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귀천사] 제Ⅰ장 천사들의 비역질 (6)
∮색귀천사(色鬼天使)∮
제Ⅰ장 천사들의 비역질 (6) - 김 현
**(원편집자 주) 본 글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이책>에 있으며, 관련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재편집자 주) 2001년 01월에 하이텔 XDOOR에 올라왔던 소설입니다.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고, 내가 얘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궁금하다면 얘기해주지. 쟨 2할 쪽이야."
"…!"
지니의 이야기에 나는 상당히 충격을 먹었다. 류희 같은 불여우가 아직 처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하긴 불여우이기 때문에 남자를 홀려서 간만 날름 빼먹고 입을 싹 닦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쨌든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제대로 본 거 맞아? 혹시 시스템에 오류가 생겨서 연산을 잘못한 거 아냐?"
그의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확인 차원에서 나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시스템, 연산 뭐? 내가 무슨 기계냐, 임마?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그렇게 못 미더우면 이따 네가 직접 확인해 보면 되잖아."
길게 호흡을 추스르고 난 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직접 부딪쳐보면 되는 거지.
이제야 비로소 지니의 능력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험 무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거사(擧事)의 첫발을 내딛었다.
류희와 그녀의 친구들은 교문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20여 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그녀들을 좇았다.
지니가 내 곁을 쓰윽 스쳐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빙긋이 웃어 주었다.
엄지손가락을 반듯이 치켜세운 채.
지니는 그녀들의 등 뒤로 바싹 다가선 뒤 두 여자의 어깨를 짚었다.
다음 순간 그녀들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사람들처럼 류희만 남겨둔 채 바삐 학교를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류희 혼자만 남은 것이었다. 나는 걸음을 빨리 옮겨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교문 앞 광장엔 꽤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지니의 의도를 짐작할 길은 없지만 어쨌든 류희가 교문을 나서기 전에 일을 치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그녀가 히뜩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팔에 잔뜩 힘을 준 채 그녀의 뺨을 냅다 후려쳤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고개가 휘청 꺾여 돌아갔다.
3초 가량 그녀는 고개가 돌아간 자세 그대로 뻣뻣이 굳어 있었다.
이윽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눈빛은 경악 그 자체였다.
"서, 선배…!"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나는 또 한번 그녀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야, 이 계집애야. 귀찮으니까 이제 좀 그만 쫓아다녀! 도대체 내가 몇 번이나 말해야겠어?
난 네가 싫어. 지겨워. 지긋지긋해서 죽겠단 말야!
사람을 그렇게 망가뜨렸으면 됐지, 이제 와서 나더러 뭘 더 어떻게 하란 말야?
난 네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경기가 일어날 정도야.
제발 부탁이니까 이제 좀 내 눈 앞에서 꺼져 줘. 영원히 사라져 달란 말야!"
전혀 계획에 없던 말이었다.
어째서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광장이 떠나가라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주위를 지나던 학생들이 미심쩍은 시선으로 그녀와 나를 힐끔거렸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입만 쩍 벌린 채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교문을 빠져 나왔다.
특별히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엔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일 듯 싶었다.
얼마쯤 걷다가 슬쩍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허겁지겁 내 쪽으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한 커피숍으로 갔다.
냉커피 두 잔을 시킨 뒤 나는 느긋하게 담배 한 개비를 빼어 물었다. 나는 왠지 모를 자신감에 차 있었다.
지금까지 여자 앞에만 서면 나도 모르게 반거들충이처럼 바보가 돼버리곤 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냥한 쥐를 앞에 두고 있는 고양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선배한테 도대체 뭘 잘못한 거죠? 난 선배가 나한테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발음은 또박또박했지만 그녀는 어딘가 모르게 약간 넋이 나가 있는 듯했다.
게다가 그녀의 말투는 나를 원망하고 있다기보다는 정말 몰라서 묻고 있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모르면 됐어. 굳이 알려고 들지 마. 알아봐야 좋을 것도 없으니까."
투명한 유리 테이블 아래로 그녀의 미끈한 두 다리가 엿보였다. 나는 소리 없이 침을 꼴깍 삼켰다.
잠시 후면 저 야들야들한 몸이 내 것이 된단 말이지.
"물론 선배가 날 때린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내가 맞을 짓을 했겠죠.
하지만 정확히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너무 답답해요. 얘기 좀 해 주면 안 돼요?"
이것 봐라? 나는 입을 벙그렇게 벌린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도도하고 오만하기 그지없던 그녀의 입에서 이런 소리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런 게 바로 천사의 능력이란 말인가. 마력 같지 않은가. 나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지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넌 말야, 너무 예뻐. 너무 예쁜 데다가 몸매까지 죽이지. 그래서 남자들이 너 때문에 힘들어 해.
아무리 침 흘려봐야 그림의 떡이니까. 그래서 때렸어. 기분 나빠서. 그럴 듯하지?"
장난처럼 나는 그렇게 말해보았다. 그녀의 홀린 정도를 가늠해보기 위한 일종의 실험이었다.
한동안 골똘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응시하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몰랐어요. 나 때문에 남자들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은…. 그래요, 맞을 만하네요.
정말 내가 잘못한 거예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나는 목구멍에서 골골거리는 소리가 나려는 걸 억지로 참아야 했다. 이 정도면 거의 꼭두각시 인형 수준이지 않은가.
나는 지니의 가공할 능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자책 어린 독백을 웅얼거리던 그녀가 다시 내게 말했다.
"그럼 나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어떻게 해야 선배 화가 풀릴까요?"
"그 얘긴,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소리냐?"
"할께요! 선배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께요. 그래서 선배 화가 풀릴 수 있다면… 말해 봐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드디어 기회가 왔다. 담배를 끈 뒤 나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널 갖고 싶어."
다음 순간 그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지는 게 보였다. 몹시 심각한 얼굴이었다. 나는 아차 싶었다.
혹시 지니가 말했던 그 트러블인가 뭔가가 일어난 게 아닌가 싶어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젠장,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행동으로 바로 옮겼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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