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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11 -

<11부>


차가운 기운에 노아는 눈을 떴다.

‘여긴…?’

자신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고,사방은 너무나 어두운 어둠이었다.노아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지만,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앗!”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통에 노아는 눈을 찌푸리며 손을 이마에 대었다.누군가 온것일까 하고 기뻐했던 노아는 자신의 앞에 있는것에 대한 정체가 확인되자,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것은 커다란 불덩어리였다.그것은 알몸의 노아의 앞에서 허공에 뜬 채로 이글거리고 있었지만,노아는 전혀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그것은 노아의 몸과 하나라고 해도 좋을,정령력이었으니까.

“한심하군.”

불덩어리에서는 딱딱한 기계음 같은 음성이 메아리를 쳤다.노아는 침착한 얼굴로 눈앞에서 타오르는 화염구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프리트...”

그녀의 앞에 있는것은 불의 정령왕인 이프리트였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이프리트는 더더욱 열기를 내뿜으며 반응했다.

“네가 어떻게 여기…?”

“여긴 너의 자아 안이다.정령을 다루는 자의 자아에,정령왕인 내가 못올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걸 묻는게 아냐.왜 온거지?”

“니가 부르지 않았나?”

“내가?”

노아는 고개를 갸웃했다.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정령왕들 중에서도 까칠하고 포악하기로 유명한 것이 이프리트이다.게다가 제 아무리 노아라 해도, 신의 영역에 있는 정령왕을 소환할수는 없었다.노아는 고개를 양옆으로 가로저었다.

“난 널 부른적없어.게다가 부르지도 못해.”

“나도 그게 의문일뿐이다. 누군가에 의해 이계로 오는것은 처음있는 일이로군.”

“이계?”

“그렇다.나는 정령계에만 있을 뿐이지.온갖 종족이 얽힌 세상에는 관심이 없다.그런데 고작 마족 나부랭이 하나에 쓰러져서 헤롱대는 인간때문에 올줄은 몰랐군.”

“마족…?아아..”

노아는 그제서야 자신이 파렐과 겨루고 있었음을 깨달을수 있었다.그제서야 노아는 분한듯 입술을 깨물었다.정말이지 마족다운 기분나쁘고 간교한 마법이 아닐수 없었다.

“자..잠깐!나 죽은거야?”

“니 죽음을 왜 나에게 묻는것이냐?넌 죽지 않았어.그러니까 니 자아안에서 너와 내가 대화를 할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노아는 이제서야 약간 감이 왔다.쓰러지기 그 직전에,무언가 자신의 주변에서 엄청난 정령력의 반응이 있었고,그 탓에 이프리트가 자신의 잠재적 세계로 소환되었을 것이리라.

“너는 정령력을 다루는 인간이다.이 정도로 쓰러져서는 곤란하지.”

“미안하지만 난 이세계에서는 인간이 아니야.”

“그런건 내 알바 아니야.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마족의 마법에 걸려버린것이냐?”

“방심했겠지.그가 강할수도 있고.”

화염구의 형태를 한 이프리트의 몸이 순식간에 직립을 하고 선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하지만 노아와 같은 형태가 아닌,불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몸에 독소따윈 내가 태워주면 그만이지만, 자연력의 원천인 정령력이 저따위 저급한 흑마법에 쓰러진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군.그리고,넌 무엇때문에 그리 필사적으로 싸우는거냐?”

“주인님을 지키기 위해서야.”

“주인?”

이프리트의 머리부분이 살짝 갸우뚱 거려졌다.

“그래.주인님.”

“이상한 일이로군.너에겐 두개의 자아가 있지만, 그 두개의 자아는 모두 주인이라는 존재에 집착하고 있어.”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곧 넌 죽겠군.정신을 잃고 있으니 말이야.”

“상관없어.이 세계에서는 난 완전히 죽지 않아.다만 주인님을 못지켜줄까봐 겁이 날 뿐이야.”

“이해가 가지 않는군.그가 누군데 그렇게 그에게 집착을 하나? 누군가에게 세뇌를 당한 것이냐?”

“프로센에서 이리로 넘어올때,세뇌를 받았을지도 모르지.하지만 이제 그런건 상관없어.누가 뭐래도 소중한건 소중한 거니까.”

정령의 여왕,노아의 말에 이프리트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정령계에서 푹 쉬기만 했던 그가 인간계에 출두할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고 노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부아가 치미는군.”

노아는 어째서냐고 묻지 않았다.그녀의 의식은 계속해서 준을 따라가고 있는것만 같았다.지금은 정령의 여왕이 지배하고 있는 자아이니,그녀는 침착하고 성숙한 모습이었다.

“난 인간들의 일에는 정말 관심이 없다.더불어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눈꼽만큼도 없지. 하지만, 모처럼 인간계에 날 소환할 정도의 인간이 나타났는데 그 인간이 마족에게 당하고 있는걸 보니 화가 치미는군.”

노아는 입술을 다문체 이프리트를 바라보았다.정말로 화가 나서일까?이프리트의 몸이 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널 이렇게 만든 마족은 내가 손을 봐주겠다.하지만 그 이상은 개입하지 않겠어.그런 귀찮은 일은 질색이니까.”

“니가…직접?”

노아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정령왕 이프리트가 직접 나선다는 것은 들어본적이 없다.아니,그것은 이프리트 뿐 아니라 다른 정령왕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였다.

이프리트는 점점 의식의 끝편으로 사라져 갔다.노아의 귓속으로,그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쉬고 있어라 인간이여.그리고…다신 이 몸을 이런 번뇌가 가득한 곳으로 부르지 말도록.”





“음?”

천천히 바위섬들을 깨부쉬고,노아를 꺼내려던 파렐은 뭔가 이질적인 기운에 살짝 놀랐다.

“깨어난…겁니까?”

파렐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그럴리가 없었다.아무리 노아가 강하다 한들,바람이 보호해줄수 없는 땅속에서 강력한 독 공격을 했는데 그것이 통하지 않을리가 만무했다.

“그런데…이 느낌은?”

파렐은 한쪽만 남은 팔을 재빨리 노아가 잠들어 있을 바위산을 향해 겨누었다.한쪽 팔 뿐이니 큰 써클의 마법은 쓰지 못하겠지만,확인사살을 하기엔 무리가 없을 것만 같아서 였다.

“크윽!”

파렐은 저도모르게 무릎을 꿇어버렸다. 엄청난 열기가 자신의 둘러쌌기 때문이었다. 그저 단순히 뜨거운 것이 아니다.이 온도와 엄청난 힘.그것은 이미 인간계에 존재할만한 레벨이 아니었다.

“크으…크아아아!”

사라케인의 몸을 빌린 파렐의 몸은 급격하게 녹아들어가기 시작했다.재생을 할 여력따윈 없었다.어디서 솟아오른지 짐작조차 할수 없는 그 엄청난 불기둥이,파렐의 온몸을 둘러싸며,그의 세포하나하나를 모조리 불태우기 시작했다.파렐은 마치 육식동물에게 숨통이 물린 사슴처럼,사소하고 하찮은 대응한번 할수 없었다.

“이..이게 어떻게 된….크아아아아!”

파렐을 태우는 불기둥은 파렐의 몸을 녹이면서,동시에 태우고 있었다.파렐의 외마디 비명역시 멀리 퍼지지 못했다.

스스스스스….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엄청난 정령력.신기하게도 그런 무시무시한 에너지에 노출된 땅이나 나무는 멀쩡했다.오로지 부서져 가는 저택만이 물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갈뿐.

트드드드드…

땅의 정령 노에스가 바위섬을 무너뜨리며 자신들의 여왕인 노아를 지면위로 끌어당겼다.파렐도,그리고 그를 단숨에 소멸시킨 이프리트도 떠난 황량한 전장에서,그녀는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막지….않는다?”

휴가가 준과 리미를 방해할 줄만 알았던 세라는 의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준과 리미가 없으니,훨씬 홀가분하게 싸울수는 있을것이다.그런데 휴가는 준과 리미가 다른쪽으로 달려가는데도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예를 겨루는데에,잔챙이는 필요가 없지. 이제 너의 기사도를 침해할 방해물따윈없다. 그 기사도를 나와의 무예에만 사용해 봐라.”

“더러운 입으로 기사도를 입에 담지 마라.”

세라의 블랙 소드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그녀의 자세가 바뀌었다.휴가역시 창을 거꾸로 쥐며 미소를 흘렸다.

그는 크룬이었지만,최고의 승부사였다. 비열함이 상징인 마족들에 비해,그는 무예의 도를 높이 사는 몇안되는 크룬이기도 했다.그렇게 천성적으로 전투를 즐기는 그의 온몸의 세포가 긴장하고 있었다. 강자를 앞에두고서의 이 짜릿한 기분.휴가는 오랜만에 느끼는 희열에 몸소리쳤다.

“너를 벤다면….내 즐거움은 배가 될것만 같군.”

세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앞에 있는것만 같은 긴장감이,서로 거리를 두고 선 휴가와 세라의 사이에 천천히 감돌기 시작했다.세라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휴가에게는 무예를 겨루는 유희일지는 모르지만,세라는 달랐다.이곳은 전장이었고,그녀의 사명은 준과 이 세계를 침입자로부터 지켜내는 것이었다.

스팟!

이윽고 세라의 몸이 사라졌다.휴가는 재빨리 창을 돌려 잡으며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엄청난 스피드로 휴가앞에 나타난 세라의 검이 휴가의 창과 부딪혔다.

세라의 검이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휴가쪽을 공략하기 시작했다.휴가로써는 지금껏 단 한번도 볼수 없는 기이한 움직임이었다.

-청랑 십이검 무한연환검무 (靑狼十二劍 無限連環劍舞)-

세라의 몸이 쉬지 않고 움직였고, 더불어 세라의 소드는 기이한 춤을 추며 휴가의 전신 수백개의 급소를 찔러 들어오기 시작했다.휴가역시 숨돌릴틈없이 창을 휘두르며 세라의 검무를 막아내고 있었다. 세라의 움직임은 말그대로 무아지경,그 자체였다.

‘이정도의 스피드로 계속해서 다른 타입의 공격이 이어지다니…’

휴가는 패턴이라는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초식 하나하나가 계속해서 바뀌며 자신을 공격하는 세라의 검의 움직임을 막아내며 탄성을 질렀다.자신의 창과 세라의 검이 부딪히는 금속성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지만, 그는 계속 창을 휘두르며 막아내었다.

우우우우....

세라의 공격이 끝나자,휴가는 재빨리 뒤로 빠지며 그녀와 거리를 벌렸고,세라의 주변에서는 마나의 오오라가 펼쳐지고 있었다. 단 한번도 쉬지않고 검을 휘두르는 초식을 시전한 세라이지만,그녀는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강하다.’

처음 세라는 무인도에서 무한연환검무의 시전식을 보았을때,마나가 아닌 신체를 사용하는 초식중에서는 가히 최강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또한 그만큼 세라에게도 익히기 힘든 어려운 기술이기도 했다.

헌데, 저 휴가는 그것들을 모두 막아낸 것이었다.세라는 검을 고쳐쥐고는 휴가를 노려보았다.휴가의 여유로운 입이 천천히 열렸다.

“재미있는 기술이로군….놀라워.검한자루로 이런 다양한 공격을 펼칠수 있다는게.역시 다스가 당할만한 실력자로군.”

휴가의 창날에 달빛이 반사되며 번쩍거린다.그의 창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창의 주변으로 마치 구렁이가 똬리를 틀듯 음산한 마나가 휘감아지고 있었다.세라는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했다.

“우리 휴가 일족은 걸음을 걷기 시작할때부터 창을 잡는다.방금전의 속공에 대한 보답으로,나 역시 니 마음에 쏙 들만한 속공을 선보여주지….소울스피어…라고 하는 기술을 말이야.”

순간 말을 마친 휴가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자신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세라는 최대한의 동체시력을 발휘하며 소드에 검기를 맺히게 했고,흡사 수십마리의 뱀이 쏘아져 오는 것처럼 휴가의 찌르기 공격이 펼쳐졌다.

채채채채채채채챙!

마나를 머금은 찌르기가,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이어지는 무서운 연속공격이었다.아까와는 달리 완전히 바뀌어 버린 공격과 수비.세라는 침착하게 푸른 검기가 머금어진 소드를 휘둘러대기 시작했고,휴가의 창은 마치 수천개로 불어난 듯한 착각을 자아내며 기이한 움직임으로 세라의 몸위로 쏟아졌다.

‘크크큭….놀랍군…놀라워.이 정도의 장수가 있다니…그것도 계집이라니..’

휴가는 자신의 모든공격을 막아낸 세라를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진심으로 즐거웠다.근 몇백년동안,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장수는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센에 있는 터커 크로워드보다 강할지도 모르겠군.”

세라는 잠시 움찔했다.궁중기사단장 터커 크로워드.자신을 페어리로 발굴한 바로 그 기사이자, 프로센에서 손꼽히는 소드마스터가 아닌가. 얼마전에 프로센에서의 기억을 끄집어낸 그녀로써는 쉽게 떠오르는 이름이었다.

“너같은 실력자가 이런곳에 있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는데 말이야.”

한수씩 주고받고 나자,둘의 호흡은 조금씩 거칠어 지고 있었다.세라의 검이 푸른검기에 휩쌓이며 이내 그것은 갈색으로 짙어지기 시작했다.세라의 검기를 본 휴가의 눈이 희번득 거렸다.

‘정말…방심할 틈을 안주는 계집이로군.’

휴가는 단번에 세라의 검에 맺힌 갈색검기가 보통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캐치해 내었다.느껴지는 마나의 양부터 달랐다.

‘드디어 슬슬 본수를 펼치시겠다 이건가?’

휴가는 단전으로부터 창을 꼬나쥐고 있는 오른쪽팔까지,자신의 몸에 흐르는 마기를 계속해서 순환시켰다.휴가의 눈에는 세라가 운용하는 마나의 순환이 똑똑히 보였다.생전 처음 보는 방식이었지만,위험한 것이 나오리라는 예상은 쉽게 할수 있는 것이었다.

‘안타깝지만.. 이수에서 끝내 주겠다.’

휴가는 가문전통의 최고기술을 시전할 준비를 했다.하루에 딱 한번밖에 쓸수 없는,그만큼 온몸에 충만한 마기를 창하나에 집중시켜 날리는 공격이기도 했다.

‘뭐..뭣이?’

기술을 준비하던 휴가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세라의 검기 색깔이 갈색에서 점점 검정색으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뭐야 저건..’

세라의 검끝이 휴가를 겨눈채로,그녀의 자세는 조금더 견고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왜….블랙나이트인지…가르쳐주겠다.”

이윽고 세라의 전신에 있는 혈맥이 모두 개방되었다.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그녀는 이런식으로 마나를 일부 막아놓은 것이었지만, 검은빛의 검기를 쓰기 위해서는 모든 혈문의 개방이 필요했다.

‘속전속결.어떻게든 주인님을 도우러 가야만 한다.’

세라의 모습을 본 휴가의 미간이 꿈틀했고,이윽고 그의 창에 맺혀있던 거대한 구체가 하늘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수천개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처럼 형태가 바뀌며 세라쪽으로 날아들었다.

-청랑 십이검(靑狼十二劍) 극성 비전오의(極性秘傳奧義) 섬뢰(殲雷)-

이윽고 세라의 검이 휘둘러졌다.

그것은 마치 달빛과 태양의 싸움처럼,눈이 부셨다.세라의 검은빛깔의 검기는 동양무예의 오의를 타고 그대로 일직선으로 날아갔고,휴가의 공격은 세라의 쳐놓은 방어막위로 미친듯이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쾅!

세라의 한쪽 팔에서 한줄기 핏방울이 흘러내렸다.아무리 마나로 방어막을 쳐놨다고 하지만,자신역시 공격에 치중하느라 수천가닥으로 이루어진 휴가의 공격을 전부 방어하지는 못한 탓이었다.

“크….크으…크…”

휴가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정말이지 순식간,자신의 목과 심장을 비롯한 도합 여덟군데에 바람구멍이 생긴 것이다.그것도 자신이 나름 만들어놓은 방어막을 흡사 망치로 유리내리치듯 깨어버리고는,그가 대응할 틈도 없이 그의 몸은 세라의 기술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마…말도 안…큭…”

이윽고 휴가의 몸에서 피분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세라는 아련한 고통속에서도 소드를 움켜쥔채 휴가를 노려보았다.

땡그랑.

휴가의 창이 바닥으로 떨어졌고,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그의 눈은 여전히 불신으로 가득찬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마족으로써의 숨통마져 모두 끊긴듯 그의 몸에서 감돌던 마기는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하아…하아…”

세라는 한쪽팔에 느껴지는 뜨끈한 감촉에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으며 지혈하듯 움켜쥐었다.마나의 보충이야 운기조식을 하면 그만일지 모른다.하지만 휴가의 공격중 하나가 왼쪽 어깨를 관통한 모양이었다.

‘지혈을 하지 않으면…’

세라는 차우의 비급에서 본대로,급히 혈을 누르며 지혈했다.소드를 땅에 꽂아 자신의 몸을 지탱하면서도,세라의 고운 눈망울은 준이 사라진 전장을 향해 있었다.





“흐흐흐…”

마스터는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마치 설탕처럼 고운 가루로 바뀌는 타유를 바라보았다.그와 대적한 윌리엄스는 또 한명의 페어리가 소멸되자 살짝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네놈이 이 무리들의 대장인가?”

청순한 동양여인의 모습을 한 마스터.하지만 그 힘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그 결과로 그의 근처로 텔레포트를 한 타유는 단숨에 소멸되어 개화전 상태로 되돌아가 버렸다.

“제법 그럴싸하게 마법은 쓰는군.”

윌리엄스를 비롯해,그의 곁에있는 도합 7명의 페어리는 긴장한 표정으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마법뿐만이 아니었다.그는 체술도 전연 통하지 않는 괴물이었다.자신의 마법레벨을 높게 평가하고 있던 윌리엄스는 자신이 심각한 자만에 빠져 있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치잇!”

금발머리를 곱게 땋아올린, 윌리엄스의 페어리중 하나인 제니가 재빨리 마스터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보였고,그녀의 동작과 동시에 마스터의 시야는 순식간에 가려져 버렸다.

‘싸이코 키네시스?( Psychokinesis)’

마스터는 자신의 주변으로 돌맹이를 비롯해 자잘한 이물질들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는 것을 보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몸에서 마기가 솟구치며 그것들은 모두 튕겨져 나갔고, 그의 눈은 염력을 쓴 제니를 향해 있었다.

‘저년은 저것이 특기인가 보군.’

드디어 윌리엄스를 비롯한 그의 페어리들의 특징이 마스터의 머릿속에 깔끔하게 분류되었다.

“기가 라이트닝!”

제니덕분에 시간을 번 윌리엄스의 주문이 이어졌고,윌리엄스의 손에는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수만볼트의 전기덩어리가 이글거렸다.

‘협공..?’

마스터의 미간이 양옆으로 움직였다.그의 주변을 둘러쌓고 있던 페어리들역시 각자의 공격을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sedsh! Praguma!”

마스터의 주문과 함께 그의 몸주변으로 거대한 구 모양의 방어막이 펼쳐졌고,그와 동시에 그를 둘러쌓고 있던 윌리엄스와 페어리들의 원거리 공격이 이어졌다.

콰콰콰쾅!

엄청난 빛무리가 일어났고,철통의 방어와 위력적인 공격의 줄다리기가 계속 되며,엄청난 충격파가 폭사되었다.

‘이대로라면…위험한데..’

7써클의 기가라이트닝을 쏘아보내는 윌리엄스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자신의 주변에 도열한 페어리는 총 7명. 합동공격을 펼쳐도 마스터에겐 쉽사리 먹히지 않고 있었다. 윌리엄스의 눈이 아까 염동력을 시행한 제니에게로 향했다.그녀는 최대한의 염력을 발휘해 마스터의 실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윌리엄스의 푸른 눈빛이 비열함으로 물들며,그는 다시 실드로 둘러쌓인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별수 없군….하나를 희생해서 틈을 노리는 수밖에…’






“블링크!”

유나와 마유미는 기가막혀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블링크란 단거리를 이동하는 공간마법이었고, 람스가 그것을 사용해서 자신들의 앞에 순식간에 나타난 것이다.

“꺄악!”

람스의 양팔이 유나,그리고 마유미의 몸에 직격했고 둘은 뒤로 날아가 나뒹굴러 버렸다.

“어..어째서야…”

유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람스를 바라보았다.마유미역시 입술을 깨물며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어째서 마족이 백마법을 쓰는거지?설마….’

마유미는 재빨리 생각을 정리했다.아까 람스가 한말을 곰곰히 되씹어 보았다.

-나는…한명이 죽어나갈때마다 다룰수 있는 기술이 늘어나거든…’

거기까지 기억해낸 마유미는 고운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마법을 다루는 오너가 죽고,그 원혼을 다시 람스가 다루는 건가…?’

마유미는 생각을 접고 얼른 수인을 맺었다.그렇다면,오너들이 죽어갈수록 람스의 기술은 더더욱 기상천외한 것들로 바뀔것이다.그렇다면 더더욱 유나와 자신은 불리해 진다.

“번 플레어!”

마유미의 눈이 부릅떠졌다.5써클 중반의 마법인 번플레어가 발동되자마자,람스역시 자신과 똑같은 수인과 영창을 하고 있었다.

‘마…말도 안되는…’

람스와 마유미의 번플레어가 서로 격돌하며 강력한 열기를 폭사시켰고,마유미는 저도 모르게 뜨거운 열기에 두세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유나…유나는?’

마유미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아까 람스의 일격을 맞고 자신은 벌떡 일어났지만 이상스레 유나가 조용했다.

우우우우우…

두개의 마법이 서로 맞닿은 직후인지라,눈앞은 먼지로 가득했지만,마유미는 그 속에서 몸을 일으킨 유나의 모습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유…유나…너..”

하얀 브라우스를 입고 있던 유나의 한쪽 팔 부분의 천이 찢겨져 있었다.워낙 강한 힘들끼리의 충돌이니 그럴수는 있지만,문제는 유나의 하얀어깨가 드러난 것이었다.

우우우우웅…

유나의 주변으로 마나의 회오리가 몰아쳤고,마유미는 타오르는듯한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멍하니 유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유나의 어깨위로,얼음의 결정 모양의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마법을 다루는 페어리인 마유미는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자존심이 상한 표정으로 저 멀리 서있는 람스를 바라보는 유나를 보며,마유미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빙백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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