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야설 - 우결망상자 2부
약속한 2주가 넘고, 3주가 다 되어 가도록 태연은 연락이 없다.
혹시나 해서 형돈이 보낸 문자에도 아무런 답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형돈의 초조함은 극에 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나는 친구 마다 "이제 제수씨가 태연인거야~"라면서
인사 좀 시켜달라고 졸라된다거나, 처제들 싸인 좀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건 그나마 양반이었다. 어제만 해도
술자리를 함께한 후배가 제발 유리와 자기를 소개팅 시켜달라는 허무맹랑한 술주정을 하는 바람에 한 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사인 한 장으로 겨우 수습했었다. TV에 나온던 이미지로 형돈과 태연이 진짜 결혼이나 한 것마냥 대하는
친구들에게, 차마 우결 촬영 종료 후 전화통화도 못 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 진짜 왜 이리 늦지..."
사실 형돈이 마음이 이렇게 타는 이유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이번 해에도 크리스마스를 혼자서 궁상맞게 보
낼 수는 없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고, 아직 태연에게 정식으로 "사랑한다. 사귀자"라는 말로 고백한 적이 없다.
단지, 이별여행 때 서로의 마음을 확인 한 것이 전부인 상태다.
"태연아...우리 우결 끝나고도 계속 커플인거지?"
"그럼 내 입술을 두 번씩이나 훔쳐가 놓고 책임지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평생 여왕님처럼 군림할테니깐 각오단단히 하세요!"
"휴~ 다행이다. 커플링 이거 비싼거란 말이야. PD가 커플링 비용을 대주지 않는 바람에 혼났어 정말"
"피~ 반지가 아까워서 계속 커플하자고 한거에요? 실망이야!"
"왜 그래 젤리~~ 우리 자기 내 맘 몰라?"
"푸헐~ 이 오빠 이상해~"
그 뒤로 태연은 소녀시대 멤버들에게 형돈이 해 준 커플링을 계속 해서 자랑하고 다녔고, 끝없는 자랑질에 뿔이난
제시카가 형돈에게 투덜대기까지 하는 정도였다. 형돈은 그렇게 즐겨워 하는 태연을 보면서, 우결 촬영이 끝나고
첫 데이트 때 정식으로 사귀자고 말을 하면서 목걸이를 선물할 생각이었다. 커플링 역시 진심을 담아 형돈이 고르
고 비용도 지불했지만, 아무래도 방송 촬영 차원에서 한 것이니, 무언가 다른 선물을 하는게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형돈은 태연을 위해 준비한 목걸이 사진을 보면서, 문자를 다시 하나 보냈다.
"태연아, 바빠도 크리스마스에는 봐야지. 연락해~"
하지만, 몇 일 뒤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까지 태연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은 없다.
사실, 소녀시대의 다른 멤버나 매니저를 통해서도 연락을 할 수 있지만, 연인 사이의 문제를 다른 사람을 통해 이야
기 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일단,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이니 만큼 태연에게 전화를 걸어볼 생각이었다.
형돈은 이날 오후 늦게까지 진행된 무안도전 녹화를 끝내고 커플용 핸드메이드 목걸이를 주문한 쥬얼리샵으로 이
동하하였다. 그 쥬얼리 샵 주인은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였는데, 형돈이 연예인임을 알아보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
면 할인까지 해 주신다고 한다.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 할아버지가 형돈에게 말을 건넨다.
"이렇게 정성스런 선물을 받는 애인은 분명 감동받을 꺼야. 아마 그 TV에 같이 나오던 태연인가 하는 친구에게 주려고?"
"헐~ 맞아요. 선생님도 우리결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 보셨나봐요."
"우리 손녀가 일요일만 되면 그것때문에 난리를 쳐서 말이지~ 둘이 잘 어울리던데 잘 좀 해줘~"
"네 알겠습니다. 좋은 목걸이 감사드려요"
형돈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기분이 좋아 졌다. 이렇게 나이가 지긋한 분들까지 형돈-태연 커플의 존재를 알
고 있고, 응원까지해 준다니....정말 오랜만에 다가온 사랑이 결실을 맺는 행복한 느낌에 가득찬 형돈이었다.
형돈은 쥬얼리샵을 나와 차를 말고 형돈의 집이자 돼지우리를 겸하고 있는 아파트에 들어섰다.
말이 돼지우리라고는 하지만, 무안도전의 지속적인 관심과 우결 촬영 때도 형돈의 집 방문 때 태연에게 크게 혼이
난 이후로 비교적 청결한 위생상태를 유지하곤 있지만, 오래된 노총각 특유의 퀴퀴한 냄새를 지울수는 없는 일이다.
집에 들어오자 마자 씻기도 전에 컴퓨터를 켜는 형돈...이제는 거의 습관처럼 태연의 비공개 미니홈피에 방문해 올
라오지도 않는 새 글을 기다리며, 괜히 한 번 들어가 보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습관처럼 싸이월드 메인으로 들어간 형돈은, 순식간에 얼굴에 잔뜩 굳어버린 채로 몇 번의 클릭을 기계적으로 할
뿐이다.
싸이월드 메인에 뜬 기사의 제목은 "태연-준수 몇 일전 비밀데이트 발각!!"
기사의 내용에는 몇 일전 태연과 같은 회사 아이돌그룹 멤버인 준수가 회사 근처에 있는 모 커피샵에 다정한 모습
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지나가던 팬에 의해 포착되어 사진까지 첨부가 되어 있었다. 특히, 태연과 준수
는 지난 번에도 미국에서 손을 잡고 다정하게 쇼핑하고 있는 장면이 보도되어 스캔들의 대상이 되기도 전례까지 있다!!!
형돈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마지막 우결 촬영 때 바쁘다고 나중에 연락한다 해놓구선 2주가 지나고 연락이
없고, 자신의 문자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태연...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 진 것이다. 태연이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
았던 이유가......
형돈은 더 이상 태연에게 전화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왜 나를 두고 준수를 만나느냐
고 다그칠 수도 없는 일...그렇다고 쿨하게 준수와 잘 만나라고 행복을 빌어줄 수도 없는 형돈이었다.
형돈은 무엇보다 울컥하는 감정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감정은 태연과 준수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철없는 10대, 20대인 마냥 현실을 직시하지 못 하고, 이 시대 최고 아이돌 스타와의 로맨스라는 불가능한 망상에 빠져서 허
우적 대던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정말 바보같이...주변 사람들 모두가 소녀시대 홍보부장이라고 놀릴 때도 성실하고 세심하게 우결 촬영에 임했던 이유는 태
연이라면...혹시나 태연이라면 진실한 사랑이 되어 줄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연이 아무리 착한 여자애라고는 하지만, 이제 막 20대에 들어선 아이돌 걸그룹의 멤버... 절대로 30대 초반의 뚱
뚱한 개그맨과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헛된 기대를 접고 우결 스튜디오 MC를 노려보라는 선배, 동
료들의 말도 무시하고 기어이 태연과의 가상결혼에 임한 형돈이었다. 형돈이 끝끝내 듣지 않은 그 날카로운 충고
가 지금 송곳이 되어 온 몸을 찌르는 듣한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태연-준수 스캔들 기사의 아래쪽 댓글란에는 베스트 댓글로 "누가봐도 형돈-태연 커플보다는 준수-태연 커플이 어
울린다."이 올라와 있었다. 그래....누가봐도 심지어 형돈 자신이 봐도 꽃미남 아이돌인 준수가 태연에게 어울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부정할 수 없는 위화감...나도 태연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데...사랑하는데...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백 수천 번을 고민해봐도 태연과 형돈 보다는 태연과 준수가 더 자연스럽고, 사랑스런 커플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
어쩌면 우결의 푸딩젤리 커플 때문에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은 그 누구보다 형돈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아무
런 현실성 없는 로맨스에 그 누구보다 몰입한 것은 형돈이었다. 태연은 아직 첫 키스도, 연애도 못 해본 소녀일 뿐
이었다. 그런 태연이 특별히 잘 생기지도, 매력이 넘치는 것도 아닌 30대 초반의 진상 개그맨을 진심으로 사랑할 것
이라고 괜히 헛된 기대를 품었을 뿐이다. 태연 뿐만 아니라 그 나이대의 여자이라면 누구라도 꽃미남 아이돌을 선
택하지, 30대 초반의 진상 개그맨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형돈은 이제 잔인한 진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형돈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다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진실, 이 시
대 최고의 아이돌 걸그룹의 리더인 태연이 건방진 뚱보이자 진상 개그맨인 형돈과 지난 1년간 닭살스런 커플행새
를 했던 것은 두 장의 미니앨범 홍보와 소녀시대 비인기멤버의 인지도 향상을 위한 소속사의 전략때문이었지, 형
돈의 오랜 팬이자, 그를 개그 우상으로 삼았던 소녀의 순정때문은 아니었다는 진실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새 형돈의 컴퓨터 책상 앞에는 냉장고에서 꺼내 먹은 맥주캔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젠 태연과 준수가
원망스럽다거나 미운 감정이 생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회사의 홍보방침 때문에 억지로 자신과의 가상결혼에 나서
야 했던 태연이 측은해 진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앨범 홍보에,그룹 홍보 때문에 진짜 사랑을 제쳐두고 나랑 1년동안이나 그렇게...."
벌써 4년 전 이맘 때었다. 형돈이 개그맨으로 데뷔 하기 직전부터 7년을 사귄 애인이 이별을 통보할 때도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이었다. 형돈은 갑작스런 연인의 이별통보에 일 주일 간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재결합을 애걸복걸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 하고, 설날 때까지 두문불출, 식음전폐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헤어진 그녀는 형돈에게 첫 몇백
만원이라는 거금을 빌려쓰고, 아직 돌려주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형돈은 떠나가는 그녀에게 마지막 선물로 빚 청산을 요구
하지도 않았다. 형돈의 이런 순정에도 불구하고 헤어진 그녀는 겨우 1년 조금 넘어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버렸고, 그 뒤
로 형돈은 몇 번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제부터 사랑스런 태연과 지난 4년간 못 했던 수많은 일들을 해보고 싶었건만, 딱 4년 전과 마찬가지로 형돈의 마
음에 쓰라린 생채기를 내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어느 떄보다 잔인한 크리스마스가 형돈에게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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