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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야설 - 우결망상자 11부

T.S 엘리엇은 현대 인간 문명과 정신세계의 황폐화를 빗대기 위하여, 봄이 왔지만 새로움을

 

잉태하기는커녕 겨울잠을 계속 자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는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덧 3월 초....


황폐화된 형돈의 정신상태는 봄이 와도 도저히 깨어날 것 같지가 않다. 태연에게 다른 여자와

 

관계맺는 장면을 들킨 후에 3월은 형돈에게 가장 잔인한 달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리얼 버라이어티 무한도전’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자막을 자주 내보낸다는 뉴라


이트의 비난이 있고 나서 방송심의위원회의 압박으로 인해 잠정 폐지 결정이 내려져 더 이


상 촬영을 하지 않는다.



걸어다니는 시체...산 송장...


지금의 형돈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어휘들이다.



일 주일에 한 번 있는 케이블 프로그램 촬영이 없는 날에는 하루 종일 멍하게 앉아있다던


가, 우결 푸딩젤리 편집본을 계속해서 돌려보는 게 다 일뿐...두문불출하고 있는 상태이다.


유일하게 형돈이 의욕을 갖고 정규적으로 하는 행동이라면 오후 8시부터 시작하는 태연의


친한친구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것 뿐...


약 1주일 전 태연에게 ‘ 그 장면’을 들킨 이후로는 형돈이 하는 문자나 통화 그 어떤 것도



거부되고 있으니...현재로선 가요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과는 달리 태연의 목소리를 가


장 오래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원래는 아주 가끔 듣던 태연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지만...이제는 유일한 삶의 낙이 되면서 새

 

삼 태연의 가공할만한 인기를 체감하고 있다. 형돈과의 열애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후로도


그녀의 인기는 사그러들기는 커녕 하늘을 찌르는 기세로 솟아오르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소녀시대 오타쿠들이 많다는 건 우결 촬영을 통해 잘 알고 있었지만, 태연에 대한 찬양 일


색인 라디오 메시지 게시판을 볼 때 마다 복잡한 감정이 밀려오는 것이 사실이다.


무려 5주째 가요순위 프로그램 1위, 음원 판매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소녀시대 정규앨범


2집은 이미 ‘Gee"의 인기를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다가, 타이틀 곡의 안무


는 국민댄스 수준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녀시대의 꼬꼬마 리


더 태연의 인기는 더 이상 올라갈 지점이 없을 정도로 치솟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매력하나 없는 개그맨 출신의 예능 MC인 자신에게는 애시당초 과분한...분수에 넘치는 존재

 

였던 태연! 도대체 자신을 향한 태연의 열정적이고 한결같은 사랑을 잊어버리고, 얼마나 어


리석은 일들을 해온 것인가...


그리고, 형돈의 상념을 깨우는 한 마디!



‘3월 첫 째주 마지막 날 태연의 친한 친구, 지금 시작합니다~’


형돈은 그렇게 2시간을 멍하게, 라디오를 진행하는 태연의 목소리를 따라 시간을 흘러보냈


다. 태연은 빡빡한 스케쥴 때문일까...피곤함이 느껴지는 잠긴 목소리였지만, 명랑하고 쾌활


한 특유의 목소리와 꽁트는 여전한 것 같았다. 적어도 ‘ 그 장면’을 목격한 충격 때문에 형

 

돈처럼 우울증에 빠졌다던가, 기분이 축 처지지는 않은 것 같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2시간 내내 라디오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진행하는 태연의 목소리만



들어오면, 이미 형돈과의 문제는 그녀의 일상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 하는, 씁슬한


과거정도로만 남은 듯하다.

 



사실 그 사건 이후에 혹시나 태연이 감정적으로 큰 상처나 충격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태


산인 형돈인데...매일같이 쏟아지는 팬들의 열화와 같은 사랑 때문일까...적어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태연은 이미 형돈이 준 상처를 씩씩하게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이미 태연


의 마음속에서 김형돈이라는 남자와 그와 함께 만든 추억은 지워져 있는 것일까?


그런 사태는 형돈에게는 최악의 상황이겠지만, 태연 본인을 위해서는 가장 최선의 선택일지


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에 까지 다다르자 갑자기 눈물이 북받쳐 오르는 형돈...


부적의 효과에 도취되어 정작 가장 소중한 태연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 한심한 자신의 모


습을 하루에만 수백,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자책을 해 오고 있지만...끝없이 계속되는 시지


프스의 형벌이 이런 것일까...아니면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히는 프로메테우스가 이런


심정일까...끝없는 고통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형돈의 가슴 한 켠에는 그래도 태연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그 대답을 듣고 싶은 남자로서의 열망이 존재한다.



그래...태연이라면...그 착하고 순수한 태연이라면 자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고 자위하는 형돈...그의 이성과 마음은 이미 완전히 분리되어 따로 놀고 있는 것과 마찬가


지였다.

 



운명의 다음 날...


 


형돈은 태연이 라디오 DJ를 끝낸뒤 차를 타고 숙소로 갈 때 항상 지나치는 복도에 서서 태



연을 기다렸다. 혹시라도 자신을 멀리서 보고 가까이 오지 않을까하는 걱정에서 약간 움푹


파인 공간에 몸을 숨기고 태연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형돈...


드디어 걸어오는 태연이 보인다! 태연은 항상 혼자서 이 복도를 지나쳐 매니저가 기다리는


곳을 가기 때문에 여기가 태연과 대화를 하기에는 최선의 장소였다!


지나가는 태연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형돈!



형돈은 곧 바로 태연의 어깨를 잡아 멈춰세운 뒤 무릎을 꿇었다.


너무놀라서 그 자리에 얼어붙은 태연에게 형돈은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태연아~ 미안하다!! ㅜㅜ 그 때 일은 내가 무조건 잘 못한 거고, 무슨 말로 사죄를 해도 부



족하겠지만...다시는 그런 일 안 할께~ 다시는 그런 일로 널 힘들게 안 할께~ 한 번만...제


발 한 번만 나에게 더 기회를 줄 수는 없겠니? 제발~ ㅠㅜ"


울먹이는 형돈에 이어 태연의 눈망울에도 살짝 물기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형돈의 고백...


"맹세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정태연이야! 다른 무엇도 나에게 너만큼 소중한 것은


없는데...내가 머리가 어떻게 돼서 잠시 잊어버렸던 거지...미안하다! 제발 용서해줘~"



태연은 우물쭈물거리면서...무언가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목이 메었는지 소리가 입 주변을


떠나지 않고, 웅얼거리기만 하였다.  형돈이 본 태연의 입모양은 ‘그만해요’를 발음하고 싶


었던 것 같다.


이 때! 멀리서 들러오는 소녀시대 매니저의 한마디!



"태연아~ 얼른 차 타러 안 오고 뭐하냐! 후속곡 안무 나와서 오늘부터 연습 들어가야돼!"


태연을 눈물을 훔치고는 순식간에 형돈을 지나쳐 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형돈은 한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하고, 뜨거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린다.



태연을 만나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형돈 스스로도 헷갈려 버렸다.


어차피...어차피 태연의 대답은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단지 태연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일까...아니면 연인으로서의 마지막 한 마디


를 듣고 싶었던 것일까...그것도 아니면 이제 태연과는 남남이라는 절대로 받아들 일 수 없


는 고통에 이성이 마비된 상태였던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헛된 망상에 빠져 무슨 짓을 해 버린 걸까...

 


차라리 태연이 형돈의 뺨을 때리거나 욕이나 비난을 퍼부었다면 모든 걸 감내하면서 끝까지



달라붙어 태연에게 애원한다거나, 오늘과 같이 매일 MBC 복도에 무릎을 꿇거나 숙소로 찾


아가서 진상을 피우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씨 착한 태연은 끝끝내 형돈에게 드라마에서는 그 흔한 따귀나 심한 말 한 마


디도 안 하고, 거절하는 한 마디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 해 한 참을 끌었다. 그 뿐만 아니라


형돈의 애원이 시작되자 떠오른 태연의 슬픈 눈망울에는 형돈에 대한 증오심이나 배신감보


다는 사랑이 남긴 생채기에 어쩔줄몰라하는 소녀의 순정이 담겨있었다.

 


겨우겨우 아물고 진정시킨 상처가 자신의 등장으로 인해 다시 터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죄책감과 자기비하가 더욱 심해지는 형돈...


‘(속으로)이 바보 멍충아...진상 좀 그만부려!! 젠장젠장젠장젠장젠장젠장젠장젠장 ㅜㅜ’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겨우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끌고 온 자가용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창 밖에서는 함박눈이 내리고, 카라디오에서는 이문세의 ‘옛사랑’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빈 하늘밑 불빛들 켜져가면


옛사랑 그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나 눈물이 흐르네


(중략)


흰눈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길 찾아가지


광화문거리 흰눈에 덮혀가고


하얀눈 하늘높이 자꾸 올라가네‘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이문세인데...형돈은 갑자기 노래가사에 완전히 감정이 몰입되어


왈칵하고 눈물을 쏟아낸다. 그리고 태연과 데이트를 하면서 걸었던 광화문 거리를 가보고


싶어졌다.

 


집 방향으로 가는 도로를 유턴하여 광화문 사거리 쪽으로 향하는 형돈....



그리고 20분 후에는 덕수굴 돌담길로 이어지는 광화문 거리에 도착했다.


정처없이 눈 덮인 광화문거리를 걸으니 노래가사처럼 자연스레 태연과의 추억이 떠오른다.


불과 2달 전인데...이제 푸딩의 젤리 태연은 옛사랑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과연 되돌릴 수는 있을까...


형돈은 부적의 효과에 취해 흥청망청 섹스에 몰두했던 지난 한 달 동안의 과오를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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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드디어 중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군요...과연 이 소설이 형돈과 태연 커플의 해피엔딩으로 끝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9월 13일까지 완결하지 못 하더라도 너무 뭐라하진 마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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