮친 놈들하고 동일집단 이라는 거야?그 블랙맘바라는 것들이?”
“일단
J가 소속되어 있었다고 했잖아. 그 건물역시 J가 태우려고 했다가 크룬전쟁이 일어나면서 살아남았던 건물이야.뭔가 이상해.마법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고, 검기를 씌울정도의 능력자들이 일반인중에 존재한다면 결코 허투루 볼 만만한 집단이 아니라는 거지.”
“주인님께는 이야기 하지
마.”
“어쩔 생각이야?”
유나는 리미의 물음에 분한듯 입술을 깨물었다.준에게 개인행동 때문에 혼나고 싶지 않았다.
준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그녀의 사정은 따로 있었다.
“세라는 주인님하고 결혼을 하는데..나는 단독행동으로 혼이나라고?그럴순
없어.나 혼자서라도 조사해서 알아내고 말거야.그때 말할거야 주인님한테.”
리미는 말없이 유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성격을 리미가
모를리 없었다.승부욕이 강한 그녀. 세라 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게다가 준이 걸린 일이라면 더더욱 지기 싫어하는 그녀에게
리미는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좋아.대신...단독행동은 하지마.하더라도 나에게 미리 말이라도
해줘.”
“알았어.”
“그리고 지금은 중요한 시기야.전쟁이 끝난게 아닐수도 있어. 노아도, 수아도 각각 그녀들에게 맞는
기술을 개발하고 훈련 프로그램을 짜지 않으면...”
리미는 뭐라고 덧붙이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명상을 마친 세라가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녀의 뒤에는 왠일인지 초희가 뒤따르고 있었다.
“의외로군. 너 역시 명상을 통해 수련을
한다니.”
“아무래도.가장 큰 것은 마음속의 나 자신과 끝없이 싸우는 것이 아닐까 해서요.”
세라의 대답에 초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는 유일하게 초희가 인정한 체술의 정점에 있는 자. 그녀의 수준이라면 검을 들고 휘두르는 일련의 행위들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초희씨.”
가면으로 입부분이 가려진 초희의 두 눈이 세라를 향했다. 세라는 살짝 감았던 눈을 떴다.햇살에
반짝이는 그녀의 맑은 눈망울에 초희의 얼굴이 투영되었다.
“계속 이곳에서 머물 건가요?”
“무슨 뜻이지?프로센으로의
귀환을 말하는 건가?”
“네.”
세라의 대답에 리미,유나는 물론 마유미까지도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수아와 노아도
더이상 장난을 치지 않고는 동그래진 눈으로 우르르 마유미의 뒤에서서 세라를 응시했다.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로군.”
“아뇨.그런 것이 아닙니다.지킬 사람,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라도 좋습니다.하지만...”
초희의
눈망울이 살짝 빛났다.
“존재 자체의...불균형 때문이로군.”
“그렇습니다.”
“네 말도 맞아.너희 주인은
점점 나이를 먹고, 세월이라는 굴레에 점점 예속되겠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겠지.여기서는 오직 오너의 마나속에서 숨을
쉬니까.”
“그게..걱정이군요.혹여나 지금의 행복이..그것때문에 달아날까봐서요.”
“너 다운
고민이네.”
“초희씨는 어떤가요?”
“나? 난 이미 돌아가길 포기했지.”
“그냥 순응하시는
건가요?”
세라의 침착한 질문에 초희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멀리서 여전히 수상하다는 눈으로 여기저기를 응시하는 김노인과, 그런
그의 뒤에서 서 있는 유희의 모습이 보였다.
“유희는 9써클의 마스터다.”
초희의 말에 법사형 페어리인 유나와 마유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든 계열을 다루는 9써클의 마법사. 그것은 그냥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시시껄렁한 개념이 아니었다. 프로센에 단 한명,
그리고 프로센의 인접국가들을 모두 합쳐도 전 대륙에 둘뿐인 것이 9써클의 마법사였다. 오너의 마나만 있다면야 한없이 성장할수 있는 페어리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대단치 않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리고 9써클의 마스터에겐...세월의 흐름을 잡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초희의 말에 좌중은 모두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다만 노아만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마유미에게
‘9써클이 뭐야?’라고 질문하고 있었을 뿐.
“유희씨가...김사부님이 나이를 먹는것 자체를 마법으로 잡아두고 있다는
거군요.”
“말하자면 그래. 우리들의 오너는 알고 있지 않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저희 모두가 프로센으로 돌아가게
되면 저희 오너 역시 저희들만 온전하다면 여기 있는것보다도 오래 행복을 누릴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라의 발언에
리미는 눈을 크게 떴다.평소에 그런 발언을 절대로 하지 않는 세라이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명실상부한 라이벌 관계인 초희에게는 쉽게 털어놓을수
있는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한 배를 타고 있는 리미나 유나등에게는 조금 오래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로군.세라 너는 프로센에서의 기억을 갖고 있는 유일한 2세대 페어리가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 잔인하기 그지
없는 징벌과정과 훈련과정..그리고 강제적인 마나의 최적화 과정역시 기억하고 있겠군.”
세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초희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세라를 바라보았다.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나머지 페어리들은 쉽게 대화에 나서지 않으며 둘의 말을 경청할
뿐이었다.
“그런걸 다 기억하고도...프로센이라는 나라에 대해 악감정이 없는가?”
세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물론
아무것도 없다고는 할수 없었다.어찌보면 그녀는 선택권이 없었을지도 몰랐겠지만...그녀가 당한 혹독한 훈련과 마법적 실험들은 누구라도 원한을
품을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없다곤 할수 없겠죠.하지만...그것이 아니라면 전 지금의 주인님을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초희는 말없이 세라를 바라보았다.워낙 표정변화가 없는 그녀지만, 무언가 아득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눈빛이었다.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수 있는 흑색 무복이 바람에 펄럭인다.
“너라면 그렇게 이야기 할지도 모르지만..난
달라.”
“무엇이 말인가요?”
초희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가 싶더니, 살며시 눈을 떴다.언제봐도 더블워커
특유의 신비로운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잘 모르겠다면...내 이야기를 들려주지...악몽과도
같던 과거를
말야.”
**********************************************************************************************
글이
잘 안써지네요.휴휴;
38부에서는 초희의 과거편부터 시작됩니다.
즐거운 한주 되세요
**********************************************************************************************
내일 39편까지 올려드리며녀 드디어 연재속도를 맞추게 되겠네요. 작가님이 네이버3반응을 되게 궁금해하시는데
독자님들 많은 리플 부탁드립니다. 제가 직접 원작자님께 리플을 배달해드리고 있습니다..
추천116 비추천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